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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선율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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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4dh
작품등록일 :
2019.08.13 13:24
최근연재일 :
2019.11.25 14:26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145
추천수 :
30
글자수 :
20,923

작성
19.08.14 13:14
조회
136
추천
4
글자
6쪽

track 2. 친구들은 조금씩 다 적응해가고, 분주함에 익숙한 듯 표정 없어

DUMMY

“이렇게 다 모이는 게 얼마만이냐? 어?”


“그러게. 윤호 생일 아니었으면 니들이 이렇게 나오기나 했겠냐?”


대학교를 졸업한 지 꼭 1년 만에, 동기들과 모인 자리.

도언은 맥주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애써 미소를 지었다.


“맞아. 특히 도언이 넌 연락도 잘 안되더라? 글공부도 좋지만 임마.

친구한테 연락 오면 가끔은 밥도 같이 먹고 해야지.

글이라는 것도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잘 써지는 거야”


“야. 너 취준생 땐 안 그랬냐? 네가 창작의 고통을 아냐?

사진찍겠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빤스런 해놓고.”


“아니 뭐. 서운해서 그렇지. 크흠 아무튼. 오랜만에 다같이 모였으니까 짠하자 짠.”


“새끼. 지 불리할 때 말 돌리는 건 여전하구만. 자 짠.”


지방에서 올라온 도언은 마땅히 연고도 없는 터라 학교 기숙사에 지원했고,

오늘 만난 친구들은 모두 같은 과 동기이자 기숙사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었다.


1학년 때까지만 해도 항상 붙어 다녔던 그들은 입대시기가 엇갈리고,

복학과 휴학을 반복하며 드문드문 인연을 이어갔다.


단톡방에 글이 자주 올라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친구인 윤호의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다가


[야. 오늘 시간 되는 사람들 신촌으로 ㄱ?]


라는 현준의 제안에 엉겁결에 모두 모이게 됐다.


도언은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반갑기는 했지만,

왠지 모를 거리감에 자꾸만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분명 1학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은 위화감을 느낀다.


몇 년 전만 해도 항상 철없는 어린 애일 줄 알았던 그들이

이따금 짓는 무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있었다.


‘다들 어른이 됐네.’


왠지 모를 소외감이 도언을 덮쳐왔다.


방송국 PD가 꿈이라던 윤호는 S 기업의 신입사원이 됐고,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던 현준은 공무원이 됐다.

재환과 가장 친했던 성훈은 더 이상 만화 같은 것은 그리지 않고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누구 하나 도언이 여전히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지만

도언은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자신이 미친 듯이 싫어졌다.


나도 친구들처럼 빨리 정신을 차렸어야 했던 걸까.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한 채로 시간이 흘러 어느덧 술자리가 끝이 났다.

친구들은 각자 지하철과 버스, 택시를 타러갔고

여전히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도언은 천천히 걸어서 자취방으로 향했다.


‘담배를 필 줄 알면 이럴 때 조금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겠는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낯선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도 망했나보네.’


도언이 휴가 나올 때마다 부대에서 CD플레이어로 들을 음반을 사러 왔던 가게는

이름이 바뀌어 있었고, 사장 아저씨 대신 인상 좋은 젊은 남자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모처럼이니 들렀다 갈까하는 생각에 가게 안에 들어온 도언은

퍽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새삼 감상에 젖었다.


“어서오세요. 선율음악사입니다.”


‘저 나이에 사장은 아닐 테고 아르바이트인가?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네.’


도언은 남자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천천히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섹션을 나눠놓은 팻말이었다.


[불안]


“아. 조금 이상한가요? 그냥 연도나 가수별로 구분해놓으면 조금 식상하기도 할 것 같고, 어차피 찾는 게 있어서 오신 분들은 제가 찾아드리면 되니까요. 제 나름대로 구분을 해봤는데.”


진열을 마음대로 했다는 건 사장인건가?

어째서인지 조금 기분이 나빠진 도언은 빈정대는 듯 물었다.


“음...그럼 여기있는 노래들은 들으면 불안해 지는 건가요?”


남자는 아차 하는 표정을 하고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며 겸연쩍은 듯 답했다.


“아뇨. 이거 팻말을 좀 바꿔야겠네요. 여기 있는 앨범들은 불안할 때 들으면 좋을만한 노래들입니다. 뭐 불안함이라는 게 종류가 다양하다보니 모든 노래가 상황에 딱 맞을 수는 없겠지만요.“


도언은 민망해 하는 사내를 보며 엄한 데 화풀이 했다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그럼 혹시 여기서 추천해주실 만한 곡이 있나요?”


사죄할 겸 좋은 앨범이 있으면 사가야 겠다라는 생각이 든 도언이 묻자,

남자는 가만히 도언의 눈을 바라보더니 이내 사람 좋은 웃음으로 말했다.


“그럼 이 곡은 어떠신가요? 토이의 ‘모두 어디로 간 걸까’입니다. 이건 앨범 버전인데, 라이브 앨범도 따로 있어요. 라이브 버전도 원곡보다 템포가 빠르고 애드립도 들어가 있어서 좋지만, 아무래도 관객소리가 들어가 있다 보니 취향이 조금 갈리더라구요.


그리고 이거 재발매도 안되는 앨범이에요. 뭐,가격은 높지 않지만

소장가치는 충분하죠.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도언은 생각보다 아는 게 많은 남자. 그리고 말도 많은 남자라고 생각하며

안내를 받고 노래를 들었다.


[친구들은 조금씩 다 적응해가고, 분주함에 익숙한 듯 표정 없어.]


------------------------------------------------------------


“안녕히 가세요.”


도언은 남자의 기분 좋은 웃음을 뒤로 한채 가게를 나섰다.


노래 한 곡에 감정이 요동치는 자신은 역시 어린애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감수성이야말로 소설가에게 필요한 덕목 아니겠냐고 합리화했다.

약속장소에 나갈 때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집에 도착한 도언은 핸드폰을 꺼냈다.


[다들 잘 들어갔냐? 다음에는 내 소설 출판할 때나 보겠네]


[뭐야. 더 이상 만나지 말자는 거냐?]


[저 새끼 말하는 거 보소. 도언이 네가 빨리 출판해야 만나서 한 대 때려주니까

최대한 빨리해라.]


[그래 알았다. 조만간 보자.]


오늘 처음으로 환하게 웃은 도언은 핸드폰을 침대에 툭 던져놓고,

군대에서 쓰던 CD 플레이어를 오랜만에 꺼냈다.


[토이 5집 Toy 5 You Hee Yeol Fermata,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작가의말

비정기 연재다보니 정확한 업로드 일정은 없지만,

못해도 2~3일에 한 편씩은 올릴 예정입니다.

심심하신 분들은 제 정기연재작인 입에서 개구리를 빼!도 봐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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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 2. 친구들은 조금씩 다 적응해가고, 분주함에 익숙한 듯 표정 없어 +1 19.08.14 137 4 6쪽
3 track 1.5 그녀의 고양이 19.08.13 157 4 2쪽
2 track 1.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2 19.08.13 194 4 5쪽
1 Intro-선율음악사의 주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19.08.13 245 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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