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널향달님의 서재입니다.

옹기 바람

웹소설 > 작가연재 > 공포·미스테리, 중·단편

완결

널향달
작품등록일 :
2020.05.23 11:54
최근연재일 :
2020.05.23 12:01
연재수 :
4 회
조회수 :
320
추천수 :
14
글자수 :
23,935

작성
20.05.23 11:59
조회
150
추천
4
글자
13쪽

옹기 바람 1

DUMMY

내가 살던 마을은 경상도의 아주 외지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지만 활기가 있고 풍요로웠다.


마을의 옛 지명이 옹기동막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오래전부터 옹기를 만드는 동네로 내가 어릴 적에도 주민 대부분이 옹기를 굽고, 만드는 일로 생계를 꾸려 갔고, 일부 자기 먹을 양으로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 대부분의 남자들은 철 들어 제 밥벌이를 해야 할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옹기 굽는 기술을 배우고, 여자들은 집안일과 농사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 보면 남자들은 무거운 흙과 옹기를 나르고 옮기느라 구리 빛 피부와 근육질에 힘 꽤나 쓰는 사람들이 많았고, 옹기장이 벌이가 나쁘지 않았는지 대체로 풍요롭고 각박하지 않았다.


일이 일인지라 항상 남자들은 막걸리를 물처럼 마시며 일을 했는데 마을 한켠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는 막걸리를 빚는 술도가가 있었고 마을 어른인 이장 댁 아주머니가 얼마의 돈을 주면 양은으로 된 주전자로 어른 키보다 큰 술독에서 한가득 퍼 담아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넘겨주는 식이었다.


해가 지는 마을은 천여 개의 크고 작은 옹기의 불그스름한 빛과 노을빛이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했고, 이 시간쯤 어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아이들은 이른 저녁밥을 급하게 먹고 술래잡기를 시작하여 부모님의 호통이 있기 전까지 열심히 옹기 사이를 뛰어다녔다.


어느 늦은 여름 한참 겨울 김장철을 대비하여 모든 마을 사람들이 바쁘게 옹기를 굽느라 분주하던 때 이장님이 젊은 부부와 아이 하나를 데리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다녔다.


한창 바쁜 철이라 외부인이 새로 유입되는 것을 모든 마을 사람들은 반겼고, 우리 집 옆에 빈집에 형식적인 집세를 내게 하여 새살림을 살도록 배려해주었다.


이사 온 남자는 성이 임씨로 비쩍 마르고 키도 작아서 어딘가 모를 비굴한 인상이 반가운 상은 아니었고 아주머니는 작고 왜소했지만 소박한 웃음에 착한 인상을 가득 풍기는 새댁으로 양산이라는 곳에서 왔는지 양산댁이라 불렀던 것 같다.


그 집 아이는 이제 애기 티를 막 벗은 7살 남짓한 남자아이로 순철이라 하였다.


순철이는 나이보다 더 작고, 더 어리석었으나 한 살 차이 나는 나를 형이라 부르며 잘 따라다녀서 애들 놀이에 데리고 다니며 놀았는데 가끔 양산댁 아줌마가 고맙다며 알사탕 몇 알을 준 기억도 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른 어느 저녁식사 무렵 임씨네 집에서는 호통 소리와 가구 부셔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씨는 자기를 무시한다 둥, 가장에게 버릇없다는 둥 욕지거리를 해대며 뭔가를 던지고 부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가끔 양산댁 아줌마의 어쩔 줄 몰라 변명인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그러는 중에 우리 어머니는 말리러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마디 했다가 괜한 부부 사이 일에 참견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걱정스런 한숨만 쉬셨다.


저녁을 먹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지로 술래잡기하러 마을 당수나무 주변으로 가고 있을 때쯤 순철이가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 받으러 가는 듯 터덜터덜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순철아! 심부름 가냐?"

"······으 응"


풀이 죽은 모습에 측은한 맘이 들어 "심부름 빨랑 다녀와 형이랑 술래잡기 하자"라고 밝게 말했지만 별말 없이 술도가로 향하는 순철이의 뒷모습에 쓸쓸함이 배어 나왔다.


시간이 지나 놀이가 끝나갈 때까지 순철이는 오지 않았고 애들이 흩어진 후에도 나는 걱정스런 맘에 잠시 동안 기다리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철이 집 앞을 지날 때 기웃거려 봤지만 순철이네 집 백열등은 다 꺼지고 적막만 흐를 뿐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 며칠 후 평소와 다름없는 저녁식사 시간 무렵 또 다시 순철이네 집에서는 시끄러운 호통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 아버지도 얼굴이 구겨질 만큼 인상을 쓰셨다.


"아니 젊은 친구가 술을 곱게 먹어야지!"

"그러게요. 순철이 아빠가 술버릇이 좀 안 좋다고 주변에서 그러더니 참말인가 봐요.“


부모님 말씀에 임씨가 술만 먹으면 자제를 못하고,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서 앞뒤 분간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순철이네 소동이 왜 일어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30분가량 소란스럽다가 갑자기 우리 마당으로 누군가 다급하게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옹기장님! 옹기장님?"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신 아버지가 방문을 열어보니 머리를 산발한 양산댁 아주머니가 순철이를 안고 바들바들 떨며 대문 앞에 엉거주춤 불안한 듯 서 있었다.


무슨 일인지 단번에 짐작하신 어머니는 양산댁을 안고 누나 방으로 들어갔고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신발을 신으시고 대문을 나서셨다.


항상 느끼지만 아버지의 뒷모습은 마을 앞 장성처럼 떡 벌어지고 늠름하기 짝이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가시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버지가 돌아오신 후 한참 후에 밤이 깊어서야 누나 방에서 돌아오신 어머니의 말씀으로 양산댁이 잠든 순철이를 안고 돌아갔음을 알게 되었고 조용히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대화에서 양산댁이 맞아 얼굴이 터져서 피가 제법 흘렀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임씨의 발악 소리가 들려왔고, 온 동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미 임씨의 고약한 술버릇과 양산댁의 처량함이 소문났으며 애들은 순철이랑 노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이맘때 양산댁의 온몸에 상처가 늘어났고, 수척한 모습은 날로 더해갔다. 한 번씩 순철이는 저녁에 놀러 나왔지만 반은 정신 나간 듯 딴생각만 해 아이들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였고 그나마도 시간이 얼마간 지나니 막걸리 심부름 갈 때 잠시 보는 것 외에는 볼 수도 없었다.


일이 이쯤 되니 동네 이장님이며 어르신들이 임씨를 불러 호되게 꾸짖었지만 비굴한 웃음으로 구렁이처럼 넘어가려고만 하지 진심으로 반성하는 기색은 없었고 이제는 매일 술만 먹어 대고 옹기 일도 성의 없이 하는 임씨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쫓아내려고 하는 것을 양산댁이 울며불며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고 사정하는 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단이 나고 말았다.


"아이고 큰일 났다! 아이고 큰일 났어!"


조금 늦은 밤 동네가 이장님댁 아주머니 외침에 정적이 깨졌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궁금함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소리 나는 곳으로 나가셨다.


나오지 말고 자라는 부모님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몰래 뒤를 따라 가보니 막걸리 술도가에 동네 사람들이 가득 몰려 있었고 걱정과 한탄스런 목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쩌누······ 이 일을 어째? 쟤가 누구 집 애긴가? 응?"


동네 아주머니들은 안타까워 발만 동동 구르고 어찌 할 바를 몰라 할 때 이장님이 나섰다.


"아이고 이놈 순철이 아닌가? 임씨 아들 순철이 아니여? 맞구만 순철이...... 기네 기여 순철이구만...... 어째 이놈 부모는 지금 어디 있는가? 응? 이 사단이 났는데 어디에 있어? 응?"


역정을 내시며 안타까워하시는 이장님의 목소리를 가르며 저 멀리서 신발도 안 신고 달려오는 양산댁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철아! 아이고 내 새끼 순철아! 어디 있냐 순철아! 아이고···... 아이고......"


누구에게 소식을 들었는지 정신없이 달려온 양산댁은 거적때기 위에 누워있는 순철이를 부둥켜안고 정신없이 흔들면서 목 놓아 울었다.


"흑흑흑...... 우리 순철이 왜 이래요? 네? 흑흑······ 꺼억···... 왜 이래요오오오···... 왜 이래···... 이장님! 우리 순철이 왜 이래요?"


그 순하던 양산댁이 순철이를 안고 눈에 살기를 품고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은 마치 악귀를 보는 듯 했고 그 모습에 동네 장정들도 살짝 한걸음 물러서는 듯 보였다.


나는 뭐라 정확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양산댁의 하는 양이며 순철이가 꼼짝도 않고 누워있는 모습에 아마도 순철이에게 큰 변고가 생긴 게 틀림없다 생각하였고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직감적으로 뇌리를 스쳤다.


몇몇 나이든 어른들이 순철이를 받아 들려고 하는데도 양산댁은 거칠게 뺏기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순철이를 끌어안고는 곡성을 질러 댔다.


"그 시간에 막걸리를 받으러 왔다가 내가 없으니······ 지가 술을 퍼가겠다고 술독에 올라가서 술독에 빠진 거여···... 늦은 시간까지 나는 않있제···... 나도 집에 가야허고···... 에고···... 어떡하나 어떡혀 어휴"


이장님댁 아주머니 얘기는 늦은 밤 술도가를 닫고 집에 간 사이 막걸리를 받으러 온 순철이가 혼자 술을 퍼가겠다고 작은 독 몇 개를 밟고 어른 보다 큰 술독에 매달려 술을 퍼 담으려다 몸이 기울어 술독에 빠져 죽었다는 말이다.


얘기를 듣고 있던 양산댁은 가슴이 미어지는지 답답한 가슴을 한 손으로 치면서 통곡을 하고 저주스런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흑흑흑···... 꺼어어억...... 흐흐흑···... 꺼어어억···... 그 시간에 술 더 처먹겠다고 애를 쥐어 패 가면서 주전자 쥐어주는 나쁜 놈에 새끼! 니가 술독에 빠져 죽었어야지! 응? 응? 흑흑흑···... 그것도 모른척하고 무서워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미친 이년도 죽어야 되!"

"후다다닥 쿵! 퍼억!"


애를 겁주고 때리며 술심부름 보낸 임씨를 악을 쓰며 저주하고 못된 아비의 그 짓을 어쩌지 못하고 지켜만 봤던 자신을 저주하던 양산댁은 옆에 있던 큰 항아리로 달려가 머리를 들어 박고 머리가 깨져 피가 흥건히 고인 바닥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멈추지 않는 피를 치마 앞섭을 찢은 천 쪼가리로 부여 막은 어머니는 아버지를 급하게 불렀다.


"치료부터 해야겠으니 우리 집으로 옮깁시다."


양산댁을 임씨가 있는 자기 집으로 옮기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는 우리집으로 양산댁을 옮기자고 하셨고 아버지는 생각할 틈도 없이 양산댁을 안아 들고 급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양산댁을 눕혀 놓으신 아버지는 이장님댁 자전거를 빌려 제법 먼 거리에 있는 윗마을 의원댁으로 의사를 모시러 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축 처져 누워있던 순철이의 모습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고 그 일이 충격이었는지 몸살처럼 몸이 아파 몇 일간 앓아 눕게 되었다.


정신이 들고 듣게 된 내용은 술이 깬 임씨가 잠시 충격에 빠지는 듯 했지만 이내 술을 퍼 마시며 신세 한탄만 하여 보다 못한 이장님과 동네 청년들이 멍석에 순철이를 말아 지게에 지고 뒷산 기슭에 작은 묘를 써서 장례를 치뤘다는 것이다.


내가 다 나았을 때도 양산댁 아주머니는 누나방에서 깨어나지 못해 누워있었고 오랜 시간 정신을 잃고 있어서 어머니께서 시간마다 미음과 물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먹여 주셨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도 임씨는 양산댁을 찾아보지도 않았고 마을 사람들도 더이상 임씨를 인간 취급도 하지 않고 찾는 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양산댁이 정신이 들었는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말도 없고, 먹지도 않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미동조차 없자 어머니는 조용히 순철이가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 알려주셨고 말은 없었지만 알아는 들었는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그날 저녁 모두가 잠든 늦은 밤에 갑자기 남자의 비명이 들려와서 모두 잠에서 깨었다.


그 비명소리는 욕설과 물건 부수는 소리로 바뀌었고 이내 둔탁한 무엇으로 두들이는 소리와 여성이 고통을 참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바로 임씨 집에서 들려왔고 누나 방으로 다녀오신 어머니는 양산댁이 없어졌다고 하셨다.


"임씨 집에 다녀오리다."

"나도 같이 갈까요?"

"상황이 험한 것 같으니 혼자 다녀오겠소. 애들이 무섭지 않도록 잘 돌보오"


아버지는 그렇게 걱정스럽게 말씀하시고 집을 나섰고 잠시 후 몽둥이 치는 소리도 부서지는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한참 후에 마을 사람들로 시끄럽던 임씨 집은 다시 조용한 정적이 찾아왔다.


그 이후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아버지께서는 돌아 오셨고 누나와 내가 다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임씨 집 사정을 누운자리에서 서로 말씀하셨다.

나는 자는 척을 하며 몰래 내용을 엿듣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옹기 바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 옹기 바람4 +4 20.05.23 61 4 14쪽
3 옹기 바람3 +1 20.05.23 49 3 13쪽
2 옹기 바람2 +1 20.05.23 60 3 13쪽
» 옹기 바람 1 +3 20.05.23 151 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