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고양이가 떠난 이유
"애옹."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가 남자에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여기에?"
"애, 옹."
"네? 모르겠다고요? 흠. 원인 불명의 결과라! 좋아요, 바라는 게 있나요?"
"애애옹."
"지금 아빠의 행복을 빌겠다는 건가요?"
"애오옹!"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는데 동의하면 강제 진행하겠습니다?"
"애애오오옹?"
"후후후."
남자는 웃었고 고양이는 갑자기 사라졌다.
***
인류는 '무지개 다리'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자신의 반려 동물이 세상에서 떠나면 무지개 다리를 건너 좋은 곳으로 간다 여기게 된 것이다.
그렇게 무지개 다리가 생겼다.
다리 너머 고양이 별, 강아지 별 등이 생겨났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고양이들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
그 무지개 다리가 한 고양이의 소원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아바타를 지닌 '그'가 오랜만에 흥미를 가지고 일하게 된 것.
그래서 무지개 다리는 다른 별들을 통합, 다리가 아닌 별이 되었다.
무지개 빛으로 총천연색 반짝반짝 빛났다.
무지개 다리를 관리하던 그는 무지개별의 성좌가 되었다.
그가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성좌전(星座典)'이란 재미난 놀이를.
***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칠흑 같은 공간 가운데서 점등.
이내 충분히 밝아진 공간, 거기서 그가 등장했다.
이목구비 없는 새하얀 얼굴 가면을 쓴 그는 특징을 잡기 어려운 음성으로 말했다.
[무지개별 관리자 : 아, 아. 채널 테스트. 1350 아시아 채널 새로 열었습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가면에 두건까지 두른 것이 비밀 결사의 모임 같다.
[ㅁㅁㅁ : 굳이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입장 절차를 거쳐야 합니까?]
탁!
그의 핑거 스냅에 질문을 던진 이가 쫓겨난다.
[무지개별 관리자 : 다들 기본은 숙지하고 참가 바랄게요.
그리고 이름 설정 유의하세요.]
이런 채널이 처음이 아닌지 질문을 던지는 이는 없었다.
[1350 아시아 채널에서 펼쳐질 성좌들의 의식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모두 업(業) 그러니까 카르마(Karma,कर्म) 얻으러 오신 거 맞죠?
짧게 설명하죠.
여러분은 참가자와 동의를 얻어 계약을 할 수 있습니다.
배후성(背後星)이 되어주는 계약입니다.
참가자는 성좌전의 도전자가 되어 카르마를 얻게 됩니다.
도전자는 계약 이후부터 하는 모든 행동의 인과가 계산이 되고.
그 인과는 카르마로 축적됩니다.
배후성은 도전자의 카르마를 나눠 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배후성이 되어 최종 목표를 설정해주세요.
최종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투자하신 카르마를 전부 되돌려 받습니다!
효율적인 카르마 투자를 위한 방안, 과제.
그 과제도 주실 수 있습니다.
과제 성공을 통해 도전자를 강화시켜 보세요.
강한 도전자일 수록 얻는 카르마는 늘어나겠죠?
자, 그럼.]
조용한 가운데 다시 손짓.
그들의 심상으로 화면이 전송된다.
[무지개별 관리자 : 참가자 선정을 위한 관측 시작하겠습니다.]
***
예전에는 크게 번화했을 법하지만 지금은 미처 그 북적임을 되돌리지 못한 도시.
그는 그 도시의 성세를 느끼지 못한 세대다.
그런데 도시가 다시 소란을 찾아간다.
추레한 행색으로 짐을 잔뜩 들고서 도시로 들어서는 이들이 보인다.
도시로 들어가는 난리 통에 부모를 잃은 아이, 자식을 잃은 부모가 서로를 찾는다.
하지만 도움을 주는 이를 찾기가 어렵다.
그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되려 즐거워 한다.
그렇게 도시에는 고아가 그리고 거지가 자연스레 생겨난다.
그런데 거지는 늘어나는데 거지들의 벌이는 되려 줄었다.
그는 해결 방법을 찾았다.
매듭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한 핍박으로.
매듭이 없는 거지들은 맞으면서 배운다,
자연스레 착취가 시작된다.
[명품이 된 장난꾸러기 : 좀 더 봐야겠지만 벌써 향기가 도는데요?]
[라틴 꽃순이 : 구린 곳에서도 꽃은 피기 마련이지요.]
[원조 바람둥이 : 수가 곧 힘이야! 뭐라도 잔뜩 챙길 수 있겠어.]
==
들판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모여있다.
남과 북에는 다른 깃발을 맨 기수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서로의 진영에서 말 탄 무사들이 도를 들며 달려들기 시작.
북쪽에 있던 그도 선봉을 따라 말을 타고 뒤따른다.
사이에 낀 빈약한 장비의 사람들은 비명과 함께 쓰러져간다.
반나절의 시간이 흘렀다.
헤아리기 힘든 시체와 미처 죽지 못한 부상자들만이 남겨졌다.
결착은 나지 않고 그렇게 그를 비롯한 무사들의 전공이 남았다.
그리고 주변을 배회하던 까마귀들이 식사를 기대한다.
[중원 황제 스타트 : 여기는 수레만 요란한 거 아닌가?]
[낫과 망치의 건국자 : 토박이 성좌들이 자리에 없는 것 같군.]
[사상 최악의 짝불알 : 센고쿠 채널이나 메이지 채널에서 틀어박혀 안 나오나?
알려주러 가볼까?]
==
산의 모양새가 험준한데도 사람들이 북적이며 모이고 있다.
도사들로 보이는 이들의 웃음은 개운치 못하다.
중간에 무기를 풀어야 하는 곳에서는 실랑이가 펼쳐진다.
오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서로 때의 어수선함을 강조한다.
적지 않은 수의 아이들도 함께 오르고 있다.
그는 아비의 심상치 않은 얼굴에 또래들이 오는 것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동부의 왕 비기 : 아, 여기가 바로 그 세계인가?]
[엑스칼리버의 주인 : 우리 성흔도 그러면 무공 형태로 전해지겠군요.]
[비밀교단의 명존 : 맘에 드는데 체험판 없습니까? 체험판?]
따악.
체험판을 외친 이는 쫓겨났다.
==
피 튀기는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칼을 든 사내가 다른 사내를 베어 피를 칠한다.
여성들은 줄에 묶여 넓은 곳에 모여있다.
마을을 찾아 왔던 그는 먼 거리에서 숨죽여 지켜보기만 한다.
시간이 지나도 마을로 오는 이는 더 이상 없다.
여자들을 끌고 마을을 떠나는 붉은 사내들만이 있다.
[창천이사 황천당립 : 흔한 장면인데 보여준 이유가 있겠지요?]
[중원 황제 스타트 : 지켜 보던 이를 보라는 거지? 누군지 다시 살펴봐야겠군.]
[거짓말 장인 : 아 느낌이 없어, 느낌이!]
==
거대한 성벽을 지닌 화려한 궁전.
그 바깥, 거리에는 사람이 다니지 못하고 있다.
불이 꺼지지 않는 궁전의 창 밖으로 드문드문 불 꺼진 도시의 건물들이 보인다.
궁성 안 게르도 숨을 죽이고 있다.
그의 깊은 한숨만이 맴돈다.
[가장 위대한 정복자 : 지키는 건 관심 없어요.]
[신의 채찍 : 거의 다 엎어진 걸 마저 엎는 게 재밌나요?]
[중화 아담 : 전 이런 종류의 사람을 택하는 게 좋아서. 최후의 충신.
이런 타이틀 좋잖아요?]
==
한 건물이 비친다.
상투도 변발도 자유로운 이들이다.
가죽 옷을 입고선 무어라 떠든다.
상석에 앉은 그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톰 아빠 : 장면이 너무 짭니다.]
[시간의 할아버지 : 그 짧은 순간을 분석해서 선택! 그 미학을 알아야지.]
[동쪽에 빛나는 별 : 흠, 이 동네 밑에 놈들 맘에도 안 들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
꽤 큼직한 건물.
그 안, 발립을 쓴 이들과 쓰지 않은 이들이 얼굴을 붉히며 서로 싸우고 있다.
어느 한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팽팽하게 맞서는 이들.
회의에 빠진 그는 건물 밖을 바라본다.
건물 밖 도시는 밝다.
그리고 밝음을 조금만 벗어나도 포대기를 들고 굶어 죽은 아낙이 있다.
[나라 잃은 이들의 잊힌 창업자 : 역시 비슷한 곳이 잔뜩 있는 시기군요.]
[두 얼굴의 흥무왕 : 이런 때가 먹을 데는 많지요.]
[캡틴 코리아 : 나는 내 후손을 지켜야겠소!]
==
거대한 절.
수많은 사람들.
표정이 밝지 못하다.
절의 구석 동굴.
거기서 묵묵히 벽을 바라보는 스님들.
가장 깊숙한 곳에 심각한 표정의 그가 있다.
[일본에선 장난감 : 넘볼 생각 마시오.]
[낫과 망치의 건국자 : 우리도 종교인은 골치 아프다네.]
==
얼음 안에 지어진 건물.
혈색이 새파랗고 피부가 창백한 여자애가 힘든 숨을 고르고 있다.
그걸 지켜보는 그녀.
그녀의 굳어있는 얼굴.
눈 끝에 맺힌 얼음 결정만이 감정을 드러낸다.
밖에는 눈보라가 한창이다.
[거짓말 장인 : 좋아, 각이 보이는 군.]
[피할 수 없는 물레바퀴 : 뜸을 좀 더 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명품이 된 장난꾸러기 : 어찌 되었든 여기도 향기가 납니다!]
그가 외쳤다.
[무지개별 관리자 : 이번 건 좀 긴 회상입니다.]
***
7년 전 그의 동생이 물었다.
"고양이 키우는 거 어때?"
그는 동물을 사랑했다.
다만 책임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머뭇거리다가 결국 그 인연을 받아들였다.
고양이의 이름을 '럭키'라 지어주었다.
집 밖을 나서지 않는 그는 종일 럭키와 붙어있었다.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잠자는 시간까지 거의 전부.
럭키는 그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병적인 기질까지 가지게 됐다.
그가 안 보이게 방에 숨으면,
방문 앞에서 구슬피,
"애옹."
울었다.
럭키는 존재 자체로 그를 치유해 주었다.
럭키는 땅콩을 떼고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그래서 5개월 동생 고양이를 입양하게 되었다.
고양이들끼리 서로 위하라는 마음이었다.
체구가 더 작은 아이였다.
그 당시엔 '밍키'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비슷한 이름에 혼란스러워 해 '포춘'이 되었지만.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해지는데 한참을 고생했다.
사실 아직도 데면데면한 감이 없지 않다.
겨우 밥을 먹었을 때의 안도감은 잊혀지지 않는다.
둘 모두 귀와 배에 피부염이 생겨 고생했다.
그까지 모두 함께 걸려서 서로의 약을 공유하던 시절이었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고, 예방 접종도 하고, 중성화까지 마쳤다.
그동안 정말 힘들었다.
병원은 모두가 꺼리는 장소니까.
그리고 포춘이는 바깥을 이동하는 것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포춘이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수 밖에 없는 일들의 연속.
제주도로의 이사,
더 작은 집으로 이사.
이동, 이동.
낯선 곳, 낯선 곳.
이제 바람 소리에도 무서워하고 낯선 발걸음에 숨기부터 하는 포춘.
그런데 럭키는 무던히 적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속은 점점 망가지고 있던 중이었나 보다.
사실 비행기로 이동할 때 함께 타지 못하고 짐 칸에 탔던 고양이는 럭키였다.
검색대에서 큰 실례를 한 것도 럭키였다.
럭키는 늘 참아왔나 보다.
고통만이 함께 한 건 아니었다.
책장 위를 에베레스트라도 되는 것처럼 정복한 럭키,
따라 등반에 성공한 포춘.
베란다로 지켜 본 정오의 해바라기.
불편한 창틀을 견뎌내고 지켜보던 바깥 구경까지.
제주도의 추억은 있다.
그리고 아픔이 있다.
그는 나쁜 아빠였다.
그의 입맛에 맞춘 방법만 고집한 게으른 아빠.
아파하는 징조를 하나 하나 놓치는 그.
그리고 끝내 발병, 입원.
위기 상황에 따른 호출.
잠 못 이루는 나날.
사실 상의 사망 선고.
집에서 겪는 힘겨운 식이.
삶의 투쟁.
다른 병원에서 받은 확인.
그리고 떠나 보내기 위한 준비까지.
정을 떼려는 듯, 모르는 것처럼 대하던 포춘이.
마음이 아픈 포춘이는 럭키 오빠를 그리워할까?
사라질 능력들을 점검하듯,
꼬리로 말을 걸고,
화장실로 홀로 걸어가 변을 보고,
정성껏 그루밍을 하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조용해졌으며,
힘껏 팔을 움직일 수 없었고,
누운 채 부끄러워했고,
꼬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럭키는 그렇게 우리와 함께 했었다.
[불 건넨 반골 : 고양이가 죽는다. 그래서? 7년을 보여준 이유가 있는 겁니까?]
[나일 캣맘 : 고양이는 옳아요! 7년밖에 못 보여준 거죠!]
[무지개별 관리자 : 회상이 조금 남았네요.]
***
'남들에게 피해 주지 마라.'
아버지가 남긴 한마디.
굳이 안 남겨주셨더라도 지켰을 법한 삶의 축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아닐까 하는 음모론이 들기도 하지만.
모범적인 현대인의 소양으론 나쁘지 않다 여겼다.
문제는 그걸 지키려는 강박이었을까?
아니, 진짜 문제는 남들이 준 피해를 겪으면서 쌓인 분이었을 터.
그리고 스스로 끼친 피해가 닥쳐왔다.
반려묘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려 한다.
그는 그 이른 이별을 명백하게 자신의 책임으로 여겼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못난 그는 흑화했다.
그 울화, 저항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더해져 기어코 터졌다.
남을 쉽게 해치지 못하는 그 심성을 버리기로 했다.
'이기적으로 신경 안 쓰고 마구 살고 싶다!'
그래도 그에겐 가슴에 묻을 럭키 말고도 포춘이가 남아 있다.
그래서 그는 남한테 폐 정도만 끼치고 살아보기로 한다.
***
회상이 종료되고 갑자기 나타난 다른 시대 인물에 대해 웅성거림이 시작되려는 찰나.
그가 갑자기 동전을 만들더니 흔들며 외친다.
[무지개별 관리자 : 이 채널은 제가 열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는 제 겁니다.
그러면 게임을 시작하죠.]
- 작가의말
길이의 럭키 시절 제가 가장 좋아하던 각도의 사진을 첨부합니다.
첫 작품입니다.
길이(럭키)는 아직 무지개 다리를 건너지 않았습니다.
건널 경우 휴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추후에라도 글은 계속 쓰일 겁니다.
공모전 30편 완주가 당장의 목표입니다.
길이가 즐거운 모험 떠나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밌었던 점, 지루하거나 아쉬웠던 점 알려주시면 여행이 더 좋아질 겁니다.
7월 1일 수정 완료.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