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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선율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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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4dh
작품등록일 :
2019.08.13 13:24
최근연재일 :
2019.11.25 14:26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139
추천수 :
30
글자수 :
20,923

작성
19.08.19 09:23
조회
88
추천
3
글자
5쪽

track 4. 어쩌면 너는 내가 꽉 머릿속에 붙잡아 놓고서 방 안에 키운 코끼리였나봐

DUMMY

민석은 꽤 잘 나가는 남자다.

하얀 피부에 큰 키. 적당한 유머감각과 몸에 배인 매너.

첫 눈에 반할 만큼 잘생기진 않았지만,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한 외향이다.


그러나 얼핏 완벽해 보이는 민석에게도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세상에 여자가 걔 하나도 아니고. 뭘 그렇게 청승을 떠냐?”


언젠가 대학교 동기가 여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민석이 건넨 위로였다.

민석은 가벼운 연애관과 지나치게 개방적인 사고 탓에 대학교 입학 후에도

수시로 여자 친구가 바뀌었다.


덕분에 여학생들 사이에선 안 좋은 소문도 돌고 있는 것 같지만,

민석은 여차하면 다른 대학교 학생을 만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민석의 연애는 대부분의 경우엔 길어야 100일을 넘지 못했지만,

가장 최근 만났던 여자 친구는 거의 1년 가까이를 사귀었다.


그녀와는 거의 매일 만나도 즐거웠고, 애정표현도 자주했다.

만나지 못하는 날엔 전화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그 느낌이 사그라지는 것 같아

설렘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했다.

시간이 더 지나 정 때문에 억지로 만나는 것보단 지금 끝내는 게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울며불며 매달리던 그녀의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어느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녀와 헤어진 첫 일주일은 꽤나 즐거웠다.

후배들에게 소개팅을 부탁하거나, 교양 수업 때 괜찮은 여학생이 있는지 둘러보니

새삼 솔로라는 것이 느껴져 기대감이 가득 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어째서인지 그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래 만나서인지 민석이 가는 곳마다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 했고,

자취방에 누워있으면 그녀가 옆에 누워있는 듯 착각에 빠져 들었다.


소개팅 자리에 나가서도 상대와 그녀를 비교하며 한숨을 내쉬었고,

길거리에 다른 여자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많은 연애를 했고, 또 그만큼 많은 이별을 했었는데,

이렇게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머릿속을 가득채운 그녀 생각을 이기지 못한 민석은

결국 그녀에게 연락해봤지만, 매몰찬 거절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게 다 형 업보에요. 1학년 때 유경이한테도 찝쩍거리다가 한 소리 들어놓고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어휴. 아마 유경이 성격에 형이 선배만 아니었으면 진짜 한 대 쳤을 걸요?”


얼마 전 전역한 후배 녀석으로부터 쓴 소리를 들어도 반박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시끄러 임마. 그 때는 너랑 유경이 잘되라고 질투유발 작전을 계획했던 건데 신유경 그게 뜬금없이 학을 뗐던 거야.”


“하여튼 핑계는. 정 힘들면 집 앞에라도 가서 무릎 꿇고 싹싹 빌어보시지 그래요?

뭐 나 같으면 절대 안 받아줄 것 같지만.”


“일없다. 남자가 체면이 있지.”


“체면? 형이 지금 체면 찾을 때에요? 제발 남자 망신 그만 시키시고 정신 좀 차려요.”


“이 자식. 군대 갔다 오더니 조동아리만 훈련했나.”


민석은 후배를 보낸 뒤, 조금 갈등했다.

이제 와서 염치없다는 것도, 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만약 그녀가 용서해준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그녀의 집에 찾아가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조금 당황한 듯 했지만 전화로 이야기 했던 때보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민석은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조용히 돌아왔다.

다시 얼굴을 마주하니 그녀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다음 날 희망을 품고 다시 찾아갔을 때, 그녀는 어제와는 달리 개운해진 듯한 표정으로

민석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민석은 자존심이고 뭐고 울며불며 매달릴까 생각했지만,

더 이상은 민폐라는 생각에 쓸쓸히 돌아왔다.


[어쩌면 너는 그냥 쓱. 레드썬 걸면 사라져 버리는 단순한 사람은 아닌가봐]


민석의 속도 모르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노래는 경쾌한 리듬에 씁쓸한 가사였다.

민석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사랑을 찾아보겠노라 다짐했지만.


[어쩌면 너는 내가 꽉. 머릿속에 붙잡아 놓고서 방 안에 키운 코끼리였나봐.]


어째서인지 머릿속은 온통 그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참깨와 솜사탕 정규 1집 까만방, 방 안의 코끼리]


작가의말

월요일이네요. 다들 오늘 하루 힘내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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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rack 8. 무너진 나의 도시 오가는 말들 속을 난 헤매고 19.11.25 36 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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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rack 5. 아 나로 하여금 이토록 가슴이 뛰고, 벅차오르게 만드는 사람 그대라는 것만 알아요 19.08.22 67 1 7쪽
» track 4. 어쩌면 너는 내가 꽉 머릿속에 붙잡아 놓고서 방 안에 키운 코끼리였나봐 +1 19.08.19 89 3 5쪽
5 track 3. 들어주겠니. 바람이라도. 내 마음 모두 날려줘 19.08.16 111 5 5쪽
4 track 2. 친구들은 조금씩 다 적응해가고, 분주함에 익숙한 듯 표정 없어 +1 19.08.14 136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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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rack 1.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2 19.08.13 193 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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