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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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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2.01.10 16:57
최근연재일 :
2012.01.10 16:57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40,452
추천수 :
730
글자수 :
257,382

작성
12.01.0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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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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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미령(美靈)2-(79)

DUMMY

사실 무희가 처음부터 무당이었던 건 아니었다.

지방 소도시 시장에서 청과물가게를 하던 부모 밑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난 무희의 본명은 은영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운명의 날을 맞게 된 은영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아버지가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가게는 물론 집까지 내놓아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국 먹고 사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은영의 가족들은 길바닥에 나 앉아야 했고 얼마 뒤, 친구의 배신으로 자괴감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평소 앓고 있던 고혈압이 악화돼 모녀만 남긴 채 세상을 뜨고 말았다.

다행히 주위의 도움으로 간신히 장례를 치른 뒤 아버지한테 사기를 친 친구를 찾아가 따졌으나 자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만 하고 있었다.

“그랑께. 난 모르는 일이지라.”

“아저씨가 아버지한테 그 사람 소개했다면서요?”

“오마. 요거 사람 잡것네. 그란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과일을 좀 사겄다고 혀서 자네 아버지 가게로 데불고 간거여. 암튼 난 모르는 일잉께. 그리 알드라고.”

결정적 물증이 없어 그를 고소하지 못했을 뿐 모든 것이 그의 농간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며칠 뒤 아버지가 하던 가게를 인수했다면서 고개를 내민 그의 뻔뻔함이 은영으로 하여금 복수의 칼을 품게 했다.

그러나 은영의 불행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가까스로 변두리 달동네에 단칸집을 마련하고 행상을 하던 엄마가 그만 뺑소니 사고로 아버지 뒤를 따라간 것이다.

졸지에 고아가 된 은영은 그동안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는 동안 알 게 된 단골손님의 도움으로 어떤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동네에서 이름 난 역술원이었다.

그날 이후, 은영은 언젠간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그 인간에게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무당의 온갖 심부름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을 맞은 무당이 누군가를 저주하는 부적을 만드는 것을 본 은영은 그때부터 무속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갖은 것이라곤 몸뿐인 자신이 복수를 하려면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은영의 노력은 그녀를 데리고 있던 무당의 눈에 들었고 예사롭지 않은 은영의 미모를 본 무당은 본격적인 새끼무당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원래 그럴 운명이었을까?

은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갔고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들게 된 무당을 대신해 역술원을 운영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창 꿈 많은 나이의 은영에게 무당이라는 직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옆에서 이를 지켜보며 끝까지 자신을 돌보는 은영을 기특하게 여긴 무당은 숨이 경각에 이른 어느 날 뜻밖의 이야기를 남겨 주었다.

“은영아. 이것이 너의 운명이긴 하다만 이것을 피해가는 것도 너한테 주어진 운명이다. 살다 보면 너한테 하늘이 맺어 준 짝이 찾아올 때가 있을 거다. 그 남자가 바로 널 여기서 꺼내 줄 동아줄이니 절대 놓치지 않도록 해라. 하지만 그날이 오긴 전까진 절대 신령님을 떠나선 안 된다. 무슨 말인 알겠느냐?”

“남자가 한 둘이 아닐 텐데. 그걸 어떻게 알죠?”

“그건 어렵지 않을 게다. 한번 이혼한 적이 있는 남자에게서 귀신의 기가 느껴진다면 그가 바로 네 짝인 게야. 그 남자와 합궁만 하면 너도 다른 여자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 신령님 부르시는구나. 이제 그만 가야겠구나. 그동안 고마웠다.”

그렇게 무당을 보낸 은영은 장례를 끝내고 그동안 가슴에 품었던 일을 시작하기 위해 옛날에 아버지가 하던 과일가게를 찾았다.

가게는 수년이나 지났는데도 아버지가 손님을 기다리거나 가게에서 밤을 지새울 때 쓰던 간이 온돌방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서 오셔. 뭐 찾소? 여그 사과도 좋고 저그 배도 좋은디.”

은영은 그가 알아보면 어쩌나 했는데 수년이 흐른 지금 그는 달라진 은영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어째 과일이?”

“아이고. 뭔 소릴 하쇼? 나가 여그서 십 년째 장사하는디 시장에서 우리 물건이 최고랑께요.

‘십 년째?’

몇 년 전만 해도 이 가게는 아버지 가게였다.

은영은 남의 가게를 날로 먹어치우고도 뻔뻔스럽게 떠버리는 그에게 내가 그분 딸이다 하고 내뱉으며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복수를 위해 억지로 참아야했다.

그 사이 은영이 화를 누르느라 표정이 굳어진 것을 좌판에 있는 과일을 탐탁해 하지 않는 것으로 오인한 그는 은영을 가게 안으로 안내했다.

“손님. 이 안에도 있응게. 여그 것도 구경하셔.”

못이기는 체 하고 은영이 안으로 들어서니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아버지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아이고, 불빛에서 봉께 겁나게 미인이십니다잉?”

그는 손님이 은영인 것도 모르고 연신 굽실거리며 아양을 떨었다.

“귤 한 박스하고 이거 6개만 싸주세요.”

“아. 예. 예. 쪼매만 기다리셔. 잉? 날도 춥고 한께. 여그 뜨끈한 온돌에 몸좀 지지고 계시셔.”

그가 아양을 떨며 과일을 묶는 사이 다른 과일들을 구경하는 척 하던 은영은 그가 모르게 괴황지 하나를 꺼내 온돌에 깔린 비닐장판 밑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것은 은영이 준비한 부적이었다.

무당이 할 수 있는 온갖 저주가 담긴 그 부적은 놈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은영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것이었다.

“손님. 전수해서 만이천원입니다요. 그란디 요고 무게가 쬐까 나가는디?”

“조금 있다가 사람이 올 거예요. 그때까지 여기 둬도 되죠?”

“고걸 말이라고 하요. 나가 요기 딱 하니 놔둘텡게. 걱정 붙들어매셔. 헤헤헤.”

돈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온 은영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시장을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은영은 또 다시 시장을 찾았다.

그런데 가게 앞에 도착한 은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게가 홀랑 타버리고 없는 것이다.

은영은 맞은편 가게 주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저 가게 불났어요.”

“저런, 어쩌다가.”

“한 일주일 됐나? 낮에 저 가게 주인이 난로에 석유를 붓는 걸 봤는데 갑자기 펑하면서 불이 났지 뭡니까?”

“어머나.”

“사람 안 죽은 게 다행이죠.”

순간, 은영은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나온 그의 말은 이런 은영에게 통쾌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차라리 죽는 게 낫지.”

“네?”

“그 사람 온 몸에 3도 화상을 입어서 죽을 때까지 사람 구실도 못하게 됐어요. 가족들만 불쌍하게 됐지. 저 가게 터도 대출금 때문에 은행으로 넘어갔대요. 그런데 저 가게엔 무슨 일로?”

은영은 며칠 전 주문한 물건을 찾으러 왔는데 어쩔 수없이 그냥 가야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이 놈아.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한 대가가 어떤지 알겠느냐?’

부적의 효험 때문인지 아니면 우연인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 부모의 복수를 끝낸 은영은 그동안 모은 돈을 갖고 서울로 둥지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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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2 햇살반디
    작성일
    12.01.07 20:08
    No. 1

    세상에 사연을 알고 보면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오늘은 핸폰이 아니라 댓글 달기가 수월하네요 항상 핸폰으로 댓글을 적어서요 ㅎㅎㅎ 성실연재 감사합니다.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설호(雪虎)
    작성일
    12.01.07 22:10
    No. 2

    감사합니다. 사실 그동안 감기로 고생했는데 이제 좀 살 것 같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에클릿
    작성일
    12.01.08 15:25
    No. 3

    잘 보았습니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서 살면 안되죠...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 MonarchA
    작성일
    12.01.08 16:51
    No. 4

    매일 이거보는 맛으로 문피아에접속합니다.
    성실연재 너무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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