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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 인간, 인간, 사람,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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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옹이
작품등록일 :
2022.08.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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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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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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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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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DUMMY

-짐승-



“물고기를 잡아먹는데 내 이름을 댄 건 거슬렸지만 내가 허락한 바가 있으니 넘어가겠다.”


“가,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야, 근데 너,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네, 네?”


“네가 내 눈과 귀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두 번이나 날 엿보고 있었다는 거 내가 몰랐을 줄 알아?”


아, 알고 있었어?


근데 왜 내색을 하지 않은 거야!?


“처음엔 네 동료까지 데리고 와서 날 죽이려는 줄 알았지 뭐야.”


“그건 동료가 아니라···.”


“어, 내 말 아직 안 끝났는데?”


“죄, 죄송합니다.”


이번엔 선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내 자랑 좀 하자면 네가 아무리 군에서 날고 기었어도 난 기사야.

어, 정확히 말하면 기사였지.”


왠지 모르게 선이 천을 한번 쳐다본다.


그러나 천은 그 시선을 받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짐승 2마리쯤은 나한테 상대도 안 된다는 말씀이지.”


“그렇군요···.”


“당신 몇 살이오?”


“응? 내 나이 몰라? 나 22살.”


“그 나이를 먹고···.

여기로 누가 오는군.

선, 어서 벗어납시다.

그리고 짐승.

내가 항상 보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


“네? 아, 저기 잠깐···.”


내가 만류할 새도 없이 천과 선은 사라졌다.


도대체 누가 온다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못 들었는데.


그리고 같이 다녀도 된다는 답을 아직 못 들었는데.


누군지 오기만 해봐라.


귀한 시간을 박살 내버렸으니 가만두지 않겠어.


천과 선이 왔다 간 흔적을 황급히 지우고 토끼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부스럭.


“여기 있었어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암컷짐승이다.


“응. 용케도 찾았네?”


“나는 도망간 줄 알았잖아요.”


“도망갔으면 내가 여기에 있지 않았겠지. 수습은 했어?”


“아뇨. 못했어요.”


“아, 시신이 일부라도 없었던 거야?”


“아뇨.”


“그럼 왜 못한 거야?”


“전부 다 죽어버려서요.”


덜 마른 옷 때문인지 저 말 때문인지 강한 오한이 들어 나도 모르게 양팔로 몸을 감쌌다.


“으, 응?”


“다 죽었다고요.”


“아, 아. 곰이 아직도 화가 나 있었어?”


“아뇨. 제가 죽였는데요.”


씨발.


이거 위험한데.


“그럼 나랑 같이 있던 짐승도?”


“잘도 쳐자고 있길래 단숨에 멱을 따버렸죠.”


침을 꿀꺽하고 한번 삼킨다.


“아니, 왜? 왜 죽인 거야?

네 동료이잖아.”


“당신에게 말할 필요를 못 느끼겠는데요.”


“그, 그래도 내가 네 남편이 될 몸인데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


“아하! 맞다. 나는 당신의 부인이었지.”


날 보며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쭉 찢어진 입이 방금 봤던 천과 선의 입과 대조되어 혐오스럽게 보인다.


“그놈들이 절 괴롭혔거든요.”


“괴, 괴롭혀?”


“자세한 건 말 못 해요.

남편 될 짐승에게 그런 걸 말하면 안될 것 같아서.”


“그렇구나. 그럼 같이 돌아갈까?”


“근데 누가 있었어요?”


“응? 아니, 없었는데?”


“그래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주위를 한참이나 돌아본다.


“그렇네요. 돌아가요. 우리.”


암컷짐승이 몸을 돌려 길을 나선다.


갑작스럽게 본색을 드러낸 이유가 뭐지?


이제 다 끝났다는 건가?


그리고 그걸 나한텐 왜 보여준 거고.


내가 눈치챘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해도 내 아내가 되면 평생 살아야 하고 종이 되려면 흠 같은걸 잡히는 건 안 좋은데.


내가 말이라도 하면···.


저년은 나까지 죽일 셈이구나.


그래서 굳이 숨기지 않았어.


9푼 능선까지 올랐으니 이제 거리낄 게 없다 이거지.


저년은 내가 싸울 줄도 모르는 병신이라 생각할 거야.


그래서 식을 올린 다음 날 죽이고 표식을 빼앗아 천에게 갈 속셈이었겠지.


천이 받아주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고.


표식만 있으면 한결 더 나은 삶은 살 수 있으니까.


“안 와요?”


내가 움직이지 않자 미친년이 돌아보며 묻는다.


“응, 갈게.”



///



머물렀던 곳으로 돌아가니 미친년이 말한 대로 목이 잘린 채 죽어있었다.


“그런데 여긴 왜 돌아오자고 했어요?

죽은 걸 확인하고 싶었어요?”


“이런 물건 같은 거 두고 가면 아깝잖아.

챙길 수 있는 건 챙겨야지.”


나는 미친년의 말을 태연히 받았다.


무엇이 저년을 저렇게 만들었지?


“저, 저기 이건 정리 안 해도 괜찮을까?”


내가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놔둬요. 며칠만 지나면 뼈만 남을 텐데.”


미친년이 짐을 뒤지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알았어.”


천이 항상 날 보고 있다고 했지?


지금도 어디선가 보고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고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게 미친년의 눈을 끌었던 건지 날 빤히 쳐다본다.


“왜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당신, 조금 이상한 거 알아요?”


너만 하겠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하! 시체를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죠?”


“응? 으응. 티가 났구나.

네 남편이 될 몸이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려고 그랬는데.”


“역시, 그래서 치우자고 했군요?

제가 이렇게 눈치가 없어요.”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콕 때린다.


“그, 그럼 네가 좀 치워줄래?

아무래도 난 저걸 보기가 거북하네.”


“알았어요. 치울 테니 당신은 밖에 잠깐 나가 있어요.”


문을 열고 나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내가 나가자마자 안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미친년도 내가 도망갔나 안 갔나 확인하는 듯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날 발견하고 생긋 웃음을 짓는다.


“엉덩이 시려요. 안에 의자 있으니 가져다가 앉으세요.

처리하고 금방 돌아올게요.”


누가 들으면 고기 부산물 처리하는 줄 알겠어.


둘러맨 포대 자루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게 더욱 괴상하게 보인다.


“그, 그래. 빨리 갔다 와.

기다리고 있을게.”


저년은 추적에도 특화된 짐승이야.


내가 섣불리 도망쳤다가 다시 발각되면 무슨 광기를 보여줄지 몰라.


미친년이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정말로 엉덩이가 시려 온다.


안에서 의자를 가져오니 문 앞에서 천이 날 쳐다보고 있다.


“네 짝은 좀 이상하군.”


“다, 다 보고 계셨어요?”


“그래.”


“저, 저 좀 구해주세요.”


“뭘 구해달라는 거지?”


“저는 저 미친년이랑 결혼하기 싫어요.”


“음. 싫다면 도망치면 되잖아.”


“쟤가 계속 쫓아오는 걸 어떡해요?

벌써 절 2번이나 찾았단 말이에요.”


“추적을 전문으로 배웠나 보군.

도망치지 못하면 죽이면 될 텐데?”


그러니까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고!


왜 저년 앞에만 있으면 마음이 약해지는지 모르겠어!


“기세에 눌렸나 보군.

저 짐승이 그렇게나 무서웠던 모양이지?”


“모, 모르겠어요.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짐승 하나쯤은 간식거리도 안되시잖아요.”


“네가 알아서 해라.

종놈이 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안 되지.”


나보고 종이라는 말은 다시 받아들이겠는 거지?


“네···.”


“한시간내로 해결해라.

도망을 치든 죽여버리든.

한시간내로 야영지에 돌아오지 않으면 정말 버리고 가겠다.”


“알겠어요.”


내 대답을 들은 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야영지로 돌아갔다.


종으로 다시 인정받았다는 기쁨도 잠시.


저 미친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인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돌아가는 것이나, 그러면 나를 따라올 수도 있고 이는 천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어.


도망치는 건 안 되고 죽여야 해.


아니면 병신을 만들어 놓던가.


후환을 없애려면 죽이는 게 좋겠지.


죽여야겠어.


안으로 들어가 무기로 쓸만한 것을 찾아보니 날붙이가 하나도 없다.


급한 대로 튼튼한 줄을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미친년이 오는 건가 싶어 자리에 앉아 앞을 주시하고 있으니 저 멀리서 오는 것이 보인다.


“제대로 처리했어?”


“산에 대충 던져놓고 왔어요.

나머지는 야생동물이 알아서 하겠죠.”


“그래. 그럼 다 끝난 거지?”


“네. 다 끝났어요.”


“그럼 짐을 마저 챙겨볼까?”


“좋아요.”


미친년과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릇 같은 거만 챙겨. 먹을 게 있으면 그것도 챙기고.”


“알았어요.”


미친년이 열심히 짐을 싸고 있는 동안 나는 밧줄을 꺼내 뒤로 살금살금 다가간다.


“안 궁금해요? 제가 왜 이 새끼들을 죽였는지.”


물어봤는데 네가 답 안 해줬잖아.


“궁금해.”


대답은 했지만 계속해서 다가간다.


“이 새끼들이 절 욕보였거든요. 대장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요.”


저 말을 듣는 순간 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랬어요.”


···남녀구분이 없는 도깨비나 자웅동체인 곰을 제외하고 범, 사람은 여자가 약자다.


그리고 짐승의 암컷 또한 그렇고.


군에서는 쉬쉬할 뿐 이런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났어도 지금도 일어나도 있겠지.


“실망했죠? 내가 이런 암컷이라서.”


“··· 아니. 실망 안 했어.”


“미안해요. 이런 암컷이 당신의 부인이 된다는 게.

지금이라도 싫다고 말하면 당신을 놓아줄게요.”


“저, 정말?”


“히히히, 당연히 아니지.”


뭐야, 씨발!?


“혹시나 해 널 떠봤는데 그대로 낚여버리네? 깔깔깔.

너도 죽여버리겠어.

그리고 네 목에 달린 표식을 빼앗아 내가 종노릇을 할 거야.

내가 사람들 곁에서 귀여움받으며 지낼 거야!”


“씨, 씨발! 저리 꺼져!”


손에 쥔 줄을 이리저리 휘둘러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히히, 걱정하지 마, 목을 자르지 않을 거니까!

피가 튀면 안 되잖아? 호호호!”


“으, 으아···.”


순간 미친년의 뒤에서 천이 나타나 오금을 걷어차고 목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놓고는 부러뜨려버린다.


아주 부드럽고 깔끔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제압해버렸다.


나는 순식간에 미친년을 제압하는 모습에 입을 헤 벌리고 천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네, 네?”


“네 동포를 죽여서 마음이 좋지 않나 보군.”


“아,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럼 왜 쳐다보는 거냐.”


이, 이걸 말해야 하나?


“지, 짐승을 죽이는 솜씨가 가히 예술의 경지에 들으셨군요.”


“비꼬는 건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정말 춤을 추시는 것 같았습니다!”


“헛소리 말고 쓸만한 물건이나 챙겨.”


“예! 알겠습니다!”



///



야영지로 돌아가니 선이 바닥에 누워 다리를 꼰 채로 우릴 맞이한다.


“왔어?”


“네! 왔어요!”


“응, 그래. 그럼 불피우고 우리가 먹을 것 좀 잡아 와.”


선이 발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당신이 하지 그랬소?

자빠져 누워서 발가락을 까딱거리느라 시간이 없었나 보지?”


“내가 다 잘하는데 불피우는 거랑 사냥은 소질이 없어서 말이야.”


선이 능청스럽게 말을 받자 천은 혼잣말을 구시렁대며 자신의 짐을 확인한다.


“뭐해? 안 하고.”


“네, 네.”


주변에 있는 나뭇가지를 줍고 오면서 토끼 2마리까지 사냥해서 돌아왔다.


천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고 선은 여전히 누워서 발가락을 까딱거린다.


“응, 그래. 어서 먹고 가자.”


서둘러 불을 피우고 토끼 2마리를 들고 개울가로 가 손질한 후 굽기 시작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지자 천과 선이 불가로 자리를 잡았고 나는 천에게 한 마리 선에게 반 마리를 나눠주었다.


“그래서, 생각은 정리했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 잠자코 있으니 천이 대답한다.


“했소. 우리는 아가씨에게 갈 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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