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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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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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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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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 무림으로 23

DUMMY

그날 저녁, 나는 청명과 함께 냉장고를 털어서 우리가 이곳에 온 첫날보다 더 화려한 식사를 준비했다.

모자란 재료는 데미안에게 부탁하여 유피와 함께 외출할 때 사와 달라고 부탁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요리할 때만큼은 청명의 불꽃이 나의 불꽃보다 우위였다.

불이라고 해도 같은 불이 아닌 것이다.


[권능: 화로의 여신(Vesta)(Rank:SS+)]


「그대, 모두에게 따스한 화로의 여신.

아이들의 성장을 즐거이 여기는 당신의 불꽃은 가정을 지키고 이에 영향 받는 이들을 수호합니다.


-제물을 바칠 때 당신의 불꽃을 사용하면 제물에 특별한 ‘향’이 깃듭니다. 신이라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향’이.」


[권능: 로키의 불태움(Lokabrenna)(Rank:SS)]


「불의 신, 로키의 불꽃입니다.

불꽃의 성질은 ‘변화’

바뀌지 않는 것을 바꾸고 견고한 것의 형태를 일그러뜨리며 죽지 않는 것을 죽일 수 있습니다.


-권능의 주인은 해당 권능의 발동 중, 랭크 이하의 온도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역시 내 불은 주방보단 대장간에 더 어울려.”


청명의 불꽃은 단순히 불꽃의 영향 아래 있는 것만으로 사람을 치유하는 힘이 있었다.


“한... 내년부터는 청명이 내 일을 대신하려나?”


나는 잠시 나의 불꽃 대신 그녀의 불꽃이 세상에 퍼진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그려봤다.


우선 추위나 병으로 인해 죽는 이들이 대폭 감소할 거다.


순간 어린아이한테 너무 큰 짐을 맡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때 지구의 모든 면적이 인간으로 뒤덮이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였던 인구가 이젠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출산장려정책이든 뭐든 해서 어떻게든 그 수를 빨리 늘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들을 장자와 화해시켜 회수임무를 무사히 완수하는 일은 작게는 거처 내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었지만 넓게는 인류의 보존에 크게 이바지하는 행위였다.


“마침내 내 비장의 무기(장자의 주방에서 발견한)를 꺼낼 때가 왔군...”


좋은 술은 간단한 안주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모든 것을 데미안에게 맡기기엔 연장자로서의 체면이 살지 않았다.


뭐, 말을 거창하게 했을 뿐, 내가 할 것은 결국 고기 굽기다.

하지만 그냥 굽지 않는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요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보다는 준비된 재료에 있는 법.”

“오오!”


옆에서 눈을 빛내는 주방 보조(귀여움 담당), 청명에게 열심히 잘난 체를 해봤다.


“처음은 숯.”


불이 귀한 시대인 만큼 숯을 만드는 곳이 많이 줄어들었다.

영원한 겨울로 인해 불은 물론이거니와 숯을 만들 나무마저 귀해죴더.


물론 우리에겐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서 직접 만들었다.

데미안이 폐기하려던 오크통으로 만들었으니 숯의 종류로 따지자면 참숯이리라.


숯을 만들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방법 공기를 차단시킨 다음 가열해 열분해를 일으키고 탄화를 시키는 것인데

알코올이 배어서 그런지 공기가 희박함에도 너무 빨리 타올라 몇 차례나 실패했다.


그래도 향이 일반적인 숯보다는 몇 배로 좋았다.

나는 함께 숯을 만드느라 얼굴에 검댕이 잔뜩 묻은 청명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다음은 불판인데 다행히 이건 주방에 마련되어있었고.”


고기를 구울 불판은 고기에 불 맛이 보다 더 잘 배이게 해줄 극세사 불판.


“유피를 시켜 사온 부위는 안거미살. 보통 토시살로 많이 불리는 특수 부위.”


소 한 마리에 고작해야 300~400g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귀한 부위로 이르기를, 소고기의 가장 원초적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


“소고기의 등급은 A+ 정도인가?”


A++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거기서부터는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 자칫 느끼할 수 있다는 생각에 A+로 시켰는데 다행히 잘 사온 것 같다.


“A+도 경우에 따라 느끼할 수도 있지만 토시살은 다른 부위보다 기름기가 적은 편이니 괜찮을 거야.”


나는 청명이 불을 붙여준 숯에 고기를 구우며 ‘고기를 잘 굽는 남자는 멋있지.’라며 혼잣말했다.

요리에 참여한 자의 특권으로 먼저 한 입을 먹을 권한을 획득한 청명은 내가 건넨 고기 한 점을 먹고는 동의한다는 듯, 엄지를 치켜세우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나=남자, 고기 잘 구움.

나=멋있음.


기적의 공식이 완성됐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 왔다.”


식사준비가 끝나고 대망의 식사시간.

유피와 미나가 먼저 와 자리에 앉았다.

장자는 데미안이 끌고 왔다.


장자를 본 미나와 유피는 전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했지만.


“앉아.”


내 싸늘한 한 마디에 일어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일단 본능적으로 앉긴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왜 내 말에 따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은지 얼굴에 당황이 스친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기에 나는 결국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나와 청명이 하루 종일 준비한 음식을 남기고 가지는 않을 거라 믿어. 그치? 우리는 ‘친구’잖아.”

“쯧!”


그냥 가면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의미가 담긴 내 절박한 협박에 어떻게든 빠져나갈 틈을 찾던 유피는 결국 몸에서 힘을 풀었다.


“나, 나는 어떤 정신적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을...!!”

“뭐.”


미나는 정신적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어깨를 누르는 내 물리적 협박에 저항하진 못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좋아, 착하다.”


나는 그제야 어깨에서 손을 떼고 얌전해진 미나의 머리를 토닥였다.

어떻게든 앉히는 데엔 성공했지만 미나는 장자와 같은 식탁에 앉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닌지 의도적으로 장자가 있는 곳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우중충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시작됐다.

첫날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어디 갔는지 식사 내내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입을 열긴 했는데 이는 고기를 씹을 때 뿐...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다들 체하겠다...’


이런 분위기에서 식사를 계속하는 건 만든 사람에게도 먹는 사람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고기는 맛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나?’


이 방법은 실패한 것 같다며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던 그 때, 이변이 일어났다.

그것은 다들 목이 타는지 물 대신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뭔가...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나는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이냐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한참 잔을 비우던 유피가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로 먼저 입을 연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다. 이렇게 배워왔고 앞으로도 변할 일은 그리 없을 것이다. 우리는 틀리지 않는다. 다음세대의 신인 우리가 하는 것을 무조건 옳으니까.”


평소와 달리 두서없이 말을 하는 유피는 약간 취한 듯 보였다.


“장자여, 그대가 한 것이 우리의 것과 반대된다면 그것은 무조건 틀린 것이 되겠지만 우리와 같은 신인 데미안과 청명이 그대의 방식을 인정했다면 나는 더 이상 이에 대해 관여하지 않겠다.”


그것은 정말 유피가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서투른 말이었다.

아마 태어나서 한 번도 담아보지 않은 무언가를 담았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더욱이 장자는 신이 아니니까...’


아마 이게 유피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유피는 내가 만나본 이들 중 가장 신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건 결코 그가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유피는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재단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신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나 유피는 나와 만나고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꺾어야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세상이 부서져 봤을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나조차 이를 힘겨워했지만, 유피는 어른이었다.

남들보다 성숙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도 ‘옳아’라고 할 수 있는 이였다.


장자가 먼저 사과를 보내는 일은 아마 없을 거다.

용서를 구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으니까.

유피는 그런 그녀에게 나름의 관용을 베풀었다.


이건 유피가 무림에 와 처음으로 무공 이외에 배운 ‘무언가’였다.


-마침내 네가 기름 부은 자가 ‘공의(公義)’로서 완성되었구나. 남은 것은 이제 너의 ‘자비(慈悲)’겠지.


여전히 ‘목소리’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유피의 성장에 대해 말한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마주한 자신보다 명백히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 천마와의 만남이 유피 안의 무언가를 변화시킨 거려나...? 조금 씁쓸하네.’


친구의 성장은 기뻤지만 나로는 안 됐다는 점이. 아니, 나로는 부족했다는 점이 나를 못내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 상황에서 장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젓가락질을 이어갔다.


‘첫날의 능글맞은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기가 팍 죽은 게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언젠가 되갚아주겠다고는 했지만 이런 상황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아직 미나와 장자 사이의 갈등은 메워지지 않았지만 나는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장자가 먼저 사과를 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고 사과도 받지 않은 미나가 용서한다는 건 더욱 말이 안 됐으니까.


나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그러나 객관적으로 봤다.


‘미나는 여러모로 비좁지. 속이 아니라 세상이.’


미나의 세상은 작았다.

엘레나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에서, 무한한 애정을 받는... 그럼에도 결핍을 느끼는 모순적인 세상에서 살았다.


먼저 화해 혹은 휴전을 청한 유피를 보는 미나의 눈에는 언뜻 배신감이라 부를 만한 그런 것이 담겨있었지만 유피는 어른스럽게 이를 무시했다.


‘그러고 보면 장자와 가장 친했던 건 미나였지. 가장 상처받은... 아니, 실망한 것 또한 미나일 테고.’


다만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그 본인에게도 상당한 부담을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미나는 술잔에 술을 따르고 그걸 슬그머니 장자 쪽으로 밀었다.


책상 위를 부드럽게 질주한 술잔은 술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확히 그녀 앞에서 멈추었다.

장자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이것이 미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화해의 제스처란 걸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았다.


우리는 그렇게 밤새 술을 마셨다.

청명이 꾸벅꾸벅 졸기에 방으로 데려다 주고자 잠깐 자리에서 일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졸리면 식탁에 머리를 박고 곯아떨어졌다.

데미안은 오늘 처음 술을 마시게 됐다는 모양이다.


나는 장자가 식탁에 엎어져 잠을 잠에도 아직도 계속 술잔을 나누는 미나와 유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첫날 장자가 내게만 했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아 같이 의논하는 게 맞았을지 모른다고.

그저 나와 다른 교육을 받았을 뿐 서로 영원토록 이해 못할 관계는 아니라고.


‘달다...’


아까의 씁쓸한 기분은 거짓말인 것처럼 술이 달았다.

유피 옆에서 잠이 든 데미안의 얼굴에는 만족이란 감정이 선연했다.


하나, 둘 술기운을 못 이겨 자리에 쓰러지고 마지막까지 남아 잔을 나누는 건 미나와 유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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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2 22.11.18 61 2 16쪽
211 12장. 스승의 은혜는(The teacher's favor) 1 22.11.15 60 2 18쪽
21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6 +2 22.11.14 55 4 18쪽
209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5 +1 22.11.13 62 3 13쪽
208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4 22.11.12 59 2 14쪽
207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3 22.11.11 72 3 16쪽
206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12 22.11.08 67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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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11장. 신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6 22.10.31 8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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