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이제 이곳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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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곳은.**
박살에게 중국이라고 불렸던 이종수는 황금색으로 치장된 왕관을 쓰고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오십 대 남성을 향해 납작 엎드린다.
“만세만세 만만세. 황제를 뵙습니다.”
어눌하지만 충분히 알아들 수 있는 그의 중국어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황제라 불린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훌륭하게 만주로 이레귤러들을 유인했구나.”
“모두 황제님이 저를 알아봐 주시고 중용해주신 덕 아니겠습니까. 저는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허허. 과거 당나라 시절 큰 공을 세웠던 고려인 고선지 장군처럼 활약하는 그대를 중히 쓸 터이니 앞으로도 내게 충성을 다하여라.”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물러가보도록.”
“예.”
일어나서 주먹을 가슴에 대고 군례를 추가로 올린 그가 뒷걸음질로 물러나 바깥으로 나왔다.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오로지 먼지만 세찬 바람에 휘날려 그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충성을 다했지만, 음모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자와 나를 비교하다니...”
말없이 지켜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 그가 간 곳은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자금성 옆 대로에 끝에 있는 삼 층짜리 붉은색 전통 중국식 저택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먼지에 입을 막고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장군님 오셨습니까.”
“이번에도 무사히 다녀오셔서 다행입니다.”
한국말로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말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 한눈에도 아름다워 보이는 여인들이 반쯤 벗은 옷을 입은 채 그에게 날듯이 다가왔다.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손을 휘저어 사람들을 물린 그는 더 깊숙이 들어가 한 곳에 들어갔고, 그 안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돌봐주고 있던 오십 대 여인과 눈을 마주친 그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저보다는 장군님이 고생 많으셨지요. 목욕물은 이미 준비했으니 우선 씻으시고 아이들을 보러 오세요.”
“알겠습니다. 저기 그녀는...”
그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후...”
긴 한숨을 내쉰 그는 다시 바깥으로 나왔고, 반대쪽 문을 열었다. 김이 흘러나오고 있는 곳으로 걸어간 그는 따뜻한 물이 담겨 있는 세 개의 나무통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출렁.
들어가고 나서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이내 나무통에 걸려 있던 수건으로 몸을 닦기 시작한다.
출렁. 출렁.
닦는 소리가 내부를 잔잔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출렁. 출렁.
계속해서 닦는 소리가 나고 있을 때, 욕조에 있던 이종수의 몸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갈색 액체로 변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바닥에 흘러내린 액체는 배수구로 이동했고, 배수구 중간 부분에 난 구멍으로 들어가 구불구불한 파이프를 타고 나왔을 때, 창문 하나를 제외하고 사방이 금속으로 막힌 공간에 있었다.
후후후후웅.
창문에서 세찬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갈색 액체에서 다시 이종수로 변한 그는 바닥에 놓여 있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가 종이를 잡자마자 황금색으로 빛나더니 붉은 글자가 나타났다.
-배달 처리 완료.-
“그곳에다 가져다 놓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처리하다니 역시 대단해.”
중얼거리며 그는 갈색으로 빛나는 자신의 검지를 종이에 가져다 대고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웨이브 무.-
한 오 분 정도 변화가 없던 곳에 다시 붉은색 글자가 써졌다.
-통일 완료. 작전 준비.-
“통일이라... 안정화가 되면 말해주기로 했는데... 하신 몇 달이 지났는데, 못할 곳이 아니지. 이제 도박 시작인가.”
잠시 입술을 깨물고 있던 그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미 준비 완료.-
-일주일 자정. 끝.-
황금빛이 사라진 종이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은 그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다시 파이프를 지나 욕실로 돌아온 그는 욕조로 들어갔고, 남은 두 곳에서 추가로 몸을 닦고 나온 그가 몸을 닦은 뒤 잠옷을 입고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걸어간 그를 본 여성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고, 아이들 곁으로 다가온 그가 조심스레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쌍한 것... 바보 아빠 때문에 고생하는구나.”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리에서 벗어난 그가 방밖으로 나와 바로 옆문을 열었다.
텅 빈 집무실로 들어간 그는 의자에 앉아 창문 너머 황색 먼지가 휘날리는 곳을 바라보다 책상에 구석에 놓여있는 손바닥크기의 종이를 손에 쥐고는 눈을 감았다.
진(秦).
가장 혼란스러웠다고 평해지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국가. 강렬한 법 집행을 중심으로 강군을 일궈 중국지역을 최초로 통일한 국가 이름을 쓴 세상을 보유한 러지야는, 원래 오십이 세의 무역 회사에서 부장급 자리를 꿰차고 있던 남성이었다.
평생 싸움을 해본 적 없는 그가 초반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군부에서 추진한 사업으로 북한에 무기들을 보내는 일을 맡고 열차를 탔고, 그에게 무기 소지가 허락되어 권총을 휴대한 상황에서 세상이 조각났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원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을 권총으로 손쉽게 제거한 그는, 열차를 완전히 점령하고 선로를 차근차근 점령하면서 그의 세력이 커지게 된다.
위기가 중간마다 있었지만, 물건을 강화해주는 기적을 보유하면서 잘 넘어갔고, 적 중에 능력 있는 사람들을 뛰어날 말재주와 처세술로 설득해 데려오면서 그는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베이징에서 내분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자신이 가진 보물을 이용해 미끼 작전을 실행 성공한 그는 마침내 자신의 집이 있는 베이징을 얻을 수 있었다.
베이징 안에 있는 자금성에 자리 잡은 그는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하면서, 이전까지 공격적으로 영역을 넓히고 움직이던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베이징에서 버티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유는 현 중국의 중심이었던 베이징을 노리는 이들이 많다는 것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이레귤러 웨이브를 막는 것으로도 벅찰 정도로 능력자들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라이(li) 운용법이라던가 최소한의 수련 시간을 보장해 줘야 하지만, 기존 공산당 방식에 길든 사람들의 수동적인 태도와 기득권의 욕심이 어우러지면서, 지금까지도 인재는 늘어나지 않고, 바깥에서 오는 공격이 외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오자, 조금씩 황제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진 상황을 느끼고 고심하던 상황에서, 죽은 줄 알았던 이종수가 돌아왔고, 러지야는 다시 한 번 더 미끼 작전을 그에게 부탁하게 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일부러 무리까지 만들어 이레귤러들을 만주나 러시아 외곽으로 보내면서, 북쪽이 안정되자, 전력은 다른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고, 강화된 전략에 공격해오던 이들이 역공을 당해 조공을 바치거나 그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게 되자, 그의 지위는 흔들리던 때보다 더 높게 올라가게 된다.
마침내 스스로 황제라고 칭한 러지야는 기존에 측근 중 절반을 내치거나 목을 잘라버리고는 새롭게 들어온 자들이나, 외면받고 있던 외국인무리들을 품에 안았다.
물론 그 배경에는 매번 이레귤러들을 이끌고 외곽으로 끌고 가 최고 장군직까지 오른 이종수의 요청이 있었는데, 그의 요청대로 한 후, 자그마한 불만까지 사라지자 러지야의 이종수에 대한 신임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를 경계하는 무리가 생겨났는데, 그중 그의 최측근 중 하나인 간자게가 밤중에 대전을 찾았다.
“이번에도 그를 뒤쫓았던 자들 전부 실종되었습니다. 능력자 중 사 성 급 은신 기적을 가진 자도 있었습니다. 이레귤러 웨이브 안에서도 살아남은 능력자까지 죽었는데 이종수가 살아 돌아온 점이 의심스럽습니다.”
“간자게. 네가 보낸 부하의 능력이 부족한 거지, 그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라. 액체로 변신까지 가능한 그의 기적을 너도 보지 않았나. 은신이 특정 이레귤러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이종수를 의심하는 이유가 오히려 의심스러운데.”
러지야의 가늘어진 눈과 마주친 간자게는 넢죽 업드렸다.
“저는 충심으로 간언을 드렸을 뿐입니다.”
“초창기부터 꾀 보따리였던 자네의 충심은 의심하지 않아. 하지만 질투에 눈멀어 유능한 인재를 내버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야.”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변신 능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무력도 없고, 그자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보니, 내가 보낸 여인들을 멀리하고, 아이들을 지극히 보살피는 가정적인 남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군.”
“저도 알고 있지만, 사람이라면 응당 요구할 보상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꺼려져서... 그리고 그자 눈빛이 마치 이곳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느낌-”
“어허. 아직도 그런다.”
그의 말에 간자게는 다시 얼굴을 바닥에 숙였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알아. 솔직히 나도 그자를 볼 때마다 뭔가 꺼림칙하단 말이야. 보낸 자들이 혹시 다른 외국인 무리와 반란을 계획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고, 나 또한 계속해서 그를 웨이브를 유인하는 작전에 투입하고 그 외에는 철저히 외면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남쪽 정벌 계획이나 제대로 짜 봐.”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라고.”
“예. 만세만세 만만세.”
만세삼창을 하고 자리에서 간자게는 여인들과 웃고 떠드는 황제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 대전에서 나왔다.
휘이잉.
바깥으로 나온 그는 외부로 나가는 낄을 따라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황금으로 반짝이는 자금성을 바라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나도 언젠가는...”
휘이잉.
모래 먼지바람이 거세게 불자, 입을 다문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대로로 나온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전통 집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시중님 오셨습니까.”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간 그는 다가오는 여인들을 물리쳤다.
“우선 씻고 싶으니 나중에 보도록 하자.”
“예.”
“호호. 이따 뵈어요.”
나긋나긋한 몸짓으로 그의 몸을 쓰다듬은 여인들이 멀어지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간자게는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금과 붉은색 천으로 치장된 욕실에 들어선 그는 수십 명이 들어가고도 남은 욕조에 몸을 집어넣었다.
꼬로록.
완전히 잠수했다가 다시 몸을 들어 올린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잠시 주변을 살펴본 그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을 땐, 하얀색 종이 하나가 손안에 있었다.
“일주일.”
작게 중얼거린 그가 오른손을 쥐자.
화르륵.
안에 있던 종이가 불타오르는 가운데, 그 불길을 노려보는 간자게의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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