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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의 서재

아랑까미의 세상이야기(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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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4.21 20:02
최근연재일 :
2020.05.02 10:32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13
추천수 :
17
글자수 :
80,086

작성
20.04.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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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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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충동교사 (1회)

DUMMY

그녀는 표정이 없었다. 약간 꺾여 내려간 고개, 초점 없이 머문 시선을 공허하게 두고 그저 의자에 걸쳐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카메라 포커스가 자신의 얼굴을 클로즈업 할 때면 입 꼬리를 잘근 씹어내며 노골적인 무료함을 표출했다. 나경민 피디는 모니터화면을 잠시 응시했다.

무미건조한 시간이 정지화면보다 더 지루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그는 답답했는지 쯥쯥거리며 입맛을 다시고는 ‘컷 싸인’을 내려는데 그때 해인과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는 민찬욱 변호사가 드디어 대사를 하려는 듯 입을 오물조물거리며 간신히 첫 운을 땠다.


“어, 그래 해인아. 잠을 잘 못 잤니? 얼굴이 좀 어둡네?”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는 민변호사의 부자연스런 모습에 나 피디의 입에선 한숨 같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분명 대박을 칠 기획임을 나 피디는 확신하고 있었지만, 지금 카메라에 담기고 있는 영상은, 두 인물의 배경으로 잡히고 있는 교도소의 회색 벽면보다도 감흥이 없었다. 현장의 모든 카메라는 대사를 웅얼거리고 있는 민 변호사를 향해 있었다.


포커스가 집중되자 그의 등줄기는 조명의 열기까지 더해져 축축해졌다. 그는 집중하려 애썼다. 잘해내야 함을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다. 그런 그를 응시하고 있는 나 피디의 눈빛엔 불만이 가득했다. 평생 방송계통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사람임을 감안한다 해도 민 변호사의 모습은 부자연스러움을 넘어 부조리함마저 느끼게 했다. 나 피디는 아예 손을 쑤셔 넣어 속을 박박 긁어내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지만 문제는 민 변호사를 배제하고서는 기획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나 피디가 끌어안고 나가야 할 골칫거리였다. 짜증 섞인 눈매에 잔뜩 힘이 쏠리며 이리저리 구겨졌다. 나 피디는 일단 촬영을 끊고 건조해져 있는 현장 분위기를 다독여야겠다고 생각하며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두 사람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때까지도 웅얼거리며 대사를 이어가던 민 변호사가 어머니가 걱정 많이 하신다는 말을 해인에게 전했다. 나 피디는 재빨리 카메라 감독에게 손짓을 했고 카메라 한 대가 곧장 해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나 피디도 황급히 모니터를 응시했다. 촬영 내내 아무 표정 없던 해인의 미간이 잠깐 꿈틀거리며 시선에 초점이 잡혔다. 그녀는 민 변호사의 말에 짜증을 낸 것 같았다. 어쨌든 잠깐이지만 해인의 얼굴에서 쓸 만한 표정이 잡혔다. 나 피디는 소곤거리듯이 작가를 불렀다.


“여기 들어갈 자막 하나 떠 봐. 어머니 뭐 이런 거 있잖아. 알죠?”


해인을 보고 있는 나 피디의 눈에 약간의 생기가 어렸다. 잠깐 동안 그녀의 얼굴에 잡힌 주름을 곱씹어 떠올렸다. 어머니란 언급에 솟구친 세상 모든 자식들의 심경으로 그려내도 좋을 것 같았다. 나 피디는 이 정적이고 건조한 화면 속 그녀의 앳된 얼굴에 비친 근심을 푸른색 죄수복과 가슴에 붙은 수인번호로 부각시켜 억압의 낙인 같은 어떤 상징적 의미가 부여되도록 편집하면 그런대로 쓸 만한 장면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적당히 예뻤다. 바로 그 점이 나 피디가 가진 무기에 권능을 부여했다. 그것은 분명 프로그램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할 것이었다. 현장은 여전히 건조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 생동감이 어려 있었다.


한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살인범인 그녀는 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스무 살의 숙녀였다. 그런 그녀는 적당히 동정심도 불러일으키는 인상과 ‘요즘 애들’이라는 말로 표현 되는 그 철없고 개념 없어 보이는 이미지를 동시에 가졌다. 거기에 합격선을 훌쩍 상회하는 미모라는 덤까지, 제법 괜찮은 ‘캐릭터’였다. 조금 흡족한 기분이 들었는지 나 피디는 미소를 머금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모습이 민 변호사의 시선에 들어왔다. 민 변호사는 자신의 우려보다는 촬영이 괜찮게 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다소 마음이 진정됐다. 그는 방송이란 것을 아예 몰랐다.


정의사회구현을 신조로 삼은 변호사로 나름 정직하게 살아왔다 자부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방송출연을 결심 한 동기는 오직 해인뿐이었다. 평생을 남으로 살아왔지만 그녀가 살인을 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아픔과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그였다. 의도야 어쨌든 그녀와 자신의 일이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는 일은 큰 도움이 될 것임이 확실했다. 그는 잘해내야만 한다고 마음속으로 계속 다짐을 하며 해인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둘이 처음 만났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인은 민변호사를 정면으로 쳐다 본 적도 없었다. 그것은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에서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부턴가 민변호사도 알게 되었다. 해인은 자신이 저지른 일임에도 그저 무관심할 뿐이었다. 그가 보기에 해인은 그저 별 생각 없이 사람을 죽였고, 별 생각 없이 갇혀있다고 생각되었다. 살인이 죄긴 하니까 죄는 진거지만 잘 못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던 그녀였다. 잘못도 안 했는데 이렇게 구속되어 있는 게 억울하진 않느냐는 민변호사의 물음에 죄를 지었으니 ‘깜빵’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며 장난치듯 반문했던 그녀였다. 민변호사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일말의 죄의식을 느꼈다. 안타깝고 쓰라렸다. 우리 스스로가 그녀와 같은 감정이 결핍된 괴물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사회가 그러한 이들의 충동을 교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변호사는 범인으로 검거된 해인을 뉴스에서 처음 본 그때부터 이 일에 매달렸다.  



개그우먼 유지선이 타살 당했다는 소식은 뉴스와 연예정보 프로그램 등에서 크게 다뤄졌었다. 그녀의 생전 모습이 연일 전파를 탔고 동료 연예인들의 애통해하는 모습이나 시민들의 성토, 그리고 조속한 범인검거와 사건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방영되며 애도의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조성됐었다. 유지선은 소위 ‘메인급’ 연예인은 아니었다. 그녀는 죽어서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다소 살집이 있던 그녀는 못 생긴 여자를 방송용 ‘캐릭터’로 삼아 주간 두 편의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었다. 방송은 같이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못 생긴 여자를 향한 ‘막말성’ 타박을 웃긴 상황으로 연출한 장면이 많았다. 체형만큼이나 씩씩한 모습을 연기했던 그녀를, 동료 연예인들이 야생 멧돼지 같아서 해치우기도 힘들다하면 원래 나 같은 여자들이 생명력이 질기다며 우람한 포즈를 취하곤 괴성을 내지르는 식이었다. 그랬던 그녀의 타살소식에 한 동안은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대해 얘길 했었다. 며칠이 더 지나자 방송에선 그녀의 생전 사생활 등을 파해 치며  살해동기 등을 유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도록 수사엔 진척이 없었고 특별히 진전된 소식도 없었다. 그녀와 아무 연관이 없는 어떤 사람이 어느 날 찾아와 그녀를 죽이고 간 것 같았다. 그게 누구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녀의 죽음은 잊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특정 예능 프로그램의 ‘컨셉’을 조악하게 모방한 동영상 하나가 ‘유투브’에 올라왔다. 동영상엔 유지선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하녀복장을 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팔과 다리에 심한 상해를 당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곁에 서서 장난스럽게 웃으며 예능프로에서 자주 보던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이따금 생긋거리는 미소가 섬뜩한 그 여성이 한참 혼자 떠들다가 대뜸 유지선을 향해 화를 내는 장면이 반복됐다. 유지선은 그때마다 늘 그녀가 방송에서 하던 "못 생겨서 그래요. 못 생겨서"라는 말을 숨이 끊어져가듯 읊조리고 있었다.


그 일은 어느 날 그냥 벌어졌다. 해인은 동영상 게제 한 시간도 안 되어 검거되었다. 그녀는 그대로 집에 있었다.


재판과정 내내 해인은 무관심한 표정이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법정이나 진을 치고 있는 취재 열기에 이따금 피식 웃어 보이는 정도가 반응의 전부였다.


사회적 관심이 컸던 만큼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녀의 악질적인 죄는 너무도 무거웠다. 그것은 추가로 밝히거나 시인할 것조차 없었다. 검사의 추궁에 그녀는 그저 고개만 까닥거렸다. 속보로 전파를 타고 나온 해인의 모습과 발언이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화면 속 그녀의 모습엔 죄인의 그것이 없었다. 본인의 동의로 그녀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 없이 방송에 나갔다.


[유지선씨와는 어떻게 접촉하신 거죠? 범행 동기는 뭡니까?!]


[고개 좀 들어 보세요!!]


해인이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자 티브이에 그녀의 얼굴생김새가 꽉 들어차 나왔다. 민 변호사는 이때 해인의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냥 방송에 나오는 자체가 싫었어요. 못 생긴 게 뭔 자랑질이라고 방송에 대고 떠드는 지. 제대로 짜증이거든요]


[예? 그, 그게 범행 동기란 말입니까? 그래서 살인을 했단 말씀이신가요?]


[원래 많아요. 게시판 둘러봐요. 원래 걔가 죽이고 싶다고 욕 좀 먹던 애에요. 방송도 보면 뭐 같이 나오는 애들도 다 그런 멘트 하잖아요. 돈 있으면 한 대 치고 싶다는 둥, 그래서 적금 넣고 있다는 둥. 맨날 하는 짓거리가 그거더만 뭐. 아 오죽하면 피디도 이 죽이고 싶은 외모라고 자막 때렸겠어요. 나만 죽이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거죠. 지도 그러더만, ‘못 생긴 저를 죽여~ 주시옵소서.’ 맞잖아요]


흥분 섞인 고성이 현장음으로 들렸다. 주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기자들의 목소리도 한껏 격앙되어 뉴스 취재의 성격이 사라졌다. 기자들은 그녀에게 따지듯이 질문했다.


[지금 한 말 진심인가요? 그저 방송용 연출인데? 출연자들이 진심으로 그런 소릴 했다고 생각합니까!]


[아, 진짜. 이미지관리 안 되게... 리얼이라잖아요! 우롱합니까? 이상한 질문 좀 하지 맙시다.]


[그, 그럼 동영상은 무슨 심정으로 올렸습니까? 본인은 죄가 없고 떳떳하다 이런 뜻입니까? 죄인 취급 받는 지금 심정이 억울한가요?]


[사람을 죽였는데 어쨌든 죄지은 건 맞고요. 뭐 내가 총대 맨 거죠. 동영상은 뭐 원래는 올리려고 찍은 건 아닌데 사람들이 하도 궁금해 하니까 혼자 보기 좀 아깝더라고요. 대박이잖아요]


현장은 조용해졌다. 고성과 울분 섞인 욕설도 사라졌다. 간간히 허탈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다 화면은 스튜디오로 넘어 왔지만 아나운서들도 잠시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민 변호사는 티브이를 껐다.


수 없이 고뇌한 민 변호사는 자신의 생각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실천해야 함이 마땅했다. 이것은 분명히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건이라고 다짐했다. 해인은 분명 죄인이었다. 그는 그녀의 구명을 호소할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사실 그동안 말 많았던 시청률만을 위한 자극적이고 막가자는 식의 방송행태에 대한 분명한 규제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거기에 방송사의 대국민 사과와 해인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지는 상징적 결론에 도달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었다.


문제는 항소를 할 만한 명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즈음 방송규제에 대한 공론이 서서히 일어났다. 민 변호사와 같은 생각들이 칼럼이나 인터넷 등에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티브이 토론 프로그램에서 몇 차례 이와 관련 된 토론이 벌어졌다. 한쪽에선 방송규제에 대한 필요성을 열변했고 그와 반대로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규제와 심의는 방송의 질적 향상과 다양성을 저해할 요지가 있다는 의견이 대립각을 세웠다.


민 변호사는 해인을 만나기로 했다. 처음 대면한 해인은 방송에서 봤던 시건방진 모습은 없었다. 그녀는 뭔가가 꺾여 있는 느낌이었다. 민변호사는 사실은 그녀 또한 피해자라는 일말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더불어 자신이 또 한명의 가해자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말이 없어진 시무룩한 표정의 그녀에게 측은함을 느꼈다. 안쓰럽고 딱했다. 그녀의 삐뚤어진 인식과 사고방식을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 그녀의 얼굴에 그려질 그 또래의 함박웃음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그가 해인과 만남을 이어가며 항소 준비에 여념이 없던 그 즈음엔 티브이에서 잠시 벌어지던 열띤 토론의 분위기는 점차 사그라졌다. 시청률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방송행태와 그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공감하는 부분이긴 했지만 문제는 해인 그 자체였다. 그녀는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미친년으로 낙인찍혀 있기 때문이었다. 티브이 토론에서 그녀의 입장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인상을 주거나 그녀가 저지른 죄의 책임이 온전히 해인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냐며 문제시 한 패널은 곧장 네티즌의 뭇매를 맞았다. 인터넷이 가장 달아올랐고 의식 있는 소리, 의식 없는 소리들로 난장판이 되었다. 잘못되어가는 사회인식과 그것을 조장하는 방송행태의 문제를 논했던 토론은, 늘 때려죽여야할 미친년으로 귀결되었다. 정신병자 한 명을 위한 규제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반론은 명료했다. 더 이상의 토론은 무색해졌고 인터넷 세상에서의 동문서답, 악질적인 장난만이 지속적으로 뜨거워져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마저 시들해졌다. 해인은 잊혀져갔다.


민 변호사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녀 스스로의 의지와 인식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민 변호사가 하는 모든 말에 무관심했다. 그녀를 알아 갈수록 민 변호사의 확신은 점점 회의적이 되어갔다. 어쩌다 그녀가 민 변호사에게 하는 말이라곤 대게가 반창투정이었다. 밥이 거지같아서 못 먹겠다는 투정을 한참 하다가 민 변호사의 호응이 없으면 이내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녀의 적어진 말수와 굳어져가는 무표정은 그저 갇혀있다는 지루함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어느 날에 그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후회한다고 말했었다. 그 순간에 민 변호사는 가슴이 울컥했었다.


“이 따위로 갑갑할지 내가 알았나. 아저씨 감빵 안 들어와 봤죠? 아니 이런대서 어떻게 잠을 자라는 거야. 진짜 문제라니까. 도대체 세금을 어따 쓰는 건지... 에휴, 내가 미친년이지 동영상은 왜 올려가지고. 아, 미친년”


소름이 돋았다. 무섭도록 대책 없는 이 철없음에 아연했다. 이 허무하기까지 한 이기심과 삐뚤어진 인간관계가 과연 누구 때문에 형성되었으며 그 사회와 환경을 무엇이 조장하고 있느냐고, 그녀를 벼랑 끝에 내몰고 있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대변할 용기가 사라졌다.


그는 그럴 때마다 무진한 애를 썼다. 처음 해인이의 사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를 잊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한날은 술 취한 밤 그 어느 거리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저들 세상인 냥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저들이 해인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저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일까. 그 무리 속으로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그녀가 겹쳐 보였다. 그들의 무게는 깃털만큼 가볍게 느껴졌다. 그 거리, 아무데서나 보이는 젊은이들 모두가 그래보였다. 삶, 그 자체를 그저 가십거리 마냥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먹이 부서지도록 움켜쥐었다. 스스로 옳아야만 한다고 다짐 할수록 그는 더욱 필사적이 되어갔다.


사무실보다 교도소로 출근하는 날이 더 많아졌지만 돌아오는 길엔 덧없이 무기력해졌다. 매일 아침에 해인을 생각하며 결의를 다졌지만, 그 밤마다 그녀를 생각하며 의욕이 꺾였다. 그를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고뇌와 다짐에, 정작 당사자가 일말의 감정도 보여주지 않음이 미웠다. 그녀가 무서웠다. 집 앞 포장마차에 들리는 일이 잦아졌다. 민 변호사는 거기서 그를 만나게 됐다. 그냥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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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 망 (당신의 날개) 20.04.24 43 2 13쪽
3 인터뷰 (2화) 20.04.22 42 2 21쪽
2 인터뷰 (1화) 20.04.22 50 2 12쪽
1 그래서 아무도 없었다. 20.04.21 96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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