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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BJ] 괴물BJ-4

에니원...!’

 

최강식은 놈의 정체를 바로 눈치챘다. 가장 많이 도축해온 괴물 중 하나인지라 모를 수가 없었다.

1성 괴물, 에니원.

놈은 이족보행에 신장 4m의 거대한 털북숭이였다. 놀라울 정도로 특징 없는 그 외모는 불쾌감마저 일으켰다.

가장 만만하다고 평가받는 괴물.

...라고 얕볼 수 있는 건 유명한 사냥꾼 한정이다. 놈에게 일가족이 몰살당한 사례는 샐 수 없이 없으니까.

문제는 괴물의 외모가 아니야.’

막연한 공포.

괴물이란 존재 자체가 모두의 전의(戰意)를 빼앗았다.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았던 역사 또한 여기에 한몫했다. 강도가 든 권총 한 자루에 수백 명이 벌벌 떠는 거랑 비슷...

최강식은 주위를 둘러봤다.

승산은 충분해.’

이 도축장에는 괴물을 해체하는 장비가 많기 때문이다. 잠깐 한눈팔면 팔다리가 한순간에 잘려나갈 정도로 위험한 흉기들로 가득했다.

그의 손에 들린 전기톱도 포함해서.

-위이이잉!

그 거스른 소음이 괴물, 에니원을 자극했다.

크어엉!”

두 눈을 시뻘겋게 뜨고 달려든다.

 

어서!”

 

직원들을 재촉한 최강식은 도망치지 않고 돌진했다. 그에게 엄청난 초능력이나 잔기술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성적인 판단.

인간과 괴물,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 이해하고 있다.

야생이나 도시 길거리 한복판에서 마주쳤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겠지만, 여긴 괴물을 해체하는 도축장.

승산은 차고 넘쳤다.

허둥대던 직원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꼬맹이에게 다 맡길 순 없지!’

나도 한때는 사냥꾼이었다고!’

내 손자뻘을 방패 삼다니!’

누군가 내 앞에 버티고 섰다는 사실이 대단한 안도감을 준다.

적어도, 소년이 죽기 전까진 자신이 안전하다는 보험이 그들의 이성을 되돌려줬다. 죽음의 공포가 저 작은 방패 하나로 사그라들었다.

용기를 쥐어짠 직원들이 조종간을 잡았다.

-끼이익!

-위잉!

-드르르륵.

인류 최고의 무기인 기계들이 하나둘 가동을 시작했다. 뼈를 자르는 원형 톱날부터 두개골을 부수는 망치까지.

그동안 최강식도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

괴물이 휘두르는 주먹을 피했다. 그의 몸통이랑 비슷한 크기의 저딴 것에 맞았다간 한 방에 황천행이리라.

그래도 최강식은 물러서지 않았다.

느려.’

겉보기랑 달리 알맹이는 멀쩡하지 않다는 방증.

최강식은 전기톱으로 에니원의 왼쪽 다리를 긁어주며 가랑이 사이로 휙 지나갔다.

그걸로 충분했다.

잠깐 시선을 끈 틈에 달려든 로봇팔들이 일제히 에니원을 꽉 붙잡고 버텼다. 무거운 괴물을 운반할 수 있도록 제작된 만큼 힘에선 밀리긴커녕 훨씬 우위에 있었다.

-위이이잉!

-치지직!

이 틈에 괴물을 자르거나 부수는 흉흉한 도구들이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놈도 가만히 당해주지 않았다.

쿠워어어!”

붙잡힌 팔다리를 뿌리치고자 미친 듯이 몸을 비틀었다. 그렇게 살짝 처맞은 합금이 휘고 컨테이너가 흔들렸다.

, 기계가...!”

이런!”

놓치지 마!”

자신만만했던 직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등 뒤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끼기긱.

-드륵.

기계들이 하나둘 고장 나기 시작했다. 놈은 단순히 무겁기만 한 살덩이가 아니었으니까.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넘쳐났다.

에니원은 기계들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빠르게 체력과 기력을 회복하며 강해졌다.

반면에, 전선 하나만 끊겨도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멈추는 섬세한 기계들은 빠르게 힘을 잃어갔다.

진즉 연락이 갔을 사냥꾼들은 올 기미가 안 보였다.

, 끝장이야.’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여기서 죽는 건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은 차츰 절망으로 바뀌었다. 잠깐이나마 희망을 품었었기에 그 반대급부도 대단히 크게 다가왔다.

최강식도 신음을 삼켰다.

 

이게 괴물인가...”

 

죽은 괴물은 수없이 만져봤다. 그래서 살짝 오만해졌던 걸까? 살아있는 괴물이 이렇게 끈질길 줄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고작 1성이 이 정도였다.

그렇다면 5성은?

웃기지 마.’

여기서 무력하게 물러설 순 없었다.

복수심? 아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도망치는 직원들을 막은 건 자신이니까. 끝까지 책임져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크엉!”

 

에니원은 로봇팔들의 방해로 아직 꿈쩍하지 못했다. 그러나 피해다운 상처도 없었다. 전기톱으로 긁어놓은 다리도 벌써 아물었다.

이래선 절대 놈을 죽일 수 없었다.

약점, 약점, 약점... ?”

공략법을 찾던 최강식의 눈이 한순간 총명하게 빛났다.

구멍이 보였다.

입으로 무언가를 먹으면 아래로 싸는 게 자연의 섭리. 괴물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 구멍을 고상하게 일컬어,

항문(肛門).’

최강식의 눈이 가늘게 뜨여졌다.

괴물을 붙잡아둘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길어야 30초 내외. 지금은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온 힘을 실어서 전기톱을 죽창(竹槍)처럼 내질렀다.

-.

크어엉?!”

기계들이랑 씨름 중이던 에니원은 이상야릇한 비명을 토했다. 전기톱이 단숨에 그곳을 뚫고 안쪽까지 파고든 탓!

자연히 그 내용물이 쏟아져 내렸다.

-촤악!

!”

머리부터 피똥을 뒤집어쓴 최강식은 멈추긴커녕 더욱 악을 썼다. 톱날로 만족하지 않고 전길톱 통째로 쑥 넣었다.

우엉?!”

에니원이 괄약근에 힘을 주며 밀어내려 애썼다.

어딜!”

그러나 그 시도는 헛된 발악으로 끝났다.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최강식이 자기 양팔까지 동원한 탓이었다.

-위이이잉!

끝내 전기톱은 시동 걸린 상태로 괴물의 아랫배 안쪽 깊숙이 파고들었다. 톱날이 계속 회전하며 내장을 휘저었다.

이 와중에도 괴물의 재생력은 발휘됐다.

-스르륵.

파손된 구멍이 아물며 좁아졌다. 이젠 굳이 최강식이 애쓰지 않아도 절대 빠지지 않으리라.

끼기 직전에 팔을 뺀 소년은 멀찍이 물러났다.

크어어어...”

에니원이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로봇팔을 떨쳐내려던 몸부림을 멈추고 입에 피거품을 물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아플 것 같았다.

세상에...”

! 맙소사.”

신이시여.”

직원들은 그 끔찍한 광경을 보며 신을 찾았다.

 

어떤 신이 뿌듯해합니다

 

너를 찾는 거 아니거든?’

-위이이잉!

놀고 있는 예비용 전기톱을 쥔 최강식이 재차 도약했다. 괴물의 몸을 붙잡은 거대한 로봇팔 위를 질주했다.

크어엉?!”

한 박자 늦게 그를 발견한 에니원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저항다운 저항은 하질 못했다.

-촤아악!

최강식이 그럴 시간을 안 줬기 때문이다.

로봇팔에서 괴물의 어깨로 옮겨타자마자 전기톱을 목에 댔다. 톱날은 두꺼운 나무기둥을 자르듯 파고들었다.

뒤져!”

크어어엉!”

최강식의 외침과 에니원의 절규가 한 대 뒤섞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뿐. 척추가 갈리며 온몸에 힘이 풀린 괴물은 금새 잠잠해졌다.

-덜컹!

무거운 살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숨죽인 채 그 혈투를 끝까지 지켜본 직원 중 누군가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괴물의 부활을 본 탓일까? 목이 잘린 에니원을 보고도 쉽사리 단정하지 못했다.

소년이 목 없는 괴물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번엔 확실히 죽었습니다.”

 

나이와 외모는 상관없었다. 괴물의 피와 오물을 뒤집어쓴 그의 모습은 베테랑 사냥꾼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 최강식의 확언이 도화선이었다.

와아아아!”

우리가 괴물을 해치웠다!”

최 대리! 최고!”

시커먼 사내들끼리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죽음의 공포는 어느새 승리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긴장이 풀린 몇몇은 콘크리트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서는 실성한 사람처럼 히쭉히쭉 웃기 시작했다.

마누라에게 자랑해야지!’

캬아!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아차차! 일단 사진부터.’

부활한 괴물을 내가 때려잡았다!

...라고 약간의 과장과 양념은 기본. 그래도 이 전설(?)적인 대서사시에 그를 빼놓고 논할 순 없었다.

최강식.

실질적으론 그의 재치가 빛을 발해 홀로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나머지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조종석에서 거든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중에 점심이나 사세요.”

그가 겸손치고 무척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탓에 어린애처럼 흥분했던 어른들이 역으로 민망해졌다.

하지만 그런 소년의 속사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신이 만족합니다

성급한 어떤 신이 빼꼼합니다

시청자: 2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시청자가 갑자기 둘이 됐다. 밤낮없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군식구가 2배로 늘어났다.

최강식으로선 괴물을 쓰러트리고 봉변당한 셈!

그야...

 

‘2배로 귀찮게 한다는 뜻이잖아!?’

 

이건 일상생활에 지장이 줄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불면증을 포함한 각종 정신병에 시달릴지도 모르리라.

 

어떤 신이 섭섭해합니다

성급한 어떤 신이 어이없어합니다

 

맙소사...”

벌써 2배로 말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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