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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아랑까미의 세상이야기(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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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4.21 20:02
최근연재일 :
2020.05.02 10:32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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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7
글자수 :
80,086

작성
20.04.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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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사 명 (1화)

DUMMY

혼란스럽다. 공간 속에 흐르는 감정이 여과 없이 그대로 투영되는 느낌이다. 이것이 대체...굉음과 이어지는 단말마의 비명들 고막이 터질 것 만 같다. 널 부러진 저것들은, 죽은 자와 죽어가는 사람들? 아, 아! 생의 마지막 숨을 토해내는 저 사람의 눈길이 심장에 직접 꽂히고 있는 것 같아 되레 현실감 없는 광경, 이 많은 죽음과 원망의 비명들이 정녕 현실인 것인가...아프다. 꿈이 아니다. 다시 한 번 세차게 후려쳐 보아도 여전히 돌아오는 건 얼얼한 통증 부정하고 싶다. 저 고통을, 이 볼의 감각을, 아프다.


“아, 제발 그만해 아프다고!”


지희는 자신마저 깜짝 놀랐을 정도의 엄청난 괴성을 질렀고, 그 순간 그녀의 주변 풍경이 영화의 장면 전환마냥 확 바뀌었다. 격심했던 감정은 여전히 전의 그 혼란 속에 갇혀있는 체로 눈에 보이는 이 희뿌연 풍경은 지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고, 양 눈을 비벼보고 있는 손가락 사이에 형성된 얇은 물의 막 너머로 놀란 눈을 껌뻑여 보이고 있는 그녀의 엄마가 있었다.


“아, 놀래라, 아직 안 때렸어 이것아 아니 살짝 때렸어 10분이나 깨웠는데 안 일어나니까”


아침식사를 준비 중이였는지 꽃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인 앞치마를 두른 채로 변명을 하고 있는 엄마는 얼굴에 그 앞치마의 꽃밭 같은 미소를 그려냈다. 그러고는 어딘지 정색을 하는듯한 모습 때문인지 실이 그려 논 꽃보다도 자연미가 없는 화사함을 띄우고 있는 볼 위를 개미도 못 잡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위력을 담아 휘두른 밥주걱으로 강타하며 말했다.


“겨우 이정도였다고, 그것도 딱 한 대였어 절대로 지희 네가 그렇게 서럽게 울어야 할 만큼은 아니었음을 너는 알아야만해.”


한 대라도 때렸음은 사실이고 그 때문인지 딸은 울고 있기에 어색한 미소까지 동원하며 변명을 하고 있긴 하지만, 10분이나 투자해 딸을 깨워줬다는 노고가 있기에, 엄마는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아, 아, 꿈 이었어 맞지? 꿈이지 엄마? 아직은 아무 일도 없는 거지?”


“안 좋은 꿈을 꿨나보구나, 그래, 다행히 지금이라도 네가 일어나 줘서 아무 일도 없어 오늘 시험이라고 했잖니? 늦었으니까 얼른 일어나 준비해, 어서”


문을 열고 나가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쫒고 있는 지희의 눈동자는, 완전히 깨어나진 못했는지 아직 불투명해 보였지만 그녀의 내부로부터 알 수 없는 흥분이 피어올라 서서히 얼굴 전체로 번져 가고 있었다.


“하아, 오랜만이다. 이번엔 틀림없어, 이번엔...”


지희의 이상한 넋두리를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온 엄마는 딸이 일어나마마자 대뜸 눈물부터 보인 이유가 꿈 때문이었음에 안도했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저 딸을 무사히 깨웠다는 사실에 만족하여 서둘러 주방으로 돌아와 밥그릇에 밥을 담아내며 아주 일상적인 모습으로 주방 한쪽에 놓여있는 TV를 들여다봤고, 잠시 후 엄마의 만족감은 끝을 알 수 없는 허무함으로 돌변했다.


[일일 드라마 ‘청춘의 봄’ 내일 이 시간에......]


“으윽, 으, 빨리 내려와 밥 먹어 이 기집 애야”






“그러니까 오늘 지각한 이유라는 것이 또 그 발작 증세인거야? 제발 참아줘, 그거 다 개꿈이라니까, 10년을 그랬으면 이젠 인정 좀해라”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소꿉친구의 몽상에 이젠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떨 군 승호는, 나란히 걷고 있던 박자를 깨고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아갔고 그런 승호에게 답답하긴 하지만 아쉬움이 있는 지희는 서둘러 달려 나가 그의 앞에 서서 뒷걸음질을 하며 승호를 마주보았다.


“아니야, 이번엔 진짜야 틀림없어, 꿈에서 깼더니 막 울고 있더라니까, 틀림없는 예지몽이야 계시라고 계시!, 그렇게 리얼한 꿈이 개꿈일 리가 없잖아, 차라리 지금이 더 꿈 인 것 같을 정도라니까!”


“언제는 안 그랬나 뭐”


뭐가 그리 신나는지 환호성 을 지르듯이 말하는 지희를 보고 있는 승호의 머릿속에 과거 고달팠던 10년의 기억이 스쳐갔다. 처음엔 승호도 굉장히 놀랐었다. 10년 전 지희는 악몽을 꾸곤 무섭다며 학교에도 나오지 않았던 일이 있어, 걱정되어 찾아 갔던 승호에게 그 꿈을 얘기 해 준적이 있었다. 깨어났는데도 잊혀 지지가 않을 만큼 생생하다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지희가 들려준 꿈 얘긴 그야말로 꿈, 그 이상으로는 동감해 줄 수 없는 황당한 내용 이였지만, 그런 것 때문에 울먹이기까지 하는 지희의 모습이 그 시절의 승호에겐 왠지 예뻐 보여 하루 종일 곁에서 어르고, 달래어 다음날은 학교에 지희를 데리고 갈수 있었다. 그렇게 학교에 갔던 승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희가 꿈에서 봤다고 들려준 그 얘기대로, 집단 따돌림을 견디다 못한 옆 반의 그 친구는 자살을 했다는 얘길 들을 수 있었다. 덜컥 겁이 나긴 했지만 승호는 너무 신기 했었고, 이제 그 친구의 형이 학교에 찾아와 앙갚음으로 지른 불이 전교생이라고 할 만한 규모의 참사로 이어지는 일만 남았음이 기정사실처럼 생각되어 승호 또한 지희처럼 두려움에 떨었었다. 다행히도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얼굴도 몰랐던 사람의 죽음과 그의 유서가, 입고 있던 바지의 주머니에 있는 것 까지 지희는 속속들이 꿈에서 보았었기에 그 둘은 사고 자체보다도 오히려 그 꿈 때문에 충격에 휩싸인 채로 지냈었다. 12살 꼬마였던 승호와 지희에겐 그런 일련의 일들은 너무 무섭기도 했지만 그 보다 우선하여 지희가 그런 꿈을 꿨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었다.


“또 그 소리, 그래봐야 들어맞은 적은 그때 뿐 이었잖아!”


“그, 그래도 너무 실감나니까...”


말 끝에 힘을 실지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지희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희는 그 일이 있은 후로 느낌부터가 다르게 생생한 꿈을 종종 꿔왔고, 그럴 때마다, 처음엔 무섭기는 하지만 그래도 신기했기에, 그러다는 책에서나 보던 어떤 고대의 예언자가 된 듯한 얘들 장난 같은 사명감에 젖어, 마치 TV만화의 주인공들이 하는 모험을 하는 냥, 둘은 늘 그 꿈의 장소를 찾아 가곤 했었다. 그러나 꿈이 조금이나마 실현 된 것은 처음의 한번뿐, 예지의 능력을 가진 소녀를 향한 기대와 두근거림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점점 신빙성이 떨어져, 점차 흥미를 잃어버린 승호는, 그때마다 늘 지희의 갖은 수를 다 동원해 대는 부탁에 못 이겨 그 장소로 끌려 다니기만 해왔고, 그런 승호에겐 처음의 그 신기했던 꿈마저 생각해 보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보는 ‘그럴듯한 개꿈’이 되어버렸다. 10년이나 지나서도 여태 그 우쭐함에서 헤어 나오지는 못할망정, 이제는 번번이 빗겨가는 꿈이 예지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자칭 ‘선택 받은 자’ 지희의 저 해괴한 흥분은 승호에겐 이제는 반드시 꺾어 줘야할 망상이 되어있었다. 특히 오늘은, 지희에게 설득되는 순간 명동까지 끌려가야만 한다. 사람 많은 곳은 딱 질색인 승호는 어떻게 해서든 오늘 만은 절대 질수 없었기에 다소 쌀쌀 맛은 감은 있지만 단호해야 했고, 그래서 이제 시작 되려는 한판 승부에 임함에 있어 초연한 결의마저 하고 있는 승호였다.


“언제는 안 그랬냐고! 근데? 그래서 맞은 적도 없잖아, 은행?, 참나 야, 일단 그런 은행에 일본총리가 왜? 거기 있을 리가 없잖아, 이것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아 개꿈이구나. 이렇게 생각 하는 게 정상적인 사고인거 아니냐? 왜 그래 좀 제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총을 어디서 구해서 은행 강도들이 총을 난사해 아직 안 깬 거지? 지금 은 현실이야 현실!”


현실성을 무기로 내세워 타박하고 있는 승호에 비해 허무맹랑하게 들릴 자신의 얘기를 관철시키려함에 곤란 할 수밖에 없는 지희였다. 게다가 과거 적중률 이라는 수치가 주는 참담함은, 지금 침 까지 튀겨가며 열변하고 있는 승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세부터 지고 들어 갈 수밖에 없었고, 그런 때문으로 지희의 목소리는 힘이 실리지 못 한 채 기어 들어갔다.


“하, 하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일본총리가 방한 중 인건 사실이고 총도 뭐 시대가 시대잖아 절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니까...”


“절대 아니야!”


말허리를 자르며 치고 들어오는 승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기세 등등 할 수 있었기에 친구의 한심 타령을 조롱하는 말투까지 동원하며 부정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일단 설득 되는 그 순간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은 과거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으니까


“저기요, 한지희양? 여기 한국이거든요 총이 라는게 어떻게 생겼는지는 혹시 아시나요? 그만 좀 하자 현실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가져주면 안 되겠냐?생각을 좀 해봐 그 문제의 은행에서 등장인물들이 그래 다 있다고 치고 그래서 정말 그 오발탄에 일본총리가 네 꿈에서 마냥 그렇게 죽는다. 라고 해도 그게 왜 전쟁의 발단이 돼? 이상하지? 말도 안 되잖아!! 10년이다 10년 네가 꾸는 꿈은 늘 이랬잖아 무슨 취객이 음주운전으로 광장을 누비고 여러 사람이 그 차에 치어 죽는데 그중에 무슨 미국영사였나? 그래, 그래서 그 추운 겨울에 차가 아니라 우리가 누비고 다녔지 그 광장을, 그랬어도 나는 소꿉친구의 의리로 다 참아 줘왔다 응 이젠 그만 할 때도 됐잖아 이런 내가 불쌍하지는 않냐? 그런 꿈은 안 꿔?”


승호는 마무리를 짓기 전에 잠시 상대를 살펴보며 상황을 체크했고. 패색이 짙게 물들어 있는 지희를 바라보곤 이번만은 승리를 확신했다. 그래도 미안하긴 했었는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그녀를 보자니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적당한 말로 달래주는 것으로 자신의 평온할 하루를 지켜내려고 하는 마음에, 승호는 목소리 톤을 조금 누그러뜨리며 말을 이어갔다.


“안 그래, 그럼 그런 일 없어 영화보다도 설득력이 없다고 아직도 네가 운명의 아이 이니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 거면 참 아니다 그거, 현실! 이걸 생각해야지 명동이면 한 시간은 걸릴 거리라는 현실, 어때 엄청나게 귀찮을 것 같지 않냐? 어차피 가보면 개꿈 일 텐데 말야, 늘 그랬잖아 오늘도 그냥 늘 있던 그런 것들 중 하나일 뿐이야 차라리 그 한 시간을 피부 관리 같은 것에 투자해, 너의 그 귀여운......”


승호는 커다란 실수를 했음을 깨달고는 얼른 말을 멈추며 제발 상대가 이 실수를 놓쳤기를 바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희를 살폈으나, 그 즉시 이미 늦어 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서 보이는 그녀의 베베 꼬이고 있는 몸, 햇살 보다 따스할 저 해맑은 미소 위를 구르고 있는 갈구하는 눈동자, 과거 10년간 언제나 승호를 굴복 시켜온 궁극의 무예가 지희의 몸을 통해 시전 되고 있었다.


‘아, 안 돼 젠장’


“승 호 야, 아잉 그래도 한번 가보기는 하자, 응? 아이잉”


“안 돼, 이번엔 절대로 안 돼!”


한 없이 푸른 5월의 하늘이 그 아래를 점점이 지나가는 두 사람의 머릿결에 실어 싱그러운 오후의 햇살을 흩뿌려 주었다. 그 한쪽은 끝없을 원망을 보내고 있는 걸 모르는지, 상쾌하도록 시원한 바람까지 곁들인 초여름의 하늘은 그렇게, 맑음


“아이이잉”


“아! 하늘이시여 어쩌자고 제게 세일러문을 소꿉친구로 주셨나이까, 어찌하라고!”






대로변의 한쪽으로 이어진 골목이긴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서 모퉁이를 돌아서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후미져있는, 그런 골목길 어귀에 세 대의 오토바이가 서서히 진입해 들어와 멈춰 섰고, 똑같이 생긴 기타케이스를 등에 메고 있는 세 명의 남자들이 그 오토바이에서 내려 한 곳으로 모이고 있었다.


“좋아, 작전을 한번 더 지시해줘 제임스”


제임스라 불린 남자가 팀의 리더인 듯 나머지 두 사람은 제임스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고, 눈길이 모아진 그의 얼굴이 피식하고 의미 없는 웃음을 지었다.


“고국에 돌아 왔으니 영문 이름은 관두지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내 이름은 정훈이야 뭐 그건 됐고, 이건 작전을 다시 상기해볼 필요조차 없이 간단한 일이야, 저 앞의 모퉁이를 돌아 서면 직선거리에 바로 은행의 입구가 있다. 미국에서 한번 해 봤으니 다들 알고 있겠지? 다른 자 들이 은행을 상대로 실패를 하는 이유는 장내진압에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이야 이게 포인트임을 명심해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일단 발포한다. 위협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맞춰야해 몇 명쯤 죽여야 하는 거야, 이것만 제대로 지키면 금고는 저절로 열리게 되어있어 들고만 나오면 되는 거라고”


정훈의 지시를 듣고 있던 한쪽의 남자가 담배를 꺼내 물곤,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려 주며 정훈을 향해 말했다.


“그래 해 봤던 거니까 어렵지는 않은데, 이 총은 뭐야 모양이 좀 이상한데? 이거 어디서 쏴 보지도 못했잖아, 성능은 문제 없는 거겠지?


“성능은 걱정 마 이 천재께서 직접 조립한 거니까, 지금 21세기에 총기밀매 정도의 루트가 없는 곳은 없어 다만 한국은 그런 일이 많지가 않은 곳이니까 추적도 한정되지 그래서 추적이 되지 않게끔 여기저기를 통해 부품만을 모아서 내가 조립 한 거야”


“좋았어, 그럼 출금하러 가볼까”


앞장서서 걸어 나가고 있는 정훈은 머리위로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보이는 제스처로 동료들에게 성공을 약속했다. 그렇게 이제 달려 나가려는 정훈을 등 뒤의 동료가 어깨를 붙잡아 저지했고, 돌아선 정훈의 시선에 붙잡힌, 동료의 얼굴엔 약간의 불신이 서려있었다.


“저번 같은 어처구니없는 짓은 없는 거겠지 제임스, 아니 정훈?


어떤 다짐을 듣고 싶어 하는 동료의 물음에 크게 상한 기분이 그대로 드러난 정훈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지만 큰일을 앞두고 다툴 때가 아니란 것을 의식했는지, 그는 다시 평상심을 찾으려 노력했고, 그래서 그려진 그 얼굴의 미소는 되레 억지스러워 보여 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말투에까지 번지게 했다.


“흐핫, 칼 너 말이야, 지난번 보석 전시회 때는 사전 준비에 신중을 기하느라 몸이 지쳤던 것뿐이라고 말했잖아 지금은 컨디션도 좋아,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잘해”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자, 그럼 불상사가 있어서 늦어버린 우리의 귀국 인사를 하러가자”


“멍청이, 겨우 2~3년 유학한 주재에, 귀국 인사는 나 정도가 하는 거라고, 레벨이 달라 그러니까 그때 한번 실수 한 것 가지고 계속 꼬투리 잡지 말라고”


“푸하, 좋아 사과하지 자! 가자 GO, GO, GO”


이미 세 명의 마음속은 일을 끝낸 뒤의 여흥에 빠져 들었다. 그들에게 은행털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모퉁이를 돌아 달려 나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소풍을 떠나고 있는 초등학생의 그것 보다 더 경쾌했다. 어떤 죄의식도 느껴짐 없이 그저 좀 실감나는 게임을 한판 한다는 기분으로 달려 나가던 칼은 뒤로 둘러메고 있던 기타케이스를 풀어내려 안에 들어있는 총을 꺼내려하던 그 찰나, 앞서 달려 나가던 정훈이 돌연 멈춰 서선 의구심을 가득 담아 터질듯이 커져버린 눈동자로 뒤를 돌아보았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칼과 동료는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멈출 수밖에 없는 일이 또 다시 벌어지고 말았다. 이건 이미 지난번 보석 전시회장을 급습하려 했을 때도 한번 본 광경이지만 도저히 납득해 줄 수 없는, 믿어지질 않는 모습이었다. 얼이 다 빠져 버렸다는 듯 허망해 보이는 칼의 동공 속엔 풀썩 무릎이 꺾이며 무너져 내리고 있는 정훈이 담겨 있었다. 들이 닥치기만 하면 되는 그 중요한 시점에서 정훈은 다시, 또 다시 기절을 해 버린 것이었다. 모든 계획과 작전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줬어야만 하는 향락의 시간과 쾌락, 그 모든 것이 저지되었다. 그리고 그 작전실패라는 치욕의 이유가 두 번이나 어이없는 사건 이 되어 버린 것 때문에, 남겨진 둘의 공허함은 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뭐냐 응? 말 좀 해봐!! 기절 하는 것도 무슨 병이냐? 왜 , 하필 왜 이런 때에만 기절을 하는 거야 그렇게 새 가슴이었냐? 앙!!”


“칼, 이 병신아, 너 까지 왜 그래 지금 우리는 불법무기 소지자 라는거 몰라? 소리를 왜 질러 빨리 제임스나 챙겨, 철수다. 제기랄”


울분을 토하면서도 둘의 철수는 신속할 수 있었고, 길을 되짚어 다시 오토바이로 돌아와 시동을 걸어 출발을 하자, 그 둘의 참담함을 알아주는 것인지 괴성을 방불케 하는 효과음을 오토바이가 대신 토해주었다.


“mother fu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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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느 대 마법사의 일기 (1화) 20.05.02 31 1 18쪽
9 과대망상증(tv는 광고만 싣고) 20.04.30 30 1 32쪽
8 사 명 (2화-완) 20.04.29 2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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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충동교사 (2회-완) 20.04.26 31 2 19쪽
5 충동교사 (1회) 20.04.26 33 2 16쪽
4 소 망 (당신의 날개) 20.04.24 4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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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터뷰 (1화) 20.04.22 5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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