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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서사시입니다.

헛소리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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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서사시
작품등록일 :
2018.06.22 04:26
최근연재일 :
2018.06.25 04:55
연재수 :
4 회
조회수 :
424
추천수 :
0
글자수 :
9,452

작성
18.06.25 04:26
조회
50
추천
0
글자
7쪽

2018년 7월 18일 04시 15분

DUMMY

2018/07/08


오후 11:19


아무리 잠을 자도 피곤함이 가시질 않는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기타만 붙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방음 처리가 잘 되는 것인지, 아직 소음으로 이웃과 문제가 생긴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


누워서 에어컨만 껐다 켰다하는 와중에 그럴싸한 말이 떠올랐다.

‘과거는 미화가 지나치고 현재는 무감각하며 미래는 무관심하다.’

너무 그럴싸해서 메모지에 적어 벽에 붙여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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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오전 12:31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중, 가능하면 어떤 식으로 죽고 싶나요? 라는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워 채널을 돌렸다.


조금 전에 제리의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는 모양이다.


제리는 조금 성장할 필요가 있다.

언제든 눈시울을 붉힐 수 있는 그녀가 부럽지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p.s) 제리는 ‘고마워’에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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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오전 3:00


잠에 들기 전까지는 춥다고 생각했는데, 새벽에 깨었을 때 배게가 땀에 젖어 축축했다. 체질이 바뀌는 걸까.


제리와 만나기로 한 11시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어 조금 더 잠을 청할 생각이다.


오전 5:08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급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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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오후 11:32


평범함이 좋았다.

여태껏 노력했던 이유는 평범해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옷차림에 신경쓰고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어제나 그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폭에 신경쓰면서 여유로운 척이나 하고, 나긋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고, 아무 계획도 없이 영화관을 찾아가 즉석으로 영화 관람을 하고, 탈의실에서 새로 산 옷을 걸치고 나온 그녀를 보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지어보고, 담배를 끊으라며 잔소리도 들어보고,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면서 속에 감춰둔 이야기도 꺼내보고, 하루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하루의 시작을 전화나 메세지가 아닌 ‘잘 잤어?’를 특유의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고 싶었다.


나는 곧 죽는다.


p.s) 이 일기는 전부 헛소리, 망상,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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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4


오전 2:24


차로 한 시간을 달려 바다를 보러 왔다.


아까의 대화를 옮겨 적어보겠다.


“제리(가명), 어디 가고싶은 곳 없어?”

“..음, 바다.”

“바다..바다는 왠지 슬픈 영화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는 곳 같잖아.”

“뭐라는 거야.”


막상 옮겨적으니 잘 전해지지 않지만, 당시에 우리는 웃었다.


바다는 신기하다. 밤이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파도가 치는 소리만큼은 분명히 들린다.

물고기들은 눈이 있던데.

저 안에서 잘 보고 다니기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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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5


오전 7:29


괜히 해산물에 욕심을 부렸다.

속이 뒤집힐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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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오후 8:58


그러고보니 기록을 재는 경기에서 신호보다 빨리 출발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느리게 출발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에게 경고한다.

절대로 빨리 출발하지 말 것, 만약 빨리 출발한다면 레드 카드를 먹여버리겠다.


육상이나 수영에서 레드 카드를 쓰던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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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02:43


팔에 꽂혀있는 바늘 때문에 손을 잘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친구 녀석에게 기타를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 녀석은 귀찮음을 티내면서도 묵묵히 가져다주어 고마웠습니다. 정말 든든하고 멋진 녀석입니다.

처음엔 간호사 님이 악기를 들고 오는 것은 다른 환자에게 민폐가 된다고 말했지만, 그런 간호사 님께 다른 환자들이 코고는 것보다 소리가 작다고 반박하자 간호사 님도 허락해주셨습니다.


친구 녀석이 제리 씨를 뵙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내게 ‘사기라도 쳤냐’라며 믿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나도 학창 시절에는 꽤나 잘 생겼었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얼굴이 너무 바뀌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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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뒤의 내용은, 일기에서 누락된 7월 3일부터 5일까지의 내용입니다.

그의 지갑에 고이 접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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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눈물로 얼룩진 밤을 보내고, 커튼에 가려진 아침 해를 대신한 알람으로 지옥을 맞이했다.


가방에 넣어둔 휴대폰을 찾으려 손을 뻗어 더듬거리다 그만 아슬아슬하게 세워둔 가방을 엎어버렸다.


약을 담아둔 통과 봉투가 쏟아져나와 그만 울어버렸다.

주워담을 힘이 없다.


어제 마셨던 술이 화근이 되어 속이 안좋았다.

반나절만에 10번이 넘게 토했다. 세는 것을 포기했다.

처음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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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소화기관이 망가져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슬슬 몸에서 전원이 꺼져가는 부위가 생기기 시작했다.


기계를 달고 살 바에야 남은 시간을 즐기겠다며 퇴원을 요구했다.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고 아침에 퇴원하기로 했다.


일기를 쓰는 아직까지는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이 노트를 제리에게 넘겨줘.

아직 제리는 행복해야할 의무가 있어.

적어도 이걸 쓰는 동안은 행복했거든.


귀찮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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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8일 4시 15분, 녀석은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20일까지 치뤄진 장례식을 찾아온 조문객의 수는 겨우 10명 남짓.

조용한 것을 좋아하던 녀석의 바람이 이루어진걸까.


매번 괜찮다는 거짓말만 하면서 굳은 일도 도맡아 하고,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던 못난 녀석에게 이 노트를 준 것은 누구일까.


이 노트에서만큼은, 그 녀석은 한없이 솔직했다.


겨우 거짓말을 할 기회를 받고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다니, 녀석 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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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7월 18일 04시 15분 18.06.25 51 0 7쪽
2 반이나, 반밖에 18.06.23 62 0 4쪽
1 이 일기는 전부 망상이다. 18.06.22 25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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