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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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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474
글자수 :
1,6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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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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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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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1쪽

9. 천마대전 6

DUMMY

이곳은 맹주의 침실.

두 남녀가 모여 해묵은 이야기를 꺼냈다.


“스승님, 기억하십니까?”

“무얼 말인가요...?”


100년은 족히 됐을 옛날이야기.

주어조차 담기지 않은 물음에 여인은 무얼 묻는지 나른하게 되물어봤다.


“당신께서는 그날, 제게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본디 모든 감정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욕망은 타인과 나 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니. 거기서부터 시작하자꾸나.’라고요.”


천무극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언젠가 여인이 그에게 해주었던 말을 이번에는 그의 입으로 꺼내보았다.


“욕망을 깨우친 순간 모든 감정을 배운 것과 다름없다고... 제게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기억나네요...”


타인의 것을 원하면 탐욕, 타인의 시선을 원하면 집착, 타인과의 관계를 바라면 열망, 타인의 재능을 원하면 질투, 타인의 모든 것을 바라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장자는 천무극에게 그리 가르쳤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남자의 눈이 야수처럼 빛났다.

세월이 흘러도 자신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듯 100년 전처럼 다시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에게 장자는 애틋한 시선을 보내다 그 눈에 담긴 열망을 느끼고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지금 한 존재의 모든 것을 원하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본좌라 칭하지 않았다.

지위고하 없이, 사제라는 틀도 없이, 그저 남녀로서, 수평적인 관계로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노라 말했다.


“그 심장, 피부, 그 숨결 하나하나까지 내 것이길 바라오. 이 추악한 것도 사랑이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닌 그저 오물투성이에 불과한, 이 질척질척한 감정을 감히 사랑이라 말할 수 있소?”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라 배웠다.

사랑을 배운 이들은 세상이 아름답다고 노래를 부른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런 질척질척한 것도 사랑인가.

상대를 내가 있는 곳까지 끌어내리는 것마저, 함께 진창을 뒹굴고, 나락에 빠트리는 것마저 사랑인가.


“그건... 애증(愛憎)이겠네요.”


제자가 자신과는 그 감정의 궤가 다름을 느낀 장자는 곤란하다는 듯 말을 늘였다.


“흣!”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듯 갑작스레 그녀를 끌어안는 그의 반응에 장자는 당황한 듯 높은 비음을 흘렸지만 이내 부드럽게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가르쳐주시오. 애증이 무엇인지. 이것이 과연 사랑으로, 변할지 증오로 남을지.”


이것은 과연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의 투정인가, 아니면 마침내 꿈에 그리던 것을 손에 쥐게 된 욕망의 노예인가.


무극은 알 수 없었다.

장자 또한 알지 못했다.


“많이... 기다렸나요?”


무극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제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입술을 겹쳤다.

제 입술로 그녀의 숨결을 빼앗고 그 여린 피부를 자신의 흉터투성이 몸으로 감쌌다.


가슴과 가슴이 닿았고 그렇게 완전히 밀착시켰다.


장자는 코가 으스러질 듯 부딪쳐오는 무극에 놀라 그를 밀치려했지만 무극은 그 손을 낚아채고 계속 입맞춤을 이어나갔다.


─두근. 두근.


그 둘은 그렇게 가슴과 가슴을 맞대어 박동 수마저도 공유했다.


“사모하오.”


그것이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이자, 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긴 말이었다.


***


“늦으셨네요.”

“미안하오.”

“누군 속이 타들어 가는데 누군 정말 개운해보이고 참... 기분이 더럽네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미안하오.”


여인의 까칠한 말에도 천무극의 표정에선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이번에 저희가 정말 크게 당했네요. 원로를 빼가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그것도 미안하오.”


그가 그토록 싫어하던 미안하단 말이 이젠 너무나 쉽게 나왔다.

역시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맞는가보다.


“이익! 성실하게 대답해요, 장난이 아니라고요! 원로를 빼앗기고 다음세대의 신까지 빼앗긴 저희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새롭게 내 사제가 된 이들이라면 강제할 생각은 없소. 데려가길 원한다면 데려가시오. 단 그들이 진정 원할 경우에.”


사실 리버스도 이렇게 뻗댈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모든 신들이 무조건 그들 세력에 속해야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장자는 그들의 첩자로서 무림에 왔으니까.


하지만 장자가 무림으로 적을 옮기고, 옮기면서 다음세대의 신 둘을 함께 가지고 간 것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지금 장난해요? 어린 신은 이미 자신의 후견인을 선택했어요. 많이들 착각하지만 사실 후견인을 선택하는 건 원로가 아닌 저희죠. 인간의 아이는 제 부모를 고르지 못해도, 저희는 자신의 후견인을 직접 고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신과 인간의 차이점이라고 다음세대의 신들은 주장한다.


“억지로 데려가지 않는 한 그들이 저희에게 오는 일은 없겠죠,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럼 그냥 두면 되겠구려.”


─호록.


차 마시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리버스를 대표하여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 긴 겨울을 끝내고 봄의 시작을 알릴 여신은 모욕 받았다는 느낌에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천무극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우선 그가 대접한 이 차.

평상시라면 그저 괜찮은 용정차를 내왔을 테지만, 이번에는 소림사에 사정하여 딱 두 잔 분량의 찻잎을 겨우 얻어올 수 있었다.


「달마엽차(達磨瞸茶)」


소림사가 대환단은 내줘도 이는 내줄 수 없다는 것을 반은 애원, 반은 협박으로 가져온 이 차는 어떤 의미에선 ‘차의 기원’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귀한 차였다.


소림의 시조라 볼 수 있는 달마선인.

그는 9년간의 면벽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는데 수행 도중 자꾸 잠이 오자 제 눈꺼풀을 뜯어서 던져버린다.

이것이 달마의 그림들은 항상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는 이유다.


그리고 그 눈꺼풀을 던진 자리에는 풀이 하나 자라나게 되는데 달마는 이를 우려내 차로 마셨다.

그러자 잠이 깨고 정신이 맑아져 수행에 집중할 수 있었다더라.


이것이 바로 차의 기원.

그러기에 잎 엽(葉)자를 쓰는 엽차(葉茶)가 아닌 눈꺼풀 엽(瞸)을 쓰는 엽차(瞸茶), 달마엽차.


천무극도 지난 100년 간 마셔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귀한 차였다.


더욱이 다과로 내온 이 과일도 보통 과일이 아니다.

열매 하나가 맺히는 데만 족히 10년은 걸린다는 반도(蟠桃).

한 번에 많은 과실을 맺긴 하지만, 반도(蟠桃)를 곧장 따지 않고 100년을 두면 선도(仙桃)가, 1000년을 두면 천도(天桃)가 되기에 모든 열매를 다 따버릴 수 없는 귀한 물건이다.


구왕조차 한 알을 받기 위해 족히 10년은 차례를 기다려야한다는 열매를 다과로 내온 것을 볼 때 천무극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그녀를 대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리라.


“기왕이면 그대도 무림에 와주면 기쁠 것 같소. 현 세계의 식량사정을 책임지는 그대에겐 무림도 아주 관심이 많으니.”


리버스가 자랑하는 봄의 여신, 그녀는 직접 이 무림과의 협상 테이블에 섰다.

코르와의 생일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고 한바탕 깽판을 치고 오긴 했지만, 분명 부수적일 거다.

리버스에서 준비한 협상가와 교섭자를 모두 땅에 목만 빼두고 묻어두고 오긴 했지만, 분명 그럴 거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마세요. 이미 당신네 천마신교는 저랑 코르를 섞어 염제신농씨라고 불러대면서 한 차례 작살났다면서요? 새로운 태양신과도 동맹중이고,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고비인 양반이 무슨.”


빈정이 상한 코레는 천무극을 한껏 비꼬아댔다.


“본좌가 하는 말이 허언 같소?”


그 말에 천무극은 더는 기세를 감추지 않았다.

주화입마로 인한 폭주에 돌입했을 때 그의 불완전한 천마지체를 이루는 천 가(家)의 피는 한데 뭉쳐 작은 신성(神性)이 되었고 이내 중단전이 있는 곳에 스며들었다.


제 안의 신을 발견하고 종국에는 스스로 신이 되는 경지인 신화지경(神化地境).

그 초월을 넘어선 초월에 한발이나마 발을 담그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마를 억누를 방법이 마땅치 않아 굉장히 위험한 상태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주화입마를 벗어난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언제라도 폭주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


“당신 경지가 더욱 올라서 구왕 세력에 속한 이들도 당신 똥꼬 빨려고 헐떡이는 거 알죠. 아는데 빈정 상해서 그냥 말해봤어요.”


이 모습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동생, 코르에겐 절대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다.

만약 이 모습을 코르가 본다면 제 누이의 처음 보는 모습에 놀라 잠시나마 걷는 법과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이 안하무인적인 태도야말로 다음세대의 신으로서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인생은 혼자 살지 못해도 신생은 홀로 사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상대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가 드문 만큼 이런 태도가 평균에 가까웠다.


물론 이게 그녀의 본래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조직에서 자주 보았던 모습이니만큼 흉내 내는 것은 쉬웠다.


“그래서 결혼하신다고요? 어찌 축하라도 해드려요?”

“해주면 감사하오. 신의 축복을 그것도 봄의 여신의 축복을 거절할 인간은 없는 법이니. 오는 10월에 식을 올릴 예정이라오.”

“비꼰 거에 일일이 대답하지 마요!”


그 뻔뻔한 대답에 코레는 저승의 여왕의 축복이 어떤 건지 알고 싶으냐며 화를 냈다.


“아, 비꼰 거였소? 몰랐소.”


지복(至福)

마침내 무엇보다 바라던 것을 얻게 된 그는 어떤 모욕도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그야말로 달마와도 같은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대들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오만? 우리 무림의 땅에서 다음세대의 신을 빼내 가는 것도 모자라 첩자를 보내 무림의 정보를 캐내 가려 하지 않았소?”

“그 첩자를 아내 삼으려는 이가 할 말도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공방이 이어졌다.


“흠. 첩자에게 벌을 주기 위해 천마이자 맹주인 자의 아내로 삼아 평생 속죄하게 한다. 본좌가 생각해냈지만 참 괜찮은 각본인 것 같소.”


대외적인 이유는 맹주가 폭주하지 않게 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이다.


천마가 생사지경을 넘어서 신화지경, 전설을 넘어 신화로만 전해지는 그 전인미답의 경지(그때는 선계가 아직 열려있던 시기라 대부분 신화지경에 오르기 직전 등선하여 신선이 되었다.)를 밟으며 다음세대의 신들뿐만 아니라 신화시대에 실존했던 어떤 신과 비교해도 절대 꿇리지 않을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그런 그조차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운석을 홀로 막아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게 분명 300년의 대계라고 했었지...’


리버스의 감춰진 저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는 지금, 무림의 지존인 그는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장자는 틀림없이 원로들 중에서도 강한 편이었지만, 리버스에는 그런 존재가 아직 여덟이나 더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그를 참패시킨 그 세 명의 신들, 이젠 사형제 관계(그들은 부정하겠지만)가 된 그들과 다시 싸우게 되는 건 이쪽에서도 사양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막내 사제가 보여준 그 푸른 숨결은 신화의 경지에 발을 담근 지금도 과연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군.’


그런 무시무시한 화염을 막아내고 끝내 저를 지켜낸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장자는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불태워 성역에 도달했고 이를 대가로 바쳐 이 못난 제자의 목숨을 구해냈다.


힘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주는 거라면 장자는 천무극이 아는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였다.

끝내 모든 것을 쟁취하지 않았는가.

‘이 은혜를 다 갚을 수나 있을는지...’


이름을 받고, 삶을 받고, 목숨을 받았다.

평생 갚아나갈 것이다.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서.


“그럼 요구사항을 말하시오. 우리가 그대들로부터 셋을 가져갔으니 우리도 셋을 주어야 맞겠지.”


아무리 무림이 소중하다 할지라도 그에겐 새로 생긴 가족이 더 중요했다.


“이제 협상할 준비가 좀 된 것 같네요.”


코레는 그제야 제 앞에 놓인 차를 마셨다.


“하아~”


그리고 그 차 맛에 취했는지 무심코 달뜬 한숨을 내뱉었다.


“마음에 드시오?”

“흠흠,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네요.”


무극의 짓궂은 물음에 코레가 다시 볼을 붉혔다.


[권능: 봄과 씨앗(Rank:SS+)이 ‘달마엽차’를 기록하는데 성공합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과일을 집어 입에 넣어보지만 또 한 번 표정이 풀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하으으~”


[권능: 봄과 씨앗(Rank:SS+)이 ‘선도복숭아’를 기록하는데 성공합니다.]


입에서 살살 녹아내린다.

이러한 진미(珍味)를 앞에 두니 코레는 저절로 코르 생각이 났다.


‘코르도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코르가 내게 이 비슷한 것을 줬었던가?’


망각이 없는 신으로선 결코 잊을 리 없는 기억.

하지만 검게 가려져 잊혀진 기억들이 떠올랐다.


-싫어. 다 내 꺼야. 누나 오면 줄 거란 말이야! 다 먹기 전까지는 안 보내줄 거야!


어린 소년이 제 품에 온갖 향기 나는 과실을 가득 품고 억지를 부렸다.


-코르, 너... 그녀를 만난 거니? 대체 어떻게...?!


어미의 물음에도 아이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흔든다.


저가 가장 사랑하는 소년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가 오기 전까지 절대 품에서 놓지 않겠다는 듯, 과육이 다 뭉개짐에도 그렇게 품고 있는 손길이 고집스러웠다.


‘이때... 나는 뭐라고 했더라?’


-코르, 이것들은 다 어디서 가져온 거야?


어미의 등쌀에 못 이겨 그것들의 출저를 물어봤더랬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자신을 보고 환히 웃던 아이는 그 말에 제 힘에 뭉개진 과일들을 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낙원에서 힘들게 가져왔는데...


그때 그 시절의 네 모습을 하고 있는 널 보면 난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게 된다.

다시는 잃지 않겠노라 다시금 맹세하며 꼭 안아주는 것밖에...


아이는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안아주어도 도통 눈물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 우는 동안엔, 내가 너를 달래는 동안엔 내가 떠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거다.


-나 때문에 누나 옷 더러워졌어...

-괜찮아. 안 뭉개진 것들도 많은 걸? 그런데 이 근처에 낙원이라는 과수원이 있던가?


갑자기 아이의 분위기가 변했다.


-언젠가 누나도 가게 될 거야.


“윽...!”


머리가 아프다.


[권능: 봄과 씨앗(Spring and Seed)(Rank:SS+)]


「봄은 꽃이 피는 계절이지만 전쟁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본 권능의 주인은 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씨앗인지, 전쟁의 불씨일지, 굶주린 자들을 위한 과실수의 열매일지는 오직 당신만이 알 것입니다.


-봄: 계절 그 자체를 형상화한 권능으로 봄에 한정하여 권능의 랭크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씨앗: 한 번 섭취한 식물은 기록되어 종자를 키워낼 수 있습니다. 기록이 늘어날수록, 기록된 종자의 랭크가 높을수록 권능의 힘은 더욱 강대해집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던 중이었지? 협상 도중 딴 생각을 하다니... 피곤한 건가?’


망각을 모르는 신으로서 기억이 모래알마냥 흘러내리는 감각은 가히 생경했다.


“코레 공, 어디가 아프시오?”

“아닙니다. 갑자기 동생 생각이 간절하여...”


어느새 기억은 지워지고 생각은 자연히 새롭게 기록된 것들로 넘어갔다.

권능으로 기록을 끝마쳤기에 곧 자신의 밭에 종자를 심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그녀는 요구사항을 말하기도 전에 두 개를 더 가져갔다.

상대가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말이다.


“그나저나 무림에선 광마(狂魔)라고 그를 부르던가요? 미쳐버린 다음세대.”


─쿠구구구구구!


“......난데없이 그를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죽은 친우가 코레의 입에 오름과 동시에 천무극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럭저럭 부드러웠던 협상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가가기만 해도 베여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기세, 숨도 쉬지 못하게 목을 옥죄어오며 손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만드는 사나운 기운이다.


편한 동네 아저씨 같던 천무극의 이러한 모습에 코레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이게 그의 진짜 역린(逆鱗)이구나...’


하지만 협상에 있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악수(惡手)밖에 되지 못한다.

감정에 먹히는 건 하수(下手)들이나 하는 것.


‘무아(無我)가 깨졌어. 감정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는 거야.’


지금만 해도 보라.

저 기세는 분노가 아닌 불안감에서 기원된 것이다.

어떤 요구를 할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다.


약자라면 강자의 솜털이라도 건드릴까 싶어 벌벌 떨겠지만, 강자라면 능히 상대의 약점마저 쥐고 흔들 줄 알아야 했다.


때문에 코레는 웃었다.

웃어보였다.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고자 여상하게 웃어보였다.

다음세대의 신마저 전율하게 하는 힘 앞에서도 여유를 가장하여 웃어보였다.


하지만 방심하진 않았다.

저 자는 더 이상 참을 필요가 없는 힘을 갖게 되었으니까.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고 불렸던 그의 시신과 무공을 원합니다.”


자못 당당하게, 일견 뻔뻔해 보일 정도로 요구사항을 말했다.


“그 무슨...!!”


분노 이전에 불안.

불안 이전에 당황.


그 목은 구왕에게 진상되어 본보기로서 불타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그 몸은, 차마 두고 갈 수 없어 숨겨둔 친우의 그 시신은...!

아직... 썩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걸 대체 어떻게......!”


그가 생전 창시했던 무공까지도...


하지만 이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정보였다.

감추고 싶었고, 감추어야만 했다.


머리 없는 시신이나마 온전히 보존하고 싶다면.

아직도 무림에는 그를 원망하는 이가 모래알처럼 많았기에...


“으드득.”


무극은 생각했다.

현재 이곳에 온 것은 그녀 혼자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다.


만약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들의 세력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내 무극은 손에서 힘을 풀었다.


‘감정에 매몰되어선 안 되니...’


무아가 깨졌더라도 경지에 이른 무인인 천무극은 빠르게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코레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당신과 치우의 관계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이미 죽어 없어진 가족과 새로운 가족.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본좌가 졌소. 어쩔 수 없지.”

“그럼?!”

“가져가시오.”

“아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코레를 보며 무극은 쓰게 웃었다.


그가 힘을 푼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품고 있는 막내 사제의 누이에게 차마 손을 댈 수 없다는 것.

둘째는 인류의 식량을 책임지는 그녀가 죽는다면 그 피해는 오직 리버스만 지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판단.


‘영악하군. 이걸 알았기에 리버스에서는 그녀를 협상가로 보낸 것인가.’


물론 완벽한 착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


‘아무리 내가 이번에 얻은 깨달음으로 더욱 강해졌다 한들 아직 세력 대 세력의 싸움으론 우리가 밀린다.’


현재 그들과 다시 붙는다면 필패(必敗)일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 개인 대 개인이 아닌 세력 대 세력의 싸움에서 무림은 리버스보다 약했다.


굳이 질 싸움을 해서 간신히 손에 쥔 행복을 잃을 수는 없었다.


‘구왕 중 둘이 죽었다...’


천왕은 천마 자리를 계승하기 위하여 그가 죽였고 또 후회도 없었지만, 창왕과 창왕을 죽인 창귀마저 죽은 것은 정말 뼈아팠다.

다음 대의 구왕, 인왕으로 내정된 벽력신군은 온몸의 뼈가 가루가 되어 족히 20년은 치료에 전념해야 한다고 들었다.

벽력신군의 스승이던 권왕은 리버스의 붉은 늑대와의 싸움 이후 재기불능이 되었기에 사실상 은퇴 상태다.


‘당대의 천하제일권(天下第一拳)과 천하제일창(天下第一槍)이 한 사람이라니...’


정사마를 제외하고 가장 큰 세외세력(世外勢力)이었던 북해빙궁(北海氷宮)은 붉은 늑대의 후계자에게 봉문당하고 독문무공이었던 소수마공(素手魔功)까지 내줬다.

북해빙궁은 저 먼 신화시대 때 황제에게 직접 방중술을 가르친 소녀(素女)가 세웠다는 역사가 있을 만큼 거대한 세력.

특히, 이 소수마공은 소녀가 직접 창시한 무공이었기에 마공임에도 신공의 반열에 들었다.


‘뭐, 애초부터 빙궁은 러시아의 바이칼 호 인근에 위치하여 무림의 땅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게 아쉽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모자랐지만 그 처세술 하나는 끝내줬던 부맹주 맹자성 또한 이번의 패배로 인해 완전히 무너졌다.

적어도 외공에 한정되어서는 천무극도 한 수 접어줘야했을 만큼 그의 경지는 낮지 않았다.


천마신교의 마인들도 큰 기대를 하기 어려웠다.

감정이 희박한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맹목적일 정도로 순수한 신앙심이다.

아이 때부터 마치 세뇌처럼 받아온 신앙교육.

그들은 교주인 자신을 따르기보다는 인세에 강림한 진정한 신들에게 귀화할 가능성이 있었다.


‘새롭게 얻은 전력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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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4 +1 22.11.27 58 4 16쪽
218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3 22.11.26 50 5 17쪽
217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2 22.11.25 53 3 14쪽
216 13장. 나에게는 좋은 사람 1 22.11.22 58 2 21쪽
215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5 22.11.21 79 2 16쪽
214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4 22.11.20 49 3 17쪽
213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3 22.11.19 51 2 18쪽
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1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1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59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4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7 3 19쪽
205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1 22.11.07 62 2 19쪽
204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0 22.11.06 60 3 11쪽
203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9 +1 22.11.05 90 3 17쪽
202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8 22.11.04 67 2 9쪽
201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7 +2 22.11.01 93 3 12쪽
20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6 22.10.31 80 4 13쪽
19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5 22.10.30 74 2 15쪽
19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4 22.10.29 76 4 18쪽
19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3 22.10.28 77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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