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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아랑까미의 세상이야기(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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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4.21 20:02
최근연재일 :
2020.05.02 10:32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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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수 :
80,086

작성
20.05.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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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어느 대 마법사의 일기 (1화)

DUMMY

칠흑 같던 어둠의 밤은 새벽녘의 고요 속에 지워져갔다. 이내 하늘엔 태양이 떠올라 세상을 푸르게, 다시 더할 수 없는 눈부심으로 물들게 할 것이다. 아침이라는 이름의 축복을...


그 축복은 이곳 크루미라제국의 광할한 하늘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이제 밤새 닫혀있던 창문을 열어,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 제국 제2기사단 소속의 듀발라미란 팔레인의 얼굴에 상쾌하게 흩날리고 있다.


성내의 아침은 분주하다. 여기저기로 지나다는 하인과 제각각의 사람들, 아침점호와 임무교대식을 위해 연병장에 집결하고 있는 수비대와 기사들, 저마다의 이유로 바쁜 걸음을 옮겨가고 있는 모양새를 팔레인은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오늘 하루는 저드로가 다르다. 그가 매년 사적인 이유로 업무를 쉬는 딱 하루, 언제나 ‘우리는 모두 같지만 그 때문에 모두 다르기도 하다.’고 말하던 그의 가장 절친했던 친구, 카르델을 찾아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카르델과 함께했던 추억은 언제나 그를 즐겁게 한다. 팔레인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무언가를 탐구하던 사고뭉치이지 사색가이며, 마법에의 갈망 앞에 의지로 우뚝 선 마법사. 팔레인에게 그는 그런 존재이다.


팔레인은 창 밖 풍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 풍경은 이제 긴 나팔소리를 끝으로 기사단의 임무교대식을 마지막으로 하는 아침행사를 모두 끝내고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변함없는 매일의 아침풍경, 역시 변함없는 구성원과 똑같을 일과들. 뭉뚱그려 바라보면 단 하루도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지만 세세히 나누어 보면 모두가 같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맑다고 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조금씩은 매일 다를 아침의 날씨. 하늘과 구름. 그리고 그 아래를 살아가는 셀 수 없을 만큼의 개체들. 그 마다의 기분과 생각. 어제와 오늘의 나 자신...


모두가 돌아가 버린 연병장을 그려놨던 그들 모두는 매일 같지만, 단 하루. 매시매초, 우리는 다르다.


팔레인은 창문가를 떠나며 피식 웃어본다. 오늘따라 조금 센티해진 기분. 아마도 그가 무척 그리워서 일 테다.



방안에서 한참이나 다듬어두고 나선 터이지만 그는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의 눈앞엔 이 문 안쪽의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려주는 명패가 위풍당당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다.


[제2 기사단장실]


심호흡을 한번 해 보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책상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자신의 애검을 손질하고 있는 팔레인의 직속상관이자 제국의 장군그로체인 폰 론가르트경이 그에게 한 번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다시 손질하던 검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팔레인이 긴장한 채로 그러나 찬 치의 오류도 없는 영내이탈신고를 마친 후까지 내내 그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이 팔레인은 한동안의 침묵을 견뎌내야만 했다.


자신의 오늘 일과를 결정해 줄 이 남자. 그는 격식을 싫어하며, 내키면 행동하는 기분파였다. 대부분이 마법사로 구성 된의원회에서, 같은 공간에서 업무활동을 하는 기사들의 품위 없는 예절에 대해 기사단 훈련 교과과정으로 귀족예절을 반영하자는 그들의 회의장에 홀로 난입해선, 의장의 상징인 미스릴 지팡이를 일 검에 잘라버린 일이 있을 만큼 엉뚱한 사람이다. 그 성격이 팔레인을 긴장하게 하는 이유다. 누가 뭐해도 그는 오늘 팔레인의 일과를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관의 지금 기분상태는 팔레인으로선 매우 고려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날짜가 벌써 그렇게 됐나? 자네도 참 대단하군 그래. 매년 친구의 기일을 잊지 않고 찾아가다니, 어쩐지 그 친구가 부럽다는 생각도 드는군. 그는 마법사였다고 했었던가?”


“네, 그랬었습니다.”


“그래. 이름은 어떻게 되나? 혹시 내가 들으면 알 만한 사람인가?”


“그는 카르델이라고 합니다. 장군님께서 알지는 못하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선 대륙 최고의 마법사였습니다.”


자랑스러움에 매우 흐뭇해하는 팔레인의 눈빛과 억양, 그리고 호기심이 동한 상관의 엉뚱한 성격. 그리하여 찾아 올 어떤 결론은..


“대륙 최고였다라.. 어쩐지 궁금해지는군. 어떤가, 내가 오늘 자네와 동행을 해도 괜찮은가?”


팔레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잠시 후회했다. 무엇보다 걱정인 건, 그에게 미처 다 말하지 못 한 어떤 비밀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와 말하기도 뭣 한 것이어서 그는 빙 둘러 다른 핑계를 찾았지만.. 아마 별 소용은 없을 것이다.


“장군님의 결정에 제 의사 따위는 중요치 않으나, 가는 길이 꽤나 험하기 때문에 고생을 감수 하셔야 할 겁니다.”




두 필의 말은 도시를 떠나 인가가 드문 한적한 소로를 지나쳐, 이제 거친 나무들이 하늘마저 가려버린 대자연의 산골을 달리고 있다. 깊은 산속의 세상은 생각처럼 적막하지 않다. 거칠게 패인 계곡을 따라 굽이쳐 달라가는 물길의 내음. 수많은 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 그 안을 살아가는 세어 보기도 힘들만큼 많은 동물들이 모아내는 목소리들은, 바람이 흔들어대는 나뭇잎의 유영에 조우하여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험한 길이라 속도를 내고 있지 않음에도, 그들은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며 달려와 목적지 앞에 당도했다.


말에서 내려 팔레인의 안내를 ᄄᆞ라 걸음을 옮겨가는 론가르트의 호기심은, 종종 보이는 몬스터들을 지나 어느 동굴 앞에 이르러 섰을 때엔 한계에 이르렀다. 그는 팔레인이 말하는 친구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과 환상에 완전히 사로잡혀버렸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일종의 로망일터이다.


‘은둔한 대마법사와의 조우’ 론가르트는 흥분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런 상상을 하고 있음을 팔레인이 알아챘다면 아마 무척이나 곤란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은 그의 상상과는 아주 먼 곳에 있기 때문이다.


둘은 팔레인을 알아보는 몇몇의 몬스터들을 뒤로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밖엔 제법 많은 수의 몬스터가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저쪽의 벽에 ‘팔레인이 대륙 최고의 마법사이자 나의 벗, 카르델에게’라는 자수가 새겨진 마법사의 지팡이가 걸려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관 하나와, 두툼한 노트 한 권. 그리고 마법도구로 보이는 닳고 낡은 수정구슬 하나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동굴의 입구에서 동굴과 마법사라고 하는 어떤 연관. 던전을 상상했던 론가르트는 다소 실망을 했지만, 그건 지금 그가 품고 있는 흥분을 조금도 갉아 내리지 못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지팡이의 자수를 확인한 론가르트는 희미한 미소를 팔레인에게 지어 보이며 관 위의 노트를 집어 들었다. 팔레인이 눈빛을 머금어 주는 것으로 그의 허락을 구한 론가르는 노트를 펼쳐 보았다.


어느 대 마법사의 일기를.



세상은 아직 밝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아직 머무러있어야 하는 이유다. 이곳은 어둠이자 내가 있어야 할 곳이지만, 나와 우리는 늘 동굴 밖 저 빛을 동경한다. 그건 아마도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고자 하면 못 할 것은 업지만, 우리에겐 신체조건상 금지 된 곳, 태양이 아직 머무르고 있는 세상에 대한 본능과도 같은 열망일거라 생각 해 본다.


연약한 파란색의 피부 탓에 태양이 작렬 하는 낮에는 활동을 할 수 없어, 짧디 짧은 생애를 다시 이등분으로 토막 내어 살아가야하는 나는..


고블린이다.


고브린은 지능이 높고 피부가 주는 제한을 제외하면 체력적으로도 매우 뛰어나다. 수없이 많은 종족 중에 세상의 모든 생명을 관장하는 드래곤을 제외하면, 영토를 구분해가며 큰 벙성을 누리고 있는 인간보다도 우수할 것이다. 그런 우리가 다른 힘 있는 종족처럼 세를 키우고 번영을 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수명이다. 고블린은 태양력으로 대략 12~14년 정도를 살기 때문에, 몇 십 년에서 몇 백 년이나 살 수 있는 다른 종족의 무리처럼 어떤 분야에서 대성을 이루려 노력하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은 안락하고 평온하기만을 바라는 우리에겐, 어떤 일이든 고민을 하거나 시간을 투자 하는 일은 애초에 염두에도 없다. 그것이 우리 고블린의 본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색과 철학을 즐길 정도로 지혜로우면서도 번영을 누리지 못함을 한탄하지 않는다. 또한 자아, 나아가 동료의 죽음에도 매우 초연하다.


나도 그런 고블린이었다. 굳이 저 밖의 빛에 대한 동경을 이루어보려 꿈꾸지 않았을 것이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서의 빈둥거림을 즐겼을 나의 삶에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날의 감격이 없었다면 말이다.


그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저녁에 전갈이 왔다. 상단으로 보이는 인간무리가 재화를 실은 마차를 이끌고 우리의 주거지인 말토란 산맥을 넘고 있다는 정보를 받은 우리는 무리의 대장격인 홉고블린의 지시를 따라 인간을 노략하러 떠났다.


원래 본연의 인간은 고블린보다 전투적 능력이 낮다. 그런 능력을 쌓아올린 인간이 아니라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산맥을 넘으려는 인간을 급습하여 그들의 재화를 약탈하고 그것을 인간들과의 교류가 있는 오크나, 엘프 상인에게 팔기도 한다. 또한 무기류나 식료품은 그대로 우리가 사용한다. 인간의 무기는 그런 것을 만드는 능력의 극대화를 이룬 자들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뭉둥이 따위의 고브린 무기보다 월등히 우월하다. 또한 가끔 낮에 활동을 해야 할 불편한 일이 생길 때를 위해 우리보다 몸집이 더 큰 인간마저 온 몸을 휘감아 주는 로브는 매우 유용한 아이템이기에, 무기와 로브는 인간의 물건 중에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것들이지만, 우리의 대상은 주로 무기를 지니지 않거나 경호가 약해 보이는 무리가 주류이다 보니, 물건의 상당수는 우리에겐 별 쓸모도 없을뿐더러 가치의 이해도 불가능한 보석이나 각종 장식품 따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건지는 날은 흔치는 않다.


그날의 노략질은 아직 어렸던 나로썬 생애의 첫 경험이었다. 생각보다 상단의 규모가 컸기에 우리는 오크들에게 구원병을 지원받아 일종의 연합전선을 폈다. 급습은 손쉽게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런 이유로 오크들에게 많은 양의 전리품을 양보행했다. 하지만 워낙에 많은 양을 노획한대다 기본적으로 오크는 보화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선호품-앞서 얘기한 무기류. 보석 등 장신구와 귀금속을 제외한-들은 상당수가 고스란히 남겨져 우리의 몫이 되었다.


아마도 그날이 가족구성원이 한 부족을 이루어 사는 고블린들의 부족이 생긴 역사이래로 가장 큰 풍요를 이룬 부족이 탄생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은 무리의 모두가 술을 마시며 파티를 열었고, 호기심이 많았던 나와 또래의 친구들은 검이나 활 따위를 챙겨들곤 당시 무리에서 가장 강했던 미를란 아저씨를 흉내 내어 휘둘러보며 날이 샐 때까지 여흥을 즐겼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그날의 무용을 꿈에서도 즐기며 유희와 쾌락에의 가치추구가 본능적 삶의 지향인 고블린으로써의 최고의 날을 보냈다.


사건은 그렇게 벌어졌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전장이 되어있었다. 강력해 보이는 인간의 군대가 일사불란한 진세를 이루고 오크 및 우리부족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인간군 제일 앞줄엔 말로만 들어 본, 전투기술의 발로를 극한까지 이루었다고 하는 기사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그 기세와 뿜어져 나오는 투기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두 진세가 크게 부딪힐 것 같은 긴장은 한참이나 흘러가고 있었다. 폭발할 듯 요동치는 대기. 나는 아마 그때 희열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거의 일천에 가까운 무리가 서로 살육을 위해 행하는 육박전. 가슴 뛰는 상상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크는 인간을 위협할 정도로 강하며 인간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라도 꽤나 엄청난 무리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들조차 인간과 전면전쟁을 해본 경험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전투를 몰랐다. 누구 하나라도 그것을 알았다면 나의 인생은 거기서 끝났을 것이다.


난 흥분을 감추지 못 한 채로 진영에 합류하기 위해 산비탈을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 내 시선에 인간군의 진세가 얼핏 보였는데 그 모습이 흡사 방패를 연상케 함을 느꼈다. 기사들이 만들어 놓은 그 반월형의 진형 뒤쪽, 방패에 보호되고 있는 가장 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그는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내 뱉으며 들고 있던 지팡이를 찌르듯이 허공에 쏘아 낸 순간 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의 지팡이 앞으로, 말로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빛 무리가 맺어졌고, 그는 전장을 찢어 낼 듯 소릴 질렀다.


[라이트닝 스톰]


그 후의 광경은 이해할 수 없는 참상이었다. 막 돌격을 시작하려던 우리 진영 앞쪽으로부터 반경 50리핏(25미터)에 걸쳐 엄청난 섬광과 뇌락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뇌전의 소용돌이가 허공위로 흩어져 날아갔을 땐 우리군의 선봉대는 괴멸 되었으며, 남겨진 우리 모두는 전의를 상실했다. 사실상의 전멸을 당한 것이다.


단 하나의 존재가 가진 힘이, 600에 이르는 수의 힘을, 단 일격으로 퇴각 시킨 것이다.


그날 이루로 난 고블린의 삶을 버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마법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버렸다. 내게 그것은 순수한 황홀이자 견딜 수 없는 미지의 유혹이었으며 동굴 밖의 밝음이었다.


내게 마법의 시작은 인간이었기에. 난 무작정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생각했으며, 그들을 연구했다. 하지만 인간을 생각한다고 해서 마법을 알게 될 리는 없었다. 고블린 중에 마법사가 있었던 적도 없을뿐더러, 마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고블린 역시 전무했다. 그것이 내가 딛고 일어서야했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아무도 없었다는 것. 아무도 그런 걸 해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 무엇보다 나 역시 고블린이기에 뼛속까지 심어진 본성을 제어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생전 처음 가져 본 열의라는 이름의 희열. 그 상상만 잊는다면 나도 그저 그들과 같은 고블린으로 무리 없는, 아니 원래의 내가 추구해야 할 행복을 누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상의 끝에 선 내 모습은 쉽사리 포기 할 수 없는 환상이자 미지였다. 생각해보면 난 나다. 어째서 같은 고블린이라고 삶의 행태,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이 모두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난 더 이상 무리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로브를 깊게 눌러 입고 난 인간의 세상을 기웃거렸다. 마법 관련 서적이나 잡다한 마법 도구들을 구했지만 난 결정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마법에 대해 티끌만큼의 정보조차 들어 볼 수 없었다. 같은 마을을 3년이나 드나들었지만, 난 여전히 그들에게 고블린이었다. 인간들 누구도 날 카르델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바라본 인간들에겐 특이하고도 괴상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무든지 구분을 하고, 차이를 만들어 나누며, 그것을 틀에 가둬둔다. 예전에 이웃해 지내던 세키아는 오크이다. 그러나 그는 내게 그저 세키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에겐 A도 오크이며, B도 오크이다. 그가 아담스라던지 발란임은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개체를 종족으로만 구분하는 건 인간뿐일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그 종족의 차이마저도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종족을 몬스터라는 합리적인 이름을 붙여 또 다시 인간과 구분한다.아마도 그건 인간은 우월감을 갖는 걸 좋아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그들끼리 정해 놓은 어떤 기준점에서 도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래서 그들은 소속되려 하고, 집단으로 묶이려한다. 같은 인간끼리도 자신의 소속과 다른 사람의 소속. 귀족으로, 평민으로.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으로. 성공한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분한다. 그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같은 마을에 살면서 그 이름조차도 고려사항이 아닌 때도 있다.


아이러니한건 그렇게 다르다고 구분 짓길 좋아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들의 구분 된 선 안쪽으로의 소속. 그것을 향해 그들은 취향도, 개인차도, 고브린에게마저 있는 본성에 ᅟᅵᆸ각한 행위마저도 제어하며 살아간다. 무리 없이 당연하게..


그런 면에서 팔레인은 정말 독특한 녀석이다.


로브로 휘감고 있다고 해도 역시 낮 시간의 활동은 힘들다. 그저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것뿐. 그것만으로 됐다. 지금의 난 아직 마법으로의 입문조차 못하고 있기에. 서적에 적혀있는 마나라는 것의 흐름조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한낮의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 마나라는 것을 느껴보려 노력한다. 천성이 게으름을 탓하기도 하며, 노력의 부족을 회의하기도 하며..


“우왓. 넌 뭐냐? 로브를 걸친 고블린이라니..”


훼방꾼이 나타났다. 잠시 눈을 떠본다.. 역시 인간. 난 대꾸 없이 자리를 떠난다.


“쳇. 싱거운 녀석. 야!”


뒤돌아보지 않는다.


“야! 뭐하는 녀석이야? 너 이름이 뭐야!?”


화들짝 놀랐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뒤돌아 상대를 확인했다. 역시 인간. 아니 그는 팔레인이었다.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난 실로 오랜만에 내가 되었다.


“난 카르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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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대 마법사의 일기 (1화) 20.05.02 32 1 18쪽
9 과대망상증(tv는 광고만 싣고) 20.04.30 30 1 32쪽
8 사 명 (2화-완) 20.04.29 26 1 12쪽
7 사 명 (1화) 20.04.29 29 1 17쪽
6 충동교사 (2회-완) 20.04.26 31 2 19쪽
5 충동교사 (1회) 20.04.26 33 2 16쪽
4 소 망 (당신의 날개) 20.04.24 43 2 13쪽
3 인터뷰 (2화) 20.04.22 42 2 21쪽
2 인터뷰 (1화) 20.04.22 50 2 12쪽
1 그래서 아무도 없었다. 20.04.21 96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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