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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이 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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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8.09.03 20:03
최근연재일 :
2019.03.19 20:00
연재수 :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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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78
추천수 :
2,019
글자수 :
707,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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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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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49. 하나 -3-

DUMMY

122

천천히 몸을 돌린 양소진이 전에 비해 크게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내가 알기론 수련 시간으로 알고 있는데 왜 여기 있는 거지?”

그의 말에 양소진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기만 하고 대답하지 못했고, 그녀를 보며 한숨을 길게 내 쉰 박살은 손짓과 함께 말했다.

“여기 있지 말고 가. 이러다 김진철님 눈에 띄면 너만 손해야 그건 알지?”

“가보겠습니다.”

종종걸음으로 그녀가 멀어지고, 박살은 잠시 강이슬과 감우호 그리고 참모진들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몸을 돌렸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마디씩 했다.

“육성 끄트머리를 잡으셨다는 소문이 사실인 거 같아.”

“부산에서 날고 긴다는 주신들을 단칼에 무기와 함께 베어버린 걸 보면 이미 넘은 거 아닐까?”

“에이. 그러면 세상이 또 바뀌었겠지.”

“하긴 주신이 바뀌면 세상이 확연히 달라지니 그건 아니고, 좀 더 완숙해지신 건가.”

“그러면 뭐해. 이미 그분의 미움을 받고 이렇게 내쳐졌는데...”

“음...”

다들 침울한 표정으로 있는데, 그들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이민희가 동부구치소 안으로 들어가 박살의 뒤를 따라잡았다.

“박살님.”

그녀의 부름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몸을 돌린 박살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박살님도 이번 일이 고의로 벌어진 게 아니라는 건 아시잖아요. 그들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이제까지 희생을 최소화하는 데 일조한 참모부를 한 번의 실수로 저런 취급 하면 참모를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리고 다른 요직에서도 몸을 사릴 거예요. 그러니 이번 일은 박살님이 나서서 어느 정도 처벌만 하고 봐주는 거로 결론을 내리시는 게 어떨까 해서요.”

“조각 난지 일 년 만에 서로 적대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분노와 원한, 그리고 원망 관계인 자들이 얽혀서, 그들이 진정한 하나가 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게 지금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죠?”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 잠시 막아주는 밴드와 연고 역할을 하는 것 중에 법과 문화 등이 있습니다. 언제 이레귤러 웨이브가 우리들을 휩쓸지도 몰라서 항상 사방을 경계해야 하고, 수련해야 하는 시점에 스포츠나 문화 예술은 상대적으로 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현 상황에선 법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이야 우리들이 새롭게 변화시키면 되는 일이고, 역사로 봐도 건국 초기에 전 시대 고위직이나 부자들을 용서해 품에 안았잖아요. 이번 일도 그렇게-”

“이민희님 경남 사람들에게 참모부가 한 일이 귀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이야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기존 사람들에 의해 넘어갈 수는 있지만, 이번에 여러 곳에서 벌어진 참극에 일조한 그들에 대한 말은 두고두고 나올 겁니다.”

“저도 그건 알아요, 그래도 공을 세운 이들을 냉정하게 대우하는 건 잔인해 보이기까지 해요.”

“최소한 법만큼은 기존에 들어온 사람이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든지 간에 공평하게 적용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실행해야, 그들도 법을 따르고 우리들과 같이 어우러져 지내는 겁니다.”

“말이야 공정한 법 집행이지, 국익을 위해 적국에 작전을 시행한 일을 이번에 들어온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죄로 만들어 처벌하는 거잖아요. 보여주기 용도로 저들을 희생시키겠다는 말과 뭐가 달라요.”

그녀의 의견을 들은 박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보여주기라... 의견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민희님.”

“네?”

“제가 말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어째서요. 박살님은 이곳의 주신이잖아요.”

“그 전에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었습니다. 경찰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본분을 다하려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운 좋게 주신 자리에 올랐을 뿐, 저는 악인들을 제외하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의회에 대부분의 권한을 넘겼고, 비상시를 제외하고 군을 움직일 권한까지 넘겼다는 건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박살님이 이번 일에 관여하면 의지가 반영-”

“안 됩니다. 나중에 이것에 실망해 제가 믿는 분들이 등 뒤에 칼을 꽂는다고 해도 저는 절대로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박살의 말에 이민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진...심...이시군요.”

“네. 그러니 이민희님의 의견은 동부구치소 주변 민원을 주관하는 의원인 이종수님에게 말하세요.”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열려있는 엘리베이터 문으로 들어간 박살이 뒤돌아섰을 때, 그와 눈이 마주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이민희가 중얼거렸다.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실 수 있겠지만... 박살님은 외로우실 거예요.”

쿵.

문이 닫히고 나서, 닫혔던 문이 열렸지만, 박살은 그 안에서 한참 동안 나오지 못했다.



일주일 뒤.

동부구치소에서 의원들이 한 곳에 모여 회의한 결과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19회차 총회의 결과]

...

새로 합류한 사람들의 의견까지 고려한 결과, 이번 비극 사태의 책임은 근본적으로 폭정으로 사람들을 짐승 취급한 자들에게 있으며, 이들은 아군의 이익을 위해 작전을 수행했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단, 어느 정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예측하고도 방관한 점, 군 최고 수장인 박살에게 보고하지 않은 점, 등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죄를 물어, 참모부 부장인 강이슬과 부부장인 감우호는 육 개월 감봉 및 복구 작업 2000시간 노동형에, 그 아래 부하들은 일 개월 감봉 및 복구 작업 500시간 노동형에 처한다.


동부구치소와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스크린에 뜬 내용을 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우와. 여러 작전에서 큰 공을 세운 사람들도 벌을 받는구나.”

“법 앞에서 모든 이들은 공평하다는 걸 알려준 거지.”

“그래도 오십만의 사람들이 죽게 한 작전의 책임자 처벌치고 약한 거 아니야?”

“독가스를 살포한 것도 아니고, 실험에 사람들을 쓴 것도 아니잖아. 그냥 그들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장소인 인터넷을 마련했을 뿐이잖아. 그게 뭔 잘못이야. 그냥 참모로서 제 할 일을 다 한 거지.”

“하긴, 내가 참모부 입장이라면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기계도 아니고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건데, 하필 이번 일에 그게 겹친 거니까.”

“어차피 이번 일로 죽은 분들의 의견까지 수렴해서 내린 결정이니까. 당사자가 아닌 우리들이 뭐라고 할 만한 일은 아닌 거 같아. 나중에 추모비 세워지면 내려가서 꽃 한 송이 바치고 오자고.”

“그래.”

그들의 대화를 뒤에서 듣고 있던 이다인의 얼굴이 살짝 밝아진다.

“휴. 다행이다.”

“뭐가요?”

옆에 서 있던 양소진이 묻자,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이 혹시 너무 약하게 처벌한 게 아니냐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잘 넘어갔잖아요.”

양소진은 굳은 얼굴로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들이 죄가 없다는 걸, 박살님과 다르게 사람들은 제대로 아는 거 아니겠어요. 솔직히 저 죄는 박살님이 나는 들었다고 말하고, 빠르게 이실직고해서 수습할 수 있었다고 했다면 최소 절반 이상은 감해졌을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들은 이다인의 눈이 살짝 가늘어진다.

“소진님, 그 말은 우리 박살님이 잘못했다는 건가요?”

“죄를 지었어도 자기 식구는 감싸 줘야죠. 그것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실수로 그런 건데 봐주는 것도 없이 저렇게 모든 죄 다 받게 하고... 박살님은 융통성 자체가 없어요.”

“융통성이 없는 게 아니라, 맞는 일을 한 거죠.”

“만약 언니가 잘못해서 처벌받는데, 박살님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면 어떨 거 같아요.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이다인이 바로 대답했다.

“제가 잘못해서 벌 받는데 왜 박살님이 행동을 취해야 해요? 그리고 피해자 가족 앞에 두고 양소진님은 그런 말 할 수 있어요?”

“그거야... 좀 힘들죠.”

“모든 사람 앞에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일에나 참여하면 모를까, 저는 제 주변 사람이 제 허물을 감싸다가 다치는 건 원치 않아요. 양소진님도 자신 때문에 김진철님이 위험해지는 거 원하지 않잖아요. 안 그래요?”

그녀의 물음에 양소진은 살짝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그렇긴 한데, 힘이 있는데도 그러는 건-”

“힘이 있을 때 그러다가, 나중에 힘이 없어지면 힘이 있을 때 숨죽였던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이번 사건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그냥 모가지를 뎅겅.”

이다인이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자, 양소진이 몸을 살짝 움찔한 가운데, 그녀가 말을 이어서 했다.

“하고 잘릴 수 있다고요. 다행히 이번엔 피해자의 의견까지 포함하고 결정해서 나중에 말이 다시 나올 수는 있어도 극단적인 형태로는 나타나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다시 말해, 미래에 강이슬님이나 감우호님 그리고 참모진에게 꽂힐 원망과 원한을 이번일로 상당수 없앤 거죠.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참모부 인원 전체가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이게 제일 나은 답이니까.”

“아 그렇구나...”

“오히려 박살님이 양소진님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욕먹게 되었으니, 그걸 아는 이종수님이나 임호수님이 참모부 인원들에게 도끼눈 뜨고 바라보는 거고요. 무엇보다 김진철님도 이번 일의 원인인 참모부를 가장 크게 원망하고 있죠.”

“진철씨가요?”

“모르셨어요? 이번 자유화 운동으로 죽은 사람 중에 진철님 소꿉친구 하나 돌아가셨는데.”

“아...”

양소진의 멍한 표정을 본 이다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모르셨구나. 하긴, 진철님이 겉으로 티를 내는 스타일은 아니지.”

그녀는 양소진에게 다가가 어깨를 쳤다.

“뭐해요.”

“네?”

“추모식 준비 중인 그분에게 가서 안아주던가 위로의 말이라도 해줘야죠.”

그녀의 말에 양소진의 멍한 눈동자에 작은 빛이 나타났다.

“정말 고마워요.”

“나중에 밥이라도...”

정문을 향해 뛰어가는 양소진을 바라보며 이단인이 중얼거렸다.

“나는 언제쯤이면 저렇게 달려갈까.”



다시 한 달이 지났다.

제일 많은 싸움이 일어났던 경남 지역이니만큼, 많은 장비와 인원이 투입했음에도 복구 작업이 한 달이나 걸렸다.

한 달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나쁜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는 어찌 보면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복구 작업을 도와주고, 가끔 찾아와 이번 비극의 책임이 있다면 사죄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원이나 그들도 모르는 라이 운용법을 알려주는 모습에서, 폭정에 상처받고, 비극에 눈물을 쏟은 이들도 자연스럽게 세상에 흡수되었다.

거기에 공석을 이용해 과거에 쓸 수 있었던 수도나 전기 시설 등도 다시 원상태로 쓸 수 있게 되자, 어두웠던 얼굴에 빛이 돌고, 축 늘어졌던 어깨도 다시 펴졌다.

남쪽 지역이 안정되는 사이, 한반도와 떨어진 제주도와 울룽도로 박살들이 진출했고, 그곳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온다.

진정한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로 이제 하늘이 높아지기 시작한 계절이 다가오는 9월 3일을 통일절로 지정하고 축제를 열었다.

사람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가운데, 동부구치소 옥상에서 축제 현상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있는 박살에게 강이슬이 다가왔다.

강이슬의 굳은 얼굴을 바라보고 박살은 술잔을 내려놓는다.

“무슨 일이지.”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알았다. 먼저 내려가 봐.”

“네.”

강이슬이 물러가고, 박살은 말없이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작가의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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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49. 하나 -2- 19.03.07 357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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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43. 파죽지세 -4-, 44. 해후 -1- +2 19.02.20 403 10 11쪽
113 43. 파죽지세 -3- 19.02.19 416 9 11쪽
112 43. 파죽지세 -2- 19.02.18 409 10 15쪽
111 42.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은. -2-, 43. 파죽지세 -1- +1 19.02.16 458 8 11쪽
110 42.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은. -1- +1 19.02.13 404 7 16쪽
109 41. 내로남불의 시대 -4- +1 19.02.12 422 8 13쪽
108 41. 내로남불의 시대 -3- +2 19.02.11 394 8 11쪽
107 41. 내로남불의 시대 -2- +1 19.02.08 404 8 11쪽
106 41. 내로남불의 시대 -1- 19.01.31 424 8 12쪽
105 40. 북진? 남진? -1- +1 19.01.30 444 8 11쪽
104 39. 네 떡? 내 떡? -3- +2 19.01.29 433 9 16쪽
103 39. 네 떡? 내 떡? -2- +2 19.01.28 413 9 13쪽
102 39. 네 떡? 내 떡? -1- 19.01.26 431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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