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선전포고
민지민지의 팀은 오늘까지 도와주기로 계약했다.
홍보팀 합류에 대해선 오늘 방송 후 논의하기로 했다.
어제 면접한 PD들 중 합격한 건 모닥불뿐이다.
나머진 좀 허세가 심해보여서 탈락.
모닥불은 어제 예하를 본 순간 바로 계약한다고 했는데 말렸다.
오늘 방송이 끝나면 여론이 굉장히 안 좋아질 수 있고, 시청자 수로 먹고 사는 개인방송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방송이 끝난 후에도 하려면 계약하자고 말했는데.
난입하다니.
저런것도 매력이려나.
개인방송의 장점일 수도 있고.
뒤에서 루비와 탈주자들이 모닥불의 자유를 부러워하는 눈이 보인다.
“오빠사장님. 어떡해? 이래도 돼?”
“사장님. 우리 제시님 혼자 8시간 방송 못해. 얼마나 힘든데. 사장님 못됐어. 제가 같이 도와줄래요.”
하면서 예하를 뒤에서 안는데 저거 사심이다.
사심 가득해.
이미 화면에 나갔고 자청해서 나갔으니 나중에 화내지 못하겠지.
남자였으면 46층 창밖으로 던졌을 텐데.
그냥 진행하라고 손을 빙글빙글 돌렸다.
“꺄아아 언니 같이 하래!”
“신난다아아.”
둘이 빨고 핥고 난리 났다.
보기 좋다고 후원도 쏟아지고.
세상에 돈 많은 사람 정말 많구나.
스텝들은 질의응답 올라온 것을 보면서 방송할 질문을 뽑았다.
민지민지가 그걸 예하의 모니터링화면에 전송해줬다.
“일하래요. 일할게요. 질의응답 시작합니다. 첫 번째 질문. 드래프트는 한미일 야구 뿐 아니라 아이스하키 NBA 등에서 모두 사용하는 제도다. 이걸 왜 반대하냐? 라고 하셨네요. 답변은......”
예하가 눈을 들어 야구관계자 쪽을 봤다.
감독 직원이 구단주를 본다.
구단주가 한 말이잖아.
“어... 그건...”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닥똥의 목소리가 기어가다가 음소거됐다.
목소리가 안 나오자 얼굴 빨개진 닥똥이 타자를 쳤다.
“네. 미래펀딩 로보츠 구단주님의 답변이 오고 있어요. 선수는 원하는 구단과 원하는 연봉에 계약할 권리가 있다. 드래프트에 뽑혔다고 그 구단과만 계약해야 하고, 계약을 거절할 경우 다른 구단과 계약할 자격조차 없어지는 건 인권침해고, 절대적으로 구단에 유리한 제도다. 한 미일이 그 제도를 쓰는 건 그게 옳아서가 아니라, 그 나라들도 인권침해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유럽 축구선수의 경우 어린 선수들은 구단과 자유롭게 계약한다. 대개 자기가 훈련받은 구단과 계약하지만, 계약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구단과 계약할 권리가 있다. 이게 옳다. 라고 하십니다. 혹시 드래프트에 대한 답변이 부족한 것 있나요? 잠시 기다렸다가 관련 질문 오면 이어서 답변할게요.”
잠시 말을 멈추자 옆에서 열심히 먹던 모닥불PD가 칵테일 버거 하나를 예하 입에 넣어준다.
“어여 먹어봐, 딸 같아서 그려. 먹어.”
“힝. 부끄러워.”
하면서 받아먹는다.
한입크기의 앙증맞은 버거에 소고기 패티, 생양파, 토마토, 양배추, 치즈가 절묘하게 들어가 있다.
이거 비싼 거다.
수많은 시청자 앞에서 먹는다는데 창피해하던 예하는 입을 몇 번 움직인 후 사르르르 미소가 폈다.
저 미모.
연기가 아닌 정말 행복한 감정이 넘쳐흐르는 미모.
예하에게 방송을 맡기길 잘했다.
모닥불이 손을 들었다.
“사장님 저 연어크레페랑 자몽에이드요~”
모닥불PD, 쫒아낼까.
매우 생각 없고 건방진데... 밉지 않다.
저게 300만 구독자를 모은 매력이겠지.
현관 쪽을 보자, 심부름이나 하려고 서 있던 경호원 한분이 웃으며 무전을 쳤다.
PD민지민지가 질문을 전달했다.
“그럼 드래프트를 없앨 거냐는 질문이네요.”
타다다다다다.
닥똥놈아. 말로 하라고 임마.
“그건 협회의 권한이라 못 없앤 데요. 다만 영상에 말했듯이 드래프트로 뽑되 선수가 우리의 제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풀어주고 다른 구단과 어떤 제약도 없이 계약하게 해 준데요. 그래서 부족한 선수는 드래프트 되지 않은 선수 중에 뽑겠대요.”
“어떻게 제시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 쩝쩝.”
옆에서 모닥불이 제시를 이용한 개그를 하며 복스럽게 버거를 먹었다.
야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예하의 미모와 모닥불의 먹방에 집중하겠지.
“네. 다음 질문이... 그래가지고 성적이 유지 되냐고 하네요. (버거 하나 먹고) 답변이 왔어요. 3년 이내에 우승, 10년간 최상위권 확신한대요. 그리고 10년 후쯤엔 세상이 드래프트를 없애줄 거래요. 에... 여러분의 힘으로 드래프트라는 인권침해 계약 제도를 없앤 다네요. 뭐 앞으로의 계획이니 믿거나 말거나겠죠. 놋네도 매년 봄엔 올해는 다르다, 우승이 목표다, 라잖아요. 아 이건 제 생각 아니라 구단주님의 생각입니다.”
예하 나름 많이 공부했구나.
“다음 질문. 네. 홈페이지에 올라온 질문인데, 4번타자와 선발, 클로저를 판 사람 누구냐고 엄청난 욕설을 섞어 질문했습니다.”
구단주 닥똥이 한손을 번쩍 들고 나를 가리켰다.
예하는.
“지금 구단주님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다음질문 주세요.”
센스 넘친다.
착해 예하.
닥똥은 햇살 눈이 부신 날에 이별통보 받은 입대 전날 공대생 같은 표정이 되었다.
“하나 먹고 혀. 그렇게 연속으로 말하면 목 나가.”
“넹 앙.”
참 복스럽게도 먹는다.
“제가 질문 받아도 되요? 우리 제시님 목 보호해야 해요. 장기전인데.”
끄덕끄덕.
“제시 옆에 있으니까 저 오징어처럼 보이네요. 우힛. 목소리는 내 목소리 듣고, 제시 얼굴만 보세요. 아차차차 목소리도 제시님이 더 예쁘네. 질문 왔어요. 년차에 대한 FA 규정 정말 무시할 거냐는 데요? 앙.”
모닥불PD는 답변 기다리는 사이 칵테일 버거를 하나 입에 넣었다.
“쯥. 답변이 왔어요. 무시한대요. 3년, 4년으로 계약을 제시할거고, 년차 상관없이 현재 실력과 향후 전망을 합쳐서 고액을 준대요. 혹시 거부하면 타 구단으로 이동할 수 있게 모든 제약을 풀어주겠대요. 유럽 축구의 계약모델을 따른대요. 네 다음질문. 엄청난 욕설과 함께 질문이 왔습니다. 다 뺏기면? 이라네요. 앙.”
이번엔 예하가 모닥불 입에 버거를 넣어줬다.
예하가 마이크를 잡았다.
“구단주님의 답변이 왔어요. 프로는 돈 버는 게 목표고, 제시받은 금액만큼 실력을 인정받는 거라네요. 구단은 모든 선수를 FA선수라 생각하고 철저하게 실력에 따라 제시하겠대요. 타구단에 가서 타격8관왕을 하더라도 구단에서 주는 만큼만 받는 노예생활을 하느니 로보츠에 남는 게 나을 거라면서 자신만만한 표정이네요.”
어... 저게 누구였더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생각해보니 진짜 불공정하다.
구단이 주는 대로 받고, 거부하면 타팀에서도 뛸 수 없다니. 참.
“질문이 왔어요. 미래펀딩은 돈이 많아서 그럴 수 있어도 다른 기업은 돈이 없어서 그렇게 못 준다, 드래프트 제도를 없애면 돈 많은 팀이 좋은 선수를 싹쓸이해서 결국 리그가 망한다 라네요. 네. 답변은......”
닥똥이 내게 다가와 귓말을 했다.
다른 기업과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는 예민한 얘기였는데 감당할 만해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게 선수 연봉을 아끼려는 수작이다. 아니 제 생각이 아니고요 구단주님의 생각이에요. 힝. 저한테 화내면 안 돼요. 이어서... 미래그룹은 대한민국 전국민이 미래펀드라는 이름을 들어보게 만드는 효과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계산했습니다.
이게 외국과 다른 점은 미국만 해도 구단 명에 기업이름이 들어갈 수 없대요. 유니폼에 작은 마크, 혹은 야구장 건물에 기업이름을 명명하는 권리조차 수백억씩 거래되는데 한국 야구는 구단 이름에 기업 이름을 달 수 있기에 마케팅 효과가 너무너무 크다고 해요. 그 돈을 생각하면 얼마를 쓰던 이득이래요.
그럼에도 선수연봉을 깎아 어떻게든 최대한 이득을 챙기고 싶은 구단은 물러나라내요. 저희 미래그룹 말고도 전국민에게 이름을 각인시켜주고 싶은 기업은 수없이 많대요. 그들에게 구단을 팔라고 합니다. 적자본다고 징징대면서 프로선수에게 불공정 계약을 강요하는 양아치가 사라지면 인권이 보장받는 정당한 계약제도가 정착될 것이며 서로 앞 다퉈 돈을 쓰는 구단들에 의해 선수들의 사기도 오르고 유소년 선수들 또한 더욱 노력해 리그가 발전할 것이라 합니다.
후아. 길다.
환하 치킨스는 팬서비스라도 좋기 때문에 행복한 꼴찌라는 요상한 포지션을 얻어 마케팅 효과가 크지만, 놋네 자이언트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쓰레기 운영을 하니까 운영 할수록 기업이미지가 나빠지니까 그냥 빠지는 게 낫대요. 니들 말고도 그 자리에 들어와 돈을 펑펑 써서 이름을 알리고 싶은 기업이 많으니 잘 가시래요.
즉, 오래 운영한 기업은 어차피 전국민이 다 아니 마케팅 효과가 적지만, 신규 기업은 정말 너무너무 마케팅 효과가 커서 제대로 운영할 것이니까 계속 물갈이를 해야 한대요. 자유계약제가 시작되면 이게 자연스럽게 되고 그러면서 야구계가 커지고 더욱 성장할 수 있대요. 끝.”
“우쭈쭈. 우리 제시 수고해쪄.”
모닥불PD가 긴 연설을 끝낸 예하의 등을 토닥거리며 자몽에이드 빨대를 입에 물려줬다.
둘이 케미가 잘 맞네.
계속 합방 시킬...
“사장님 연어크레페 언제와요!”
해고할까.
PD를 맡은 민지민지는 감독, 직원과 함께 올라오는 질문들을 봤지만, 대부분 욕설이나 알바들의 밑도 끝도 없는 비난뿐이다.
방송이 끊기면 안 되는데.
“다음 질문이 왔네요. 에이브릴 VS 테일러? 전 에이브릴! 에? 이게 질문인가요? 아. 대답할만한 게 없어요? 그럼 간만에 노래한곡 할까요? 에이브릴 노래!”
노래할까요 말할 때부터 예하의 얼굴에 미소가 핀다.
예하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 자체를 정말 좋아한다.
“오늘은 사람이 많고 조명이 세서 더워요. 춤 없는 노래할게요. 아얼웨지닛탐온마이온.”
숨 한번 고르고 바로 팝송을 시작한다.
느릿한 템포의 노래를 성대를 약간 누르며 차분히 부른다.
순수한 BJ제시의 팬, 로보츠의 행보를 성토하러 온 찐야구팬, 코인정보 얻을 수 있나 해서 온 코인러, 협회와 구단에서 고용해 분탕질 치러온 알바들, 주워 먹을 거 없나 기웃대던 기자.
모두 손이 마비되어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사로잡혔다.
“웬 유어 곤~ 더 피씨솝마 허 타 미싱유 웬 유어 곤~”
예하의 고음이 터지자 소름이 쫙 끼친다.
귀신이 지나간 것처럼 모두가 숨소리조차 멈추고 예하의 노래에 빠져버렸다.
펀안하고 섹시하게 눌린 고음, 에코 없는 마이크를 꽉 채우는 성량.
구단에 대한 분노 혹은, 돈 받고 분탕질 치던 모두가 평화에 빠졌다.
1절. 2절. 후렴까지.
낮게 시작된 노래가 엄청 높고, 엄청 강하다.
그런 노래를 예하는 단단하고 편안하게 쭉 올린다.
절정부에선 성량이 찢어질까봐 마이크 뒤로 두 걸음 가서 불렀다.
가창력여제 이선의 인줄.
예하의 노래가 진행되는 4분 동안 세계가 평화에 잠겼다.
어떻게 아냐고?
후원 메세지와 홈페이지에 쏟아지던 분탕질문이 싹 사라졌다.
돈 받고 일하던 이들마저도 손을 멈추고 노래에 빠져들었다.
전쟁을 멈추는 노래.
웹세계의 시계를 멈췄다.
“앤 메이키로케. 아이미슈~”
차분히 노래를 마감한 예하가 호흡을 고르며 자리로 와 앉았다.
“제시야~ 사랑해. 사랑해 제시~ 너무 예뻐~ 왜 기쁜데 왜 눈물 나지? 꺄아아아아.”
모닥불PD가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껴안는다.
역시 사심이었어.
남자였으면 당장 쫒아냈다.
“나도! 너무 예뻐. 나 너무 감동했어.”
민지민지씨. 이봐요.
당신까지 화면에 나가면 어떡해? 왜 우는데?
또 방송 사고다.
정오에 시작된 방송은 야구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중간 중간 예하의 노래와 예정에 없던 게스트들의 춤 경연을 하며 세 시간을 넘겼다.
오후 세시.
채인수는 권순진의 전화를 받았다.
“예 권사장님. 오. 끝났어요? 네. 기자회견 준비됐어요. 예. 자료 가지고 거기서 만나요.”
명동의 호텔 리셉션 홀에 기자 100여명이 모였다.
야구단 인수 외에 이렇다 할 실적도 명성도 없는 미래그룹이 모은 것 치고 많이 모였다.
만약 초대메일에 백제그룹 사태에 대해 선언하겠단 말이 없었다면 이렇게 모일 리 없었다.
오후 네 시가 되자 채인수가 등장했다.
경호원들과 함께 등장한 채인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저희 미래그룹은 본사로부터 주식대금 1조 6천억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백제 그룹에 투자했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백제 그룹 모든 계열사 지분을 3% 넘겼기에 법에 따라 3일 이내에 신고합니다.
현재 저희 미래그룹 산하 미래펀드는 백제그룹의 모든 계열사 주식을 평균 14.8% 보유했으며 주식 취득 목적은 백제 그룹 경영권 획득입니다. 주식취득과 경영권 획득에 대해 질문이 있으신 분은 이상 나눠드린 주소의 방송을 보시길 바랍니다. 그룹 채널을 통해 성실하게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잠깐만요!”
“적대적 M&A인가요?”
“미래 그룹의 자금은~”
소리 지르며 질문하고 덮치고 길을 막는 기자들을 헤치며 리셉션 장을 빠져나온 채인수는 곧장 차에 탔다.
“옥수동으로 가요.”
공개선전포고.
3계가 시작되었다.
- 작가의말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 해봤니 비오는 날 보다 더 심해 작은 표정까지 숨길수가 없잖아~
1계 지혜아빠로부터 4주후, 2계 민형수의 민사소송에서 1주후입니다.
3계가 시작되었네요
백제그룹 사냥만 쭉 붙여 진행했으면 연독률이 몇배 좋았겠지만 글의 분위기가 차갑고 무거워 질 거 같아서 주인공이 사는 삶에 포커스를 맞췄어요
동욱의 행복에 적응해주신분은 오래오래 함께 가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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