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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대 자체가 자료가 많이 없어 글 작성간 참고했던 내용으로 설명드리면, 원 역사에서 최초 훈련대는 1, 2대대는 한성, 3대대는 평양, 4대대는 청주에 설치되는 것으로 고종의 재가를 받습니다.
이후 훈련대 중에 제 3훈련대부터 제6 훈련대라는 부대 이름이 나오는데, 이 3 훈련대부터 제6 훈련대 병력들은 구 군영을 해체하면서 신편했던 신설대의 공병 혹은 병참병들이 아니었나 판단됩니다.
일본 신문 «니치니치» 메이지 28년 10월 19~20일자 기사에 따르면 훈련연대장인 홍계훈이 제1훈련대라는 병력으로 을미사변 당시 궐을 침범하려던 낭인들을 제지하며 전투가 벌어졌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1 훈련대 (훈련대 1대대)는 당시 이두황과 조희연에 의해 을미사변에 투입된 상태였기에 신문에서 나오는 내용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훈련대 1대대와 2대대를 제외한 제3 훈련대부터 제6 훈련대 중 일부 병력이 훈련연대장 홍계훈의 직속 부대이자 궁성 방어 전담인 훈련 4대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설에서는 이 부분으로 전개가 되었습니다.
우범선이 민비에 반감을 갖게 된 것은 1881년 별기군 창설 당시 우범선이 별기군 참령으로 있으면서 별기군 훈련생에게 하극상을 당해 이 사실을 군무변정기연사당상이었던 민영익에게 고했으나 민영익은 오히려 그를 곤장을 쳤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민씨 척족의 부정부패와 권력 독점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민비에 대한 반감이 커져가며 이후 일본 유학 및 일본 정계 및 군인들과 교류하며 점차 그들에게 물들었던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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