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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순덕님의 서재입니다.

드럼 더 드림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순득이
작품등록일 :
2022.05.19 16:42
최근연재일 :
2024.04.18 16:27
연재수 :
50 회
조회수 :
1,122
추천수 :
17
글자수 :
227,543

작성
22.06.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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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도서관의 그놈

DUMMY

“유나야!”


잠이 확 깨는 목소리였다. 베개에 머리를 ‘콩’ 하니 박으며 일어난 유나는 비몽사몽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꿈인가 하고 다시 누우려는데 눈앞에 머리가 쑥 내려왔다. 검은 동자가 뒤로 넘어가 흰자위만 보이는 눈으로 유나를 매섭게 쳐다보는........


‘이건 필시 가위눌림이야! 움직여야 해!’


유나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


엄지손가락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움직였다. 질끈 감은 눈을 살짝 올려 앞을 보다 흰자위의 눈과 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으악!”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소리 언니가 유나의 무거운 아침잠을 확 날려 주었다.


“긴 줄이 매어져 있어.”


“주 줄이?”


저도 모르게 유나가 소리의 말을 따라했다.


“그걸 끊고 나가야 하는데.........”


소리는 말을 끊고 가만히 유나를 쳐다봤다.


“나가야 하는데......”


'따라 말하라는 거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계속 거기에 매달려 발버둥치는 게 보여.”


“내가?”


생각보다 유나가 소리의 말에 집중했나보다.


“끈을 끊어야 해!"


이상한 말을 남기고 소리는 다시 침대에 누워 아기처럼 맑은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이래서 엄마랑 이모가 점집에 가는 걸까?'


‘뭔가 심오한 것 같으면서 디게 찜찜하고, 또 딱히 맞지도 않은데, 무시하자니 걸리고....... 에이 모르겠다.’


유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막 변기에 앉으려는데,


"쾅쾅, 유나야 학교가자"


서리의 씩씩한 목소리가 문을 두드렸다.


“잠깐만!”


유나는 서둘러 얼굴에 물을 뭍이고 나왔다.




"정말? 정말 룸메가 무당이야?"


서리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는데, 아 진짜 무서워."


"나도 점 봐달라고 할까?"


서리가 강한 호감을 보였다. 방을 바꾸자고 할까? 유나는 간절하게 원했다.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안녕!"


이제는 벤치에 누운 정재를 보는 게 자연스러웠다. 자연스레 인사하며 지나가자, 서리는 정재를 잘 모르는데도 따라서 손을 흔들었다. 예의바른 정재는 누운 채 손을 높게 흔들며 인사했다. 인물이 아까운 놈!


오늘은 웬일인지 딱히 밥 생각이 없어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서 바로 앞 벤치에 앉았다. 무념무상 멍하니 기계처럼 김밥의 포장지를 벗기다 언덕위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지?”


투명한 피라미드 같기도 하고, 유리로 된 외관이 햇빛에 비춰 반짝이는 게 아니라 희미하게 보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건물이 있다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고대의 비밀을 간직한 건축물처럼 보였다. 호기심 많은 유나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남은 김밥을 입속에 잔뜩 밀어 넣고 벌떡 일어났다.


‘첫 수업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학교 산책 겸 한번 가보자!’


뭐지? 이제는 혼잣말까지 하는 게........ 아침부터 힘든 하루였구나 싶었다.


언덕길이라 조금 올랐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급하게 넘긴 김밥이 뱃속에서 춤을 추는 듯 부글부글 속도 안 좋은 것 같았다. 다시 내려갈까? 조금씩 후회의 물결이 밀려왔다.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헉헉대며, 간신히 도착하니 그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보며 상상했던 것보다 작고 예뻤다. 학과 건물로는 보이지 않고, 식물원이나 작은 카페테리아 같은 외관이었다. 팔짱을 끼고 눈으로 빙 둘러봤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입구 옆 표지판에 Library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학교 도서관을 몇 달 만에 처음 와보다니.......’


책 좋아하던 유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참! 나 책 좋아했었지."


고등학교 때도 교내 도서관을 뺀질나게 드나들던 유나가 어색하게 도서관 문을 밀었다.


하얀색 대리석 바닥이 차분하게 반겼다. 조용함을 넘어 차가운 공기에 소름마저 돋는 희한한 곳이었다.


"아무도 없어요?"


짓다 만 공사장처럼 불완전한 느낌이었다. 괜히 큰소리로 한 번 더 외쳤지만 차가운 대리석 벽면과 바닥에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며 되돌아 올 뿐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살인이 나도 아무도 모르겠네......."


본인이 말하고도 흠칫해서 주변을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도서관과는 다르게 의자나 책상처럼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긴 테이블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1층과 서적이 있는 2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하얀 대리석 바닥 위 긴 테이블 위로 시체가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마치 영안실 한 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으으으 추워!”


괜히 큰 소리를 내며 1층에서 도망치듯 계단으로 올라갔다. 유나의 발소리가 울리며 뒤에서 누가 따라 올라오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빨리 뛸 수 있다니 살이 2킬로는 빠진 것 같았다.


2층은 신세계였다. 책장이 끝이 보이지 않게 줄지어 있었고, 높기도 엄청 높았다. 유리로 된 벽면은 밖에서는 흐리게 보였지만 안에서는 바로 옆 산이 환히 보였다. 날씨가 좋았으니 다행이지 어둡거나 구름이 많았으면 당장 비명을 지르고 달려 나갔을 거다.


지금까지 유나는 사람 구경도 하지 못했다. 대학교에 무인 도서관은 처음 들어봤다. 이용자가 없어 관리는커녕 방치한 공간인 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 새 것 새 것 한 곳을 왜 아무도 안와?’


책상을 쭉 살펴보니 책 분류도 잘 되어 있었다. 아무 책이나 한 권 뽑아 들었다. 칼칼한 표지가 막 인쇄소에서 나온 듯 했다. 새 책 냄새가 가득한 이곳이 좋은 아지트가 될 수도 있지 싶었다. 무섭지만 않으면 말이다.


‘서리는 문창 과니까 다음에 서리를 좀 데려올까?’


생각하며 평소 좋아하는 소설류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이 있었다. 고전부터 베스트셀러까지 다 있었다. 그동안 본 학교 도서관이나 시립 도서관의 꼬질꼬질한 책이 아닌 구김 하나 없이 판판한 새 책들이라 설레기까지 했다. 어느새 두려움은 저 편으로 사라지고 책들에 빠져들었다. 평소 취향대로 유혈이 낭자한 장편이 가득한 공포소설을 골라 아예 퍼질고 앉았다.


"아~ 나 진 유 나였지. 이게 원래 나였는데........ "


편안함에 나도 모르게 소리가 크게 나왔다.


"후후"


'뭐지? 잘못 들었나?'


으슬으슬 소름이 돋았다.


"크크"


더 또렷이 들려왔다. 기분 나쁜 웃음소리


놀란 유나가 벌떡 일어났다. 탁 하고 떨어지는 책 소리와 동시에


"너구나"


휙 하고 뒤돌아보니, 끝 쪽 창가에 이상한 놈이 기대어 보고 있었다. 입술을 실룩이며,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 빠진 청바지에 한쪽만 길게 뺀 셔츠와 단추를 반쯤 풀어 보이는 가슴팍이 인상 깊었다. 키가 큰 남자는 쓱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깍아놓은 듯한 턱 선이 날씬한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게 남자다워 보이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진 유 나"


'진짜 내 이름을 부른다. 뭐지? 사람 없는 이곳에서 나 무슨 일 당하는 거 아냐?'


러브러브한 소설을 보는 건데 하필 유나는 방금 전 공포소설을 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살인사건의 장면이 연상되었다.


"누....누 누구세요?"


생각보다 목소리가 컸다.


"누구세요?"


키득 대며 따라 말하니 더 소름이 돋았다. 그놈은 점점 더 유나에게 다가왔다. 다리가 얼어붙어 뛰어 도망가는 게 불가능했다. 사람은 너무나 공포스러우면 아무것도 못한다더니 유나는 절망했다.


"내가 무서워?"


재밌다는 듯이 히죽대며, 더 천천히 다가왔다.


"아, 진짜....... 장난치지 마세요."


유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까이 오면 한 대 칠 생각에 주먹을 꽉 쥐고 약하게 보이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노려봤다.


"하하하"


못 참겠다는 듯 그놈이 크게 웃었다.


도서관을 가득 울리는 웃음소리는 이상하게 안도감이 주었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 누구세요?"


"도서관에 책 읽으러 온 학생이지."


"그쵸! 여기는 라이브러리, 도서관이니 도서관에 책 보러 왔겠죠. 내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거야? 그러니까. 그런데, 왜 웃고 그러냐고요"


"웃기니까 웃지. 너 방연과지?"


"저 아세요? 맞다. 저 이름도 아는 것 같던데"


"머리는 노란색으로 바뀌었어도 얼굴이 인상 깊어 기억하지."


뭔지는 몰라도 욕 같았다.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그러니까 그쪽은 누구냐고요?"


"나, 방연과 동기 나태준. 너보다 한살 위. 오빠라 불러라."


"헐 동기였어요?"


"내가 쉽게 잊혀 질 얼굴은 아닐 텐데. 생각보다 머리가 좋지는 않구나."


"그거랑 머리랑 무슨 상관인데............요."


"오빠~"


태준이 강조했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오빠”


태준이 입을 동그랗게 말고 바로 옆에서 말했다. 입김이 닿자 가슴이 두근댔다. 유나는 쓸데없이 자주 반하는 자신을 알기에 빨리 털어버리려 더 툭툭대며 말했다.


“근데, 도서관 자주 와.......요? 여기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하얗고 긴 머리의 도인이 손에 칼을 쥐고 노려보는 표지를 곁눈질하며, 유나가 물어봤다. 태준은 더 잘 보이게 책을 흔들어 앞에다 대고,


"내 취향. 너도 뭐 만만치 않은 것 같던데.“


태준은 유나가 집어던진 책을 가리켰다. ‘한 밤의 살인사건’ 책의 표지는 피로 가득했다. 괜히 부끄러워진 유나는 몸으로 책을 가렸다.


“난 여기가 마음에 들어서. 여기서 처음 본 학생이야. 너."


"개강하고 두 달이 더 지났는데, 도서관에 아무도 안와요?"


"너도 처음 왔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러네요. 오빠.. 아니 이름이 뭐랬더라?"


유나의 입에서 ‘오빠’가 나오자 태준의 입고리가 올라갔다.


“그냥 오빠라 불러. 참! 너 영웅이랑 친한 것 같더라.”


“선배한테 이름 막 부르고 그래도 돼요?”


영웅이란 말에 유나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애써 밝게 말했다.


“그래도 돼. 걘. 암튼 조심해! 질이 좋은 애는 아니야.”


태준은 심각한 얘기를 툭 하고 던지고는 다시 창가에 기대 앉아 읽던 책을 들었다.


“오빠는 영웅 선배 어떻게 알아요?”


호기심에 유나는 태준에게 친근함을 표시하며 가까이 갔다.


“난 치근대는 여자는 딱 질색이다!”


“뭐래.”


기분이 나빠진 유나는 팩하고 원래 자리로 가 주저앉았다.


“참! 너 이빨에 김”


태준이 손가락으로 앞니를 가리켰다.


“네? 뭐?”


‘아 진짜!’


유나는 좀 전에 하필 삼각 김밥을 먹은 자신을 원망하며 혀로 열심히 이빨 사이의 김을 찾아 헤맸다.




이지 예술 대학교. 처음 들어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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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존의 비밀 22.11.24 21 0 9쪽
42 2학기의 시작 22.11.17 18 0 9쪽
41 이. 사. 장 22.11.10 18 0 10쪽
40 차원의 문 22.11.03 17 0 9쪽
39 진실 22.10.27 15 0 9쪽
38 사라졌다! 22.10.24 16 0 10쪽
37 붉은 문 22.10.06 19 0 9쪽
36 삼각관계? 22.09.29 16 0 9쪽
35 비밀 회동 22.09.26 17 0 9쪽
34 살과의 전쟁 22.09.22 15 0 10쪽
33 우린 너무 달라요. 22.09.19 17 0 10쪽
32 어리석은 선택 22.09.15 19 0 10쪽
31 요즘사람 나중사람 22.09.08 17 0 11쪽
30 끊어낸다는 것 22.09.01 20 0 9쪽
29 머니 22.08.29 20 0 10쪽
28 이사장과의 우연한 만남 22.08.25 24 0 10쪽
27 태준과 영웅 22.08.22 24 0 11쪽
26 농가 22.08.18 24 0 10쪽
25 이상한 절 22.07.25 26 0 11쪽
24 프로 민폐녀 22.07.21 20 0 11쪽
23 불편한 동거 22.07.18 27 0 10쪽
22 MT 2 22.07.14 20 0 10쪽
21 MT 22.07.11 2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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