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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보관소

신촌 선율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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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4dh
작품등록일 :
2019.08.13 13:24
최근연재일 :
2019.11.25 14:26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146
추천수 :
30
글자수 :
20,923

작성
19.08.16 11:27
조회
111
추천
5
글자
5쪽

track 3. 들어주겠니. 바람이라도. 내 마음 모두 날려줘

DUMMY

“난 됐으니까 먼저 가봐. 얼마 걸리지도 않아. 그리고 너 집 멀잖아?”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수고!”


힘찬 목소리와 함께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민우에게 유경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줬다.


같은 과 동기인 민우와 유경은 오리엔테이션 뒷풀이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것을 계기로 친해지게 됐다. 두 사람 모두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던 탓에 학기 초에는 일주일에 3~4번은 만나다시피 할 정도로 함께 다니는 일이 많았지만, 민우에게 여자 친구가 생긴 무렵부터는 연락하기가 껄끄러워 가끔씩 얼굴만 보는 사이가 됐다.


민우의 입대를 앞두고 친구들과 함께 모인 술자리에서 민우는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유경은 민우에게 잘한 거라고 격려했지만, 마음 속에서 잘됐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조금 싫었다.


강원도에서 복무하게 된 민우를 보기위해 면회를 갔던 날엔 인솔을 해준 민우의 맞선임으로부터 여자 친구냐는 질문을 받았다. 민우는 얘는 그냥 친구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유경은 그 대답에 진심으로 웃을 수는 없었다.


군대에서 전역한 민우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 유경은 평소보다 조금 화사한 차림으로 약속장소를 향했다. 가끔씩 전화가 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 사이에서 민우를 발견한 유경은 민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야. 박민우!”


“이열~ 신유경~ 오랜만이다. 야 너 예뻐졌다.”


“....뭐래. 넌 아저씨 다 됐다?”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짧은 머리에 한층 더 남자다워진 민우를 본 유경은

담담하게 말을 받고 싶었지만, 어쩐지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들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야.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다들 앞으로도 우정 변치말자 알았지?”


“빡민우 저 새끼 취했나 또 시작됐네. 야 너만 잘하면 돼.”


“넵! 병장 박민우! 알겠습니다!”


유경은 변치말자는 민우의 말에 복잡한 심경이 됐다.


술자리를 마치고 민우가 바래다 주겠다고 했지만,

유경은 가까우니 금방 간다며 거절했다.


혼자서 길을 걷자니 높은 구두에 발이 아파 온 유경은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잘한 거야. 신유경. 잘 참았어.’


유경은 만약 민우와 단 둘이 걸었다면 참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우에게 자신은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단 둘이 만나는 일이 있으면 손에서 핸드폰을 떼어놓지 않던 민우가

여자친구 앞에서는 단 한번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유경은 민우에게 누구보다 편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조금 울음이 날 것 같았던 유경은 이내 발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신나는 노래라도 들으면서 갈까?’

유경은 울적한 기분을 바꿔보려 가방에서 이어폰을 찾았지만,

아무래도 챙겨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층 더 우울해진 유경의 눈앞에 들어온 것은 늦은 밤인데도 열려있는 음악사였다.

민우의 면회를 갈 때 부탁받은 앨범을 사갔는데, 어느새 주인이 바뀐 모양이었다.


“어서오세요. 선율음악사입니다.”


무언가 작업 중인지 의자 위에 서있으면서도 사람좋은 웃음으로 인사하는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인 유경은 모처럼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가게를 둘러봤다.


‘뭐가 되게 많네..,불안, 상실...팻말이 뭐 이래?’


“저기 혹시 들을 만한 거 추천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물론이죠. 죄송합니다. 팻말을 바꾸는 중이라 찾기가 어려우셨겠네요.

혹시 어떤 노래 찾으시나요?”


“음..신나는 거... 아니... 아예 눈물 쏙 빼는 노래요.”


잠시 유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는 이내 생각이 났다는 듯 걸어가 한 장의 앨범을 꺼내왔다.


“윤하 3집입니다. 윤하 3집은 두 개로 나뉘어서 발매됐는데 이건 part B에요. 신나는 것도 있고, 슬픈 노래도 있고 개인적으로 자주 듣는 앨범입니다.”


유경은 남자의 설명을 대충 들으며 뒷면을 살펴보다가 흠칫 놀랐다.


4. 편한가봐


“이거 혹시 들어볼 수 있나요?”


“물론이죠. 잠시만요.”


남자는 친절하게 웃으며 유경을 안내해줬고, 유경은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들어주겠니. 바람이라도. 내 마음 모두 날려줘 숨차게 달려와도 너는 멀잖아.]


---------------------------------------------------


“안녕히 가세요.”


유경은 빠른 걸음으로 가게를 나섰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대성통곡은 하지 않았다는 거지만,

청승맞게 혼자 훌쩍거리는 모습이 상상되어서 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어느새 건널목에 도착한 유경은 횡단보도에 서서 손에 쇼핑백을 바라봤다.

노래를 들으며 울고 나니 아까보단 개운해진 기분이다.


‘집에 가면 신나는 노래도 들어봐야겠네.’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바뀌고 유경은 앞으로 걸어갔다.


[윤하 3집 3rd Album Part B: Growing Season, 편한가봐]


작가의말

기본적으로 단편선이긴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나 등장인물들은 연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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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 3. 들어주겠니. 바람이라도. 내 마음 모두 날려줘 19.08.16 112 5 5쪽
4 track 2. 친구들은 조금씩 다 적응해가고, 분주함에 익숙한 듯 표정 없어 +1 19.08.14 137 4 6쪽
3 track 1.5 그녀의 고양이 19.08.13 157 4 2쪽
2 track 1.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2 19.08.13 194 4 5쪽
1 Intro-선율음악사의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19.08.13 245 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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