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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의 서재입니다.

미령2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설호(雪虎)
작품등록일 :
2012.01.10 16:57
최근연재일 :
2012.01.10 16:57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40,457
추천수 :
730
글자수 :
257,382

작성
11.12.27 19:46
조회
423
추천
13
글자
7쪽

미령(美靈)2-(70)

DUMMY

그것은 바로 집안체면 때문이었다.

그동안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여기저기 기부도 하고 동네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돈을 댔던 아버지에겐 이런 딸에 대한 소문이 나는 것은 그야말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 걸세.”

이제야 누나가 왜 그렇게 자신에게 집착했었는지를 알게 된 강준은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만 떨어뜨렸다.

한참 뒤, 북받쳤던 가슴이 진정된 강준은 엄마가 살았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혹시 제 생부에 대해 아시는 거 있으세요?”

“몰라. 그건 돌아가신 자네 조부와 보살만 알고 있었을 거야. 참, 그 봉투 안에 작은 봉투가 하나 더 있을 거야. 한번 꺼내봐.”

작고 두툼한 봉투엔 노란 종이에 싸여 청홍실로 곱게 묶인 것이 들어 있었다.

실을 풀고 종이를 벗겨보니 그 안엔 청심이 남긴 메모와 뭔지 모를 가루가 든 작은 비닐봉지가 눈에 띠었다.

“이게 뭐죠?”

“보살께서 앞으로 자네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면서 매일 조금씩 만들어 모은 걸세.”

강준은 엄마가 남긴 메모를 펼쳤다.

‘내 아들 준아. 이걸 보고 있을 때면 엄마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나. 먼저 너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이미 아저씨한테 들어서 알겠지만 엄마는 그것이 널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치에 맞지 않겠지만 너한테만은 무당의 자식이란 소리를 듣게 하기가 싫었다. 그리고 비닐봉지에 든 가루는 집에 가기 전에 물과 함께 삼켜라. 그것을 삼키고 나면 너한테 조금씩 변화가 생길 거다. 영선이라는 처녀를 못 잊어하는 너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엄마가 가면서 너한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준아, 너와 그 처녀 실은 천상배필이었다. 그 특별한 처녀를 평생 옆에서 지켜주는 것이 네 운명이다. 다만 네 몸이 그 처녀를 감당할 수 없어 반대했던 것인데 이제 그 가루를 먹고 나면 결혼도 할 수 있게 될 거다. 하지만 그것의 효력이 나타나려면 24개월이 지나야만 한다. 이제 왜 강제로 군에 보냈는지 알았을 거다. 살아선 불러보지 못한 내 아들 준아, 사랑한다. 엄마가.’

이미 강준의 얼굴은 또 다시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고 엄마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메모는 그 눈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이를 백미러를 통해 본 기사는 강준이 감정을 추스르길 기다리다 자신이 짐작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 뭐라고 적혔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그건.”

“이게 뭐죠?”

“그건 보살님 혈(血)이 아닌가 싶네.”

“혈이라면 피잖아요. 하지만 이건 가루예요?”

“그러게. 하지만 내 짐작이 틀림없는 거 같아.”

기사는 강준이 군에 입대 한 뒤 청심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강준과 이별을 한 뒤 한동안 고심을 하던 청심은 죽기 한 달 전부터 매일 신당에 치성을 올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피를 한 컵씩 받아 그 속에 뭐가를 섞어 햇빛에 말린 후 곱게 가루를 만들어 모으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사는 강준을 위해 정성을 드리는 것을 알았지만 피를 뽑는 것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협심증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터라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지만 청심은 하루도 빼지 않고 계속했고 마침내 일을 끝냈을 때는 이미 가망이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것 때문에?”

“내 짐작이 맞는다면 그걸 모으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겠어?”

기사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한참 뒤 집이 가까워 오자 기사는 청심이 신령이 심산(深山)에 있는 샘에서 직접 떠왔다는 생수를 건네며 손에 든 가루를 삼키라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요.”

“그건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이셔. 잔말 말고 어서 삼키게.”

생수와 가루를 손에 들긴 했으나 강준은 차마 삼키지 못하고 망설였다.

“목숨을 바친 어머니 정성을 그르칠 생각인가? 눈 딱 감고 삼켜.”

한참 망설이던 강준은 기사가 말한대로 눈을 질끈 감고 가루와 생수를 삼켰다.

그런데 가루가 목에 넘어간 순간, 마치 독약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조이면서 숨이 막혀오는 것이다.

강준은 괴로움에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비틀었다.

“조금만 참게. 보살님께서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어.”

잠시 후, 기사가 말한 대로 다시 서서히 숨통이 트였다.

“그런데 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삼키라고 하셨을까요?”

“그건 집에 다른 음기가 섞여 있어서겠지. 나도 더 이상 자세한 건 몰라, 그러니 이제 잊어버리게.”

그리고 일주일 후, 강준은 기사와 함께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부대로 향하고 있었다.

“집 걱정은 말게. 자네가 제대할 때까지 내가 돌봐주겠다고 보살한테 약속했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저씨께선 어떻게 엄마를 아셨어요?”

“난 원래 주먹세계에서 살던 사람이야. 그런데 언젠가 거의 죽을 지경이 됐는데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더군. 그래서 하는 수없이 보살님 집에 숨어들었는데 그때 내 목숨을 구해주셨어. 그렇지 않았으면 난 벌써 염라대왕한테 갔지. 그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돌아가시면서 과수원이 딸린 집까지 남겨 주셨지 뭔가. 그래서 난 스스로한테 맹세했지. 보살님께선 자네가 제대할 때까지만 봐 달라고 하셨지만 자네와 끝까지 함께 하기로 했으니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게.”

그 사이 어느덧 승용차는 강준이 복귀할 부대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한편, 이미 영선이 사는 동네로 거처를 옮긴 무희 일행은 신당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보살님 미아리 집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여기서 평생 살 수는 없잖니. 여긴 당분간 있으려고 온 거야. 그런데 더 이상 어둡게 안 되니?”

“왜요?”

“빛 때문에 눈이 아파.”

“이렇게 커튼을 쳤는데 도요?”

“넌 괜찮겠지만 내 눈은 이정도 빛도 오래 보질 못해. 얼른 끝내고 돌아가야지.”

박양은 아파트 특성상 아무리 두꺼운 커튼을 달아도 베란다에서 새들어온 빛까지 차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핑계였다.

늘 어두컴컴한 세상에서 사느라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박양에겐 장님이 눈을 뜬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기나 여기나 별반 차이가 없는 도희는 갑자기 거처를 옮긴 이유가 궁금하기만 했다.

더구나 아파트는 방음이 잘 돼있어 가끔 찻소리가 들리던 미아리 집보다 더 답답한 데다 여기선 손님마저 받지 않을 것이어서 말 그대로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미아리 집에선 화장실을 가거나 샤워하러 가려면 미로 같은 통로를 거쳐야 했지만 여기선 몇 발짝만 걸으면 됐기 때문에 전처럼 지저분한 벽을 더듬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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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미령(美靈)2-(82,최종회) +3 12.01.10 489 10 9쪽
80 미령(美靈)2-(81) +3 12.01.09 428 9 7쪽
79 미령(美靈)2-(80) +2 12.01.08 336 12 7쪽
78 미령(美靈)2-(79) +4 12.01.07 434 13 7쪽
77 미령(美靈)2-(78) +1 12.01.06 270 9 7쪽
76 미령(美靈)2-(77) +1 12.01.05 405 10 7쪽
75 미령(美靈)2-(76) +3 12.01.04 375 7 7쪽
74 미령(美靈)2-(75) +3 12.01.02 455 7 7쪽
73 미령(美靈)2-(74) +2 12.01.01 479 10 7쪽
72 미령(美靈)2-(73) +4 11.12.30 406 8 7쪽
71 미령(美靈)2-(72) +2 11.12.30 322 7 7쪽
70 미령(美靈)2-(71) 11.12.29 436 9 7쪽
» 미령(美靈)2-(70) +3 11.12.27 424 13 7쪽
68 미령(美靈)2-(69) +4 11.12.25 408 9 7쪽
67 미령(美靈)2-(68) +2 11.12.23 264 7 7쪽
66 미령(美靈)2-(67) +3 11.12.21 399 7 7쪽
65 미령(美靈)2-(66) +2 11.12.20 417 7 7쪽
64 미령(美靈)2-(65) +3 11.12.19 464 10 7쪽
63 미령(美靈)2-(64) +3 11.12.18 349 8 7쪽
62 미령(美靈)2-(63) +1 11.12.16 448 8 7쪽
61 미령(美靈)2-(62) +3 11.12.16 309 8 7쪽
60 미령(美령)2-(61) +1 11.12.15 437 9 7쪽
59 미령(美靈)2-(60) +1 11.12.13 495 8 7쪽
58 미령(美靈)2-(59) +3 11.12.12 332 9 7쪽
57 미령(美靈)2-(58) +5 11.12.10 438 12 7쪽
56 미령(美靈)2-(57) +3 11.12.07 540 14 7쪽
55 미령(美靈)2-(56) +1 11.12.05 309 8 7쪽
54 미령(美靈)2-(55) +3 11.12.04 462 9 7쪽
53 미령(美靈)2-(54) +4 11.12.01 488 11 7쪽
52 미령(美靈)2-(53) 11.11.20 442 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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