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도나희 바이러스
남자 기상캐스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TV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러게요. 95킬로가 말이 되나. 남자들도 저렇게 못 던지는데.”
여자 PD가 자연스럽게 남자 기상캐스터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한다.
“하윤 씨 알면 알수록.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쵸?”
남자 기상캐스터가 어깨에 올려진 여자 PD의 손을 자연스럽게 치우며 말한다.
“이제 막 쇼 프로 출연하고, CF도 찍고. 그러겠는데요. 그쵸?”
“그, 그러려나···.”
여자 PD 손이 민망한 듯 두 손을 매만지며 TV 화면 바라본다.
책상 의자에 앉아 TV 보던 박도연은 해설자의 칭찬과 환호하는 관중들을 바라보다가,
불편한 얼굴로 의자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질투심이 끓어오르는 도연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
관중들의 환호에 감동하는 하윤,
모자를 벗어 고개 숙여 인사하고,
두산 마스코트 철웅이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간다.
선수들의 시선과 관중들의 시선을 모두 한 몸에 받아 시구할 때 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1루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는데,
1루 더그아웃 위 테이블 석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진호와 눈이 마주친다.
진호의 웃는 모습이 하윤 눈에 들어온다.
진호도 하윤의 표정이 보인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진호가 하윤에게 엄지를 들어 흔들자,
하윤이 진호를 바라보고 귀엽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두 사람만의 사인을 주고받는다.
진호와 친구들이 자리 잡고 있는 테이블 석은,
민준이 예약한 자리가 아니라 하윤이 진호에게 예약해 준 자리다.
하윤과 비밀 만남 중인 진호는 나희와 소민에게 친구 민준이 예약 한 자리라고 거짓말을 했다.
진호와 하윤의 썸 타는 상황을 아는 사람은 친구 민준이 뿐이다.
민준은 하윤이 1루 더그아웃 쪽으로 걸어오자,
가까이에서 보이는 하윤의 실물을 보고 크게 감탄한다.
“와~ 정말 미인이다. 진짜, 대박 멋있다. 진짜, 여신이다. 여신.”
어느새 나희는 테이블에 엎드려 입을 반쯤 벌리고,
혀를 반쯤 내밀고,
침 흘리며 눈을 감고 있고.
소민은 고개를 숙이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민준의 호들갑에 나희와 소민이 힘겹게 눈을 뜨고 하윤을 바라본다.
소민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진호와 민준을 바라보고,
하윤을 향해 시선을 돌려 바라본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하윤을 보며 소민이 쉰 목소리로 말한다.
“순진들 하기는. 딱 보면 몰라? 다 성형빨, 화장빨 이잖아. 기계에 넣어서 찍어 낸 것처럼. 남자들은 왜 이러는지 모르겠더라. 여자들은 저런 스타일 별로야. 딱, 안 좋아해.”
소민이 하윤을 평가하듯 말하자.
갑자기 진호가 버럭 한다.
“야! 김 소민, 니가 뭘 안다고 그래.”
당연하지만 민준도 진호 편에 선다.
“소민 씨. 이 하윤 씨는 자연 미인이래요.”
소민은 진호와 민준의 반응에 질 수 없는 듯 진호와 민준을 번갈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칫” 헛웃음을 웃고,
말한다.
“자연은 무슨, 오염이 돼도 한참 됐구만. 째 성형 엄청나게 했어.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딱 보면 알아. 안 그래 나희야? 니가 한번 말해봐.”
소민이 나희에게 공을 넘기자,
나희가 졸린 눈을 부릅뜨고,
퇴장하며 점점 가깝게 걸어오는 하윤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진호는 하윤과 나희를 번갈아 바라보고,
민준은 머리를 90도 돌려 나희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하며 나희를 향해 얼굴을 서서히 밀고 들어온다.
하윤은 1루 더그아웃에 가까워져 오자,
진호와 함께 앉아 있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명씩 눈을 맞추는 하윤,
깡마른 남자는 제약회사 연구원인 절친(민준),
진호 오른쪽에 앉아 있는 여자는 ‘진호가 이야기한 애매한 친구들’이구나(나희와 소민),
생각하며 미소 띤 얼굴로 손을 흔든다.
하윤의 시선이 나희 눈과 마주친다.
나희가 하윤을 진지한 얼굴로 바라본다.
나희가 코끝에 주름을 잡고,
미간을 점점 좁혀 눈을 모아 하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나희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형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하윤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희 눈빛이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다.
과연 하윤에 대한 나희의 평가는?
나희가 입을 떼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한다.
“야! 집에 가자. 이거 언제 끝나냐??”
예상하지 못한 나희의 엉뚱한 대답에 민준은 빵 터져 숨이 넘어갈 듯 껄껄거리며 웃고,
진호 ‘니가 그럼 그렇지!’ 고개를 짧게 도리질하며,
나희의 뒤통수를 잡고 머리를 테이블 위에 그대로 엎드리게 해준다.
“도나희. 넌 그냥 잠이나 자. 자라.”
나희는 관심 없는 표정으로 진호의 팔 힘에 이끌려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눈을 감는다.
하윤이 퇴장하고,
장내 아나운서의 경기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함성과 함께 양 팀 응원이 시작된다.
엎드려 있던 나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민의 손을 낚아챈다.
“소민아! 화장실 가자. 여기 화장실 어디야? 나 바지에 쌀 것 같다.”
소민이 느릿느릿 일어서며 말한다.
“그래, 가자. 나도 가려고 했어.”
급 똥이라도 뿜어져 나올 듯 나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있는 힘껏 얼굴에 힘을 주고,
소민의 팔을 잡아끌어 캐리어 끌고 가듯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올라간다.
뒤따라가는 소민의 짧은 다리가 바퀴가 되어 굴러가는 듯 빠르게 움직인다.
민준은 고개를 돌려 나희가 출구를 나갈 때까지 바라보며 감탄한다.
“와~ 점프력 좀 봐. 계단을 세 계단씩 올라가네.”
진호도 몸을 돌려 나희를 힐끗 바라보며 말한다.
“점프력보다, 저 늠름한 뒷모습 좀 봐라. 강철 부대원 중에서도, 저런 뒷모습을 가진 사람 없을걸.”
진호 말이 장난처럼 들리는 민준이 환하게 웃는다.
하지만 진호는 진지하다.
나희와 소민을 야구장에 데려온 걸 후회하는 진호가 한숨 섞인 말을 한다.
“아우~씨. 내가 쟤들하고 함께 오는 게 아닌데. 내가 미쳤지. 다 너 때문이야, 아우 쪽팔려.”
나희와 소민에게 지쳐있는 진호와 달리 민준은 나희와 소민의 모습이 가식 없고 재미있다.
민준이 미소 띤 얼굴로 진호를 보며 말한다.
“둘 다 개성 있고. 재미있는데. 나희 씨는 가식이라는 단어가 없어서 좋다.”
나희에게 호감을 보이는 민준의 눈빛과 표정이 걱정이라도 되는 듯 진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너도 조심해. 소민이 째도, 멀쩡했던 앤데. 나희랑 살면서, 그··· 도나희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똑같이 저런다.”
민준 얼굴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온다.
“도나희 바이러스?”
“나희랑 함께 다니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멀쩡한 애들도 돌아이가 되거든.”
진호 말에 ‘뭐야’ 하며 민준이 맥주 캔을 들어 홀짝거리며 말한다.
“도나희 바이러스라···.”
이때,
테이블 위에 있는 진호의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화면이 켜진다.
카톡 알림 창에 ‘이하윤 님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뜬다.
진호가 깜짝 반가워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말한다.
“어!! 하윤이다!”
민준도 궁금한 표정으로 진호 손에 있는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본다.
진호는 은근히 자랑을 하고 싶은지,
테이블 위 자신과 민준 사이에 휴대전화를 올려놓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카톡 어플 열어본다
하윤
진호야 오늘 응원해줘서 정말 고마워
시구 어땠어?
나 너무 떨려서 덜덜덜
민준이 “오~올~~” 하며 부러운 눈빛으로 진호를 바라보자,
진호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목을 한 바퀴 돌려본다.
목에서 멋있게 ‘우두둑’ 소리가 날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괜히 목만 아프다.
손을 비비며 민준이 보는 앞에서 답장을 하는 진호.
하윤과 카톡을 주고받는다.
진호
와 진짜 최고(엄지척)
함성 소리 장난 아니었잖아
사람들 소리 들었지? 오늘 투수하라고
하윤
진짜? 난 안 들렸는데
진호
응 오늘 선발 투수하라고 난리였는데
하윤
진호 니 덕분에 긴장을 조금 덜 하게 됐어
마음 편한 내 편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진호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경기장 나갔지?
하윤
응 방금 택시 탔어
너무 긴장했는지 피곤해서 집에 가서 푹 쉬려고
진호
응 그래
오늘은 푹 쉬어
하윤
음
경기 잘 보고 또 연락하자
진호
응
진호가 휴대전화를 들고,
입맞춤하며 카톡의 여운을 느끼기 위해 눈을 감는다.
옆에 있는 민준이 진호를 힘차게 끌어안는다.
동성애자라고 오해할 만큼 애정이 담긴 진한 포옹이다.
민준이 진호 두 뺨을 뽀뽀라도 할 듯이 잡고 끈적거리는 눈빛으로 말한다.
“야! 아씨, 와. 야~ 짜식, 진짜. 진호야, 이게 웬일이냐.”
주위 사람들이 진호와 민준의 행동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수군거린다. (둘이 사귀나? 연인사이인가? 하며)
특히 어린 남자아이와 관람하던 젊은 부부가 남자아이가 진호와 민준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화들짝 놀라며 아이의 눈을 가린다.
진호가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민준을 진정시키며 말한다.
“야. 손 좀 놓고, 말해. 아직은 그런 단계까지는 아니야.”
주위 사람들 시선 따위는 상관없는 민준은 자기 일 인양 기뻐하며 진호를 다시 한번 꼭 끌어안는다.
“무슨 소리야. 내가 볼 때 이 정도면, 썸이 아니라 사귀는 거라고 본다. 마음에 없는 남자한테 이렇게는 안 하지.”
깜짝 반기던 진호가 무언가 걸린다는 듯 표정이 서서히 굳어진다.
“진짜? 그래? 근데, 아직은 아니야.”
민준은 진호가 말을 흐리며 표정이 어두워지자, ‘뭔가 있구나?’ 생각하며 살짝 떠본다.
“뭐가 아닌데? 혹시··· 하윤 씨, 방송 쪽에서 관심 있는 남자 있대? 하긴 저렇게 완벽한 여자가, 남자가 없는 것도 좀 이상하지? 운동선수? 아이돌? 배우? 어느 쪽인데?”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망설이는 진호의 표정이 민준 눈에 읽힌다.
민준이 궁금해 죽는다.
“뭐야?? 뭔데? 말해봐. 야, 비밀 지킬게.”
망설이던 진호가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하윤의 이야기를 민준에게 힘없이 조용히 말한다.
“하윤이 첫사랑 이야기인데.”
민준이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진호에게 귀를 가까이 대며 눈동자를 좌, 우로 굴리며 말한다.
“뭐? 첫사랑?”
내 친구의 첫사랑
- 작가의말
좋아요 ♥ 선호작 ★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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