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동정값2
“웃겨. 오빠가 뭔데. 뭔데 날 동정해? 왜? 내가 우스워? 이 꼴까지 보고나니 막 대해도 될 것 같아? 어떻게 사람 자존심을 바닥까지... 어떻게... 진짜... 왜 날 이렇게 비참하게...”
예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울려버렸다.
거기에 동질감을 느낀다.
과거의 나는.
가뜩이나 힘든 집에 빚을 얹은 나는.
동네 아저씨들에게 혼나도 참았다.
맞는 말이고, 내 잘못이었으니까.
동정 받아도 참았다.
맞는 말이고, 내 잘못이니까.
계속 혼나도 참았다.
지겹지만 참았다.
그들마저 적대하면 잔칫날 떡 한 조각이라도 얻어먹는 게 끊길 테니.
계속 걱정의 말을 들으면서도 참았다.
짜증나도 참았다.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고, 그들의 알량한 호의라도 얻어야 할 상황이니까.
“한 번의 동정은 고맙지. 위로가 되지. 그런데 동정이 수 백 번 수 천 번 켜켜이 쌓이면...... 그게 무게가 되어 짓눌러. 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무너뜨려 땅속 깊이 파묻어. 지겹다고 말도 못하는 내가 처량하고, 그들에게 화내선 안 된 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스스로 자존감을 무너뜨려.”
“뭔데? 오빠가 뭔데 다 아는 것처럼 말해? 뭔데 감히 내 자존감이 없다고 해?”
표독스럽게 쏘아붙이는 예하는 수도꼭지를 튼 것 마냥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그랬거든. 내가 돈을 번지 1년도 되지 않았어. 그 전에는......”
“오빠는... 오빠는......”
지금의 너보다... 아니 이건 비교할 수 없겠지만, 지금의 너만큼 비참했어.
“동정을 받을수록 착한사람이 돼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리고, 걱정값이라도 받기위해 주위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돈이 드는 일이 아니면 나서서 도와야 하는 착한 놈이 돼야 해. 동정은, 주위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반복해서 말해주는 걱정은 내 비참한 현실을 쉴 새 없이 깨닫게 해주는 송곳이야.”
감히 왜 걱정 하냐?
니가 뭔데?
인생 망했다고 우습냐?
막 위로해도 될 것 같지?
“그럼에도 참아야지. 낫고 있는 상처가 후벼 파여 다시 기억에 새겨져도 참아야지. 간간히 넘어오는 공짜 호의, 버려지는 편의점 음식 같은 호의라도 받으려면 참아야지. 착해져야지.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으며 가끔 선 넘는 말을 해도 참아야지. 왜냐. 자존감은 없어졌고, 난 바닥이니까.”
내가 그랬으니까.
네가 그러고 있으니까.
“에휴 안됐다. 난 재보다 낫네. 나보다 불쌍한 사람도 있구나. 힘내서 살자. 이런 마음이 묻어 나오는 거 다 느껴지지만 그래도 참아야지. 착해야지. 왜냐면 내 자존감은 땅속에 묻혔으니까. 그러면서 가끔 생각했어. 동정으로 끝내지 말고 불쌍하면 천원이라도 줘요. 단팥빵 하나라도 쥐어주면서 지껄여요. 난 그걸 위해 니 놈의 자기만족을 참고 듣고 있으니까. 뭐...... 난 그랬다고.”
가난한데도 착하고, 긍정적이고, 남을 돕길 즐기는 게 아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착해야 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고, 남을 도와야 하는 거다.
그래야 동정에서 비롯된 일말의 선의라도 주워 먹을 수 있으니.
흐어어어엉.
어딜 제대로 건드렸나보다.
소리 없이 울던 예하가 통곡하듯 울었다.
간호사들이 돌아보고 방금 나온 병실에서 아줌마 두엇이 머리를 내민다.
무시했다.
돈이 많으면 저런 시선 따위 무시해도 된다.
“예하 너 요즘 팔자가 폈구나. 전 같으면 저 돈 뿌리칠 수 있었겠어? 못된 새끼라고 속으로 욕하면서도 어떡하면 이 돈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흐어어엉.
얜 나와 같다.
과거의 내가 느꼈던 좆같은 동정을 똑같이 받고 있었다.
“동정과 위로는 한번으로 족해. 그 이상은 자기만족이고 놀리는 거고 상처에 소금 뿌리면서 즐기는 거야. 시발년들. 동정하려면 돈 주면서 해야지. 때리려면 돈 내고 때려야지 왜 공짜로 때리는데? 왜 가난하고 불쌍하다고 마구 때리냐고?”
허어엉.
예하가 한 팔로 내 허리를 감았다 그리고 한 팔로 내 입을 막았다.
제발 그만 때리라는 듯이.
그리고 울었다.
빨간 남방 사이 흰 티가 뜨거운 눈물로 젖었다.
예하가 안겨와 우는데 성욕은 올라오지 않는다.
한손으로 예하의 어깨를 안고 한 손으로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예하의 무너진 자존감을 공유했다.
가슴에 뜨겁게 타오르는 예하의 눈물을 과거의 내가 함께 공유했다.
예하처럼 예쁜 여자가 대성통곡을 하면 누군가 다가와 도와주려 하거나 경찰을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통곡하는 장면은 흔한 일이다.
10분 넘게 소리 내서 통곡한 예하는 천천히 소리를 멈추고 나중엔 눈물도 멈췄다.
예하는 빨갛게 퉁퉁 부은 눈으로 올라다 봤다.
“오빠도... 울었네?”
“그랬나?”
얼굴을 만져보니 축축하다.
사람이 나이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44살에서 한살 더 살았으니 45살이면 매일 울 나이 됐지.
“나 말고 과거의 내가 울었어.”
“어......? 지금은 돈 많으니까?”
조금 다르지만...
“그렇지. 얼마든지 동정해도 되고 걱정값 뿌려도 될 부자니까.”
“풋.”
예하가 실소를 하고는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자세를 바로 잡고 눈물에 젖어 속이 언뜻 비칠 정도가 된 내 티셔츠를 두어번 톡톡 털고는 에라 모르겠다는 듯이 허리를 굽혀 자기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저 사람들이 악의를 갖고 동정하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내가 말한 걸 너도 그대로 느꼈겠지. 아팠을 거 아니야?”
“그랬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순수하게 위로하려 한 말이야. 마주치면 인사하듯 마주치면 말할 뿐이야.”
“모르고 때리는 게 더 나빠. 똑같은 위로를 열 번 반복하는데 모르면 고의지. 어휴 너 인생 좆 돼서 좆같겠네? 병실에 올 때마다 이 소릴 무한히 반복했을 거 아냐? 때리려면 돈 내라고 돈. 그 돈을 위해 자존감 무너뜨리고 참고 있다고. 너 인생 좆 됐으니 소라빵이라도 하나 먹어라, 이래야 맞지 않아? 넌 아픔을 참았잖아.”
“... 그렇긴 하지.”
“내가 엄마 병실에 없을 때 저 사람들이 엄마를 괴롭히면 어떡하지? 24시간 간병인 고용할 돈도 없는데. 엄마가 갑자기 아프면 저분들이 도와줬음 좋겠다. 새벽에 엄마가 끙끙대거나 혼절하면 저분들이 간호사 불러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 저들이 무심코 던지는 모든 돌멩이를 얻어맞으면서 헤헤 웃었겠지. 싸가지 없는 년 되면 작은 도움조차 못 받으니까. 가난해서 착해야 했던 거야.”
“...... 점쟁이세요?”
“약하면. 돈 없으면. 착해야 하니까. 내가 그랬으니까.”
동욱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예하가 얼굴을 올려다봤다.
퉁퉁 부은 눈 속에 숨어있던 눈동자가 반짝였다.
괜히 민망해진 동욱은 미남야구선수의 유행어를 말했다.
“와? 으빠므찌나.”
“오빠도 생각이란 걸 하나해서 신기하네. 마냥 이상한 사아야야야야.”
이녀니.
두 주먹으로 예하 양쪽 관자놀이를 대고 비볐다.
“아야야야야야.”
“됐어. 동정하려면 돈 내고 동정해라. 아무 도움도 주지 않을 거면 건방지게 걱정하지 마라. 결론. 끝”
“그게 뭐야? 돈 없으면 동정의 말도 못 해?”
“한번까지 동정, 위로 허용. 그 이상은 돈 내고 해. 에휴 인생 좆 되서 좆같겠네, 라며 돈을 주면 인정. 정말 인생이 힘들면 받겠지. 돈을 거부하면 힘든 게 아니니까 동정도 하지 말아야지. 인사하듯 때리지 말고 돈 주면서 때려야지. 이렇게 바껴야 해.”
“...... 너무 극단적이야.”
“어쨌든. 난 널 동정해. 그래서 돈을 줬어.”
“아 맞다.”
예하가 훌쩍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5만원 네 장을 모았다. 그러고 슬쩍 눈치 보더니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이녀니.
“너한텐 큰돈이겠지만, 나한테 그 까짓것 눈곱만큼도 안 돼. 내 전 재산 봤잖아.”
“3조...... 칫.”
“네가 불쌍해 보여서 구해줬고, 조승학에 당하는 게 열 받아서 감히 남의 인생에 간섭했어. 그 대가로 넌 동정값을 받았고.”
“... 그게 아니잖아 오빠가 착해서 구해준거잖아.”
“감히 남의 인생에 내 맘대로 끼어들었으니 동정값이지. 당당히 받아. 네가 도와줘서 늘어난 수익 생각하면 더 받아도 돼. 너 지금도 한 푼도 안 받고 있잖아.”
“에...... 알았어.”
“동정 하나만 더 할게. 아유 가난뱅이 예하 어머니 6인실에서 주위사람의 악의 없는 동정 받느라 고생했다. 난 돈 밖에 없으니까 1인실로 옮겨줄게. 이것도 동정값이다. 난 네 자존심을 뭉개며 감히 동정했으니 받아라.”
“...... 어.”
예하는 또 받는 게 미안했던지 내 품에 얼굴을 묻는다.
...... 동정값 이상을 받은 기분이다.
“오케이. 저기요 간호사님.”
멀리서 카트를 정리하는 척! 하면서 몰래 구경하던 간호사를 불렀다.
“예.”
“여기 환자분... 너희 엄마 성함이?”
예하가 말했다.
“한현숙.”
“여기 한현숙 환자를 최고급 병실로 옮기고 치료내용도 최고급으로 바꿀 건데 이거 처리해줄 직원분과 담당의 좀 불러주시겠어요? 최대한 빠르게. 돈은 무한히 쓸 건데 대응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겁니다.”
간호사에게 흥, 뭐야. 돈지랄... 이라는 태도는 전혀 없다.
“예. 최대한 빨리 처리할게요.”
라고 대답한 간호사는 중앙데스크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리고 10분 안에 운영팀 직원과 담당의가 달려왔다.
“비용 생각 하지 말고 최고의 의료서비스로 해 주세요. 너무 싸면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겁니다.”
손님이 비용을 올린다.
옷차림을 보고 거지새끼라고 흘겨보는 태도도 없다.
운영팀 직원은 VIP실 전경을 테블릿으로 보여주며 전담간호사가 24시간 교대로 붙는 서비스, 특별한 병원식 등을 한참 자랑했다.
중요한 건 그 쪽이 아니다.
담당의가 차트를 보며 침중한 얼굴로 입을 닫고 있었다.
“환자 상태가 안 좋나요?”
“보호자 맞으십니까?”
“이쪽이 보호자에요. 유일한 가족.”
젊은 의사는 예하를 한번 보고는 천천히 말했다.
“환자분의 상태는 병실을 옮긴다 해서 딱히 좋아질 수가 없습니다. 일단 신장 기능이 90퍼 가량 죽었습니다. 그래서 하루 네 번 투석을 해야 하죠. 6시간마다 1시간씩 투석. 이걸 멈추면 바로 사망하십니다.”
“...... 제가 의학은 잘 모르는데 그... 신체이식 같은 거 있지 않아요?”
“있습니다. 그런데 이식 수술을 할 때도 환자분의 체력이 중요합니다. 현재 환자분은 사고로 소장과 대장의 60퍼센트를 절제했고, 십이지장과 췌장 일부도 절재 했습니다. 어떻게든 내장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미음류를 조금씩 드리지만 전혀 소화시키지 못해 전부 토하고 수액으로만 연명하는 처지입니다. 오히려 내장 전체에 염증이 생겼는데 이 상태로는 현재보다 좋아지기 힘들고, 신장이식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흐윽.
옆에서 예하가 다시 울고, 난 정답을 찾지 못했다.
“신장과 체력이 문제네요. 혹시 세계최고의 의료진이라면......”
“비록 레지던트 3년차인 제가 주치의지만, 과장님이 직접 보셨고, 똑같이 판단 하셨습니다. 차라리 희귀병이나 난치병이라면 세계최고의 의료진이 도움이 되겠지만, 한 환자분의 경우는 매우 단순합니다. 후우. 죄송합니다. 의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 한 어느 병원의 어느 의사라도 똑같은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흐어엉우리엄마불쌍해서어떡해.
예하의 어깨를 토닥여주자 예하가 무너지더니 내 허벅지에 눈물을 쏟아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쪽에 권위 있는 의사분 초청해서 확인해줄 수 있나요? 비용 신경쓰지 마시고 바가지 씌워도 되니까. 아. 이러면 병원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나요?”
“아닙니다. 환자가 최우선이죠. 그리 전하고 국내외 최고의 의료진을 초빙하겠습니다. 환자분이 그만하라 할 때까지 초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래도 같은 결론일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현상태 유지가 최선이라는 거죠?”
“예.”
“알겠어요. 우선 병실 옮기고 서비스부터 바꿔주세요. 의료진은 따로 보고하지 말고 계속 초빙해서 병원비에 포함시키고요.”
“알겠습니다.”
의사를 보내고 울고 있는 예하를 한참 다독인 후에 병실로 들어갔다.
빈 VIP병실이 있었는지 간호사 넷이 먼저 와서 예하엄마의 짐을 챙기고 있었다.
병실은 고요했다.
바로 앞 복도에서 소리쳤고, 몇몇은 나와 구경했으니 대화가 전부 전해졌겠지.
일부는 고개를 돌리고 있고, 일부는 노려보고 있다.
일부는 미안해한다.
무시한다.
“어머님.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가겠습니다.”
“앗. 오빠. 나도.”
“넌 엄마 챙겨야지. 오늘은 병실 옮기는 거 돕고 엄마랑 자고 내일 출근해.”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쾌차하실 거예요. 걱정 마세요.”
무책임한 말이지만 이정도 말 해줘도 되지?
동정값 냈잖아.
경호원 열명을 남긴 채 병원을 떠나고 5분쯤 후 예하한테 문자톡이 왔다.
1 : 와. 사람 가시방석에 올려놓고
1 : 분위기 어색해서 죽는 줄
나 : ㅇㅇ 그래서 도망침
1 : 몇분은 나중엔 자기는 그런 뜻 아니라고 하더라. 몇 명은 왜 사람 이상하게 만드냐고 화내고
1 : 저기요 미안하다고 좀 하시죠.
나 : 미안
1 : 와. 더 화난다. 차라리 미안하다고 하지 말든가.
나 : 안 미안. 솔직히 사실만 말함
1 : 와... 진짜...
그리고 한 시간 후 문자톡 하나가 더 왔다.
1 : 그래도 고마워. 솔직히 빚 지우고 뭐 그럴 때보다 더 고마워. 오늘이 제일 고마워
훗.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짧은 겨울해가 서서히 지고 있다.
너무 넓어서 휑한 아파트에 홀로 존재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코인커뮤니티를 둘러보고 비트맥스 프로그램이 제대로 돌아가는 지 확인했다.
비트맥스에 현재가 2퍼 이내에 1비트 이상 매수가 올라오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잡아먹으니 컴퓨터만 켜놓으면 프로그램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가끔 봐주기만 하면 된다.
“흠. 잘까.”
오늘 같은 타이밍에 호텔콜을 하거나 룸에 갔는데.
백제가 무너질 때까지 외출을 못 하니.
잠이나 자자.
띵동.
“누구세요?”
-루비요.
왜 왔지?
- 작가의말
주인공 성격 소개에 필요한 화였습니다 착해요 얘 지루하셨다면 ㅈㅅㅇ
동정값이니 뭐니 그냥 얘 생각입니다
괜히 복잡하게 신경쓰지 마시고 무시하고 평범하게 사시는게 인생살이에 이롭습니다
평범한게 가장 좋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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