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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님의 서재입니다.

세상이 조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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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8.09.03 20:03
최근연재일 :
2019.03.19 20:00
연재수 :
1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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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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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07,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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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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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3. 파죽지세 -3-

DUMMY

112

점령전에서 사람을 죽여도 악인이 되지 않는 조건은 간단하다.

먼저 공격받아서 피해를 보거나, 미리 선전포고 등으로 예고를 하면 된다. 아니면 죽인 이들이 전부 악인이거나...

어찌 보면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결사 항전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약육강식을 위한 조건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공격할 상대에게 시간을 줘서 피해가 늘어나는 건 공격하는 쪽도 마찬가지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박살이 인터넷과 확성기를 통해 상대 진영에 선전포고하면서, 박살이 북한으로 간 이후 서로 전투를 벌이던 남한 세력들 전부 싸움을 멈추고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

그중 인천을 북성의 이름하에 둔 구준희가 자신의 집무실에서 굳은 얼굴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 때문에 우리는 인천 지역 세 지역과 성남, 안양 모두에게 우리라는 단체와 협력 관계를 스스로 깨버리고, 우리에게 항복한다면...-


꽝.

책상을 내리쳐 반쪽을 만든 그가 오십 줄에 들어 반 정도 하얗게 변한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어떻게 쌓아 올린 곳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내줘야 하나...”

그의 말에 책상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사십 대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남성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고를 치고 죽을 줄은 몰랐습니다.”

“후... 그게 왜 자네 잘못이야. 아들 관리 잘못해서 이곳을 이지경까지 만든 내 잘못이지. 그래, 아들 시신은 어찌 됐어.”

“악인에 대해서만큼은 인간으로 예우를 해주지 않는 지옥의 특성 때문에-”

“김유성. 짧게.”

“모두 한곳에 모아 불태웠습니다.”

김유성의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말을 듣고는 구준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 자기 업보인 게지. 그나저나 다른 두 세력도 같이 참여한 거로 아는데, 그쪽에서는 연락은 없고.”

“예. 없습니다.”

“하긴 협력해서 대항하기엔 원한이 많이 쌓였지. 그래서 두 세력은 어떻게 하고 있지?”

“시흥은 반발하며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김포는 조용합니다. 아무래도 파주에 자리 잡은 북한인들의 모습을 보고 고심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그의 물음에 김유성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우리라는 단체가 연락이 왔습니다.”

꽈득.

바닥에 흩어진 책상 잔해를 밟아 부순 그가 김유성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것들이 뭐라고 그러던가.”

“자신들과 힘을 합친다면 죽지 않는 일만의 병력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죽지 않는?”

“예. 분명 그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거짓말도 잘도 하는 군, 그거 조종하는 대가리 머리만 치면 다 쓰러지는 그딴 얼음 인형들을 준다고 내가 고개를 숙인다고 본 건가.”

“더 자세한 조건이 말이 없는 거로 보아, 그냥 떠보는 거 같습니다.”

“우리와 협력은 없다. 다른 건 없어?”

“그건... 항복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박살이 강했나. 초기에 사람들이 식량 다 털고 농지가 있는 시골로 떠나서 서울 인구가 삼만도 안 된다면서, 이십만을 보유한 우리 인구수로 밀어붙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희망 섞인 물음에 김유성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계속된 싸움으로 전투 인원 대부분이 죽거나 크게 다쳤습니다. 그리고 성장도 멈추었고요. 이럴 줄 알았으면, 박살의 세상처럼 평등하게 수련 시간을 주었을 텐데... 제가 너무 근시안적으로 성장만 추구해서 이렇게 된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그렇게 해서 인천을 얻은 게 아니었나. 그 뒤로 그처럼 사람들을 성장시켰으면 되는데, 중요한 시기에 아들놈 관리를 못해서 원한 관계를 만들어서 꼬인 거지, 자네 잘못이 아니야. 후...”

끼이익.

의자에 몸을 기댄 그가 회색빛 천장을 바라보았다.

“결국. 이곳을 줘야 한다는 거군. 김유성.”

“예...”

“박살에게 전해라. 북성이 지옥에 떨어졌다고. 부디 죄 없는 다른 이들은 봐달라고... 그리고 크흡.”

구준희는 말을 잇지 못했고, 이어진 작은 울음소리에 듣고 있던 김유성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범인으로 지목된 곳 중 인천 지역의 북성, 안양의 갈망, 성남의 싸커가 항복했다. 그리고 수원 외곽 지역은 박살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리라는 단체에 의해 큰 피해를 봤다면서 항복했고, 그 결과 경기 중북부는 시흥을 제외하고 전부 박살의 세상이 된다.

유일하게 반발한 시흥은 예상외의 결과에 당황해, 전투와 항복 두 파로 나뉘어 다투다가 공격 개시일 날 허무하게 점령당한다.

반나절 만에 경기 중북부가 모두 박살에게 넘어갔고, 그사이 우리는 자신들의 근거지인 평택에 이십만이 넘는 꼭두각시 군대를 집결해 박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평택을 관통하는 안성천을 사이에 두고 두 세상의 전투부대가 대치했다.

“우와... 이십만이라는 말이 실감이 안 되었는데, 저렇게 새까맣게 뒤덮은 거 보니까, 위압감이 장난 아니네.”

“괜히 중공군이 인해전술만으로 연합군을 밀어낸 게 아니지. 여러 한계가 있긴 하지만, 대규모 살상 무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아주 효과적인 전술이야.”

“그래봤자, 우리 삼만이 넘잖아. 그리고 우리 하늘에 떠 있는 염들을 봐. 수가 십만이 넘는다더라. 질적으로 뛰어난 우리가 훨씬 유리해.”

“그것뿐이냐 지금도 우리라는 단체의 악행에 당해 억울하게 죽은 염들이 모여서, 하루에도 천씩 늘어나고 있다고, 절대 지지 않을 거야.”

“그래도 난 무섭다. 애먼 공격에 맞아 죽은 경우도 있으니까...”

“나도 무서워하지만, 저 쓰레기 같은 놈들이 한 짓을 보니까, 오히려 저들이 점령한 세상이 올까 봐 두렵더라. 저기 봐봐. 죽은 시체들을 저렇게 부리는 것도 모자라서, 어린 아이까지 병신으로 만들어 놓고 세워놨잖아. 내 자식놈이 저기에 낀다고 생각해보면 어후... 끔찍해.”

“네 말이 맞아. 나도 저 꼴은 용납 못 해.”

“나도.”

“저도요.”

“내일 잘 싸워서 살아서 봅시다.”

“그래요. 혹시 내가 죽으면 내 자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또...”

안양천 너머 적들을 보며 대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두운 곳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박살이 몸을 돌려, 막사를 쳐서 만든 임시 지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막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가자, 강이슬이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어때요? 겁먹고 있어요?”

“그건 아니다. 오히려 저놈들을 막자고 결의를 다지더군.”

그의 말에 강이슬이 의자로 돌아가 털썩 앉는다.

“다행이다. 난 겁먹고 도망치는 사람들이 생길까 봐 두려웠는데...”

“일반적인 전쟁을 연상시키는 전투였다면 겁먹는 이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라는 단체가 내세운 저건... 마치 반제의 제왕에서 보던 악의 무리랑 비슷하게. 아니, 더 끔찍하니... 저들에게 먹힌 세상이 더 두려웠을 겁니다. 우리로서는 한시름 덜었지만... 저런 놈들이 세상에 더 있을까 봐 저도 두렵습니다.”

그의 말에 박살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할 틈도 없이 박살 낸다면, 저렇게 병력을 부려서 이득을 보려는 자들도 없어질 겁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미리 조종하는 사도를 찾을 탐색조는 어떻게 됐습니까.”

“양소진, 조상호님, 그리고 강이슬님을 중심으로 세 조로 나눠서 찾아다닐 예정입니다.”

감우호의 말에 박살의 시선이 강이슬에게 향했다.

“네 식구를 데리고 갈 거냐?”

“정확히는 식구들의 부하들을 뿌려서 반응을 보고 명단을 작성하려고요.”

“돌돌이랑 황복이를 꼭 데려가고.”

“이미 말해뒀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강이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살이 상황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적의 수장이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니 사도들을 전부 쓰러뜨려야 싸움이 끝날 겁니다. 승리 뒤 곧바로 제가 만들어 놓은 공석으로 사방을 점령해 주신을 끌어내거나, 절반 이상 점령해 주신의 이름이라도 볼 생각이니, 감우호님은 싸움 추세에 따라서 인원 분배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세요.”

“예.”

“강이슬 너는 김진철님을 데리고 탐색조들의 위치를 잘 조율하고. 돌아와서 곧바로 내게 보고해.”

“네.”

“이번에 새로 합류한 인원들 감시는 어둠이 맡고 있죠?”

“예. 그리고 아직 변심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속죄 부대 대장이 된 감우진님에게 부대원들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하면 그냥 바로 목을 치라고 하세요.”

“이미 그렇게 말했습니다. 악인이 안 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했습니다.”

“좋군요. 보고는 끝난 거 같으니, 두 분은 참모부로 돌아가서 조율하세요. 저는 잠시 수련 시간을 가져야 할 거 같습니다.”

그의 말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볼게요.”

“있다 뵙겠습니다.”

두 사람이 나가자 박살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후...”

말없이 상황판을 보던 박살은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다음날 새벽.

오백삼십오가 적힌 명찰을 가슴에 단 서른둘의 김궁은 자신이 만든 꼭두각시들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난 멋진 네크로맨서를 생각했지. 이러려고 들어온 게 아닌데. 역겹기만 하고 재미도 없고. 차라리 여자로 태어났으면 가랑이만 벌리면서 편하게 뒤에서 먹고 사는 건데. 아 짜증 나.”

투덜거리며 꼭두각시들 사이를 걸으며 계속 움직이다가 그는 멈춰 섰다.

“짜증 나서 더는 못 움직이겠다. 내 앞에 있는 사도들은 움직이지도 않는데, 나만 늦게 들어왔다고 흐트러지는 녀석들 정신 잡는 궂은일만 맡기고... 하여간 꼰대들만 제대로 했어도 이러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나보다 늦게 들어온 오백삼십육번님은 왜 보이지 않나.”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던 김궁은 고개를 갸웃한다.

“이상하다. 왜 안 보이지? 그러고 보니 꼭두각시들 진형도 많이 흐트러져 있고... 설마.”

그는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이 머무는 천막에 시선을 돌렸다.

“백육십육 사도랑 하러 간 건가. 그 돼지 놈에게 대줄 거면 나도 좀 주-”

퍽.

“컥.”

그의 목에 박힌 화살을 부여잡은 김궁이 바닥에 쓰러졌다.

직각으로 기울어져 보이는 세상에서 자신처럼 화살 등 투척 물을 맞고 쓰러지는 자들과 그들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던 꼭두각시들이 도미노처럼 차례로 자빠지는 것을 보며 고통에 얼룩진 얼굴이 잠시 환해진다.

“쌤... 통...”

점점 흐려지는 그의 시야 속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한 남성의 외침이었다.

“모두 쓸어버려라!”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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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파죽지세 -3- 19.02.19 416 9 11쪽
112 43. 파죽지세 -2- 19.02.18 40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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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42. 같지만, 다른. 다르지만 같은. -1- +1 19.02.13 404 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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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41. 내로남불의 시대 -1- 19.01.31 424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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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39. 네 떡? 내 떡? -3- +2 19.01.29 433 9 16쪽
103 39. 네 떡? 내 떡? -2- +2 19.01.28 412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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