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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보관소

신촌 선율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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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4dh
작품등록일 :
2019.08.13 13:24
최근연재일 :
2019.11.25 14:26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143
추천수 :
30
글자수 :
20,923

작성
19.08.24 15:35
조회
54
추천
3
글자
6쪽

track 6. 다시 누군가에게 내 맘을 준다는 게 겁이 나

DUMMY

현호가 전역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은 헤어지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긴 군 생활을 군말 없이 기다려줬던 여자 친구에게 전역 기념 선물을 사갔던 날이었다.


“미안해. 사실 그동안 다른 사람 만나고 있었어.”


휴가 때 가족들하고 보내라는 배려가 사실은 자신을 만나지 않으려는 의도였고,


“군대에서 차이면 위험한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까 말을 못했어.”


개인정비 시간에 쪼르르 달려가 전화를 걸었을 때 툴툴댔던 이유는 외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였다.


햇수로는 3년. 긴 시간을 사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별 통보를 받은 자리에서 본 그녀의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군대를 기다려줬다는 데 미안함을 가지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

현호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허허 그것 참 나쁜 년이네 그려’라는 친구의 너스레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헤어짐의 아픔이 가시기 전에 복학을 했기 때문에 현호는 몰두할 만한 일을 찾았다. 군대에 가기 전 활동했던 축구 동아리에 들렀더니 마침 멤버가 부족하다기에 다시 동아리 활동을 하기로 했다.


복학생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친해지기 힘들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군대에서도 제법 공을 잘 차는 편이었던 현호는 경기 몇 판 뛰고 뒤풀이 술자리를 몇 번 나가니 후배들도 편하게 다가와 줬다. 그런 팀워크 덕분인지 축제에서는 4강이라는 호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매니저 오늘도 수고!”


연습 경기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 후배 민지 역시 4강이라는 성적에 일등 공신이었다.

신입생인데도 싹싹한 성격과 꼼꼼한 관리를 해주는 덕에 연습 일정 잡는 것도 수월하고, 팀원들의 사기에도 좋은 영향을 줬다.


“말로만 수고했다고 하지마시고 밥이나 한 끼 사주면서 말씀하시죠?”


현호는 조금 당황했지만, 고생하는 후배에게 밥 한 끼 사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만 있어봐. 또 같이 갈 만한 애들 있나 물어보고 올게.”


물론 한참 어린 여자 후배와 단 둘이 저녁을 먹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다.

신입생들은 자기들끼리 한 잔 하러갔다고 하니 다른 후배들에게도 물어봤지만,


“형. 우리가 여친이 없지 눈치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거기 끼었다가 민지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거길 갑니까?”


“이 형 그냥 기만하러 온 거 아님? 으아~ 누구는 좋겠다~”


현호는 자신을 놀리는 후배들에게 꿀밤이라도 먹여주고 싶었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고 민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야. 아무래도 둘이 먹어야겠다. 일단 물어봤으니까 뒤에서 딴소리하진 않겠지.”


사실 현호는 민지가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처음엔 축구의 ㅊ 자도 몰랐던 민지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도.

현호도 민지가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거나,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굳이 어느 쪽이냐 따지자면 그녀의 적극적인 공세에 항상 설레고,

그게 무서워 뒷걸음질 치는 중이다.

현호는 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딱히 전 여자 친구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며칠이야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내가 차지 못해 아쉽다 정도의 감정이다.


확신이 서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현호 자신의 문제였다.

지금 민지와 함께 다니는 것처럼 가볍게 식사를 같이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정도야 상관없지만

연인으로서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언제까지 청승떨 거에요!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 거래요!”


현호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민지에게 한 소리 들었던 것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조금 찌질한 것 같긴 하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리를 걷다보니 자주 가던 음악사의 간판이 바뀐 것이 보였다.


‘주인이 바뀐건가?’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음악사를 찾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현호는 민지에게 들어가보자고 권했다.


“어서오세요. 선율음악사입니다.”


현호를 맞이한 것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규모가 작은 가게는 아니지만, 음악사 일은 아르바이트가 하기엔 조금 버거운 것이니

아마도 사장이겠지.


현호는 남자의 안내를 받아 평소 자주 듣는 밴드음악이 있는 곳으로 갔다.

둘러보니 다 들어본 앨범들 뿐이라 조금 실망하고 있는데,

그것을 지켜보던 남자가 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혹시 들으실 만한 앨범 없으시면 밴드 멤버들이 솔로로 낸 앨범들 한 번 들어보실래요?”

“아 좋네요! 혹시 추천해주실 만한 앨범 있으신가요?”


남자는 잠시 둘러보더니 이내 앨범하나를 꺼내 현호에게 건넸다.


“밴드 슈퍼키드 멤버 징고의 솔로 앨범이에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목소리기도 하고, 이 앨범 이후로 나왔던 싱글들도 다 좋았거든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현호는 뜻밖의 수확에 기분이 좋아져 안내를 받고 앨범을 재생했다.


[다시 누군가에게 내 맘을 준다는 게 겁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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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는 앨범을 사고 민지를 찾았다.

혼자서 뭔가 열심히 듣고 있는 모양이라 방해하지 않으려 말을 걸지 않고 있었는데,

시선을 느낀 것인지 민지가 현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현호는 현실은 노래와 닮았지만,

이 동그란 눈의 아가씨는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자신도 모르게 환하게 웃었다.


[징고 미니앨범 ZINGO, 날 사랑하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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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rack 8. 무너진 나의 도시 오가는 말들 속을 난 헤매고 19.11.25 36 0 4쪽
9 track 7.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19.09.02 55 2 4쪽
» track 6. 다시 누군가에게 내 맘을 준다는 게 겁이 나 19.08.24 55 3 6쪽
7 track 5. 아 나로 하여금 이토록 가슴이 뛰고, 벅차오르게 만드는 사람 그대라는 것만 알아요 19.08.22 67 1 7쪽
6 track 4. 어쩌면 너는 내가 꽉 머릿속에 붙잡아 놓고서 방 안에 키운 코끼리였나봐 +1 19.08.19 89 3 5쪽
5 track 3. 들어주겠니. 바람이라도. 내 마음 모두 날려줘 19.08.16 111 5 5쪽
4 track 2. 친구들은 조금씩 다 적응해가고, 분주함에 익숙한 듯 표정 없어 +1 19.08.14 136 4 6쪽
3 track 1.5 그녀의 고양이 19.08.13 157 4 2쪽
2 track 1.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2 19.08.13 194 4 5쪽
1 Intro-선율음악사의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19.08.13 244 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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