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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서사시입니다.

헛소리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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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서사시
작품등록일 :
2018.06.22 04:26
최근연재일 :
2018.06.25 04:55
연재수 :
4 회
조회수 :
426
추천수 :
0
글자수 :
9,452

작성
18.06.22 05:59
조회
258
추천
0
글자
8쪽

이 일기는 전부 망상이다.

DUMMY

2018/06/22


오전 4:06


잠에 들었어야만 했을 시간대인데, 어쩐지 전날의 오전에 이름도 모를 녀석이 주워준 노트가 신경쓰여 스탠드의 불을 밝혔다.


노트의 표지 중앙에 유성 매직 따위로 휘갈기듯 적어놓은 제목은 ‘헛소리 노트’, 언젠가 봤던 만화가 떠오르는 제목이다.


규칙이랍시고 빳빳하게 코팅된 표지 뒷편에 적어놓은 몇가지 주의사항은 본래 길게 적으려고 했을 법한 작은 글씨로 길게 늘어져 있다.


첫번째, 이 노트는 헛소리를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입니다? 쓸데없이 친절함이 느껴진다.


두번째, 형식은 자유롭되, 일기처럼 꾸준히 써주십시오.


일기처럼,이라.


세번째, 소중히 간직해주세요.


솔직히 이런 노트, 겉표지가 새까맣고 칼로 파낸듯한 폰트를 사용하거나 핑크색 하드커버와 자물쇠라도 달아놓았다면 몰라도, 단순한 코발트블루 색상의 빳빳한 코팅지를 덮어놓은 허술하고 눈에 띄지 않는 노트.

언제 책장에 섞여들어가 먼지를 마시게 될지 모를 물건이다.


이런,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일기장으로 혼잣말을 주고받다니, 기분 나쁘다.


안네 프랭크처럼 일기에게 ‘당신’이라는 호칭을 붙여서 불러볼까 싶었지만, 역시 오글거린다.


오늘만 출근하면 앞으로 한 달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일을 도맡아 처리해주겠다던 오랜 친구녀석에게 밥이라도 사줘야겠다.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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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오후 11:30


잘 움직이지 않던 평소에 비해 심장이 터져버릴 정도로 역동적인 하루를 보냈다. 무리했던 탓에 아직도 손이 떨린다.


미루고 미뤘던,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선생님을 뵈러 갔었다. 미뤘던 이유는 단 하나, 만나면 분명히 혼날 것이 썩 유쾌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깨지고 돌아왔다.

끼니마다 꼭 챙겨먹으라며 봉투에 이런 저런 것들의 한 달 분량을 넣어주셨다. 물론 계산은 나의 몫이었다.

뭐, 금전적인 상황에 크게 여의치 않아도 될 상황이라 다행이었다.


그리고 일을 도맡아주던 녀석의 퇴근시간에 맞춰 드라이브 겸 쇼핑에 나섰다.

퇴근시간대에 도시를 가로지른다는 것이 졸음을 유발하기도 하였지만 곧 손에 넣을 녀석을 생각하면 졸음 따위는 떨쳐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폐 여러장과 맞바꾼 중고 기타를 어깨에 들쳐매었을 때는, 아직 교복을 입고 다닐 때 매었던 것보다는 조금 가벼웠다고 생각한다.

굳이 돈을 주고서 한 구석이 깨진 기타를 샀다며 친구에게 혼났다. 하지만 그게 이 기타의 매력이라며 받아치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까먹고 기타 피크를 사지 못했다.

피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긴 시간의 공백을 매울 수는 없었겠지만, 핑계가 생긴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검소하다 못해 비굴해보일 정도로 살던 녀석이 웬 일이냐고 던진 농담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답해줬을 때, 친구 녀석은 아 그래, 라며 재미없는 반응을 보였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녀석의 성격에 감사한다.


처음 타봤던 ‘B’사의 차량은 비싼 값어치를 했다고 생각한다. 차량이라고는 대중 교통이나 택시 따위밖에 이용해보지 않는 나로서 그 갭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아무렴 어떤가.

운반해준 녀석에게 감사의 의미로 저녁을 샀다.

대화를 나누느라 차갑게 식어버린 고기를 몇 점 집어먹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역시 녀석과 나는 근본적으로 식성이 달랐다.


29일, 휴가의 하루를 소비했다.


내일은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멀리 나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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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3


오전 01:55


자전거를 타고 근처 강가에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맞바람이 부는 것이 시원해 무리해서 달리다보니 다리가 망가졌다.

자전거에서 내렸을 때 자세가 무너져 웃긴 꼴을 면치 못했다.


허우대는 멀쩡한 녀석이 큰 소리로 뒹구는 바람에 주위에서 산책을 즐기던 사람들이 괜찮냐며 다가왔지만 웃음을 참는 모습은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건강함을 강조하려는 듯이 얇고 하늘하늘한 반팔 티셔츠와 짧디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성이 밴드를 건네줬다. 자신도 곧 잘 넘어지곤 해서 항상 들고다닌다고 하던가.


밴드를 붙이는 순간이 너무 고요해 농담이라도 던져버렸다.


‘꽤나 멋있게 넘어지지 않았나요?’

그녀는 머뭇거리며 약한 긍정을 보였지만, 곧 참았던 웃음이 터져버려 꽤나 시원한 장면이 되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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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오후 10:46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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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오전 2:57


전날의 일기가 너무 무례할만큼 어두웠던 것에 대해 사과한다.


쓰는 방식을 바꿀 생각이다. 제목에 걸맞는 헛소리를 엄청나게 녹여 넣으면 되는 것일까.


생각보다 간단해서 눈물이 나올지경이다.


요즘 부쩍 눈물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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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오전 1:02


SNS의 메신저에 웬 일로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동창 녀석의 인사, 형식적이지만 반가움을 표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의 나는 이따금씩 터무니없는 농담을 던지는 것을 즐기곤 했다.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묫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답했다.


녀석은 웃었다.

싱겁기는.


한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노트의 가장 뒷편에 누군가 나의 이름을 적어놓았다는 점이다.


기분 나쁘다.


기타 연습에 박차를 가하느라 손가락이 갈라졌다. 일기를 오래 쓰지 못할 것 같아서 이만 줄이겠다.




추신) 입냄새가 심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마우스 스프레이라도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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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오전 03:38


꿈만 같은 하루였다!


우선 기타를 팔아줬던 판매자와 우연치않게 마주쳤다. 정말 웃겼던 것은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 아닌, 마침 주변을 지나가던 내가 매고 있던 기타 케이스를 보고 알아봤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기타를 매고 있었다. 뭔가, 멋졌다.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한다. 언젠가 같이 공원에서 노래라도 부르자며 약속했다.


그리고 그 날 밤, 사전 연습이라도 할 겸 자전거를 탔던 강가로 기타를 매고 떠났다.

기타를 맨 상태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매우 불편한 행위라는 것을 알게 해준 좋은 경험이었다.


잔디밭에 주저앉듯이 몸을 내려놓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가창력은 덤이다.


우연의 연속이었다!

일전에 내게 반창고를 나누어줬던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자신도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라며, 나와 어울리지 않는 화음을 쌓아며 고성방가를 즐겼다.

곧 관리인에게 들켜 주의를 받았다.


헤어지는 길에 그녀는 내게 술 한잔을 제안했다.

왠지 속이 쓰려 거절했지만, 그래도 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메세지를 보내며 알게 된 사실인데,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왔던 이유는 내가 노래를 너무나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이런 멱따는 소리를 내나 확인하러 온 찰나에 나를 보았다고 한다.


부끄러워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새벽에도 아까의 기억을 떠올리며 피식거리고 있다.


방의 온도계가 31도를 찍었다. 그러나 덥지 않아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이틀 뒤에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약속을 했다. 기대된다.


내일은 선생님을 보러 가는 날이다. 이건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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