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티노멀! 파르나르

전체 글


[내 일상] [TOP-서장] 대마법사의 부탁

파르나르 판타지 소설

T.O.P. - Time Of Panic 1

 

 

[서장] 대마법사의 부탁

 

 

중앙대륙이 데미시안이란 이름 아래에 마침내 통일됐다.

능력 있는 사람을 우대하는 위대한 제국!

카일론 데미시안 황제 폐하의 은덕을 찬양하라!

 

-데미시안 1 1-

 

 

***

 

 

나는 왕()의 재목(材木)이 아니었다.

사람 보는 눈이 그만큼 없었기 때문이다.

촌뜨기 소년이 훌륭한 기사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반반한 노예가 대마법사로 성장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인재를 단번에 찾을 수 없다는 건 변명이다.

그걸 해낸 자가 있었다.

 

그래서 내 주위에는 인재가 없었지.’

 

자연재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뭄과 홍수, 역병 등을 전혀 예방하지 못했으니까.

내게는 자연을 헤아리는 선견지명이 없었고, 그 탓에 무고한 백성들을 수없이 죽음과 고통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고 말았다.

자연재해는 예측할 수 없다는 건 변명이다.

그걸 해낸 자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민심을 잃었지.’

 

용병술과 기만책마저 읽히고 말았다.

승리를 장담했던 전쟁에서 패하고 외교에도 실패했다.

적과 내통한 배신자가 있다고 확신했고, 그래서 나는 충신들을 의심했다. 점점 부끄러운 왕으로 전락했다.

전쟁과 정치는 어렵다는 건 변명이다.

그걸 해낸 자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고 또 졌지.’

 

나는 실패한 왕으로 기록됐다.

누구는 해냈지만 나는 못했기에 중앙대륙의 30%에 달했던 국토를 빼앗기고, 끝끝내 왕위마저 빼앗긴 채 이렇게 유폐됐다.

정말 재미없는 책을 덮었다.

위대한 데미시안 제국을 상대로 끝까지 항전하다가 20년 전에 멸망한 알포레인 왕국 마지막 왕을 기록한 역사책이다.

그 옆에는 다른 책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어느새 20년째 이 탑에 갇혀 사는 내가 할 일이라고는, 이렇게 과거를 돌이켜보며 책을 읽는 것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손님이 와있었다.

 

건달프. 중앙대륙의 위대한 대마법사께서 이 누추한 곳에 무슨 일입니까?”

 

겉보기에는 떠돌이 소년.

하지만 데미시안 황제하고 맞먹는 괴물이다.

위대한 대마법사라고 부른 건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붙인 겉치레고, 내 병사들을 가장 많이 죽인 인간 중 하나다.

인간의 탈을 쓴 대마왕(大魔王)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알포레인 황제 폐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황제는 무슨... 샤롤. 샤롤이면 충분하다고 몇 번째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이름은 샤롤 알포레인이다.

그런 나는 누군가에게 황제라고 불릴 만큼 대단한 왕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 대마법사는 늘 나를 알포레인 황제 폐하라고 부른다.

놀린다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정중하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떠돌이 대마법사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다. 호칭으로 사람을 놀릴 만큼 쪼잔한 인물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의아하긴 하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

그보다는,

 

오늘은 술과 안주를 안 가져왔네.’

 

이 탑에서 매일 먹는 음식이라고는 빵과 우유가 전부다.

다른 왕들처럼 깔끔하게 단두대로 보내주면 참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황제는 내 딸을 첩으로 삼더니 나름 장인어른이랍시고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제국을 지켜보라나?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의아하지만 실패한 왕답게 군말 없이 따르는 중이다. 나를 이 탑에 유폐시켜놓고 까먹은 것 같지만.

건달프가 말했다.

 

오늘은 간식거리가 없습니다, 폐하.”

그럼 왜 왔습니까.”

 

술과 안주를 안 가져왔으면 전혀 안 반가운 대마법사다.

이 애늙은이가 알포레인 왕국의 멸망에 앞장섰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원수란 뜻이다.

정말 싫은 대마법사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이 제국을 어떻게 보십니까?”

데미시안이요?”

, 폐하.”

완전히 망한 나라를 황제가 무력으로 간신히 붙들고 있지요. 혼자서 100만 대군도 상대할 수 있는 괴물답게.”

 

이건 내 사심이 아니라 진짜다.

중앙대륙을 통일할 때까지만 해도 정말 믿기지 않는 능력을 보여줬던 카일론 데미시안은 이후에 정말 엉망진창인 통치를 보여줬다.

능력우대사회.

이 말에 현혹된 인재와 백성이 통일전쟁 당시에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이 사상의 위험성을 진즉부터 경고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능력(能力)과 인성(人性)은 별개다.

그래서 데미시안 제국은 건국된 이래로, 배신과 통수가 난무하며 조용할 날이 하루도 없었다.

능력이 뛰어난 만큼, 순진한 경쟁자를 음모에 빠트려서 실각시키는 실력도 수준급이었던 까닭이다.

착하면 병신이다.

이 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격언이다.

 

여전한 통찰력에 소인은 감복할 뿐입니다, 폐하!”

칭찬보다는 술과 안주가 더 좋습니다.”

 

이 제국이 인간성만 엉망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마법사가 아닌 이상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체력과 지혜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공금을 횡령해서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다.

그 방안으로 연륜을 쳐준답시고 한직을 주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그런 폐하의 은덕에 감복해서 반란을 일으켰다지?

그 마침표는 후계다툼.

이 밖에도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었는지 읊으려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

 

카일론. 그는 미쳤습니다.”

“...초창기의 황제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렇겠네요.”

 

인재를 귀신같이 알아보고, 자연재해를 예측하며, 전략의 귀재였다.

그 당시의 카일론 데미시안을 생생히 기억한다.

일국의 왕자인 내게 당당히 할 말을 하던 실력 좋은 기사였다.

그 청년은 얼마 안 지나서 단숨에 백작이 됐고, 이후에 끊임없이 승승장구하여 통일제국 황제까지 올랐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치매에 걸린 것 같다.

 

폐하. 소인의 고백을 들어주시겠습니까.”

할 일도 딱히 없으니 들어보지요.”

 

이 탑은 정말 무료하다.

원수의 말조차 귀담아들을 만큼 말이다.

가끔은 그런 내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농담이시죠?”

아닙니다! 위대하고 위대하신 샤롤 알포레인 황제 폐하! 소인의 마법을 걸고 진실만은 얘기했음을 약속드립니다!”

“......”

“......”

하지만 그게 정말로 가능합니까? 시간을 되돌린다니.”

 

건달프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원래는 내가 중앙대륙을 통일한 황제였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대륙까지 침공하며 전쟁을 멈추지 않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것이다.

누가?

이 대마법사가!

그래서 카일론 데미시안이란 올곧은 기사를 선택하셨단다.

마법은 참 만능이구먼!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증이었다.

 

카일론에게 회귀 마법을 걸어서 기억을 보존시킨 채 과거로 돌려보냈습니다. 중앙대륙이 아직 알포레인이란 이름 아래에 합쳐지기 전으로.”

그런데 또 마음에 안 드니 되감으시겠다?”

 

완전히 신()이 따로 없다.

그냥 당신이 황제 해먹으면 간단하겠구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폐하께서는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대마법사들이 이런 마법을 썼겠습니까.”

“...똑똑한 인간들이 단체로 저를 핍박했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회귀는 건달프 혼자서 해낸 마법이 아니었다.

세계의 거의 모든 대마법사가 힘을 합쳤다.

하지만 시간을 건드린 대가로 영혼이 깎인 그들은, 두 번 다시 회귀란 마법을 쓸 수 없게 됐다.

, 이젠 회귀가 영영 불가능하다.

건달프는 거기까지 설명하고는 말을 바꿨다.

 

그런데 카일론이 이 마법을 준비 중입니다. 혼자서.”

! 황제가 괴물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대마법사들이 합심해서 간신히 성공한 마법을 혼자서 할 정도란 말입니까?”

저희 때보다 훨씬 심합니다.”

 

데미시안 황제는 여러 명을 과거로 돌려보낼 준비를 거의 마쳤다고 한다.

대마법사들이 간신히 한 명 성공했던 회귀.

정치(政治)와 가정(家政)을 전부 말아먹은 황제지만, 능력우대사회를 주장했던 인간답게 재능만은 인정해줘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걸!

내가 패배한 건 너무나 당연했다는 위안마저 들었다.

 

이걸 저에게 알려주는 이유가 뭡니까.”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기회요?”

 

더 아리송해졌다.

건달프가 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회귀 마법의 최대 단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알면 제가 대마법사죠.”

마법을 자신에게 쓸 수 없다는 겁니다.”

?”

 

그렇다면 이 회귀는 알더라도 쓰기 난감한 마법이 분명했다.

완전히 남 좋은 일이네?

시간을 조종하는 마법답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위험성도 크다.

과거로 돌아간 남이 자신을 해코지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마법은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달프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은 카일론의 감시자 겸 보호자로 저를 선택했습니다.”

“......”

 

회귀를 통해 과거로 돌아온 건 하나가 아니라 이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으니 당연하려나?

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게 어쨌다고?

 

.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그의 사상에 심취하여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죄인이 바로 소인입니다, 알포레인 황제 폐하!”

“......”

으허허헝!”

 

마지막에 가서는 통곡으로 변했다.

이거 참 난감한데...

안 믿자니 그의 죄책감과 후회가 절실하게 와 닿았다.

아무 말이나 한마디 안 해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말은 뭐하지만... 이 얘기를 저에게 들려주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남과 대화할 수 있어서 싫지는 않지만요.”

“...원망하시란 뜻이었습니다.”

그렇기에는 20년은 너무나 긴 세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황제였다는 것도 실감 안 되고요.”

그렇습니까.”

반칙에 패한 것 같아서 좀 많이 짜증 나긴 합니다만.”

 

미래를 아는 새끼를 무슨 수로 이겨?

이제야 아귀가 딱딱 맞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카일론 데미시안이 시간이 갈수록 빌빌거렸던 원인은 치매나 노망 때문이 아니었다.

 

미래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나름 황제인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데 녀석은 좀 아닌 것 같다.

변비가 훅 내려가는 기분이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뭘요?”

“...위대하고 위대하신 샤롤 알포레인 황제 폐하. 하나만 약속해주십시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겁니다만.”

 

왕은 함부로 약속하는 게 아니라고 배웠다.

이미 왕도 뭐도 아니지만, 굳어버린 성격이 이 모양이라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부탁으로 바꾸겠습니다.”

다음에 술과 안주를 가져오신다면 노력해보지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다음은 힘들 것 같습니다.”

.”

 

내 표정이 그렇게 우스웠던 걸까?

소년 얼굴로 늙은이 같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건달프였다.

정말 싫은 대마법사는 정말 엉뚱한 부탁을 했다.

 

전쟁은 적당히 해주십시오.”

?”

검밖에 모르는 기사였던 카일론에게 마법을 가르쳐준 스승이 바로 소인입니다. 제자의 회귀 마법에 간섭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요.”

 

눈이 번쩍 뜨였다.

나를 과거로 보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지?

하지만 의아했다.

 

어째서 저입니까?”

아차! 소인이 이 말을 안 했던가요. 위대하고 위대하신 샤롤 알포레인 황제 폐하! 폐하께서는 정말 무서운 대마법사이셨습니다.”

하아?”

그런 폐하의 앞길을 막고자 마법에 재능이 없다고 선왕 폐하께 아뢴 마법사가 바로 소인이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 -!”

 

 



댓글 1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15 FFF급 관심용사 | 일러스트 모음2 18-10-31
14 FFF급 관심용사 | 일러스트 모음 *2 18-10-18
13 내 일상 | 41화(수정 전) *3 18-08-20
12 괴물BJ | 괴물BJ-7 *3 17-10-31
11 괴물BJ | 괴물BJ-6 17-10-31
10 괴물BJ | 괴물BJ-5 17-10-31
9 괴물BJ | 괴물BJ-4 17-10-31
8 괴물BJ | 괴물BJ-3 17-10-31
7 괴물BJ | 괴물BJ-2 17-10-31
6 괴물BJ | 괴물BJ-1 17-10-31
5 내 일상 | 레알세컨드 - 리메이크 서장 *9 15-12-20
4 내 일상 | [TOP-1장-2] 나도 반칙이다. *6 15-06-14
3 내 일상 | [TOP-1장-1] 나도 반칙이다. 15-06-14
» 내 일상 | [TOP-서장] 대마법사의 부탁 *1 15-06-14
1 내 일상 | 작가가 된 이유 *1 15-05-15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