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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딧 님의 서재입니다.

내 친구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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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네딧
작품등록일 :
2021.10.11 12:36
최근연재일 :
2022.07.21 20:30
연재수 :
129 회
조회수 :
7,593
추천수 :
167
글자수 :
658,878

작성
21.11.05 07:10
조회
112
추천
2
글자
11쪽

12화. 대학로 뭉크는 건치였다

DUMMY

첫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던 하윤을 현실로 불러들인 건 검은색 뿔 테 안경을 쓴 여자 PD 다.


캐주얼 정장 상의에 청바지를 입은 골격이 큰 여자 PD가 기상 캐스터 사무실로 들어와,


창가에 서 창밖을 보고 있는 하윤에게 조용히 다가가며 말한다.


“하윤, 하윤. 스튜디오 촬영 처음인데, 준비 잘하고 있지?”


지진 사건 당시 야외 촬영 담당이었던 여자 PD는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방송 사고 후 방송국에 광고가 밀려들어 와 여자 PD는 야외 촬영 담당에서 스튜디오 담당으로 승진하게 됐다.


동시에 하윤도 얼굴을 알리게 되어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첫눈 내리는 오늘, 드디어 하윤이 처음으로 스튜디오 촬영을 한다.


여자 PD는 지진 사건 이후 하윤을 부를 때 꼭 이름을 두 번씩 부른다.


아마 친근감의 표현일 것이다.


하윤 미소 지으며 여자 PD 바라본다.


“피디님! 조금 떨리긴 한데,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어요.”


“큐시트 확인했지?”


여자 PD 말에 하윤이 큐시트가 있는 책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자 PD도 함께 걸어가며 힘내라는 듯 하윤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너무 긴장할 거 없어.”


여자 PD 뭐가 생각났다는 듯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며,


남자 기상캐스터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말한다.


“아! 그리고. 하윤 SNS 보니까, 관리를 안 하는 것 같던데.”


하윤도 여자 PD의 작은 목소리에 맞춰 조용히 대답한다.


“아, 네. 그냥 어릴 때 친구들 찾아보는 정도에요.”


하윤의 현재 SNS는 혹시나 첫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가입한 것이다.


여자 PD가 멈춰 서며 궁금한 표정으로 하윤 바라본다.


“안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하윤은 SNS 활동을 선호하지 않는다.


자신의 사생활을 남들에게 보여준다는 게 어색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는 하윤,


책상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대화 이어간다.


“아니요, 별 이유는 없는데요. SNS는 왜요?”


여자 PD가 안경테 아랫부분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책상에 고개 숙이고 있는 남자 기상캐스터 자리를 슬쩍 바라보고 말한다.


“아, 그래. 하윤 오늘 촬영 문제없이 끝내면, 이 시간 스튜디오 촬영 고정되는 분위기 거든. 이제라도 SNS 시작해.”


여자 PD가 엄지를 들어 위쪽을 가리키며 대화 이어간다.


“위에서. 하윤, 지진 사건 이후로 인기가 급 상승 중이잖아. 시청률도 생각하고 해야 하니까.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말이 나오네.”


하윤이 책상 위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아. 그럼, 당장 할게요.”


“급한 건 아니야. 말이 나왔는데. 내가 또 깜빡 할까 봐. 어, 그리고. 30분 후에 보도국 스튜디오로 와.”


여자 PD가 다시 한번 하윤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끝내자.


하윤 밝은 미소로 대답한다.


“네. 곧 가겠습니다.”


여자 PD 휴대전화 화면을 켜 시간을 확인하고, 빠른 걸음으로 기상캐스터 사무실 빠져나간다.


하윤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는데,


진동이 울리면서 화면에 카톡 알림이 이어서 온다. 진호다.


카톡 어플 열어보면,


한껏 멋을 낸 진호가 운전석 핸들을 폼 나게 잡고 운전하는 사진과 힘내라는 응원 메시지와 함께 이모티콘이 뜬다.


최근에 면허를 취득한 진호가 오늘도 운전 연수를 하는 것 같다.


'벌써 운전 연수만 몇 번째인지....'


하윤은 진호 사진이 귀여운지 엷은 미소를 띄며 답장한다.


첫눈 내린다.


운전 조심해.


기다렸다는 듯 진호의 답장이 바로 온다.


고마워


진호의 짧은 답장에 하윤이 피식 웃는다.



***



눈이 내리는 서울 근교의 한적한 직선 도로를 달리던 빨간색 BMW M5 승용차가 비틀비틀 차선을 넘나들며 달린다.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는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오는 승용차를 보고 상향등을 번쩍이며 “빵~ 빵~~빵~~~” 클랙슨을 울려 댄다.


“어, 어, 어··· 야! 야! 야!! 진호야, 우측으로 우측으로. 스톱!! 브레이크, 브레이크. 야! 브레이크 몰라??”


깡마른 민준이 조수석에서 브레이크를 밟듯 헛발질하며 버럭 하고 소리지르자,


핸들을 잡고 있는 진호의 눈동자가 동공 지진을 일으킨다.


진호가 급하게 우측으로 핸들을 돌리며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꽉 밟는다.


빨간색 BMW M5가 직선 도로 갓길에 사고라도 난 듯 트렁크를 치켜들며 급 정차한다.


조수석 안전벨트 가슴 부분을 꽉 잡고 있는 민준이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고 있는 진호를 향해 손을 ‘휘, 휘’ 저어가며 소리지른다.


“연수 몇 번 받았다면서, 이게 받은 거야? 어? 야, 이렇게 쭉 뻗은 직진 도로에서 핸들은 왜 돌리는데? 아우 씨, 답답해.”


하윤에게 보낸 사진 속 폼 나게 핸들을 잡고 있는 진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다그치는 민준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입을 꾹 닫고 있다.


잠시 침묵의 시간 속에 앞 유리에 떨어지는 눈을 닦는 와이퍼 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린다.


민준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규칙적인 호흡을 하고.


진호가 조수석 민준을 힐끗 바라보며 입을 뗀다.


“민준아. 너답지 않게 왜 소리를 지르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려서 돌린 거야.”


진호가 쭉 뻗은 도로를 바라보며 죄인처럼 조용히 말하자,


규칙적인 호흡을 하던 민준이 크게 숨을 내쉬고, 진호 바라보며 더 크게 버럭 한다.


“야!! 소리 안 지르게 생겼냐? 건너편에서 오는 트럭 받을 뻔했잖아!! 안 되겠다. 너, 내려.”


민준이 씩씩거리며 안전벨트 풀고 조수석 문 열고 나와,


승용차 앞으로 돌아와 운전석 앞에 선다.


진호 ‘아, 새끼. 너는 엄마 뱃속에서 핸들 잡고 나왔냐?’ 속으로 중얼대며 운전석 문을 연다.


민준과 진호 운전석과 조수석으로 바꿔 앉아 티격태격한다.


빨간색 BMW M5 승용차가 눈 내리는 직선 도로를 지나 서울 방향을 향해 달린다.



***



소민이 계약한 이발관이 있는 대학로 로터리 건물 전체를 비계(건물을 지을 때 디디고 서도록 종횡으로 엮은 다리 모양의 안전 설치물)와 파란색 베일(얇은 천으로 된 망)이 감싸고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발관이 있던 가게 안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고,


롱 패딩을 입은 소민이 건물 앞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감독하는 현장 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공사 중인 건물을 서서히 올려다보는 소민.



***



갈색 롱코트 입고 목에 보라색 목도리를 감싼 나희가 2층 커피숍 문 앞에 서서 머리를 쥐어짜며 “무슨 핑계로 못 한다고 하지. 미치겠네! 진짜.” 혼잣말을 내뱉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2층 커피숍 창가 구석 자리에 양준태 연출이 오늘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자세로 앉아 있다.


테이블과 의자를 피해 꽃게처럼 옆으로 살살 걸어가는 나희.


반디에서 술에 취해 양준태 연출의 공연을 도와주겠다고 덥석 약속하고,


적은 돈이지만 계약금까지 받아버린 상황을 어떻게든 되돌리겠다며 굳게 다짐한다.


나희가 테이블 앞에 서는데,


준태는 잠이 든 건지 고개를 숙이고 움직임이 없다.


나희가 테이블 건너편 의자에 코트와 목도리를 내려놓고 엉거주춤 앉으며 말한다.


“양, 준, 태, 연, 출, 님. 주무셔요?”


인기척을 느낀 준태가 눈 뜨고 앞자리에 앉아 있는 나희를 보고 깜짝 반가워한다.


“어! 나희, 왔구나.”


“예··· 갑자기 연락을 하셔서. 좀 늦었네요.”


나희의 얼굴은 미소를 띠며 말하지만, 부담이 백배, 천배다.


나희가 거절하기 위해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고민하던 중,


준태에게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빈틈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나희도 나름 준비하고 왔다.


준태가 두리번거리며 옆 의자에 놓여 있는 갈색 가방을 뒤적이며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요즘 남는 게 시간이야. 뭐 마실 거야? 주문할까?”


말을 하며, 갈색 서류 가방 지퍼를 열기 위해 노력하는 준태.


나희의 나이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것 같은 낡은 갈색 서류 가방은 지퍼가 고장이 난 듯 입을 열지 않고 꾹 닫고 있다.


난감한 표정으로 가방을 가슴에 끌어안고 지퍼를 당기는 준태.


준태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희의 머릿속에서 ‘아차’ 하며 빨간색 서류 집게가 100페이지 서류 왼쪽 끝을 집고 있는 대본 뭉치가 지나간다.


‘앗! 방심했다. 분명 저 가방 안에는 대본이 들어 있고, 저걸 받는 순간 거절하기 힘들다’


갑자기 나희도 재빠르게 몸을 움직인다.


옆 의자에 벗어 놓은 갈색 롱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적거리며 뭔가를 찾는 나희와,


갑자기 분주해진 나희를 바라보는 준태가 급기야, 가방을 열기 위해 이빨로 가방 지퍼를 물고 잡아당긴다.


준태는 연륜으로 나희가 주머니에 뭘 준비했는지 알고 있다.


그건 계약금으로 이체했던 10만 원이 들어있는 돈 봉투 라는 걸.


그걸 꺼내기 전에 대본을 먼저 꺼내 나희에게 건네줘야 한다.


서부영화에서 권총을 빨리 뽑아 상대방을 먼저 쏴야 하는 카우보이들처럼.


부탁하는 자와 거절하는 자의 상충되는 마음을 두 사람은 서로 알고 있었다.


나희가 주머니에서 비장의 카드를 잡아 꺼낸다.


계약금으로 받은 10만 원이 들어있는 봉투다.


계약금 봉투를 준태에게 건네고,


나희는 아쉬운 표정을 보이며 유유히 커피숍을 빠져나가면 ‘거절’이라는 계획이 마무리된다.


돈 봉투를 손에 쥐고 준태를 바라보는 나희.


준태가 환하게 웃으며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본을 넘기고 있다.


나희 앞을 보면, 빨간 집게가 왼쪽 구석을 집고 있는 A4용지 대본이 놓여 있다.


‘내 친구의 사랑’ 제목이 쓰여 있는 대본 위에는 희미하게 ‘기획 도나희’ 워터마크까지 찍혀 있다.


여유로운 표정의 준태가 말한다.


“사랑 이야긴데. 주인공 캐릭터가 어떤지 좀 보고. 다음 회의 때 이야기 나누자.”


말을 끝낸 준태의 표정이 활짝 핀 꽃처럼 밝다.


나희가 돈 봉투를 손에 꼭 쥐고 대본을 바라보며 ‘대본 잡는 순간, 빼 박인데’ 생각한다.


앞니가 다 보이도록 환하게 웃는 준태가 주먹을 쥐며 나희에게 주먹 인사를 하기 위해 주먹을 내밀며 말한다.


“나희야. 그럼, 우리 함께 잘해 보자.”


양준태 연출은 나희 아버지의 후배다.


어릴 때부터 나희는 준태를 가끔 봤지만,


나희 기억 속에 준태의 앞니를 본 기억은 없다.


밥을 먹을 때도, 말을 할 때도, 나희에게 준태는 우울의 대명사였고,


대학로의 뭉크였다.


그런 준태가 앞니를 하얗게 드러내며 해맑게 웃는 얼굴을 나희는 처음 본다.


‘아, 앞니가 건치(건강한 치아) 시네’ 나희는 이 순간 마음이 약해진다.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다.


나희가 손에 꼭 쥐고 있던 돈 봉투를 바지 주머니에 살며시 밀어 넣고,


준태의 주먹에 자기 주먹을 부딪친다.


“네. 잘해봐요.”




내 친구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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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0화. 혼자 남겨진 하윤 22.01.01 43 1 12쪽
40 39화. 규모3.6 지진 21.12.30 5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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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4화. 오진호의 굴욕적인 첫사랑 21.12.21 46 1 12쪽
34 33화. 중2 때 기억 21.12.19 43 1 11쪽
33 32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21.12.18 44 1 11쪽
32 31화. 데자뷰 21.12.16 53 2 11쪽
31 30화. 광고 모델 에이전시 21.12.14 53 2 12쪽
30 29화. 중2 때 약속 21.12.12 5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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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양꼬치는로터리앞골목래래향이최고야 21.11.10 84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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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대학로 뭉크는 건치였다 21.11.05 113 2 11쪽
12 11화. 첫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그 사람 21.11.03 13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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