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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딧 님의 서재입니다.

내 친구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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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네딧
작품등록일 :
2021.10.11 12:36
최근연재일 :
2022.07.21 20:30
연재수 :
129 회
조회수 :
7,636
추천수 :
167
글자수 :
658,878

작성
21.11.03 07:05
조회
135
추천
2
글자
12쪽

11화. 첫눈이 내리면 생각나는 그 사람

DUMMY

“야!! 도나희. 밥 먹어.”


진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희야! 아침 먹어.”


소민이의 쉰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빗소리가 들린다.


침대 가운데에 큰대(大)자로 엎드려 있던 나희가 팔을 뻗어 침대 협탁 위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 전원을 끄자,


빗소리 멈춘다.


방 안쪽 코너에 킹사이즈 침대가 놓여 있고, 우유빛 모달 이불과 베개 두 개가 놓여 있다.


반대편 코너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붙박이장 앞에 전신 거울이 놓여 있다.


창문을 가리고 있는 베이지색 암막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방안을 자르듯 빛을 비추고 있다.


머리가 아프다. 망치로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흔들린다. 썩은 달걀처럼.


몸을 힘겹게 뒤집어 천장을 바라보며 반디에서 멈춰버린 기억을 되짚어 보는 나희.


화장실에서 나오는 옥경과 눈이 마주치고,


준태가 따라주는 소주를 받아 원샷 했다.


그다음 기억은 바로 지금 침대 위다.


강아지 아띠가 방에 들어올 정도로 열려 있는 방문 사이로 황태해장국의 고소한 향기가 들어와 나희를 유혹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속이 쓰려 허리가 자동으로 굽어진다.


열린 방문 틈으로 주방을 빠끔히 바라보면 식탁에 앉아 나희 방문 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진호의 매서운 눈과 마주친다.


한쪽 입꼬리를 치켜들고 있다.


마치 고양이가 쥐구멍 앞에서 쥐가 나오길 바라며 노려보는 것 같다.


나희가 진호를 바라보며 ‘어라. 저 새끼는, 눈빛이 왜 저래? 니가, 나 술 마시는데 뭐 보태 준거 있어?’ 하며 당당하게 방문을 열고 나온다.


맹장 수술을 끝낸 환자처럼 손으로 배를 가리고 슬금슬금 걸어오는 나희를 진호와 소민이 빤히 쳐다본다.


소민 옆자리에 앉자,


황태해장국을 가득 퍼주는 소민이 말한다.


“나희야, 우리 술 좀 적당히 마셔야겠어.”


듣는 둥 마는 둥 수저로 황태해장국을 떠먹는 나희.


목구멍에 남아 있는 알코올을 쓸고 내려가는 해장국 국물에 대한 경이로운 감탄한다.


“어~ 크으~ 좋다.”


수저를 놓고 국 그릇 들어 마시는데, 건너편에 앉아 있는 진호가 똥 씹은 얼굴로 노려본다.


나희는 계속 진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넌 눈빛이 왜 그따위야? 내가 술 마셨다고, 너한테 뭐 피해 준 거 있어?”


소민은 나희 말에 의문의 눈빛이 되고,


진호는 헛웃음 치며 미간에 주름을 꽉 잡고 입 안에 있는 밥알을 쏟아내며 나희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제 반디에서의 일을(사건을) 이야기한다.


*


진호가 옥경의 연락받고 간판 불이 꺼진 ‘반디’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만취한 상태인 나희는 옥경과 함께 테이블 사이에서 엉덩이를 빠르게 흔들며 양손을 앞으로 모아 하늘을 찌르는 추억의 너구리 건달 댄스를 추고 있었다.


신날 일도 없는 나희가 신이 나서 춤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진호는 술에 취한 것보다 약에 취한 게 아닐까 의심했다.


테이블에서는 소민이 빨간 풍선 같은 얼굴을 하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자세로 앉아 소주잔을 들고 있는 양준태의 혼이 담긴 자기 작품 이야기에 빠져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엉덩이를 흔들던 옥경이 진호를 발견했다.


“어!! 진호 왔니??”


말이 끝나자,


반디 안에서 개판 오 분 전이였던 나희, 옥경, 소민, 준태가 진호를 보고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마치 감동적인 공연을 본 후 커튼콜을 하는 관객들처럼.


그리고,


네 사람은 두 파로 나뉘어 진호의 양 팔을 잡고 구애를 시작했다.


춤을 추자는 나희와 옥경이파, 술을 마시며 삶에 관한 대화를 나누자는 소민과 양준태파.


줄다리기하듯 진호의 양팔을 당기는 두 조직.


진호는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진호는 결국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자, 나희가 몸치는 꺼지라며 진호를 소민 테이블로 밀어 버린다.


진호는 테이블에서 삶에 관한 대화를 하게 되는데,


소민이 술 못 마시는 사람은 꺼지라고 말한다.


진호는 그렇게 상처받고 외톨이가 되어 빈 테이블에 앉아 미네랄워터를 마시고 있었다.


혼자 쓸쓸히 휴대전화(하윤 관련 기사와 블로그)를 보며 실실 웃고.


반디의 개판 오 분 전인 상황을 끝낸 건 뜻밖의 도나희었다.


나희는 반디 바닥을 향해 입으로 음식물 쓰레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렇게 미친 듯이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데 당연한 결과였고,


디스크 파열로 주저앉지 않은 게 다행이다.


진호는 나희가 반디에서 집어먹은 닭발과 계란말이를 치웠고,


그렇게 반디는 정리가 됐지만, 또 다른 역경이 시작된다.


큰 키에 마른 나희와 작은 키에 통통한 소민을 양쪽 어깨에 메고 골목 언덕을 올라오는 역경.


고난의 행군이었다.


나희 키에 맞추면 소민을 들어야 했고,


소민에게 맞추면 나희는 무릎을 꿇어서 걸어야 했다.


양쪽 어깨와 몸을 최대한 삐딱하게 해서 나희와 소민을 매고 벽화가 그려진 골목을 들어 섰을 때 진호 목구멍에서 쓴 물이 넘어왔다.


위산이다.


스트레스성으로 위산이 넘어온 것이다.


전두엽, 베르니케 영역, 브로카 영역, 변연계, 소뇌, 숨뇌, 해마까지 의학적인 소견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진호.


참아는 것도 많고 똑똑한 놈이다.


*


진호의 말이 끝나자.


“꺼어어어억.”


나희가 긴 트림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빈 국그릇을 소민에게 내밀며 말한다.


“소민아. 한 그릇 더 있어? 있으면 한 그릇만 더 줄래? 너 역시 음식 잘한다. 멈출 수 없는 맛이야. 넌, 해장국 장사해도 성공할 것 같아.”


나희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칭찬하자,


소민이 방끗 웃으며 나희 손에 든 빈 국그릇을 건네받는다.


“진짜? 그렇게 맛있어? 역시 소금보다는 국간장인 가봐.”


나희와 소민이 진호를 무시하듯 대화하자,


진호 입에서 ‘끄응’ 하고 신음소리가 살며시 새어 나온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식탁에서 일어서는 진호가 나희와 소민에게 말한다.


“야. 술은 마셔도, 앞으로 서로 피해는 주지 말자. 알았지?”


나희가 소민에게 국그릇을 받아 들며 현관문 열고 나가는 진호 뒤를 보고 외친다.


“어쨌든, 고마웠다.”


나희 말 끝나자,


소민이 나희 옆에 앉으며 말한다.


“지노. 어제 고생 많이 했나 봐.”


“그러게. 소민이 넌 어디까지 기억해?”


나희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의 필름을 돌려보는 소민의 눈이 서서히 작아진다.


“음··· 나희 너가. 옥경이 이모 대신, 그 양 연출님. 공연 도와주겠다고 해서. 우리 넷이서 건배했던 거 생각나고.”


소민 말에,


나희가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공중 부양을 하며 원숭이처럼 의자 위에 두 발로 선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한층 더 허스키해진다.


여자 엄태구 등장이다.


“내가 공연을 도와줘?? 양준태 연출님 공연?”


“음··· 너 그래서 좋다고, 춤춘 거 아니야? 너 그때도 기억 안 나?”


수저를 들고 왜 기억을 못 하지 표정으로 말하는 소민.


나희는 머리 감싸며 좌절한다.


“아이 씨발. 좆 됐네. 그리고 또 뭐 있어?”


소민이 “음···.” 소리를 내며 기억을 떠올리는데,


나희가 버럭 한다.


“야!! ‘음···.’ 소리 좀 안내면 기억이 안 나?”


“음.... 에이, 몰라. 기억 안 나.”


토라진 목소리로 말하는 소민.


나희는 의자 위에서 안절부절못한다.


소민이 수저 들고 국물 뜨다가 번쩍 뭔가 생각이 났다.


“아! 골든벨. 골든벨 기억난다.”


머리를 긁적거리던 나희가 궁금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 무슨 벨?? 골든, 벨. 그게 뭔데??”


“이년, 안 되겠네.”


소민이 속으로 생각했던 말이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툭 하고 나오자, 입을 꾹 다문다.


나희가 어금니를 꽉 물고 눈을 부라리며 뾰족한 턱을 내밀고 복화술로 질문한다.


“그, 게, 뭐, 냐, 고?”


소민이 망설이다가 입을 연다.


“아, 그, 연출님이 계약금이라고, 니 계좌에 돈 이체했는데. 니가 기분 좋다고 술 사겠다면서, 가게 문 닫으라고··· 정확히 말하면, 나희 니가 닫았지. 근데 계산은 니가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춤추면서 골든벨 미친 듯이 외쳤어. 미안. 내가 왜 이걸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희 얼굴이 뭉크의 절규로 변하며 소리친다.


“내가?? 미친···.”


나희는 어느새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긴 다리를 성큼성큼 걸어 방과 거실을 돌아다닌다.


거실 소파 앞에서 아띠가 뼈다귀 모양의 개 껌이 지겨운지 나희의 휴대전화를 열심히 씹고 있다.


나희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아띠에게 말한다.


“아띠야~ 아띠야~ 그거 하나도 맛없다.”


아띠를 달래어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보면 다행히 전원이 들어온다.


나희가 굳은 표정으로 화면을 터치한다.


굳었던 표정이 풀리며 점점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고, 고개를 흔들며 급기야 미소를 띤다.


벽화가 그려진 성북동 골목에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한 여인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왓! 떠! 뻑!! 아아악!!”


나희의 비명이 성북동 강아지들의 성대를 깨운다.


“왈! 왈! 왈! 왈왈!!”


나희가 소파에 몸을 던져 드러눕는다.


손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떨고 있고, 눈에서는 동공이 지진을 일으킨다.


소민이 아띠를 안고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있는 나희 내려다본다.


나희는 휴대전화 화면을 터치하며 얼빠진 듯 중얼중얼거린다.


“내가 못 살아. 10만 원 받아서 술값으로 17만 원을 계산했어. 아··· 미치겠다. 어??? 이건 뭐야? 아아아아아악~~”


나희가 고통스러운 듯 갑자기 머리를 쥐어짜더니,


화면을 만지며 민규혁 번호를 차단 설정한다.


“규혁이 새끼랑은, 왜 통화를 했지? 새벽에 67분 통화했네? 뭔 얘길 한 거야. 아~ 진짜, 죽고 싶다.”


소민의 입이 쩍 벌어진다.


“헐~~ 민규혁. 대박.”



***



높이 솟아 있는 상암동 미디어 센터 빌딩들 사이로 하얀 첫눈이 날리기 시작한다.


하윤이 근무하는 방송국 기상캐스터 사무실 안 분위기는 사람이 없는 빈 사무실처럼 조용하다.


사무실 입구에 소회의실이 있고, 창가 주위에 칸막이로 막아 놓은 책상이 양쪽에 5개씩 10개의 책상이 자리 잡고 있다.


창가를 등진 책상들 가운데, 기상캐스터 이하윤이라고 쓰여있는 자리에 하윤이 앉아 큐시트를 보고 있다.


하윤은 오늘 입사 후 처음으로 스튜디오 촬영한다.


풀 메이크업을 하고, 흰색 원피스를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큐시트를 보고 있는데.


“어! 눈이다.”


창밖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남자 기상캐스터의 말에 하윤이 등을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하윤이 예고했던 첫눈이다.


하윤이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는 사이,


눈이 점점 커져 창가 앞에 설 때는 함박 눈으로 바뀌며 펑펑 내린다.


빌딩 아래를 바라보면 우산을 들고 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그란 투명 우산을 바라보며 하윤이 생각에 잠긴다.


*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처음 맞이하는 캐나다의 겨울밤이었다.


첫눈이 반가웠던 어린 하윤은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한국에 있는 그 사람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루었다.


하윤은 그 사람을 이렇게 함박눈이 내리던 날 만났다.


겨울만 되면 더욱 생각나고 그리웠던 그 사람.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겠지? 우연히라도 마주친다면 날 알아볼 수 있을까?’




내 친구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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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화. 데자뷰 21.12.16 53 2 11쪽
31 30화. 광고 모델 에이전시 21.12.14 5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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