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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딧 님의 서재입니다.

내 친구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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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네딧
작품등록일 :
2021.10.11 12:36
최근연재일 :
2022.07.21 20:30
연재수 :
1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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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6
추천수 :
167
글자수 :
658,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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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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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이별과 잔소리

DUMMY

규혁은 연극배우 활동을 하며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에 꾸준히 지원하는 나희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다행히 최근 출연했던 공연이 흥행해서 여기저기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들어 부쩍 술자리도 많고 바쁘다.


‘참 잘 생겼다 그놈.’ 토끼 인형 탈 밖으로 나희가 표정을 보여 줄 수 없지만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규혁을 바라본다.


오늘 새벽 4시 술에 취한 규혁이 나희에게 전화했다.


과음해서 오늘은 하루 종일 쉬고 싶다고, 많이 피곤하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오늘이 나희 생일이기 때문에 미안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깜짝 이벤트를 위해 나타나다니 귀엽고 고맙다.


‘이렇게 몰래 오면, 내가 모를 줄 알았지?’ 혼잣말하며 더위를 잊은 채 즐거워한다.


토끼 인형 탈을 쓴 나희는 집에 누워 있다가 전동킥보드를 타고 가던 동생의 사고 소식에 급하게 병원에 가 봐야 하는 후배의 연락을 받고 대신 토끼 인형 탈을 쓰고 전단지를 돌리는 중이다.


대학로 근처에 살고있는 나희에게 주변 사람들은 가끔 이런 부탁을 한다.


나희도 집에서 딱히 뭐 할 일이 없어서 괜찮다.


급하게 나온 나희는 새벽까지 술 마시고 잠이 든 규혁에게 연락하지 못했고,


그래서 규혁은 나희가 토끼 인형 탈을 쓰고 있을 걸 알지 못한다.


규혁은 나희를 놀래켜 주기 위해 집 앞이나 근처 모텔에 방을 잡고 카톡을 할 것이다.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주위를 살피는 규혁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하는 나희가 ‘전단지를 건네며 손을 덥석 잡아 볼까? 아니다. 뒤따라가서 깜짝 놀라 켜 줘야지’ 생각하며 시선을 돌려 딴청 부린다.


규혁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토끼 인형 탈을 스치며 지나간다.


토끼 인형 탈을 쓴 나희가 장난기 넘치는 몸짓으로 폴짝 뛰며 규혁이 걸어가는 방향을 바라보는데···


지나가는 과일 트럭을 피해 걸어가는 규혁 앞에 토라진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미는 세정이 보인다.


‘뭐지?’ 하고 바라보는 나희.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규혁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세정에게 다가가며 미안하다는 듯 몸을 흔들며 애교부리자,


세정이 규혁의 오른쪽 팔에 팔짱을 끼워 엉덩이처럼 큰 가슴을 딱 붙이며 함께 걸어간다.


세정의 큰 가슴을 처음 만져 본 사람은 나희다.


룸 소주방 게임에서 일등 했기에.


규혁과 세정은 오래된 연인처럼 자연스러움과 다정함이 묻어나는 스킨십을 하며 걸어간다.


수많은 연인들이 주변을 지나가지만,


오늘처럼 뜨거운 날씨에 규혁과 세정처럼 딱 붙어서 가는 남녀는 찾아볼 수 없다.


규혁이 세정의 팔을 살며시 빼더니 자기 팔로 세정의 어깨를 감싸며 과일 향기를 맡듯 세정 얼굴 가까이 오뚝한 코를 가져다 대자,


세정 배시시 웃으며 규혁과 눈을 맞춘다.


나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토끼 인형 탈을 쓰고 뒤따라가던 나희가 달려가며 두 사람에게 소리친다.


“야!! 민 규혁 이 세정 니들 뭐야?? 니들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어? 민 규혁 너 이 개새끼, 거기 안 서??”


손을 뻗으며 힘껏 외치는 토끼 인형을 쓴 나희의 외침은.


앞서가는 두 사람과 나희 사이에 주차되어 있던 과일 트럭의 싸구려 스피커에서 때마침 나오는 방송에 묻혀 버린다.


“수박이 왔어요. 수박. 달고 맛있는 수박. 하나에 칠 천원 두 개에 만원. 싸다 싸. 수박이···”


규혁이 뒤를 힐끗 쳐다보면 과일 트럭 뒤쪽에서 토끼인형 탈을 쓴 사람이 수박을 사고 싶어 안달이 난 듯 손짓과 발짓을 하며 과일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온다.


규혁이 혀를 차며 ‘홍보하는 놈들이 홍보는 안 하고 처먹을 생각만 하니까 공연에 관객들이 안 들어오지’ 혼잣말한다.


세정이 규혁을 올려다보자,


규혁이 오른손을 들어 방향을 정한다.


두 사람 오른쪽 상가 건물을 돌아 사라진다.


땀에 젖은 토끼 인형 탈을 쓴 나희가 힘겹게 달려와 두 사람이 사라진 상가 골목을 바라보면,


커피숍, 옷 가게, 치킨집, 식당을 지나 소리쳐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로 멀리 어깨동무하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골목은 나희에게는 익숙하다.


규혁과 자주 다니던 골목이기 때문이다.


규혁이 다시 손짓하며 대낮인데도 형광 네온 간판이 켜져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나희와 규혁이 자주 가는 모텔이다.


토끼 인형 탈 안에서 땀 흘리며 허탈하게 규혁과 세정이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는 나희.


“개새끼.”


토끼 인형 탈 속 땀에 젖은 나희의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렇게 쳐다보고 만 있는 자신이 바보 같다.


속이 울렁거린다.


위와 장이 활동을 멈춰 서버린 것 같다.


숨이 막혀 온다.


사지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는 나희.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데 닦을 수가 없다.


상가 건물 코너에 앉아 있는 토끼 인형 탈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토끼 인형 탈이 콘셉트로 앉아 있는 거라 착각한다.


여고생들이 지나가며 토끼 인형 탈 앞에서 셀카를 찍고,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던 엄마는 아이에게 토끼 쓰담 쓰담 해주라며 휴대전화 동영상을 찍고,


노숙자로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는 인심을 쓰듯 깨진 바가지 하나를 토끼 인형 탈 앞에 놓아주고,


연인들은 다정하게 서로 바꿔가며 토끼 인형 탈 옆에 앉아 사진 찍더니,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셀카를 찍고 웃으며 즐거워한다.


나희는 토끼 인형 탈 안에서 울고 있는데 ‘씨발’


토끼 인형 탈을 쓴 나희가 몸을 일으켜 상가 건물 옆 주차장에 주차된 택배 트럭을 보며 몸을 움직인다.


택배 트럭 옆을 지나가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 택배 트럭 뒤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건물과 택배 트럭이 만들어 주는 작은 공간은 햇볕도 사람도 피할 수 있어서 마음 편히 눈물을 흘릴 수 있다.


토끼 인형 탈의 머리를 뽑아내자,


긴 머리를 묶었던 머리 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없고 땀에 젖은 긴 머리가 방금 감은 듯 뭉쳐 있다.


뜨거운 공기마저 나희에게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나희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고맙다.


흐르는 눈물을 가려 줘서.


왼손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오른손은 땀에 젖어 버린 반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낸다.


머릿속은 전화하지 말라고 하고.


습관인지, 집착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손가락은 어느새 휴대전화 최근 통화 목록에 있는 ♡규혁♡ 누르고 있다.


신호음이 들리자,


나희는 순간 ‘전화 받으면 뭐라고 하지?’ 고민하는데,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떨리는 손으로 두 번, 세 번, 네 번 규혁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희는 더욱 눈앞의 현실을 믿고 싶지 않다.


규혁의 바람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 규혁이 전 여자친구와 여행을 갔다 온 사실을 알고 헤어지기로 결심했던 나희.


하지만 바보처럼 용서하고 멍청이처럼 잊어버렸다.


‘그때 다시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놈의 데통(데이트통장) 때문에 만나서. 그때 용서해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끝냈어야 했는데.’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땀에 젖은 긴 머리가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이나 자르고 싶었지만 규혁이가 좋아해서 계속 길렀던 머리카락이다.


결혼할 때 긴 머리가 어울린다는 개소리를 들으며 좋아했던 자신이 이젠 원망스럽다.


머리카락이 땀과 함께 얼굴과 목에 붙어 묶고 싶지만, 머리 끈은 사라지고 없다.


이때···


거친 기계음 소리와 함께 택배 트럭 시동이 켜지면서,


새까맣게 매연이 뜨거운 엔진 열기를 품고 나희 얼굴 정면을 향해 뿜어져 나온다.


매연을 먹은 나희가 입을 가리고 기침한다.


“콜록! 콜록! 에이 뭐야 진짜 미치겠네.”


얼굴의 땀 때문인지 매연이 골고루 잘 먹여진 나희 얼굴은 흑인 뺨칠 만큼 까맣다.


“에이 씨” 하는데


나희의 하얀 이빨이 백옥처럼 빛이 난다.



***



깔끔하게 리모델링이 되어 있는 주택 1층 거실 소파 위에 긴 머리를 숏 커트로 자른 나희가 반바지와 반팔 셔츠를 입고 고양이처럼 몸을 말아 누워 있다.


숨은 쉬지만 움직임이 없던 나희가 눈앞을 살짝 가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생각에 잠긴다.


대학 2학년 겨울방학,


나희는 모험과 신비의 나라(롯데월드)로 공연 보조 아르바이트하기 위해 매일 출근했다.


규혁은 나희보다 며칠 늦게 들어와 나희 뒤를 따라다니며 장난스럽게 ‘선배님 저 좀 챙겨 주세요’을 외쳤다.


키가 큰 규혁은 실수해도 눈에 잘 띄었고,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나희는 규혁을 위로해 줬다.


배우라는 공통의 꿈을 가진 나희와 규혁은 너무 잘 통했다.


모험과 신비의 나라에서 두 사람은 커플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사실 규혁에게는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어서 나희와 규혁은 친한 친구로 지냈다.


군대를 다녀온 규혁이 가끔 연락해왔고,


자주 연락하고 만나던 나희는 규혁을 친구가 아닌 남자로 받아줬다.


나희가 머릿속 기억을 떨치고 싶은 듯 머리를 흔들며 소리 없이 눈물 흘린다.


거실 창문을 반쯤 가린 커튼 사이로 서서히 내려오는 어둠이 해가 저물어가는 걸 알리고,


나희 얼굴 앞에 놓여 있는 휴대전화 화면이 전화와 카톡 연락으로 소리 없이 환하게 빛을 내비치고 있다.


휴대전화 화면 빛에 비치는 나희 얼굴은 흘러내린 눈물만큼이나 무언가를 보내려는 듯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겨 있지 않다.


쌍꺼풀 없는 큰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하더니,


소파 등받이 쪽으로 얼굴을 돌려 눕는다.


‘덩! 덩! 덩!’ 주택 2층에서 1층으로 연결된 철 계단을 내려오는 규칙적인 소리가 조용한 거실 안에 울려 퍼진다.


‘삐삐비삐삑’ 현관 스마트 키 소리가 울리고,


‘철컥’ 소리와 함께 1층 현관문을 열고 진호가 들어온다.



기상청 지진 화산국 연구원인 진호는 일요일 저녁인데 어디에 가려는 듯 곤색 백 팩과 휴대용 지진계측기를 거실 입구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정면에 있는 주방으로 걸어간다.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나희를 발견하지 못하고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빵을 주섬주섬 입에 넣고, 냉장고 문을 열어 음료수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식탁 의자에 앉아 음료수를 컵에 따르는데,


정면 소파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는 나희를 발견하고 기겁한다.


“아이 씨, 깜짝이야. 너 집에 있었어? 야! 집에 있으면서 전화는 왜 안 받아? 불이라도 좀 켜 놓고 있던지.”


음료수를 마시고 일어서서 거실 불을 켜는 진호,


소파로 다가와 오른발을 들어 나희 어깨를 ‘툭툭’ 두 번 차더니,


입안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이빨 사이에 낀 빵 조각을 떼어내며 말한다.


“도나희, 죽은 거 아니지. 머리는 또 왜 잘랐어? 너 오늘 생일인데 전봇대 안 만나냐? 아님 오늘도 밤에 나가서 외박할 거야? 야···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 데. 외박할 때는 카톡이라도 좀 남겨라.”


오빠처럼 주저리주저리 잔소리하고 손가락에 붙어 있는 빵 조각을 입으로 쪽쪽 빨며 식탁에 가서 앉는다.


참 더럽다.


다시 빵을 뜯어 먹기 시작하는 진호가 아무 대꾸도 반응도 없는 나희를 마음에 들지 않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다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너 언제까지 연기한다고 그러고 다닐 거야? 너 요즘엔 오디션인가 뭔가도 안 보는 것 같던데. 니 남친도 그렇고. 둘 중의 한 명이라도 현실을 생각해서, 지금부터라도 돈 벌 생각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은 너라도 시간 낭비하지 말고. 배우는 아무나 하냐? 지금이라도 다른 일 찾아보는 건 어때?”


진호 말을 멈추더니 생각하는 듯 시선을 거실 천장으로 향하며 말한다.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그 뭐야. 그···”


진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희가 잘하는 게 없다.


“그··· 없던가? 없나? 없지. 없네. 없어. 하! 하! 하!”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고 혼자 비아냥대며 낄낄 웃는다.


밉상에 미친놈 같다.


시계를 바라보던 진호가 급한 듯 음료수를 꿀꺽꿀꺽 마시고 싱크대 위에 컵을 올려놓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 음료수를 넣고 소파에 엎드려 있는 나희를 바라보면 움직임 없다.




내 친구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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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화. 완벽한 이상형 21.10.14 237 3 12쪽
» 2화. 이별과 잔소리 21.10.12 260 4 12쪽
2 1화. 기상캐스터 면접. 영화 오디션 21.10.11 384 4 12쪽
1 프롤로그 - 인천 공항에서 +4 21.10.11 697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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