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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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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65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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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작성
22.10.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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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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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6쪽

9. 유피터 사무엘 외전 2-절망 그리고 별

DUMMY

언젠가 대부에게 이런 말을 전한 바 있다.


‘티끌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 결국 양쪽 모두 상처받을 뿐이다.’라고.


하지만 이것이 벌이라면.

자신의 말조차 지키지 못한 사내를 향한 벌이라면...


차라리 내게 내릴 것이지.

이 핏덩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


정을 통한 여인이 아이를 가졌다.

어째선지 내 모든 것을 다만 긍정할 뿐이었던 대부의 표정이 그리 밝진 않았지만, 나는 행복했다.

감정은 내가 지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에.


모든 것이 허락된 신에게조차 세상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마음뿐이라.


“왜 그렇게 보시나요?”

“그냥...”


황홀한 듯 내게 기대오며 나를 올려다보는 너의 시선에 나는 곤란한 듯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 속 말을 꺼내는 것이 이토록 부끄러운 것이던가.


사실... 네가 악인(惡人)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을 괴롭히고 우월감을 얻는 데만 급급(急急)하는 최저(最低)의 존재였으면 했다.


-그러면 마음 놓고 너를 미워할 수 있었을 거다.


한편으론 네가 선인(善人)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에게 친절하진 않더라도 나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이기를 바랐다.


-그러면 마음 놓고 너를 사랑할 수 있었을 거다.


허나, 넌 그 둘 모두에 속해있으면서도 둘 중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아서, 대부분의 인간이 그러하듯 너 역시 회색의 사람이어서...


-나는 너를 마음껏 사랑하지도, 모질게 미워할 수도 없었다.


‘그 결과가 이거라면 감내해야겠지...’


네가 내게 몸을 기대옴에 따라 심장의 박동소리가 한없이 커져가기만 했다.

이 짧은 순간의 배율을 늘려 영원한 것으로 삼길 바라듯 그렇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도 아닌 쥐의 시간을 살았다.


-사실 네가 선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비 된 자가 아내와 자식을 마땅히 그래야하기에 사랑하듯 나 역시 그리하리라 마음먹었으니까.

그것은 사랑보다는 책임감에 더 가까운 형태이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휘발성이 강한 사랑이라는 감정과 달리 책임감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감히 흩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한다면 난 널 영원히 책임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내 존재가 너를 이 땅에 묶어두는 닻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행복하네요.”


기쁨을 느끼는 건 흔히 소원을 이루었을 때라 하던데 그대는 바라는 것을 이루었는가.


희미해져가는 아내의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자 나는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며 씹어 삼켰다.


아아, 내 손에 쥐인 그녀의 생명이 꺼져간다.

어떻게든 주워 담고자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엇이?”


나는 슬퍼도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좋다.

네 마지막이 행복과 기쁨, 온갖 긍정적인 것으로 가득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 뒤에 나는 무사히 기뻐할 수 있을까?


“제가 한 말, 따스한 행동 이 하나하나를 당신은 가슴 속에 새기고 오늘을 추억할 테니까요.”


아아, 너는 끝끝내 내게 잔인하구나.


그녀는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일을 했다.


......그것은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라고 하는 것이다.

가치를, 의미를, 미련을, 모든 것들을... 버려두고서 떠나는 것이다.


“신이시여. 절 부디 영원한 것으로 삼아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당신의 기억 속에 영원히.”


너는 내가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내게 가장 괴로운 선택지만을 들이민다.


친애하는 벗이여, 부디 인간을 사랑하지 마시게.

그들의 찰나가 우리에겐 영원으로 남는다네.


“-마라...”


나는 처음으로 너에게 저항했다.


“제발 두고 가지마라...”


마침내 뱉어낸 거절의 말은 마치 내 심장처럼 찢겨져 조각난 채 갈라진 음성으로 세상에 나왔다.

우리의 아이는 부디 그렇게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신은...”


네가 마지막으로 내 볼에 손을 얹는다.


“태어나는 우리에게...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보고 오라고 이야기한다죠.”


시들어가는 네가 싱그러운 새싹과도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게 네 마지막 미소란 걸, 내가 기억할 네 마지막 모습이란 걸 난 알 수 있었다.


─툭.


그녀의 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아름다운 것을 구했으니 가지고 간다는 것이냐. 나와의 시간들은 네겐 아름다운 것이었느냐...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간다 말하는 것이냐...!”


너는 끝까지 이기적이다.

떠나는 자가 무얼 가지고 떠났든, 떠나는 자를 바라보는 자는 언제나 남겨진 자가 되고 만다.


그래도 아직 내게는 그녀가 시체 이외에 세상에 남긴 마지막 가치가 있었다.

우리 사랑의 결실이, 제 어미를 잡아먹은 폐륜아가, 그럼에도 아비의 사랑이 필요한 새 생명이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고자 한다.


─후두둑, 철퍽!


“아...?!”


숨이 끊어진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우리 사랑의 증거가, 사랑하는 아내가 남기는 마지막 유산이, 간절히 바라고 바라왔던 무언가가...


하지만 나는 이를 차마 받아내지 못했다.

그것의 존재가 너무도 이질적이어서.


마치 썩은 토마토 같은 것이 떨어져 한순간에 수의(壽衣)가 되어버린 그녀의 옷자락 위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흩어졌다, 내 마음처럼.

형체도 남지 않을 정도로.


“아아...!”


순간 들이찬 감정이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이 파편이 되어 단어가 되지 못한 채 그저 흘러 나왔다.


“■■■■──!”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된 것인가.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신의 아이는 우리 다음세대의 신들이 그러하듯 그 어미의 태반을 가져가버리기에 끝내 어미의 목숨을 갉아먹는다.

안다, 알고서도 선택했다.

낳고 싶다는 그녀의 생각을 존중했다.


하지만 아이야, 너는 살았어야지.

제 어미를 잡아먹었더라도 건강히 태어나주기만 했다면 모든 걸 네 손에 쥐어줬을 터인데.

내가 직접 쥐어줬을 터인데...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아가... 제노비아...!”


하지만 악몽은 깨어날 생각을 않았다.

차라리 그녀가 이 끔찍한 광경을 보지 못하고 떠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먼저 떠난 그곳에서, 마침내 돌아간 윤회의 고리에서, 아이를 마주한 그녀는 분명 슬피 울리라...


“너무하지 않은가.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 핏덩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아내의 유산(遺産)은 유산(流産)되어 절망(切望)은 절망(絶望)이 된 채 세상의 빛조차 보지 못한 채 뱃속에서 썩어버린 살덩이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유산(遺産): 죽은 사람이 남긴 재산.

*유산(流産): 태아가 달이 차기 전에 죽어서 나옴.

*절망(切望): 간절히 바람.

*절망(絶望): 희망이 끊어짐.


절망적이게도......


“아으... 아...!”


인간의 언어를 잊은 것 마냥 절규하며.

이불보에 떨어져 형체가 흩어진 것을 어떻게든 긁어모으며...

모든 가능성을 가지되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아이를 품에 안으며......


“으윽... 으아아아...!!!”


이것이 내 아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어서.

이 보잘 것 없는 것이 그녀 삶에 대한 증거라고 차마 믿을 수 없어서.


며칠 밤낮을 짐승처럼 우짖기만 하였다.


-무력하구나.


“내가 어찌해야했나. 어찌해야했느냔 말이다! 사랑하지 말았어야 했더냐. 끝이 보임을 알기에 도전조차 말았어야 했느냐?!”


그럴 수 없다. 이는 내 생애 전반을 부정하는 짓이니.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어!


나는 분명 언젠가 찾아올 홀로 남을 미래가 두려워 멈춰 선 적이 있었다.

내가 자꾸 자라서, 끝도 없이 자라서, 산도, 구름도, 지상의 모든 불빛이 내 밑에 있어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숨이 막혀서...!!

결국... 적막한 우주에서 별들만을 벗삼아야함을 깨달았을 때.


하지만 함께 걸음을 맞춰갈 이를 만나서, 마치 별과도 같은 이를 만나서, 내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는 이를 만나서 나는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나아갈 수 있었다.


“안일했던가. 나는 안일했는가?”


끝없는 의문부호들이 비수가 되어 나를 향해 꽂혔다.


그녀 또한 그런 존재가 되어줄 줄 알았다.

이 아이 또한 그럴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원통하다. 차라리 누군가를 탓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이 갑자기 찾아온 불행에 대고 신을 원망할 때 신은 누구를 원망해야하는가.


-‘아나스타샤’를 데려간 신은 잔인하고 무분별했다. 이젠 나도 똑같이 할 거다.


저주(咀呪)가 꿈틀댄다.


‘이건 누구의...?’


내 것이 아니다. 아니, 내 것이던가?


“사무엘... 이제 충분하지 않느냐.”


문이 열린다.

그가 들어온다.

질척이던 저주가 사라졌다.

보이지 않게 됐다.


“무엇이 말인가?”


하지만 그뿐이다.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


“대부여, 내 영원이 지옥이 되어버렸다. 나는... 무력하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단 말이다...!”


다만 지옥이 시작됐다.


“그러니 제발 나를 내버려 둬... 차라리 슬픔에 매몰될 수 있도록. 이들과 함께 썩어갈 수 있도록.”


─짜악!


그가 내 뺨을 쳤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사흘 밤낮을 울기만 했던 나는 무력하게 당했다.

그가 내 멱살을 쥐자 나는 힘없이 끌려 다니며 그의 말을 경청해야했다.


“묻어줘야지. 함께 썩지 말고 묻어줘야지. 계속 이리 둘 셈이냐? 우는 것으로 의사를 표현할 나이는 한참 지나지 않았느냐!”


그 말에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울음을 떠올렸다.

아이를 가졌다는 그녀의 말에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 기쁨의 눈물.

태어날 때조차 울지 않던 나는 그때 그렇게 첫 울음을 터트렸다.


-어이하여 우시는지요?

-기뻐서. 너무나도 좋은 사람을 둘이나 얻게 되었으니까.


그래, 그녀는 한없이 잔혹했어도 내게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떠나가지 말았어야지. 좋은 사람이면 끝까지 남아있었어야지...’


눈에서 뜨거운 물이 흐른다는 감각이 너무나 생경하여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그녀는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때만 해도 아이는 건강히 살아있어 내 귓가에 발소리를 들려주었다.


“동정하는 게냐? 다름 아닌 네가? 존중하는 이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결국 동정으로 끝맺는 게냐?”


-닥쳐. 닥쳐! 제발 그 입 좀 다물란 말이다! 날 제발 내버려둬!


신의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위험성은 충분히 들려줬다.

아이를 낳는 것은 온전한 그녀의 선택이었다.


“동정이 아니다...!”


내 목소리가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사흘 간 물 한잔 마시지 못한 목은 사정없이 갈라져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가 우짖는 것처럼 들렸다.


“그럼?”

“그저... 너무나도 좋은 사람을 잃게 된 내게 연민이 들어서... 더는 나를 달래줄 사람이 없어서... 나를...”


되도 않는 변명임을 안다.


“그저 나를...! 위로해주고자... 울었다.”


하지만 언제나 슬픔은 떠나는 자가 아닌 남겨진 자의 몫이었다.


“그걸로 됐다. 그걸로 됐어...”


하지만 그러한 것으로 되었다는 듯 대부는 자신에게 몸을 기대게 했다.

정신이 나약해졌기에 육체도 나약해진 탓일까.

나는 힘없이 그에게 기댔다.


대부의 어깨가 내 눈물로 젖어간다.

그녀가 처음으로 내가 안기어 운 상대라면, 이번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대어 울었다.


나는 처음으로 같은 상실을 경험한 누군가와 공감했다.


“뭐라도 해라. 내 다 도와줄 터이니. 그게 싸움이 됐든 뭐가 됐든 하거라. 그리고 잊거라. 설령 다른 여인을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대부는 내 어깨를 다독였다.

때론 슬픔이 위로를 받았음에도 진정되지 못해 파도를 일으킬 수 있음을, 범람해버릴 수 있음을 나는 이 날... 처음 알았다.


“......여인은 됐소. 가장 좋은 것을 가졌는데 다른 것이 눈에 찰 리가 없지.”


이는 상대에게도 또한 자신에게도 예의가 아니리라.


“그럼 이제 네게 남은 것은 무엇이냐. 넌 앞으로 무얼 보고 살아갈 거냐.”


그는 어떻게든 내 삶의 의미를 돌려내려 애썼다.


“.......”


하지만 나는 곧장 답할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래. 너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감당하기 어려울 땐 언제든 기대거라. 너는 스스로를 어른이라 생각하겠지만, 내겐 아직 어린아이이니. 그러니... 언제나 강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 말만을... 오직 그 말만을 남기고 대부는 떠나갔다.

뒤돌아 떠나는 대부의 쓸쓸한 모습에 나는 차마 묻지 못했다.


당신은 이를 어떻게 견뎠는가?

과연 견뎌낸 것이 맞는가?


아직... 견디고 있는 중인가.


그렇게 나는 어렸을 때처럼 멍하니 침대에 누웠다.

한때 아내였던 것과 한때 아이였던 것만이 내 곁에 있다는 것만이 이전과 달랐다.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생각했을 때, 내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 그래도 가슴 한 구석에 무언가 남아있었다.

그것은 찬란한 빛을 내며 내게 제 존재를 알렸다.

그것은 창밖의 실재하는 별보다 더욱 환히 빛나며 내게도 빛을 드리워주었다.


“그대는 아직도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가?”


내가 길을 잃을 때면 언제나 나를 인도해주던 별빛...


나는 오늘도 ‘별빛에 그림자가 든 옥좌’에 앉아 그를 기다린다.


***


“많이 변했구나.”


벗과 미나와의 대련이 끝나고 임무를 떠나기 전 집안을 정리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 그곳에는 대부가 먼저 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뎌졌나?”


오랜만에 만난 그가 반가워 나는 소리 내어 웃었고.


“아니, 좀 더 부드러워졌지.”


그는 이러한 나의 변화가 마음에 든다는 듯, 홀홀 거리며 인자한 노인의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도 벌써 그럴 나이가 됐다.

아니,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러했다.


“어감이 달라졌을 뿐이지만, 듣기 나쁘지 않군.”


인사를 했으니 그에게 더 볼 일은 없다.

한때는 그에게 기대어 울었으나 이젠 내게 기대고자 하는 이들이 생겼다.


나는 지붕이다.

내 선 안에 있는 이들이 환란을 피할 수 있게 감싸주는 지붕이다.


-정말 그런가?


내가 지붕이 아니라면 나는 아마 기둥이리라.

받쳐야할 존재가 없으면, 내게 기대어주는 이가 없으면 홀로 서지 못하고 결국 쓰러져버리는 기둥 말이다.


새롭게 받쳐줘야 할 이에게 서둘러 돌아가고자 지나쳐 걷는 내게 그가 말했다.


“사무엘.”

“왜 그러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을’ 이라는 질문은 우리 사이에 필요하지 않았다.

긴 시간동안 그가 나에게 적응했듯 나 역시 그를 이해했다.


“곧 일어날 전쟁을 말하는가. 하지만 내겐 더 이상 옥좌에 남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나는 사납게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어보였다.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질리도록 들었다.


“내가 있을 곳은 전장이다.”


부디 그 전장에서 친애하는 벗이 등을 맞대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그대로 그를 지나쳐 걸었다.

그런 내 뒤에서 바람결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엘...”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어쩌려고 그러하느냐...”


그저 안타까움이 잔뜩 배어나온 목소리만이 그가 있던 자리에 연기처럼 남았다.


“흠...”


어쩌면 나는 내가 영원하다고 전쟁 또한 영원하다 생각한 것이 아닐까.


“전쟁이 끝난 뒤라...”


전에도 비슷한 물음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이번의 대답엔 막힘이 없었다.


“그럼 여행을 떠나겠지. 벗과 함께 보조를 맞춰 그리 걸어가겠지.”


바람결에 들려오는 물음에 맞춰 나 역시 바람결에 흘려보냈다.

과연 이 말이 그에게 닿았는지는 나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이 말을 하며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조차.


‘나는 웃음 지었을까?’


그때의 너처럼, 친구가 되고 싶다며 맑은 웃음을 자아내던 너처럼, 함께 여행을 떠나자며 순수한 웃음을 그려보였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저 별을 길잡이 삼아 나아가는 길이 더 이상 두렵지 않으리란 것만은 알았다.

망망대해 위에서도 저 별만은 언제나 내 길 위를 비춰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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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49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1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1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0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59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2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7 3 19쪽
205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2 2 19쪽
204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22.11.06 60 3 11쪽
203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9 +1 22.11.05 90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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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7 +2 22.11.01 93 3 12쪽
20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6 22.10.31 80 4 13쪽
19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5 22.10.30 74 2 15쪽
19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6 4 18쪽
19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3 22.10.28 77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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