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윤필담 님의 서재입니다.

탈명구세(奪命救世) 훔친 운명으로 세상을 구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윤필담
작품등록일 :
2019.11.17 20:41
최근연재일 :
2021.01.13 13:49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85,967
추천수 :
1,521
글자수 :
305,543

작성
19.11.25 12:11
조회
4,310
추천
52
글자
11쪽

2. 자각(自覺)(2)

DUMMY

절벽 아래로 내려온 이심도가 주위를 살피는 사이, 강시는 수명이 다해 바스라지고 말았다.

순수하게 기억을 뽑아낸 것도 아니고, 백을 기화(氣化)하는 와중에 남은 조각난 기억으로 부린 술수에 긴 수명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기에 아쉬울 것도 없었다.


아니, 애시당초 그런 술법으로 이정도나마 강시를 움직이게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대단하다 할 것이었다.

여기서 이심도는 본래의 자신이 술법에 대단한 소견이 있었으리란 것을 짐작해낼 수 있었다.

비록 도백연혼강령 외에는 어떠한 술법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참동안 주변을 살폈으나, 몇몇 시체외에는 적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전투 후, 흔적을 정리하느라 절벽 아래로 던져버린 모양이었는데, 지금의 이심도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시체는 그에게는 영약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체들에게서 백을 뽑아낸 이심도는 조심스럽게 나무 위로 올라가 기화하기 시작했다.


"후... 고작 이정도인가?"


시간이 제법 흐른 탓인지 기화된 양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기엔 충분했다.

여유를 가진 이심도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빼곡히 들어선 숲. 그것이 이심도의 시야에 보이는 전부였다.


좋게 말하면, 적과 마주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나쁘게 말하면,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은 결코 이심도의 편이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복귀하지 않는다면, 적들이 무슨 수를 쓸지 몰랐다.


적들은 분명 술법(術法)의 달인들이 분명했고, 본인이 없는 상황에서 이심도의 신분을 사칭하고 일을 벌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일이 벌어지면, 결국 모든 것을 뒤집어 쓰는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심도는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자리에서 고민해봐야 바뀔 것은 없는 상황.

설령 늦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시간에 움직이는 것이 나았다.


◆ ◆ ◆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심도는 절벽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나마 숲속에는 과일이나 동물들이 상당수 있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절벽위를 둘러보니, 그 사이 적들이 모두 철수한 모양인지 적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한 끝에 이심도는 길을 따라 걷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며칠간의 숲속 생활은 이심도의 외형을 사냥꾼의 그것과 흡사하게 바꾸어 놓은 상황이었고, 기질 역시도 도백연혼강령의 영향으로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렇기에 누군가 알아볼 걱정은 안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초행길이라 어느 방향으로 가야 관청으로 갈 수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길을 따라 가다가 누군가 만나길 바래야 하는 셈이었다.


잠시 걸었을까? 이심도는 인기척을 느꼈다.

최대한 인기척을 줄이는 것이 습관이 된 자, 살수이거나 사냥꾼의 움직임이었다.

영력을 일깨운 이심도가 아니었다면 쉽사리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을 지운 자.

어느 쪽이든 대단한 실력자였다.


이심도는 그와 마주하기 전 자신의 모습을 잠시 살펴보았다.

숲속에서 동물을 잡고, 그 가죽을 버릴 수 없어서 온몸에 걸친 상태.

무기는 시체에서 수거한 창과 박도였다.

사냥꾼 치고는 무기가 다소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와선 어쩔 수 없었다.

창이나 박도는 가죽으로 감싸고, 활은 부러져서 버렸다고 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게 몇가지 부분에 대해 변명거리를 준비한 이심도는 자연스럽게 길을 걸어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눈앞에 한 남자가 보였다.

전형적인 사냥꾼의 복장을 하고, 자연스럽게 기척을 죽이고 있는 남자였다.


이심도는 걸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시오."


그대로 지나가려던 남자는 이심도의 인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안녕하시오. 보아하니 처음 보는 얼굴이군?"


"하하, 그런 셈이오. 제법 멀리서 온 셈이라."


"그런 것 치곤 성과가 좋은 듯한데? 그쪽이 걸치고 있는 가죽들... 다 최근에 잡은 것 아니오?"


남자는 한 눈에 가죽들이 최근에 잡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제대로 작업을 거치지 않았다지만, 이렇게 짧은 순간 눈치채다니.

이 부분에서 남자가 사냥꾼으로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운이 좋았지요. 그건 그렇고, 괜찮다면 길 안내 좀 해주실 수 있겠소? 이 가죽들을 이리 들고 다닐 수 도 없는 노릇이고... 차라리 빨리 넘겨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은 가게로 안내해주면, 내 수고비조로 이 토끼가죽 하나 넘겨드리리다."


"음... 뭐 좋수다. 그렇게 하겠소. 잠깐 안내해주고 이렇게 질 좋은 가죽 하나 생기면 나야 이득이지."


남자는 흔쾌히 이심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남자가 보기에 이심도의 가죽에는 상처 하나 없는 것이 꽤나 고급이었고, 그정도면 용돈벌이 치고는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오."


남자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이심도가 군말 없이 뒤 따르자, 남자는 심심한지 말을 걸어왔다.


"이쪽으로 넉넉잡고 반나절 정도 걸어가야 걸어가야 하는데 통성명이나 하는게 어떻겠소?"


"하하, 좋소. 나는 이심도라고 하는 사람이오. 제법 먼 곳에서 왔다오."


이심도는 상대의 반응을 보고자 자신의 본명을 이야기했다.

적이라면 분명 무언가 반응이 있을 터.


"그렇군. 나는 왕하염(夏炎)이라는 놈이오. 사냥일로 먹고 살고 있지."


"둘다 사냥꾼 치고는 제법 고급스러운 이름이구만."


그 말대로였다.

문자를 아는 사람이 아주 드문 시대.

제법 세가 있는 집안이 아니고서야 태어난 순서대로 숫자를 붙여서 이름을 정하는게 대단히 흔한 시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숫자가 아닌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사냥꾼이라면 더더욱.


"내 부모가 조금이나마 글을 알고 있었다오. 아주 더운 여름에 태어났다고 저런 이름을 붙여줬지. 그쪽은?"


"흠... 나는 아비가 벼슬하던 양반이었소. 다만, 워낙 어린시절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먹고 살 궁리를 하다보니 이리 사냥꾼이 되어버렸지."


실제로 그러했다.

이심도는 학문을 하는 한편 먹고 살 방편으로 주기적으로 사냥을 해서 돈을 벌었다.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익히고 있던 그에게 있어서 사냥이란 그럭저럭 할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의심받지 않을 수준의 가죽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고.


"허어, 명문가셨구만."


"명문가는 무슨... 진짜 명문가였으면, 벼슬일 하던 집 자제가 이런 꼴로 다니겠소? 그나마 제법 튼튼한 몸을 타고 나서 이렇게라도 먹고 살만 하니 그건 감사할 일이지."


"뭐 그건 그렇소만, 그런데 그 가죽 상태를 보아하니 어디가서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을 실력으로 보이는데, 이 외진 곳에는 무슨 일이오?"


왕하염은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져왔다.

이심도가 그런 것처럼 그 역시도 이심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어쩐 일이긴 사냥꾼이 사냥감을 따라 오는 것 아니겠소? 이번에 호랑이 가죽을 하나 구해달란 의뢰를 받았는데, 내가 있는 동네에선 구할 바가 없더이다. 이쪽에 대호가 있다는 소문을 들어 이곳까지 오게 된거요."


절벽 아래 숲을 지나던 이심도는 대호의 발자국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왕하염의 말에 그 발자국을 떠올린 이심도는 그것을 변명거리로 삼은 것이다.


"흠... 대호라 그런 흔적이 있긴 했지."


아니나 다를까, 왕하염은 이심도의 말을 납득한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길을 따라 걸었다.

서로의 사냥 이야기를 하다보니 빠르게 친해지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두 사람은 서로 약간의 심리적인 간격은 유지했다.

둘 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기에 약간의 거리를 둔 것이다.


"이제 다와가는 군. 저기 언덕만 넘으면 왕가촌이오."


"호, 왕가촌이라... 왕형의 일족이 사는 마을이오?"


"하하. 뭐 성씨야 같긴한데... 나도 사실 젊은 시절에 타지에서 넘어온 셈이라... 일족이라고 보긴 무리가 있다오. 뭐 타성을 쓰는 사람보다야 조금 쉽게 적응한 게 있긴 하오만, 아무튼 내가 거래하는 상점도 안내해드리리다. 그정도면 가죽 값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오. 이형."


"물론이오. 사실 가죽 하나가지곤 부족한거 같은데... 밥이라도 한끼 더 사리다."


한참을 걸어오면서 느낀바, 왕하염은 제법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였다.

금제(禁制)를 걸은 모양인지 기의 흐름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동작 하나 하나에 어떠한 낭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즉, 고도의 수련을 거친 몸이라는 것.

게다가 모든 움직임이 존재감을 최소화하는 것은 살수로 훈련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설령 기를 다룰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적으로 둬선 안될자.

적아를 확인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그렇기에 이심도는 값을 다 치르지 못했다는 핑계로 한번 더 붙잡은 것이고.


밥을 사겠다는 이심도의 말에, 왕하염은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가죽을 모두 팔아넘긴 후, 마을 어귀에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이곳이오. 이 마을 유일의 객잔. 술도 팔고, 음식도 팔지."


"아 그렇군. 여튼 덕분에 가죽 값을 잘 치른 것 같으니... 내가 한턱 내겠소."


"나야 좋지. 여기 술한잔 하고 안주거리 좀 내주시오."


애매한 시간에 들어온 모양인지, 객잔에는 손님이 전혀 없었다.

흔히 있을 법한 점소이조차도 없는 상황. 왕하염은 자주 온 모양인지, 알아서 자리로 가더니 목소리를 높여 간단하게 주문을 했다.

잠시 후,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술 한병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꺼내왔다.


"왕씨 왠일로 오늘 또 온거요? 다음달이나 올줄 알았더니."


"여기 이 친구한테 길 안내를 해주러 왔다가, 잠깐 들렀지. 이 친구가 오늘 가죽을 많이 팔았으니 솜씨 좀 부려보게. 괜찮겠지 이형?"


이심도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은 주방으로 물러났다.


"자, 그건 그렇고 슬슬 할말을 꺼내보게. 할말이 있는 것 같은데..."


주인이 물러나자 왕하염은 곧장 찔러들어왔다.

이심도 역시 더이상 말을 돌리지 않고 곧장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나는 사냥꾼이 아니오."


"그야 짐작했던 일이고."


"허... 짐작했단 말이오? 전혀 티를 낸 것 같진 않았는데?"


왕하염의 말에 이심도는 조금 놀랐다.

자신은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눈치 챈거요? 무기? 무기가 좀 고급스럽긴 해도..."


"아니오. 당신의 무공이지. 당신 정종의 무공을 수행한게 분명한데... 그런 자가 사냥꾼을 할리가 있겠는가?"


이심도가 눈치챈 것 처럼 왕하염 역시도 이심도의 무공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본래 이심도가 익힌 무공은 유가(儒家)의 절학으로 정심하기 이를 때가 없는 무공이었다.


정종(正宗)의 무공이란 것은 제 위력을 발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에 어지간한 여건으로는 소성을 이루기도 어려웠다.

즉, 정종의 무공을 젋은 나이에 일정단계 이상 익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재력이 있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사냥꾼을 할리도 없었고.


작가의말

오늘도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시는 동안, 재미를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유가 되신다면,
선작/추천/댓글 부탁드립니다.
꾸벅.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탈명구세(奪命救世) 훔친 운명으로 세상을 구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탈명구세 설정 : 육대기법(六大氣法) 20.03.27 488 0 -
공지 제목이 변경되었습니다.(본래 제목 : 사귀구세) 20.02.24 347 0 -
공지 수정사항 공지 20.02.17 801 0 -
81 80. 팔대절학(八大絶學) (6) 21.01.13 104 3 7쪽
80 79. 팔대절학(八大絶學) (5) 20.12.28 121 1 7쪽
79 78. 팔대절학(八大絶學) (4) 20.12.14 146 2 7쪽
78 77. 팔대절학(八大絶學) (3) 20.11.17 205 3 7쪽
77 76. 팔대절학(八大絶學) (2) 20.11.04 212 4 7쪽
76 75. 팔대절학(八大絶學) (1) 20.10.19 273 6 7쪽
75 75. 귀존(鬼尊) (6) 20.10.05 255 5 12쪽
74 74. 귀존(鬼尊) (5) 20.09.29 256 4 7쪽
73 73. 귀존(鬼尊) (4) 20.09.22 269 5 7쪽
72 72. 귀존(鬼尊) (3) 20.09.16 290 5 7쪽
71 71. 귀존(鬼尊) (2) 20.09.07 441 5 7쪽
70 70. 귀존(鬼尊) (1) 20.08.31 345 5 7쪽
69 69. 재생(再生) (5) 20.08.28 332 6 7쪽
68 68. 재생(再生) (4) 20.08.23 343 5 7쪽
67 67. 재생(再生) (3) 20.08.17 361 5 7쪽
66 66. 재생(再生) (2) 20.08.09 379 5 7쪽
65 65. 재생(再生) (1) 20.08.05 397 6 7쪽
64 64. 기억(記憶) (6) +2 20.08.03 382 7 8쪽
63 63. 기억(記憶) (5) 20.08.02 387 9 7쪽
62 62. 기억(記憶) (4) +2 20.07.24 393 12 7쪽
61 61. 기억(記憶) (3) 20.07.12 427 14 8쪽
60 60. 기억(記憶) (2) +1 20.07.04 458 15 7쪽
59 59. 기억(記憶) (1) 20.06.28 462 10 8쪽
58 58. 마련(魔聯) (10) 20.06.22 415 11 9쪽
57 57. 마련(魔聯) (9) 20.06.15 391 13 8쪽
56 56. 마련(魔聯) (8) 20.06.07 424 13 7쪽
55 55. 마련(魔聯) (7) 20.05.31 441 12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