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폐관수련 (閉關修鍊)
라킨족의 기권으로 행성전은 싱겁게 끝난듯했지만, 며칠간의 싸움에서 발생한 사상자가 엄청나게 발생하였다.
장례식장과 화장터는 대기열이 끝없이 밀려있었고 대형병원, 소형병원 할 것 없이 병원이란 간판이 보이는 건물에는 연일 부상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믿음병원 응급의학과 과장 나허준은 사고가 터진 후로 집은커녕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얼굴에는 수염이 새까맣게 자라나 있었고 피로가 덕지덕지 붙은 상태였다.
그런 그의 상태를 모르는지 병원 방송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그를 호출하는 방송이 나왔고 나허준은 지금 병원 11층 VIP실로 호출을 받고 가는 중이었다.
병실 앞에 도착한 허준의 귀를 때리는듯한 고함이 병실 안에서 들려 오고 있었고 가볍게 노크를 한 그가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치 못한 욕설이 날아들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본 허준의 눈에 머리를 조아린 채 빌고 있는 병원장과 한쪽에서 눈물을 훔치는 간호사들이 보였다.
상황을 파악해보는 허준에게 다시 욕설을 날리는 환자였다.
“내가 오라고 한지가 언젠데 이제 나타나? 미쳤어? 이사장 아들이 우습다 이거지?”
‘아! 이사장에게 개 아들이 하나 있다는 게 저건가 보구나’
상황파악이 끝난 허준이 애써 웃으며 대답을 하였다.
“죄송합니다. 응급환자들이 많아 조금 늦었습니다.”
“아···. 응급환자가 많으셨어요? 나는 전혀 응급하지 않은가 보네요?”
이사장 아들의 비꼬는 말투에 쓱 하고 상태를 본 허준은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그가 보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붕대를 푼 허준은 이미 깔끔하게 처치된 상처 부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상태는 그리 심각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꾸준히 소독약과 피부재생 연고만 발라주셔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장 아들은 원장도 자신 앞에서 고개 숙이고 비는 상황에 고개 뻣뻣하게 들고 자신이 할 말을 하는 허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환자가 아파 죽겠다는데···. 뭐? 집에 가서 연고나 발라라?”
“환자분의 상처는 그 정도로 가벼운 상처임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야 이 새끼야 너 병원 잘리고 싶어? 내가 누군지 몰라?”
잠도 못 자 피곤한 허준의 스트레스가 한계에 달할 즈음 그의 머릿속에 울리는 음성이 있었다.
[반갑습니다.나허준 용사님 오늘부터 용사님을 서포트할 용사 시스템입니다]
[용사님의 클래스는 성기사입니다]
[빠른 이해를 위하여 기본정보들은 용사님의 뇌 속으로 바로 각인시켜드리겠습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 멍하니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허준에게 이미 열이 받을 대로 받은 이사장 아들은 다시 소리쳤다.
“넌 오늘부로 해고다. 내가 너 다시는 의사 짓 못 하게 만들 거야 알겠어? 이 잘난 의사 노릇이라도 안 하면 네가 뭐할 건데? 아니면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 보던가? 크크큭”
그런데 천천히 자신이 입고 있던 의사 가운을 이사장 아들에게 집어 던지며 허준이 말했다.
"너 미쳤어? 정말 의사생활 때려 치우고 싶어?"
“응, 안 해 이 X 씨 X 새 X야······. 의사 하지 않으면 뭐할 거냐고?”
“형 오늘부터 성기사란다. 이 뷰웅시나”
인류의 성자라고 불릴 성기사 나허준이 시원한 욕설과 함께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한창 나허준이 진상과 입씨름을 할 때 강하진도 믿음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병실 문을 열자 장문수가 그를 반겨주었다.
하진의 권유에 따라 수성시에서 이곳으로 딸의 병원을 옮긴 장문수는 자신과 딸이 병원을 옮긴 다음 날 라킨족의 습격으로 병원에서 있던 사람들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고맙데이···. 니 아니었으면 우리 하림이 큰일 치룰뻔 했다 아이가?”
수성시가 위험하다고는 알았지만, 병원에서 그렇게까지 사망자가 나올 줄 예상 못 한 하진은 사망자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런 하진의 마음을 아는지 장문수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괘안타 니라고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다구하겠노?”
장문수는 자신이 병원을 나설 때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하니 병원을 옮기라, 말을 했었다며 그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말했다.
자신의 말을 믿고 병원을 옮긴 사람들은 살았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자신들의 판단으로 남은 것이니 할 수 있는 도리는 한 것이라고 말이다.
장문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하진이 인벤토리에서 작은 물약을 꺼내 장문수에게 전해주었다.
“멸망 면역결핍증 아니 진짜 이름은 마력 거부증 환자들에게 특효약이에요”
다행히 라킨족들이 약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하진은 코냑에게 지시해 넉넉히 자신의 인벤토리에 담아온 것이었다.
장문수는 감격한 얼굴로 천천히 물약을 딸의 입으로 흘려 넣었다.
잠시 후.
“아빠?”
오랜만에 듣게 된 딸의 목소리에 체면이고 뭐고 딸을 끌어안은 채 대성통곡하는 장문수였고 숨이 막혀 죽겠다는 딸의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감정을 추스르는 그였다.
그리고 하진의 예상대로 라킨과의 행성전 동안 누워만 있었던 장하림은 지구의 선택을 받지 못한 듯 보였다.
하진은 여분의 치료약을 장문수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원래 마력 거부증은 용사 시스템의 혜택으로 치료할 수 있는데 하림이는 선택을 받지 못한 거 같아요.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약을 먹으면 지난번처럼 쓰러지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연신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말을 하며 약을 받아든 장문수에게 하진이 물었다.
“아저씨 전직하셨죠?”
“그게······. 전사로 되었다고 뭐라고 하는 거 같은데 내는 잘 모르겠다”
용사 시스템에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진은 장문수에게 몇 가지 팁을 전해주었고 이후 장문수는 빠르게 자신의 클래스인 전사 직군에 적응할 수 있었다.
다음 행성전까지 100일.
강하진은 고민에 빠졌다.
첫 행성전에서 주위의 모든 사람을 잃고 감정 없는 암살자로 무참히 적들을 죽이고 또 죽이던 회귀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지켜야 할 것도 신경을 써야 할 것도 많았던 것이었다.
그리고는 도달한 답은 결국 한가지였다.
‘내가 강해져야지 모두를 지킬 힘을 갖고 지구든 누구든 그 어떤 간섭도 받지 않아도 될 힘을 가지고 말 테다.’
강하진은 무협지에서 빠지지 않는 그것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집으로 돌아간 하진은 당분간 자신은 신경을 쓰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엄마에게 한 후 조용히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좌선하였다.
[폐관 수련을 실행하시겠습니까?]
“실행해줘”
[현재의 위치는 폐관 수련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엥?”
[적합한 장소를 검색하겠습니다]
하진은 시스템이 추천한 수십 개의 장소 중 한 군데를 선택하였고 다음 날 하진은 낭원도의 한 산골 마을에 도착하였다.
[벽수공을 사용합니다]
한창을 절벽을 오르던 하진의 눈에 시스템이 추천한 작은 동굴 같은 틈이 들어왔다.
[폐관수련을 하기 매우 적합한 장소를 발견하였습니다]
[폐관수련시 경험치 상승률이 2배 오릅니다]
[폐관수련 기간을 설정합니다]
“90일 정도?”
하진은 수련 후 정비할 시간을 참작해서 다음 행성 전까지 남은 기간에 90%를 수련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3개월로 기간을 설정하였습니다]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시스템의 안내음과 함께 하진은 그의 가방에 넣어온 책 한 권을 꺼내 들고는 빠르게 머릿속으로 내용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정파 무공을 섭렵한 하진의 다음 목표는 사파의 무공이었다.
정순한 내공을 바탕으로 한 마공을 익히려 한 하진은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마 신공을 터득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많이 알려진 천마군림보를 터득한 것이 유일한 성과였기에 시스템의 오류를 불러오는 천마 신공을 잠시 접어두고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 사파의 무공을 먼저 배워두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천마신공 만큼은 아니지만 사파의 무공도 그리 유명한것들은 많지 않았다.
압도적인 개인의 무력에서 나오는 강자존의 논리를 따르는 사파의 무공은 정파의 무공들처럼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남기는 것과는 달리 사파의 고수가 죽으면 무공도 소실되는 것이 많았던것이었다.
이렇듯 상승무공이 귀한 사파의 무공에서 하진이 찾아낸 꿀 같은 무공이 담겨있는 그 책의 제목은 바로.
[악수만 했는데 내공이 만렙]
흡성대공.
상대의 기력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기공계열 무공이다.
라킨족의 전투에서 자신의 마력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 아님을 깨달은 하진이었다.
5갑 자의 내공을 처음 받았을 때와는 달리 하진이 사용하는 무공들은 초절정 무인들이 사용하는 수준이 높은 것들이 많았기에 그로 인한 내력의 소비는 무척이나 빨랐다.
전투 중 운기조식을 사용하여 내력을 복구하는 것 또한 매우 위험한 행위였기에 흡성대공은 전투 중 바로바로 내력을 수급할 수 있는 좋은 무공이었다.
[흡성대공을 익힐 시 내력을 흡수한 대상의 성향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경고음에도 하진은 이 무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천천히 눈을 감고 흡성대공에 관련한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주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진의 폐관 수련이 시작되었다.
이후 피 거머리 카인이라고 불리게 되는 강하진의 시그니쳐 무공이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고 도시에서는 그를 제외한 두 회귀 자의 만남이 한 커피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최민수 씨”
“오빠라고 부르라니까. 그놈에 민수 씨는······.”
최민수는 가벼운 농담을 했지만 정색하는 송예나로 인해 헛기침하며 말을 돌렸다.
“이번에 활약이 대단했던 거는 뉴스를 통해 들었어.”
“뭐 겨우 라킨족 이었잖아요”
송예나의 대답에 최민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긴 한데···. 회귀자라는 걸 숨길 생각이 없나 봐?”
“굳이 감출 필요 있나요? 지구가 딱히 제재하지 않는 것을 봐선 별 상관이 없는 거 같은데”
“나도 아버지에게만 사실은 말씀드리긴 했는데, 회귀 전과 지금은 우리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
“나도 느끼고 있어요. 튜토리얼이라고 할 수 있는 첫 행성전을 기권한다니 뭔가 많이 다르긴 하네요”
“하진이가 손을 쓴 게 아닐까?”
“설마요 그 사람은 우리와 다르게 용사 시스템을 버리고 다시 레벨1부터 시작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라킨족이라지만 고작 1주일 사이에 뭔가를 해낼 만큼 강해지긴 무리에요”
이점은 동감이라는 듯 최민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자신의 망고 스무디를 한 차례 먹은 송예나가 본론을 던졌다.
“회귀 전과 같이 길드를 만들 생각이에요”
송예나의 말에 이미 다 마신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우적우적 씹으며 최민수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생각이 통했는데?”
회귀 전 인류 최강의 화력이 모인 길드.
송예나가 마스터로 있던 스피어.
최강의 탱커들이 모인 길드.
최민수가 마스터로 있던 쉴드.
소위 인류에게 창과 방패로 불리던 최강의 길드가 다시 탄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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