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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여운형을 중심으로 한 중도파의 건국준비위원회가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미 군정청의 승인을 받지 못한 건국준비위원회는 곧 세력을 잃었고 여운형에게 자금을 대던 이진만의 대동광업은 여운형이 암살당한 뒤 즉시 몰락했다.
이승만의 저택(이화장)보다 더 호화스러운 경교장을 김구에게 제공했던 최창학은 해방 전 금광개발로 거부가 된 사람이었다.
친일파였던 그는 일제에 협력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속죄하는 의미로 저택을 내놓았지만 알다시피 김구 역시 암살되었다.
최창학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탈세 혐의를 받고 망해 버린다.
이에 반해 이승만을 처음부터 지지했던 태창직물의 백낙승은 이승만이 정권을 잡은 뒤 일본인이 운영하던 영등포공장을 특혜로 불하받았다.
오늘날 타임스퀘어 자리에 있던 방림방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수출업자가 군침을 흘리던 홍삼의 독점판매권까지 차지하여 순식간에 재벌로 부상했다.
이렇듯 우리나라 재벌의 형성은 결코 정치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좋다 나쁘다 의 판단을 떠나 국가 경제에 재벌이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였다.
196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재벌이라 부를 수 있던 기업집단으로는 이병철의 삼성그룹, 정재호의 삼호그룹, 김연수의 삼양, 구인회의 락희, 김성곤의 금성, 그리고 박흥식의 화신 정도였다.
급속도로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60, 70년대는 현재 한국 사회를 주름잡는 대재벌이 몸집을 갖추는 데 있어 최고의 시기였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어지는 신군부의 80년대에도 크고 작은 재벌들이 탄생하였고 스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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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대를 살다가 1960년에 환생한 한 사나이의 재벌을 향한 야망을 쓴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정경유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만큼 정치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지만 될 수 있는 대로 경제적인 측면을 주요 소재로 삼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 글 속에는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등 여러 재벌총수의 에피소드가 녹아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등장하는 인물과 기업들은 대부분 실명을 그대로 썼으나 일부 가명 처리한 부분도 있으니 유념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사투리는 특별한 경우에만 썼으며 표준말로 통일하였습니다.
각 년도 별 화폐 가치 산정에서는 부동산과 같이 폭등한 품목이 있는 반면 쌀이나 여타 생필품처럼 상대적으로 덜 오른 것도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있는 계산표를 이용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글은 사실에 근거를 두었을 뿐 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소설이며 본문에 등장하는 지명, 인명, 기관명 등은 소설 배경으로 사용될 뿐 실제와 관련이 없음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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