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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은 용사를 죽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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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4dh
작품등록일 :
2019.11.10 06:44
최근연재일 :
2020.05.11 18: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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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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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0,874

작성
19.11.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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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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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화 - 카키는 조연이다

DUMMY

카키는 조연이다.

어린 시절 카키는 또래 중에 가장 똘똘한 아이였다.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글자나 숫자같은 건 잘 알지 못했지만, 그의 입담이나 임기응변은 꽤 쓸 만한 것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가 그만큼 빠른 두뇌회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과격한 남자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직 용병인 카키의 아버지 토드는 혁명에 가담한 죄로 오른쪽 다리와 왼팔을 잃었다.

혁명의 주동자들은 처형당했고, 토드의 갈 곳을 잃은 분노는 오롯이 카키와 카키의 어머니를 향했다.


카키의 어머니는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진 토드를 대신해 일을 구했고,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토드를 알고 지냈던 마을 촌장의 호의로 소작농이 되었다.


카키는 하루 종일 아버지의 기분을 살펴야 했기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를 읽거나 적당히 말을 돌리는 것을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 카키지만 표면적으론 또래 아이들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여느 동네의 아이들이 그렇듯 카키가 이웃 아이들을 모아 동네 용사단을 결성한 것이 14살 때의 일이었다.


모험을 떠날 것이라며 두근거리던 친구들과 달리 카키가 용사단을 만든 이유는 아버지가 있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카키 역시 용사단 활동을 좋아하게 되었다.


결성 당시 용사단의 임무는 마을 외곽 숲의 울타리 보수나 비밀기지 건설 같은 다소 놀이에 가까운 일들이었다. 울타리 보수라고 해봐야 낡은 울타리에 나무를 제멋대로 덧대는 수준이었고, 비밀기지는 근처 동굴에 몇몇 장애물을 설치한 게 전부였다.


그러나 카키의 친구들은 용사단 활동에 자부심을 느꼈고, 학교가 끝나면 카키에게 찾아와 그날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이야기 해주며 마을 뒷산으로 함께 모험을 떠났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카키와 친구들은 마을의 밭을 헤치는 멧돼지를 잡거나 도적단을 퇴치하며 진짜 용사단처럼 활약했다. 도적단 소탕 이후 자신감이 생긴 브론드는 당장이라도 마을 근처에 있는 오크 부락을 소탕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대장인 카키의 뜻에 따라 준비가 되면 실행하기로 했다.


친구들의 부모님은 카키와 어울려 다니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았지만, 도적단 소탕 이후, 관청에서 표창까지 받았기 때문에 평판이 좋아진 용사단은 유지될 수 있었다.


용사단 활동을 하면서도 카키는 소작농이었던 어머니를 돕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카키의 어머니는 밝게 자란 카키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카키가 16살이 되던 해 카키의 어머니는 토드에게 살해당했다. 용사단이 그동안의 준비를 마치고 마을 근처에 있는 오크 부락을 소탕하러 간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오크의 숫자에 코발트가 부상을 입어 작전을 잠시 중단하고 치료를 위해 마을로 돌아왔을 때, 카키는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토드와 마주쳤다.


평소처럼 도박을 했거나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을 거라고 생각해 한숨을 쉬던 카키는, 집안에 쓰러져있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토드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용사단 친구들이 모두 달려들고, 병사들까지 합세한 후에야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주먹질을 해대는 카키를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병사들에게 끌려가던 토드는 마법도 과학도 전부 잘못됐다며 발작적으로 외쳤지만, 카키의 어머니는 마녀도 과학자도 아닌 평범한 시골 아낙이었다. 그녀와 소꿉친구였던 토드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라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토드는 혁명에 휘말려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는 촌장의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듬해부터 토드가 가담했던 혁명은 내란으로 명명되어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


토드가 끌려간 이후, 카키는 이곳저곳 멍이 든 채 싸늘하게 식어있는 어머니의 시체를 껴안고 소리없이 울었다. 친구들은 그 일에 대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카키가 어머니의 상을 지내는 것을 묵묵히 도왔다.


상을 마치고 난 뒤 용사단은 자연스레 해산하게 되었다. 용사단의 해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용사단의 목표였던 오크 퇴치가 허망하게 끝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카키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잔혹하고 확실하게 마을 근처 오크들의 씨를 말렸다.


해산한 용사단은 그 나이 또래들이 그렇듯 각자 진로를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카키는 촌장의 호의로 어머니의 일을 물려받아 소작농이 되어 동네에 남았다.


멀리 여행을 떠난 친구들은 그 뒤로도 종종 카키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글을 읽지 못했던 카키는 편지를 읽기 위해 촌장님에게 글을 배웠고, 시간이 지나서는 답장도 할 수 있게 됐다.


용사단에서 가장 상냥하고 성실하던 코발트는 드래곤 로드를 만나 그의 힘을 물려받았고, 조금 껄렁대긴 하지만 누구보다 속 깊은 브론드는 마검에게 인정받아 마검사가 되었다. 그리고 카키의 옆집에 살던 베이지는 신의 부름을 받아 성녀가 되어 엄청난 신성력을 갖게 되었다.


카키는 마을에 남아 소작농으로 생활했고, 저녁이 되면 목검을 휘두르거나 마을을 뛰어다니는 간단한 단련을 했다. 친구들처럼 엄청난 힘은 없지만, 농사를 지으면서도 앓는 소리 한 번 하지 않을 정도의 건강한 육체를 가지게 되었다.


카키가 18살이 되던 해. 잠시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들로부터

함께 마왕을 물리치러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친구들의 제안이 기뻤지만, 자신이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경 써주는 친구들이 고맙고 미안해 거절했다. 친구들은 그의 두뇌를 높이 사는 듯 했지만, 카키는 오크 부락을 소탕하는 것과 마왕을 물리치는 것이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2년 뒤 세상에는 마왕이 사라졌고 카키의 친구들은 진짜 용사가 되었다.


어릴 적 앞장서서 용사단을 만들자고 호기롭게 외치던 카키는 힘내라! 라는 응원을 서신으로 보내는 조연이 됐다.


‘아무렴 어때.’


마왕퇴치 소식을 들은 카키는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재주라고는 조금 눈치가 빠른 것과 허세를 잘 부리는 것뿐인 카키가 어린 시절부터 특출 났던 그들을 따라가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는 게 카키의 지론이다. 멧돼지야 어떻든, 도적단을 물리칠 때 카키가 했던 것은 돈 많은 상인의 시종인척 연기해 도적들을 꾀어내는 것 정도였으니까. 오크 부락의 경우엔 조금 이야기가 달랐지만.


과거 마왕이 탄생하기 전 설화를 다룬 이야기책에서도 용사의 첫 파티멤버는 갈수록 강해지는 적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낙오한다. 잔인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어쩔 수 없다는 걸 카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냉정하게 주제파악을 했던 카키였기 때문에 3년 간 열심히 일했고 마왕이 사라진 세상엔 그가 운영하는 작은 여관이 생겼다. 기껏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몸을 가지게 되어놓고 타지로 가서 남들 시중이나 드는 여관주인이 된 것에 대해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촌장은 그런 카키의 결정을 응원하며 목돈을 챙겨주었다.


마을을 떠나 서쪽 평원의 관문도시 루브린에 여관을 개업한 지 1년. 카키의 여관은 시끌벅적할 정도로 붐비지는 않지만, 단골손님들이 생길 정도로 좋은 여관이 되었다.


그런 카키에게 코발트와 베이지의 청첩장이 도착한 것이 2주 전의 일이다. 마왕 퇴치 후 4년. 서쪽평원을 탈환해 이전보다 풍요로워진 대륙에 선남선녀 용사 커플이 탄생한 것이다.


카키 역시 마을에 한명 뿐인 또래 여자아이였던 베이지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함께 용사단 활동을 하던 시절에도 베이지의 짝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했었다. 두 사람이 예복을 입은 모습을 상상해 본 카키는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여관에 자주 들르는 모험가 손님에게 결혼식 선물도 의뢰했다.


종종 서신으로 베이지가 점점 아름다워진다며 칭찬하던 브론드의 경우는 두 사람의 결혼이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친구인 코발트의 행복을 누구보다 기뻐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카키의 자랑스런 친구들이자 세상을 구한 용사일행은

세 명 모두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작가의말

신작입니다.

최근 입에서 개구리를 빼!의 연재 속도가 느려져서 글에 대한 열정을 되찾기 위해 쓰다보니 꽤나 많은 양의 비축분이 생겨서 연재합니다. 연재주기는 일 화 목 주 3회가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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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88화 - 그녀는 인질로서 가치가 없다 20.05.11 68 1 6쪽
87 87화 - 서장은 부하에게 취조당한다 +1 20.05.06 47 1 7쪽
86 86화 - 용병은 신속하게 과자를 먹는다 20.05.01 44 1 6쪽
85 85화 -대장장이는 뜻밖의 손님을 맞이한다 20.04.30 56 1 5쪽
84 84화 - 시종은 영웅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4.21 50 1 6쪽
83 83화 - 마공작은 동료의 패퇴에 미소짓는다 +1 20.04.20 51 2 6쪽
82 82화 - 여관주인은 잠을 설친다 20.04.18 60 1 8쪽
81 81화 - 공작은 마공작의 안위를 걱정한다 20.04.16 34 2 7쪽
80 80화 - 용병은 뒤늦게 알아차린다 20.04.14 44 1 7쪽
79 79화 - 마족의 기준은 조금 다르다 20.04.13 41 2 7쪽
78 78화 - 가명은 대개 유치한 것들이 많다 +1 20.04.11 46 2 6쪽
77 77화 - 경찰은 수사자료를 넘긴다 20.04.08 52 2 5쪽
76 76화 - 그는 나지막이 말한다 +1 20.04.07 68 1 8쪽
75 75화 - 대장장이는 버릇처럼 수사한다 20.03.31 69 2 7쪽
74 74화 -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있다 20.03.30 60 2 7쪽
73 73화 - 그들은 역 앞에서 우연히 만난다 20.03.27 63 1 7쪽
72 72화 - 용병은 마왕을 떠올리며 전율한다 +1 20.03.24 62 2 7쪽
71 71화 - 철마는 어둠을 뚫고 달린다 20.03.23 125 2 7쪽
70 70화 - 공학자는 간단한 사실에 감탄한다 20.03.20 60 2 8쪽
69 69화 - 용병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1 20.03.18 76 2 6쪽
68 68화 - 용의자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20.03.17 74 3 7쪽
67 67화 - 마족은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다 20.03.16 68 5 7쪽
66 66화 - 여관주인의 방 문은 거칠게 열린다 +1 20.03.13 86 2 8쪽
65 65화 - 배신자는 애써 외면했다 20.03.12 160 3 7쪽
64 64화 - 용병단의 아지트는 2층 가정집이다 20.03.11 64 3 8쪽
63 63화 - 여관주인은 옛 지인과 조우한다 +1 20.03.09 100 4 8쪽
62 62화 - 마녀는 인간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2 20.03.06 84 3 8쪽
61 61화 - 소식지는 대개 진실과 거짓이 적당히 섞여있다 20.03.05 85 3 8쪽
60 60화 - 범죄자는 최신 기술에 감탄한다 +1 20.03.03 80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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