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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BJ] 괴물BJ-3

최강식이 너, 세상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두 번 말했다.

갑자기 와서 뭔 소립니까?”

중요한 약속이 있다며 바람처럼 휙 떠났던 사장이 2시간 뒤에 돌아와서 한다는 개소리였다.

? 내 마누라에게 아무 말도 안 했어?”

아직 안 했습니다. 사장님. 제가 업무 중에 전화하는 거 보신 적 있어요?”

... 없지.”

이 회사에서 최강식보다 성실한 사람은 없었다.

뻔한 레퍼토리로군요.”

뭐가?”

추측해보자면, 좋아하는 청국장을 끓여놓고 기다린다는 전화에 경계심을 놨다가 사모님의 유도신문에 넘어간 겁니다. 한두 번 당하신 것도 아닌데, 슬슬 운명을 받아들이시죠?”

이 남자는 평생 잡혀 살 팔자다.

사장이 놀라며 물었다.

, 인간적으로 너무 자세히 아는 거 아니냐? 어떻게 그 사실을...”

사모님의 청국장은 일품이죠.”

그런 거야?”

그런 겁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흠흠.”

아내 칭찬에 표정이 헤벌쭉해진 사장은 간단히 수긍해버렸다.

그 직후에 이 남자는...

박 차장. 들어봐. 글쎄,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마누라가 청국장을 끓여놨다지 뭐야. 못 말리겠다니깐!”

, .”

윤 팀장. 바쁜가? 에이, 잠깐이면 돼.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마누라가 청국장을 끓여놨지 뭐야. 못 말리겠다니깐!”

“...부럽군요.”

우하하! 거기, 김 신랑. 한가하지? 글쎄,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마누라가...”

보이는 사람마다 붙잡고 재방송했다.

직원들은 사장만 아니었어도 한 대 쳤을 텐데!’하는 얼굴로 자신들의 돈줄이 얼른 집에 가길 기도했다.

저런데도 사업수완 하나는 귀신 같다는 게 미스터리다.

 

‘...갔나?’

 

최강식은 한 번 더 확인하고 얼음창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꽁꽁 얼어붙은 괴물들의 시체 사이를 휙휙 지나갔다.

도난방지용 감시카메라조차 닿지 않는 깊숙한 장소. 그곳엔 기형적인 살덩이들이 쌓여있었다.

팔다리를 절단하고 몸통과 머리만 남은 괴물들.

부위별로 분류해뒀다고 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광경이었다. 마치 누군가 수집해놓은 것 같은...

최강식은 숨을 들이켰다.

후아...”

영하의 냉기가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소년의 얼굴에는 추운 기색 하나 없이 평온했다.

그에게 이 공간은 최고의 휴식처였으니까. 주말에도 일하러 나온다는 주위의 착각들은 여기서 기인했다.

활화산처럼 들끓는 복수심도 여기선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복수는 허무하다고?’

개소리다.

이렇게나 기분 좋은 것을.

나약한 인간 따위에게 질 줄 몰랐다는 얼굴로, 이 공간의 모든 괴물이 최강식을 보고 있었다.

그의 꿈...

 

어떤 신이 비웃습니다

 

나도 알아. 이건 남들이 이룩한 거지.”

팔다리는 죽은 후에 자른 게 대부분이고, 시선들은 세심하게 각도를 맞춰서 그가 진열해둔 것뿐이다.

정육점 고깃덩이처럼 몸통과 머리만 남은 괴물들의 마지막 시선과 표정은 최강식을 향한 게 아니었다.

자신을 쓰러트린 괴물 사냥꾼.

최강식은 그들이 이룬 업적과 전리품에 장난질하며 소심하게 대리만족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저열하다고 누군가 욕해도 할 말 없었다.

 

어떤 신이 긍정합니다

 

놀고만 있진 않거든?’

직접 해내고자 돈은 모으는 중이다. 사냥꾼을 고용해서 괴물을 사냥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직접.

사냥 장비를 사려면 돈이 억수로 들어간다.

그 자금을 사업하듯 빚으로 충당해서 입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사냥에 실패하여 파산하거나 목숨을 잃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최강식은 꽤 성실한 편이었다.

서두른다고 될 나이도 아니고.

 

-최 대리. 입구로.

 

냉동창고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가 그를 애타게 불렀다.

잠깐의 휴식이 끝났다.

신에게 계속 비웃음 안 당하려면 성실하게 일해야지.”

괴물 도축.

단단한 가죽과 뼈를 부위별로 나누기 위해 절단기부터 로봇팔까지 다양한 중장비가 쓰인다.

그러나 최강식이 전담처럼 맡는 업무는 이쪽이 아니었다.

냉동창고 깊숙이 위치한 그만의 비밀휴식처에서 출입구로 이동했다.

! 왔구나.”

없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잖아.”

덩치가 곰 같은 시커먼 사내들이 작은 소년의 등장을 반기는 모습이 무척 이색적이었다.

방금 입고된 괴물의 처리문제 탓.

최강식은 집채만 한 그놈을 위아래로 쓱 훑었다.

 

위장에 사람이 들었네.’

 

바위나 송아지를 먹고 불룩해지진 않았을 테니까.

사방으로 튈 피와 살점에 대비해서 방수복과 물안경을 낀 소년은 자기 몸집만 한 무거운 전기톱을 한 손으로 번쩍 들었다.

최 대리. 부탁한다.”

항상 고마워.”

형이고 어른 할 것 없이 뒤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돕겠다고 나서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도 나름 강심장을 타고났기에 이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치와 적정선이란 게 있기 마련.

사람이 죽어서?

이 중에는 전직 장의사도 있었다.

적성이 맞는 것 같았던 그는 괴물의 목구멍에서 발견된 젊은 임산부를 보고부터 트라우마가 생겼다.

괴물 도축장에는 그런 직원이 적지 않았다.

나중에 밥 사세요.”

이곳에서 가장 어린 이 소년만이 그 어떤 엽기적인 상황과 광경에도 태연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위이이잉!

시동 걸린 전기톱이 괴물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어떤 신이 심심해합니다

 

...이쪽은 논외로 치고 무시하자.

무해(無害)하긴 한데.’

딱히 유익하지도 않았다. 가끔 위기경보기 대용으로 쓰일 뿐.

원리는 간단하다.

항상 지켜보는 어떤 신이 행복한 반응을 보이면, 그 직후에 어떤 식으로든 불행이 찾아왔다.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신이 싱글거립니다

 

바로 지금처럼.

...?”

이곳에 어떤 신이 좋아할 만한 이벤트는 없었다. 그가 집에서 빈둥거릴 때보다는 반기는 편이지만.

신은 싱글거린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아악?!”

, 괴물이 살아있어!”

사냥꾼을 불러!”

 

그가 작업하는 근처에서 겁에 질린 직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최강식은 상황을 바로 눈치챘다.

괴물이 부활했구나!’

입고된 괴물이 살아있거나 살아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때는 도축장에서 로봇팔로 제압해서 마무리 짓는 게 관례.

하지만 제압에 실패했다면?

죽은 척하거나 잠깐 기절해 있었다는 뜻이다.

망할 사냥꾼들!”

돈에 환장한 그자들이 원흉이다.

괴물의 몸에 상처가 많으면 품질이 떨어져서 제값을 못 받는다는 이유로 완벽하게 처리하지 않은 것이다.

최강식은 소란이 벌어진 방향으로 달렸다.

 

놈이 완벽히 회복하기 전에 끝내야 해!’

 

지금 사냥꾼을 불러선 늦는다.

최강식은 이곳에서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원들처럼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괴물 도축장 경력 3.

정신병과 트라우마로 금방 은퇴하는 이 바닥에서 3년이면 산전수전 다 겪은 대선배라고 할 수 있었다.

나이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강식아?!”

여긴 괴물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그를 발견한 직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최강식이 서둘러 지시를 내렸다.

도망치지 말고 로봇팔 하나씩 잡고 조종하세요! 그동안 제가 놈의 시선을 끌겠...”

크어어엉!”

대지를 진동시킬 정도로 힘찬 포효.

“...회복은 개뿔.”

최강식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생채기 하나 없는 괴물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탓이다.

잘도 저걸 사냥했다고 보낸 인간의 뇌를 열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떤 신이 즐거워합니다

 

, . 그러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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