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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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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93,659

작성
22.09.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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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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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8. 무림으로 35

DUMMY

‘누군가’는 대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누구이며 그녀는 무엇인가.


-나는... 그냥 ‘누군가’야. 지금은 몰라도 돼. 조만간 네게 다시 잃어버린 낙원의 열쇠가 새로이 주어질 거야. 그때가 우리의 새로운 첫 만남이 되겠지. 그럼 마지막으로 물을게. 진짜 하고 싶어? 이건 아직 네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야. 내 보조가 있어도 부담이 클 거고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냥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의지하면 안 될까?


그 친절하고도 상냥한 물음에 나는 답했다.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할 수 있으면 해야지. 가능성이 보이면 달려야지. 눈앞에 어른거리면 잡아야지.’


‘누군가’의 존재에 대한 의문은 이미 뒷전이었다.

나는 지금 누구보다 이기고 싶었으므로.


시리우스가 언젠가 내게 해준 말이 떠오른다.

‘깨달음이란 눈동자 옆에 찍힌 점’이라고.

보려고 시선을 옮기면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고.


하지만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보라는 듯 살랑대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당장이라도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데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는가.


-그런 코르도 정말 좋아해!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서 망각시키는 것이 허락된 것은 오직 관리자뿐일진대 그녀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게서 다시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


─파지지지직!!!


아련한 그리움을 뒤로하고 나는 내가 일으킨 이적을 보았다.


‘아무리 다음세대가 세계에 대한 지배력이 높더라도 나와 같은 걸 하는 건 아마 불가능하겠지.’


오직 이 눈을 가진 나만이, 이 눈을 견딜 수 있는 나만이 가능한 이적.


─주르륵.


눈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과부하(過負荷), 나는 지금 관리자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


‘이번 대련이 끝나면 당분간 쉬어야겠어.’


─구오오오오오!


그렇게 무(無)는 다시 음(陰)과 양(陽)으로 나뉘었다.

또한 내 눈앞의 공간은 말 그대로 공(空)이 되어버렸다.


‘완전히 무에서의 창조라고 보기는 어려우려나?’


그 공간의 질량을 마나로 치환시킨 것이기에.

신이 마나를 현상으로 치환하는 존재라면 나는 지금 역으로 현상을 마나로 치환시켰다.


현상이란 물에 한 방울의 잉크를 떨어트리는 것이다.

이는 결코 자연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계속 확산되어간다.


「무질서도(Entropy)」


내가 지금 한 행위는 검게 물든 물에서 그 한 방울의 잉크를 추출해낸 것이다.

물은 마나, 잉크는 권능이다.


‘그래도 좀 손에 잡히려고 하네.’


장자가 설명해준 대성(大成), 깨달음에 따른 인식의 확장이 이제 좀 뭔지 알 것 같다.

마나를 기체로만 인식했던 천생 무인인 내가 마침내 마나를 액체로 인식한다는 술사의 시각을 이해했다.


“죽기 싫다면 제대로 해야 할 게야.”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내 말을 듣는 즉시, 그는 자신의 창을 회수했다.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제 목을 움켜쥔 죽음의 손길을.


“그래, 광마와 비교하면 이 몸은 어떻더냐.”


평소 한 번도 쓰지 않던 고풍스런 말투가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히익!”


이에 그는 곧장 뒤돌아 도망쳤다.

적에게 등을 보이며 그렇게 도망쳐버렸다.

지금 그의 눈에 나는 제 2의 광마로 보이지 않을까?

당장이라도 내 배를 뚫을 것 같던 저 요사스런 창이 그의 유일하게 멀쩡한 왼손에 붙들려 갔다.


“도망이라니... 이는 네 패배시인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느냐?”


이것마저 참을 수는 없었는지 그가 뒤돌아섰다.


“하, 도망이라니요! 바라는 목표를 눈앞에 두고 도망가는 머저리도 있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눈빛엔 두려움에 절어있었다.

자고로 겁먹은 짐승보다 손쉬운 사냥감은 없는 법이다.


─오싹.


다만 기억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그가 겁먹은 짐승 따위가 아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맹수라는 것.

상처 입은 짐승은 사냥에 있어 가장 주의해야하는 상대라는 것.


하나뿐이 남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창을 단단히 붙들고는 자세를 잡는다.


“그래, 그래야지.”


창은 검보다 길다.

이기어창까지 쓰는 그라면 거리를 벌렸을 때의 유리함을 최대한으로 취할 수 있다.


“거리를 최대한 벌려볼 셈이더냐.”


하지만 마나를 다루기 시작하면 거리는 그 의미를 잃는다.

그렇기에 신화시대의 가장 상징적인 무기는 창이 아닌 검이 된 것이리라.


“폭류신창(瀑流神槍)-오의(奧義), 용오름.”


그 창을 타고 폭풍이 흐른다.

범은 바람을 상징하는 짐승, 333마리의 육혼이 울부짖으며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이에 맞서 나도 자세를 잡았다.


“황혼검(黃昏劍) 제 6식(第 戮式)”


비록 실전에서는 아직 단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어째선지 가능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숫자 육(六)이 아닌 도륙할 륙(戮).

육에는 여섯 뿐만 아니라 죽인다는 뜻도 담겨있다.


“오의(奧義)...!”


걸맞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 구상에서 멈춰야했던 기술을 나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강한 존재의 모습을 담아 완성시켰다.


「바람의 첫째(風伯)」


하지만 나는 그 온화함을 반전(反轉)시켜 이렇게 부르리라.


“조소하는 학살자(Nidhogg)!”


일곱 뱀과 함께 세계수의 뿌리를 갉아먹는 독룡, 니드호그라고.


─휘오오오오!


음의 마나는 그 자체로 인력(引力)을 상징한다.

용린어신창에 흐르는 폭풍이 기류를 타고 흘러들어와 시리우스에 휘감겼다.


나는 이를 이용해 새롭게 불을 지폈다.


<신성마법-개변(改變), 로카브랜나(Lokabrenna)-음(陰)>


음의 마나로 만든 불꽃으로 공기를 태우니 주변 모든 것을 빨려 들어왔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검붉은 불길이 시리우스에 휘감겨 검게 타올랐다.


─그그그그극!!


막대한 인력에 선우도철이 내 쪽으로 끌려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고집스럽게 자세를 유지했다.

아니, 오히려 그 힘을 역이용하여 제 것으로 삼았다.


나는 음과 양으로 나누어진 마나 중에서 양의 마나만을 사용하여 한껏 신체를 강화시켰다.


“하압!!”


─투콰콰콰콰콰칵!!!


그날 나는 처음으로 목도했다.

위에서 아래로 치솟아야하는 소용돌이가 사람의 몸과 수직을 이루어 정면으로 날아드는 것을.

비스듬히 누운 채로 나를 향해 똑바로 날아드는, 저를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분쇄하는 바람을.


─쩌억!!


그리고 그 폭풍이 갈라져 불꽃에 잡아먹히는 광경을.

붉은 불꽃은 그 순간 푸르게 화했다.


<신성마법-각성(覺醒), 푸른 불꽃 소용돌이(靑火)>


‘재’는 남지 않았다.

선우도철은 그가 자랑하는 창과 함께 그대로 도려내어졌다.

마치 거대한 용에게 통째로 씹어 삼켜진 것 같은 모습으로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에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는데...”


오의(奧義)란 분명 필살의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런 위력을 낼만한 건 아니었다.


무에서 음과 양을 나눈 것은 분명 대단했지만 그건 그저 마나를 얻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현자의 돌이라고도 불리는 아르케를 사용해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만큼의 낭비다.

즉, 그 힘은 평범하게 마나로 권능을 다뤘을 때와 다르지 않아야 했다.


잉크가 떨어져 검게 물든 물에서 잉크를 분리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것은 겨우 한 잔의 물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생사지경에 이른 고수와 함께 초월에 이른 무기마저 베어 내다니...


-축하한다. 그게 권능의 각성단계다. 설마 이런 방식으로 완전연소(完全燃燒)에 이를 줄이야.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불은 보통 노란 빛을 띤다. 하지만 이는 산소가, 연소가 불완전하다는 증거로 이로 인해 ‘재’와 같은 이물질을 남기는 것이지. 그러나 불꽃에 회오리치는 공기를 주입하면 푸른 불꽃이 만들어진다. 이건...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겠구나.


운칠기삼, 역칠기삼, 140%의 승리.

어떠한 것도 남기지 않는 푸른 불꽃이, 재조차 남기지 않는 청화(靑火)가 내 주위에 피어났다.


‘이게 열염계(熱炎系)의 궁극인가...’


깨달음은 불현 듯 찾아왔다.

나는 내 권능의 한계가 크게 늘었음을 느꼈다.


‘나는 권능의 반의, 반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구나.’


‘목소리’가 그동안 나를 그토록 한심하게 바라본 이유가 조금 이해가 됐다.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겠느냐?


‘아니요...’


-그럼 어서 어떻게 했는지 분석해야지, 무얼 꾸물거리는 거냐!


‘목소리’의 재촉에 나는 서둘러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진리의 눈으로 지금 일어난 형상을 분석했다.


‘아래쪽은 연료가 과잉될 때 생기는 예혼합화염(Premixed rich flame), 위쪽은 연료와 공기가 섞이기 시작하며 발화가 일어나는 확산화염(Diffusion flame), 옆쪽은 연료보다 공기가 더 많은 희박 예혼합화염(Premixed lean flame).’


세 종류의 연소의 조합.

우연에 우연이 겹쳤다.

‘목소리’의 말마따나 운이 좋았던 것이다.


“방법은 알았는데 이걸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을까...?”


이번에는 자신도 확신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바람을 다루지 못하니 아마 힘들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스스로 바람을 다룰 수만 있으면 되겠구나. 넌 이미 방법을 알고 있다.


“아, 몰라. 죽을 것 같아. 나중에 생각할래.”


‘목소리’는 무언가 더 힌트를 주는 듯했지만 생각할 힘은커녕 더 이상 서있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생각을 그만두고 그대로 대련장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쨍강!


기술의 여파로 진법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무림인 중 일부는 내가 만든 진공으로 인한 인력에 같이 끌려 들어와 높은 곳에 있는 관객석에서 떨어져 바닥을 함께 나뒹굴었다.


─휘오오오오~!!!


진법이 무너지자 주변에 마나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나는 지친 내 몸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이제 좀... 살겠네.”


-고생했다.


내가 사용한 마나는 권능으로 인하여 아예 다른 것이 되어버렸기에 이 빈 공간을 메우고자 평소보다 많은 마나가 몰렸다.


음과 양은 다시 환원되어 질량이 되었다.


‘이게 항상성인가?’


세계 그 자체가 스스로를 유지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힘.

난 방금 그것에 관여한 거다.


‘이딴 위험한 짓거리, 다신 하지 말아야지.’


-나도 동의한다. 남발했다간 관리자에게 불려갈지도 모를 일이니.


‘분명 너 말고 누군가 나를 말렸던 것도 같은데...’


그 ‘누군가’가 대체 누구였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낙원(樂園)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감기는 눈 너머로 보이는 승리를 축하하고자 내게 달려오는 친구들과, 명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그 뒤에 승리란 말을 덧붙이는 심판의 선언을 들으며 나는 만족스럽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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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1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1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59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4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7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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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6 22.10.31 8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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