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셋의 준비시간 1
장문수는 낮에 만난 소년을 떠올리고 있었다.
겉은 아직 앳된 티가 남은 학생인데 그 눈빛은 산전수전 다 겪은 어느 장인의 눈처럼 한없이 깊고 당당함이 느껴졌다.
지구의 멸망이니 뭐니 하며 연일 뉴스에서 떠들어대도 흘려들었던 그도 소년이 했던 말을 듣고 있자니 점점 현실로 받아들여졌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소년의 말에는 지금껏 어떤 뉴스에서도 전달하지 못한 정보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믿을 수밖에 없는 확실한 증거도 보여줬다.
“상..상태창 오픈”
장문수의 말이 끝나자 그의 눈앞에 현실감 없는 네모의 창에 생겨났고 거기에는 몇 가지의 정보가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용사 시스템 활성창]
캐릭터:장문수
직업:미정
레벨:1
힘:40
민첩:10
활력:30
마력:10
“하아···. 이건 정말···.”
작게 한숨을 내쉰 장문수의 시선이 병원 침대에서 잠든 듯 조용히 누워있는 딸 하림에게 향했다.
작은 움직임도 없는 딸의 손을 꼭 잡은 장문수는 이내 손을 놓아주고는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하림아 아빠가 꼭 눈뜨게 해줄게. 쪼매만더기다리라’
장문수는 결심한 듯 곧장 공방으로 향했다.
사장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만 공방의 사용을 허락받은 장문수는 소년이 건네준 물건들을 꺼내 보았다.
“대체 금마는 어디서 이런걸 구해왔노?”
하진이 장문수에게 제작을 부탁하며 맞긴 금속은 30년 넘게 쇠를 두들긴 그도 처음 보는 광물이었다.
“그래 어디 함 해보자 내가 기똥차게 만들어줄 테니까”
장인이 두드리는 망치 소리와 뜨거운 열기가 밤새 공방안을 가득 채웠다.
장문수에게 한철을 맡긴 하진은 이름이 없는 산속을 뒤집고 다니는 중이었다.
100년이나 지난 기억을 떠올려가며 재료들을 찾으려니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후우, 그냥 라킨족 100마리를 사냥하는 게 빠르지 이건 뭐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도 아니고’
차라리 한철을 찾는건 쉬웠다.
회귀 전 한 매국노의 무덤이 도굴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의 관속에 알 수 없는 광물들이 가득했다는 뉴스로 세상이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그 광물의 정체가 만년한철이라는 것과 언젠가 부활을 꿈꾸었던 매국노가 한기가 가득 담긴 한철로 그의 무덤을 채워 육신을 보존하도록 했던 것이었다.
강하진은 무기의 필요성을 떠올리자마자 곧장 매국노의 무덤을 뒤집어엎고는 한철들을 몽땅 빼돌렸다.
망자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하나도 없는 하진이었다.
‘고마워 잘 쓸게’
최소한의 고마움을 남긴 하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고 며칠 후 무덤을 둘러보던 매국노의 후손들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하진은 어떤 흔적도 남기질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무덤을 파헤치고는 파낸 흙은 덮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lv.17 강하진]
직업:절정고수
명성:16
근력:57
민첩:72
체력:41
내공:5갑자
무공(스킬):사천당가(암기술, 독공), 양의심공, 제갈세가(진법설치)
포탈 안에서 인질들을 구출하고 약간의 명성치가 올랐다.
명성치의 사용법은 하진도 알 수 없었다. 예전 용사 시스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제갈세가와 함께하는 미로찾기]
초등학생들의 필독서 마냥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책에는 의외로 상당한 수준의 진법 설치와 파쇄법이 담긴 생각지 못한 아이템 획득이었다.
하진은 돌맹이 몇 개와 나뭇가지 몇 개를 이용해 그가 지나간 흔적들을 싹 지워버렸고 산의 나무들을 모두 잘라버리지 않는 한 그의 진법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른 하진은 조용히 눈을 감고 기감을 넓게 펼치기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눈을 뜬 하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찾았다.’
그리 멀지 않은 절벽 중간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 꽃 한 송이가 보였다.
바리에 내공을 집중한 하진이 절벽을 자연스럽게 걸어가기 시작했고 금방 꽃 앞에 설 수가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하진이 꽃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쉬이익!
텁!
“잡았다 요녀석”
시이익! 시익! 시익!
[영물 쌍두살모사를 발견하였습니다. 명성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왼손으로 쌍두살모사의 머리를 잡은 하진이 반대 손으로 조심스럽게 꽃 주위의 흙을 치우기 시작했고 잠시 후 손바닥만 한 산삼을 캘 수가 있었다.
[천년삼을 발견했습니다. 명성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음기를 잔뜩 머금은 천년 삼과 이를 지키는 머리 두 개의 뱀에 대해서는 회귀 전 목숨을 구해준 심마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한철로 만든 무기를 다루기 위해서는 내공에 음기를 둘러야 했기에 지금의 하진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얻게 된 쌍두살모사는 천년삼의 음기를 오랜 시간 품은 탓에 그 심장은 훌륭한 내단이 되어있었다.
잠시 후 최고의 음기세트를 섭취한 하진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패시브 스킬 한서불침이 생성되었습니다]
“고렇취”
강하진은 주먹을 번쩍 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5대 저항력 중 독과 냉기 두 가지를 벌써 마스터했다는데 뿌듯함에 절로 어깨를 들썩이는 하진이었다.
‘이제 아저씨가 무기만 잘 만들어주면 기본적인 준비는 끝이구나’
송예나는 언니 송지나와 함께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수많은 기자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쫓고 있었다.
“저기 예나야 나 다리 아파 우리 뭐 좀 마시고 가자”
“어? 그럴까? 다리 아팠어? 바로 말을 하지 언니”
평소에도 살가운 동생이긴 했지만 요 며칠 동생 예나는 마치 딴사람이 된 거처럼 극성을 부렸다.
평소와 다름없는 이틀 전 아침 송지나는 여느 때처럼 동생 예나를 깨우기 위해 동생의 방을 두드렸다.
“예나야 어서 일어나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그리고는 동생의 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은 송예나가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흐으윽···. 흑흑···. 진짜 우리 언니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당황한 지나의 물음에도 송예나는 한참을 더 눈물을 쏟은 후에야 언니를 풀어주었고 이후로는 지금처럼 자신에게 꼭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동생과 이어지는 독촉에 지나도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바로 그날.
지구의 정체불명 메시지가 전 세계에 전달된 그 날 동생이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로 말했다.
“언니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자신은 100년 전으로 회귀한 것이라는 등 얼마 후면 집 근처에 생겨난 빨간 포탈 안에서 위험한 것들이 쏟아져 나올 거라는 등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었다.
도시와 도시의 경계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던 자매의 집주변에는 가까운 거리에 두 개의 포탈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러니 우리 언니가 도망쳐 보지도 못하고 죽었지······.”
100년도 지난 기억이 떠오르자 송예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기억을 떨쳐 버렸다.
‘하···. 역시 안 되겠어 빨리 처리해버리는 수밖에···.’
송예나는 지구의 전체 메시지를 본 그날 바로 첫 번째 포탈 앞으로 달려갔다.
이미 그곳에서는 군대로 보이는 집단들이 민간인들의 통제를 시작하고 있었고 그런 그들 앞에 송예나가 다가가자 상급자로 보이는 인물이 그녀를 막아섰다.
“저기 거기 멈추십시오. 여기는 통제구역입니다”
그의 저지에도 송예나의 걸음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그녀의 팔을 붙잡아 제지를 하려 했다.
탁!
“이봐요 멈추라고······.”
송예나의 붉게 타오르는 눈을 본 중사 문재환은 그대로 몸이 굳어 버린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용사 송예나님의 회귀 전 데이터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송예나가 기다리던 시스템의 알림음이 들려왔고 송예나가 오른손을 포탈을 향해 뻗으며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직감적으로 큰일이 일어날 거라 예감한 문재환은 다급히 포탈 주변에 배치된 부하들을 행해 소리쳤다.
“모두 피해 어서”
그의 외침에 다급히 자리를 벗어나는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주문을 마친 그녀의 마법이 포탈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헬파이어”
화염의 회오리가 포탈을 감싸자 빨간색의 포탈이 더욱더 붉게 타올랐고 잠시 후 화염이 사라지자 그곳에 있던 포탈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레드등급 포탈을 소멸시켰습니다]
[소량의 용사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시스템의 알림이 알려오기 무섭게 송예나가 상태창을 활성화했다.
[용사 시스템 활성창]
캐릭터:송예나
직업:마법사
레벨:97
힘:120
민첩:89
활력:870
마력:910
용사포인트:23
“시스템 용사 포인트는 뭐지?”
[용사님을 서포트할 다양한 장비 및 스킬책등을 구매할 수 있는 상점에 사용됩니다]
능력치는 그대로 가지고 회귀했지만, 그녀가 사용하던 마법용 도구들은 모두 자취를 감춘 터라 송예나는 빠르게 용사 포인트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상태창을 들여다보던 송예나에게 문재환이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당신 대체 정체가 뭡니까?”
“마법사 처음봐요? 웃긴 아저씨네”
지금이 회귀한 뒤라는 걸 깜박한 송예나가 톡 쏘듯이 한마디 던지곤 다음 포탈로 이동을 하자 홀로 남은 문재환은 욕설을 내뱉으며 수하들에게 물었다.
“여기서 마법사 본 적 있는 사람 거수?”
“....................”
“에이 씨X 완전 미친X 아니야···. 마법사를 누가 어떻게 봐”
이미 사라지고 없는 송예나를 향해 한참을 욕을 하며 담배를 입에 문 문재환은 아직 알 수 없었다.
일주일 뒤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법사로 자신이 전직할 거라고는······.
최민수는 아버지와 함께 포탈 안으로 들어섰다.
“아버지 아직은 위험 다니까요 그만 돌아가요”
아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최양락이었다.
그는 전직 해군 특수부대 교관답게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최민수가 그런 아버지의 뒤를 쫓아 포탈 안에 들어온 이유도 그가 바로 현직 특수부대원이었기 때문이었다.
포탈의 조사를 맡은 특수부대 한소대가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고 뒤를 이어 투입된 구조팀까지도 연락 두절인 상태라 군은 최양락에게 조사를 의뢰해왔고 그는 국가에 충성하다 실종된 병사들이자 자식들은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화귀 전 최양락이 이렇게 포탈을 조사하다 실종되었던 것을 기억한 최민수가 급하게 그를 따라나선 것이었고 지켜본 결과 그의 실종원인을 알 것 같았다.
‘휴···. 아무리 몰라서라지만 일반인이 이렇게 혼자 포탈 안을 돌아다니시다니···.’
그리고 그때.
앞서 나가던 최양락이 정지의 수신호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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