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네딧 님의 서재입니다.

내 친구의 첫사랑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완결

이네딧
작품등록일 :
2021.10.11 12:36
최근연재일 :
2022.07.21 20:30
연재수 :
129 회
조회수 :
7,568
추천수 :
167
글자수 :
658,878

작성
21.10.29 07:30
조회
178
추천
2
글자
11쪽

9화. 23세 처녀 보살의 점괘

DUMMY

굼벵이처럼 흰색 롱 패딩을 입은 나희와 소민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대학로 거리를 나란히 걸어간다.


가게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번쩍이는 싸구려 장식을 걸어 놓고,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차가운 칼바람이 몸이 날릴 듯 불 때마다 연인들은 서로의 몸을 붙이며 바람을 이겨 낸다.


칼바람을 맞서 묵묵히 로터리를 걸어가는 나희와 소민이 부동산 사이트에서 봤던 이발관 앞에 선다.


나희가 낡은 간판과 멈춰있는 사인 볼을 보고, 기웃거리며 가게 안을 바라본다.


“문 닫았나 본데. 어두워서 안에 잘 안 보여.”


가게 안을 바라보는 나희와 달리 소민은 이발관이 있는 건물을 훑어보더니 로터리를 따라 뒷걸음질 치며 멀리서 건물을 바라본다.


소민이 총총걸음으로 이발관 앞을 기웃거리는 나희에게 다가와 말한다.


“나희야. 집도 가깝고 여기 마음에 든다.”


“그래? 너 진짜 돈은 있는 거지? 나 직업이 없어서 보증도 못 선다.”


차가운 바람에 나희가 몸을 움츠리며 말하자,


소민은 나희가 고마우면서도 왜 못 믿냐는 듯 대답한다.


“걱정하지 마. 진짜, 있다니까.”


소민이 나희 팔을 끌어당기며 로터리 왼쪽에 있는 플래카드 지정 게시대를 가리킨다.


“나희야. 우리 저기 가 보자. 너 저런데 가 본 적 있어?”


플래카드 지정 게시대에 걸려 있는 현수막 중 제일 아래에 흰색 바탕 위에 분홍색 연꽃이 그려져 있고,


빨간색 글씨로 ‘예언의 집. 23세 처녀 보살.’이 적혀 있는 현수막이 나희 눈에 들어온다.


“점집? 나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데.”


소민이 잘 됐다는 듯 말한다.


“너 요즘 오디션도 없고 고민 많다고 했잖아? 나도 가게 계약하기 전에 한번 가 보고 싶은데. 어때?”


나희의 눈이 작아지면서 미심쩍은 눈빛으로 변한다.


“그래? 근데, 소민아. 우리보다 나이 어린, 스물세 살짜리가 뭘 알겠어.”


소민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



황금색 연등이 천장 가득 매달려 있고, 형형색색의 장군상들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서서 방 안을 내려다보고 있다.


장군상 건너편 벽에는 75인치 대형 벽걸이 TV가 벽에 걸려 있고, TV에는 70대 할머니의 방송 출연 녹화 영상이 소리 없이 나온다.


나희와 소민이 방 안에 들어와 긴장한 표정으로 방 안을 내려다보는 장군상들을 바라보며 앉는다.


장군상이 있는 벽에 작은 쪽문을 열고 백발에 70대 할머니가 들어온다.


TV에 나오는 할머니다.


빨간색 저고리에 검은색 치마 한복을 입고 머리에 비녀를 꽂은 70대 무속인 할머니가 나희와 소민 앞에 앉아,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음, 둘이 친구야? 오래됐네?”


“네.”


소민 대답하고,


나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심의 눈으로 할머니 바라본다.


“정말. 스물세 살 처녀세요?”


방이 떠나가게 크게 웃는 무속인 할머니.


“하! 하! 하! 하! 내가 그렇게 어려 보여?”


나희와 소민 ‘뭐야?’ 하며 서로를 바라본다.


“내가 스물세 살, 처녀 몸으로 신을 받았어. 그래서 스물세 살, 처녀 보살이야.”


나희는 ‘그럼, 신 받기 전에 결혼했으면. 스물세 살, 유부녀 보살이 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고, 이해도 동의도 안 되는 억지 미소를 짓는다.


소민은 대충 동의한다는 듯 입을 벌린다.


“아, 아....”


백발의 무속인 할머니가 갑자기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든다. 마치 꽹과리를 들고 상모를 돌리듯.


눈을 번쩍 뜨고 나희를 쏘아 보며 말한다.


“너. 지금 갈등하고 있어. 고민이 아주 많아. 그렇지? 그중 제일 큰 고민 말해 봐.”


“네. 저는....”


나희 순간 낚일 뻔했다.


“근데 제 고민 맞추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알아, 알아. 너, 그거, 니 가 선택하지 마. 후회한다. 절대로. 그리고 오늘 집에 가서 엄마, 아빠 둘 중에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 알았지?”


무속인 할머니 말에. 나희는 소민이 돈을 내주긴 했지만,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확 밀려온다.


“엄마는....”


나희가 말하는데···


나희 말을 재빠르게 자르며 점괘 이어가는 무속인 할머니.


“집에 엄마가 안 계셔? 알아 알아. 아이고, 원통해서 어쩌나. 엄마 돌아가셨지? 오늘 꿈에 엄마가 분명 나타나셔서, 이야기할 거야. 그대로 해. 그리고 너 한테는 남자가 안 보여. 집에도 남자가 없지?”


어이없는 나희,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냥 대충 말한다.


“네. 오진호라는 년이랑, 함께 살아요.”


“그렇지? 너 한테는, 남자가 안 보여. 없어. 남자 만나려면 굿해야 돼.”


나희 옆에서 소민이 피식피식 웃고, 나희는 이제 무속인 할머니의 이야기가 귀에 들리지 않는다.


나희 고개 돌려 TV 보면 무속인 할머니가 아침에 방송하는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녹화 영상이다.


상술이라고 판단한 나희는 더 이상 들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이제, 친구 봐주세요.”


나희가 화는 나지만 최대한 정중히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민아, 나 먼저 나가 있을게.”


무속인 할머니 일어나 나가려는 나희 보며 혀를 차고, 머리를 흔들고 매서운 눈으로 소민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큰절을 한다.


“아이고, 이렇게 큰 사람이 저 같은 사람한테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나희가 문 앞에 서서 뒤돌아보면 백발의 무속인 할머니 소민에게 연신 큰절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민도 따라서 큰절을 한다.


설날에 세배하는 모습 같다.


나희가 문을 열고 나오면서 조용히 말한다.


“소민이 149센티 예요.”


대기자 하나 없는 소파에 나희가 롱 패딩을 입고 삐딱하게 앉아 있다.


오디션도 없고, 돈도 없고, 의욕도 없고,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 상실이다.


헤어진 규혁에게 오는 연락도 나희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이유 중에 하나다.


술에 취해,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이유도 가지가지지만 욕은 왜 하는지.


규혁의 전화를 차단했더니 나희가 아는 친구나 주변 사람들 전화로 연락해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도 지쳤다.


나희에게 휴대전화와 주변 사람들을 멀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라도 알아맞히고 답을 바랐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는 순간,


소민이 문을 열고 나온다.


나희가 옷걸이에 걸려 있는 소민의 롱 패딩을 꺼내 준다.


“잘 맞추디?”


소민이 나희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어··· 잘 모르겠는데. 내가 운명의 남자를 벌써 만났고, 다시 만난다는데?”


나희 코끝을 찡그린다.


“운명의 남자? 누구?”


“응. 그게 사람이 엄청 많은 곳에서 운명의 남자를 만났데, 근데 또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곳에서 ‘딱’하고 만난다는데.”


나희가 소민을 내려다보며 황당하다는 듯 말한다.


“소민이 너 작아서 사람 많은데, 가면 보이지도 않는데. 야, 나가자. 낚였다. 낚였어.”


롱 패딩 입던 소민이 괜히 왔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나희에게 말한다.


“나희야. 우리 술 한잔할까?”


나희의 구겨져 있던 어두운 표정이 싹 사라지면서 화창하게 갠다.


주인을 만난 강아지 미소로 소민을 바라보는 나희.


“개 콜!!”



***



‘반디’ 문이 열리고 흰색 롱 패딩을 입은 나희와 소민이 들어온다.


주방 앞 스탠드바 자리에 앉아 있는 양준태 연출이 바에 팔꿈치를 걸치고 손등에 턱을 괴고 쓸쓸히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자세로 앉아서 국물 닭발 안주와 함께.


준태는 몸에 그렇게 열이 많다고 하더니, 오늘은 두꺼운 패딩의 양팔을 허리춤에 묶고, 패딩이 벗겨진 상의는 깔깔이(군인들이 입는 국방색 얇은 패딩)가 보인다.


바지는 초가을에나 입을 수 있는 무릎이 나온 주황색 얇은 추리닝을 입고 있다.


어디서 저런 옷들을 구해서 입는지 참.


주방 가리개 커튼 사이로 옥경이 얼굴을 내밀고 나희와 소민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어, 나희랑 소민이 오랜만에 왔네. 밖에 춥지?”


“네, 추워요.”


“안녕하세요.”


나희와 소민이 옥경을 보며 대답하고 준태가 앉아 있는 바 앞으로 걸어간다.


나희가 생각하는 사람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준태에게 꾸벅 인사한다.


“연출님, 안녕하세요.”


양준태 연출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크게 숨을 몰아쉬는지 머리가 한번 까닥한다.


옥경이 그런 준태를 한심 눈으로 “쯔, 쯔, 쯔” 혀를 차며 바라보더니,


나희와 소민을 보며 환한 표정으로 말한다.


“술 마시러 왔어?”


“네, 매운 닭발 주세요.”


소민이 대답하고 바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나희는 술 냉장고 앞에 서서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바라본다.


옥경이 테이블 앞으로 와 소민을 바라보며 의외라는 표정이다.


“소민이 이제 매운거 잘 먹는구나?”


“네, 나희랑 함께 살다 보니까. 맵고, 짜고, 달고, 이젠 익숙해요.”


소민이 웃으면서 답하자,


옥경이 강아지 등을 쓰담 쓰담 하듯 소민의 어깨를 살며시 어루만지고 주방으로 가다가,


스탠드바에서 빈 소주잔을 들고 있는 준태 등 짝에 “철썩” 스매싱을 날리고 주방 안으로 들어간다.


준태는 등을 맞고 아무 반응이 없다.


쓸쓸히 고개를 떨구는 준태가 신경 쓰이는 듯 소민이 눈을 굴리며 준태를 바라본다.


나희가 술 냉장고에서 소주와 잔을 꺼내와 테이블 위에 소주와 잔을 놓는다.


신기에 가까운 손기술과 팔꿈치 기술로 소주병 흔들어 소주병을 기절시키고(이 정도 흔들고 때리면 죽었다) 뚜껑을 돌려 딴다.


배우보다는 바텐더 하면 크게 성공할 것 같지만, 나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소민은 볼 때마다 신기해 물개박수 친다.


나희가 소주잔을 채워 소민에게 건네고, 나희도 소주잔을 들며 건배한다.


첫 잔은 무조건 원샷이다.


차갑게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16.9도 알코올이 위 속에서 손바닥만큼 퍼져가는 게 느낀다.


나희와 소민 입에서 동시에.


“캬아아~”


“크으으~ 달다.”


소민의 얼굴에 따뜻한 온기가 올라오고, 나희는 오늘따라 소주가 설탕을 탄 듯 달콤하다.


입맛을 다시며 바로 잔을 채우는 나희. 소민에게 잔을 내밀어 건배한다.


바로 원샷 하는 나희.


“크으으으.”


소민이 망설이다가 원샷하고 말한다.


“나희야, 우리 이제 좀 천천히 마시면 안 돼?”


“어? 그래, 그래.”


소민 말에 나희가 바로 수긍한다.


나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싫고, 자신에게 남자가 없다는 23살 처녀 보살의 점괘도 싫다.


자신도 모르게 오버 페이스 한 것 같아 소주병을 들어 소민 앞에 놓는다.


“소민이 너 마시고 싶을 때 따라줘.”


“진짜? 그래도 돼?”


소민은 소주 두 잔에 빵빵한 볼 끝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소민이 시선을 스탠드바에 앉아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자세로 빈 소주잔을 들고 있는 양준태 연출에게 돌린다.




내 친구의 첫사랑


작가의말

좋아요 ♥ 선호작 ★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친구의 첫사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10화. 필름이 끊겼다 21.11.01 130 2 11쪽
» 9화. 23세 처녀 보살의 점괘 21.10.29 179 2 11쪽
9 8화. 가을에 찾아온 손님 21.10.27 144 3 12쪽
8 7화. 술집 반디 21.10.24 153 3 11쪽
7 6화. 여자 친구 있어요? 21.10.21 164 3 11쪽
6 5화. 드라마 오디션 21.10.19 178 3 11쪽
5 4화. 황당한 오디션 +4 21.10.17 211 3 12쪽
4 3화. 완벽한 이상형 21.10.14 238 3 12쪽
3 2화. 이별과 잔소리 21.10.12 260 4 12쪽
2 1화. 기상캐스터 면접. 영화 오디션 21.10.11 384 4 12쪽
1 프롤로그 - 인천 공항에서 +4 21.10.11 699 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