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루비
옥수동의 50층 아파트 노스텔지어팰리스힐.
매물이 나오는 대로 구매해 4채를 얻었고, 그 중 두 채를 경호팀이, 다른 하나를 BJ엔터에서 구해낸 여자들이 쓰고 있다.
그들 또한 백제에겐 약점이기에 습격 받을 까봐 임시로 모여 있다.
21층에 사는 루비가 올라왔다.
백제그룹과 조승학을 상대로 성폭행, 사기계약, 협박, 고문 등 온갖 소송을 걸었기에 모든 활동이 올스탑인 상태.
집에만 있기 심심했나.
왜 올라왔지?
카메라에 루비 혼자인 걸 확인하고 문을 열어줬다.
“어. 하이.”
“하이여. 술 한 잔 해도 되요?”
루비가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
안엔 집에서 입는 긴팔 트레이닝복이다.
“...... 그래.”
진지하게 할 말이 있나?
안주가 있나? 배달시킬까.
루비는 거대한 냉장고를 열고 내용물을 훑어보다가 맥주 한캔을 꺼냈다.
한캔만?
딱.
꿀꺽꿀꺽꿀꺽.
원샷?
끄어어어.
트름?
뭐지?
다 마신 캔을 찌그러뜨린 루비는 쓰레기통에 넣고 돌아섰다.
“이제 해요. 여기서 벗을까요?”
“...... 무슨 말이야? 왜 온 거지? 벌칙?”
진짜 영문을 몰라 물어봤다.
내 표정에서 뭔가 잘못된 걸 느낀 루비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이거 아니예요?”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그거 아닌듯.”
“예하가... 오늘 자기 없다고 나보고 오빠를 좀 보필해 달라고 전화해서.”
“...... 보필?”
“......”
어색하다.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소파에 가 앉았다.
예하는 엄마 병원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고, 집에 비서일 할 사람이 없다는 걸 걱정했나보다.
그래봤자 하는 것도 없는데.
그래서 루비한테 부탁한 게 잘못 전달됐나보다.
“아하. 그거였구나. 어쩐지 너무 갑작스럽더라.”
“그래서 기분이 나빠 보였구나.”
“솔직히 너무 무례했죠. 그래도...... 감내하려고 했는데. 예하 요년. 머리도 좋은 게 괜히 이상한 말 써서. 아닌가. 자기가 하는 게 보필이니까 나보고 그거 하라고 한 건가.”
자꾸 보필 보필 하지 마. 이상한 생각 들잖아.
“예하랑도 안 해. 한 번도 안했어.”
“에에? 정말? 같이 살잖아요. 며칠 씩 안 나오기도 하고.”
“그래도 안 해. 일만 했어.”
왜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거지.
귀찮다.
“헐. 예하가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예하는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던데.”
“알아.”
고자도 아니고 모를 리 있나.
“예하 예쁘지 않아요? 싫어해요?”
“좋아해.”
당연히 좋지.
예쁜데다 착하고 쾌활하고 힘든 일을 겪었음에도 밝고 구김이 없다.
이런 애가 또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왜 안 해요? 혹시 취향이 남자.”
“아니. 여자 좋아하고 성욕도 넘쳐.”
“호오. 그럼 왜요?”
내가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
“아는 여자랑 안 해. 그냥 업소 가서 풀어.”
“왜요?”
“법을 찾아봤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더라고.”
“에?”
“결혼하고 이혼하면 재산의 반을 줘야 해. 결혼하지 않아도 사귀다가 헤어져도 여자가 비비면 사실혼 판정 받아서 반을 줘야 하고. 도저히 구멍이 없더라.”
“돈 때문에?”
“어.”
루비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그런 마인드는 좀 싫다. 예하가 돈 때문에 버릴 거 같아요? 옆에서 봐도 예하는 진심이던데.”
“지금은 그렇지. 그런데 1년 후 10년 후도 같을까? 내 계산에 난 올해 10조를 벌 거야. 10년 후면 100조 이상 벌겠지. 함께한 시간동안 사실혼으로 우기고 그간 번 수익의 반을 나누라고 하면 줘야 해. 예하 본인이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부추기겠지. 저 남자가 50조보다 좋아? 50조 들고 여왕처럼 살라고. 과연 10년 후에도 예하가 날 좋아해줄까? 50조보다 더 많이 날 좋아할까?”
“...... 차라리 억 단위면 공감이 갈 텐데 너무 커서 느낌이 안 오네. 아무튼 예하가 평생 사랑해줄 리 없다는 거지?”
“내가 자신 없어. 난 그렇게 멋있지 않으니까.”
미래에서 돌아왔다.
그뿐이다.
얼굴 좀 괜찮지만, 더 잘생긴 사람은 넘쳐난다.
돈 잘 버는 것 빼곤 장점이 없다.
“돈 잘 버는 것뿐인 나한텐 예하가 아까워. 예하라면 완벽한 남자 만날 수 있고, 예하한테만 모든 신경을 쏟아줄 남자 만날 수 있어. 고작 스무 살인데 푼돈으로 구해준 남자에게 인생을 버린다는 건 내가 봐도 아까워.”
“...... 오빠. 그 푼돈이 아니었으면 예하 자살했을지도 몰라.”
“알아. 그래도 구해준 게 족쇄처럼 보이잖아. 예하가 고마워하는 거 아는데 그 고마움 때문에 예하가 내게 몸과 인생을 바치길 바라지 않아. 난 구해줬고, 이제 예하가 자기 인생 멋지게 살길 바래. 그래서 안 건드리고 있어.”
“돈은 부차적인가?”
“지금이야 예하가 날 좋아하겠지만, 내가 평생 사랑받을 자신 없다고. 나중에 돈 때문에 소송 걸거나 하면... 내가 찢어질 거 같아서.”
“복잡하네. 오빠도 복잡해.”
“그런 거지.”
서서 듣고 있던 루비는 냉장고에 가서 맥주 두 캔을 들고 왔다.
“한잔?”
받아서 뚜껑을 따서 건네주고 내걸 받아서 땄다.
“매너 있네.”
루비는 옆에 바싹 앉으며 말했다.
“아까 너 혼자 원 샷 할 때 좀 쫄았는데. 킬러가 온 줄 알았어. 죽이기 전에 맘 잡는 줄. 경호팀 불러야 하나 고민했어.”
“푸흡. 아 웃겨.”
“지금도. 망나니가 칼춤 출 때 술 뿌리는 것처럼 푸학.”
“아컁컁. 하지마. 웃기지 마.”
루비는 술을 머금은 상태로 웃다가 여기저기 분무했다.
한참 캘록 거리다가 휴지로 뒷정리를 하고 삐진 척 쏘아봤다.
“그러니까... 예하가 오빠 좋아하는 거 알고 오빠도 예하 좋아한다. 하지만 오빠랑 어울리기엔 예하가 너무 아깝고 스무살 풋사랑 같아서 망설여진다. 시간이 지나 오빠의 매력이 줄고 재산분할로 예하가 가져갈 돈이 많아질수록 예하는 떠나려는 유혹이 커질 것 같다. 그게 두려워서 예하를 거부한다. 예하는 오빠보다 오직 예하만을 바라볼 더 멋진 남자를 만나야 한다. 이거 맞아?”
“어. 대충.”
“...... 그럼 오빠는 예하가 딴 남자한테 가길 바래?”
“아니. 열 받네. 생각만 해도 졸라 좆같네. ...... 그래도 뭐. 어쩌겠어. 난 평생 업소나 다니면서 살려고.”
“너무 자신감 없다.”
내 지난 44년을 몰라서 그래 너.
예하가 빚으로 자존감을 잃었듯 내 자존감이 땅속 깊이 파묻혀 바보처럼 착해야만 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예하는 미래에서 왔을 뿐인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더 행복할 것이다.
열 받지만.
“그보다 성매매도 불법 아니야?”
“아니. 미리 알아봤지. 하루만 계약 연애하기로 녹음해. 그 담에 해. 이러면 합법이야.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계약 연애는 합법이거든. 계약하고 연애하다가 필 받아서 섹스 하는 건 성매매가 아니고.”
“...... 법이 참 신기하네.”
“스폰서를 주로 누가 사용하겠어?”
“윗새끼들이.”
“그래. 그러니 합법이지. 가난뱅이는 경찰의 일제단속 때 좋은 실적공급원이 되는 거고.”
“...... 오빠도 참 복잡하다.”
“다들 최선을 다해 사는 거지. 넌 누군가가 돈 벌려고 최선을 다해 사냥한데 당한 거고, 난 사냥당하지 않으려고 미리 대비하는 거지. 백제에서 본격적으로 날 노리면 모든 분야에서 공격할 텐데 방어해야지.”
“참...... 씁쓸하다. 한 캔 더?”
“어.”
칙.
말없이 맥주를 마시다가 루비가 옆에 앉은 날 빤히 바라봤다.
“왜?”
“오빠는 생각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야.”
“알아. 외모는 상위 10% 되지 않을까? 재력이나 이런 거 다 합치면 동년배중에 최고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
“말했잖아. 시간이 지나면.”
“...... 모르겠다.”
루비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셨다.
속이 좀 답답하다.
“하고 싶지 않아?”
“하고 싶지. 백제가 노린 후로 한 번도 못했으니. 네가 오기 전에 고민하고 있었어. 나갈까? 경호팀 100명을 호텔방 앞에 배치할까? 여기로 콜 부를까? 여기로 부르면 안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풋. 참 힘들게 사신다.”
“사냥 당하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해.”
“하자.”
“어?”
“오빠. 그냥 나랑 하자. 나 하고 싶어 졌어.”
“말했잖아. 아는 사람하고 안한다고.”
“아. 이 사람이 진짜.”
루비는 핸드폰 화면을 열고 녹음을 눌렀다.
“나 고미지, 예명 루비는 윤동욱씨와 너무 하고 싶습니다. 윤동욱씨는 거부하는데 내가 억지로 덮쳤습니다. 윤동욱씨가 고발하면 성폭력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
“이거면 돼? 오빠 톡에 보냈어. 이제 문제될 거 없지?”
“... 어. 그런데. 왜?”
“아 몰라. 하고 싶어. 하자 나랑.”
“벨 누를 땐 그렇게 싫어했잖아.”
“그땐 당하는 기분이었어. 예하 이 개똥이가 말 이상하게 해가지고 매니저새끼들한테 호출받아 끌려갈 때 기억이 떠올랐단 말이야. 그런데... 말하다보니 오빠가 생각보다 멋진 거야. 구해줘 놓고 뻐기지도 않고, 겸손하고 자상하고 생각도 착하고. 어. 그러니까 하자. 응? 나 위로해줘. 요즘 너무 모든 게 허무해서 자살생각밖에 안 든단 말이야. 응? 하자. 제발. 나랑. 나 태어나서 스스로 남자랑 하고 싶단 생각 든 거 지금이 처음이야.”
루비의 눈을 빤히 봤다.
예하의 0.7... 아니지 이건 실례지.
망한 아이돌이라지만 센터답게 매우 예쁘다.
그 예쁜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내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네.
“키스해도 돼?”
“다해. 하자 하자.”
루비의 심리를 모르겠다.
이렇게나 자존심 버리고 간청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받아줘야 할 것 같다.
너무 위태로워 보인다.
즉, 어쩔 수 없는 거다.
입술을 맞대자 루비의 혀가 불쑥 들어온다.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을 더 큰 자극이 씻어 내린다.
“하아. 하아.”
혀가 엉키는 것만으로 루비가 소리를 낸다.
연기는 아닌 것 같다.
뜨거운 신음소리가 내 입속으로 들어와 귀에 전달된다.
쭙쭙.
하아.
한참 입을 맞대고 코로 숨을 쉬는데 루비의 두 눈이 날 빤히 보고 있다.
하아 거릴 때마다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며 날 응시한다.
워낙 가까이에 초점을 맞추려다보니 두 눈이 중앙에 쏠린다.
입을 떼니 서로의 침이 길게 늘어졌다.
“귀엽네. 둘리 같아.”
“하아. 하아. 어? 하아. 뭐가?”
얼굴이 새빨개진 루비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 남자 입에 혀 넣은 거 처음이다. 되게 흥분돼.”
자랑인가?
“첫 키스라고?”
“아니. 당하기만 했지. 내 입속에 다른 놈께 들어온 적은 수없이 많아. 걸레야 걸레.”
그런 자조적인 말 안 쓰면 안 되니?
루비의 입을 막았다.
혀가 설키는 동안 한손으로 어깨와 등허리를 쓸었고, 한 손으로 루비의 볼과 귀 목을 어루만지며 천천히 내려갔다.
손이 가슴에 닿자 루비가 상체를 뒤로 빼며 손으로 막았다.
“만지는 거 싫으면 안 만질게.”
“하아. 그게.. 그게 아닌데. 그.. 응 만지지 마. 미안해.”
“그래.”
루비의 마음에 걸리는 게 뭔지 모르겠다.
루비는 미안했던지 덮치듯 키스하며 내 무릎에 올라탔다.
키스하면서 가슴과 배, 허리를 더듬는데 뭔가 어색하다.
무릎에 올라온 루비의 등허리를 쓸다가 엉덩이에 손을 내렸다.
여긴 막지 않는다.
자동차 핸들 돌리듯 루비의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꽉 쥐었다.
“하앗.”
입이 붙은 상태로 소리치니 강한 호흡이 내 입에 들어온다.
하아. 하앗. 하아.
루비의 호흡이 너무 강해서 키스를 이어갈 수가 없다.
고개를 살짝 돌려 귀를 핥고 숨을 불어넣으며 루비의 바지 뒤춤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운동량이 많은 아이돌답게 탄력 넘치는 엉덩이를 쓰다듬다가 엉덩이 골을 따라 내려갔다.
- 작가의말
29, 30은 19세입니다
목표독자는 15세 아이들이 미래를 생각하며 봐주기를 바랬으나
19표현이 아니면 주인공 캐릭터가 안살고 루비가 자칫미워질 수 있어서
어쩔수 없이 따로 적어요
29, 30편은 다른글보기 벼락부자(19)에 올릴거고 못 보는 분을 위해 31에 줄거리 넣도록 할게요
최대한 사실적이고 담백하게 적어서 안봐도 무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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