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이중심리
눈을 뜨니 열시다.
온몸에 알이 배겨있다.
한 것도 없는데.
확실한 운동부족이다.
무음으로 해뒀던 전화기엔 수십통의 전화와 메세지가 와 있었다.
전화부터 돌렸다.
“주가는요?”
- 플러스 20%. 시작점과 비교하면 마이너스 25%야.
“뉴스는?”
-막고 있는데 여의도에 찌라시는 전부 돌았어. 아무리 막아도 터질 거야. 아마 백제에서도 포기하고 피해 줄일 대책을 세울 거고.
“하. 아들이 그 짓한 게 알려졌는데도 그렇게 올라요?”
-이게 주식이니까. 더없이 솔직한 돈의 가치. 재벌3세가 살인을 하든 그 어떤 미친 짓을 하든 공장은 그대로 돌아간단 말이지. 그놈이 경영진이 되면 떨어지겠지만, 이제 평생 탈락할 테니 오히려 호재로 볼 수도 있고.
“하. 그래요. 백제에서 터트리는 거 며칠 기다리죠. 걔들이 지우려고 발악할수록 실수가 나오겠죠. 공매도 추가할 수 있어요?”
-아니. 차입할 주식이 없어. 우리말고도 전부 공매도 넣고 있어. 모든 기관이 다 엄청나게 떨어지리라 예측하고 있다는 거지.
“엥? 20퍼 올랐다면서요.”
-개미가 그런 거지. 어? 엄청 떨어졌네? 뉴스 검색해볼까? 아무것도 없는데? 뭐지? 바겐세일인가? 개미털기구나. 좋다. 들어가자. 줍줍하자. 이게 개미의 속성이지.
“......”
야수의 심장.
그 심장은 너무도 자유분방해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버티고 버티면 엄청 오를테니 잘 버텨주면 좋겠네요.”
-못 버텨. 더 떨어지면 바닥에서 손절하는 게 개미의 심장이야. 아니면 신용물량 추가했다가 전 재산을 잃거나.
하긴.
나도 그랬으니.
“됐고요. 당장 할 일 없는 거죠?”
-어.
“그럼 백셀바이오 기업분석해서 지분 최대한 확보해주세요. 너무 비싸게 살 필요는 없어요.”
-그래.
“그리고 에첼비라고 있거든요.”
-알아. 요즘 뜨거운 바이오잖아. 네배 올랐을 걸.
“호재 있어요. 세 배 더 오를거에요. 최대한 들어갔다가 세 배 올랐을 때 단타로 나와요.”
-어. 이해했어. 거래량 좀 분석해봐야겠네. 3퍼 넘겨도 돼?
“네.”
-그럼 15퍼 미만으로 가볼게.
“필요한 자금은 황형한테 말하고요.”
-어.
전화를 끊었다.
과거 주식에 집중했다면 지금 뭐가 튀는지 알 텐데 아는 게 거의 없다.
에첼비나 백셀처럼 한창 뜨거웠던 것 몇 개만 기억한다.
아쉽네.
다른 형들한테 전화를 돌려서 경과보고와 지시사항을 말하고 방을 나섰다.
“히워저스케이터보이 쉬쎄시쭈레이러보이~”
부엌에서 예하가 요리하고 있다.
냄비 두개를 동시에 휘저으며 노래하며 몸을 흔들어 춤을 춘다.
기운도 좋으셔.
“아침밥이야?”
“어! 오빠!”
예하가 밝게 웃으며 돌아보는데 에너지가 넘친다.
“새벽에 장보고 조깅하고 오면서 먹을 거 사 왔어. 나 요리해도 돼?”
말하면서도 몸 흔드는 걸 멈추지 않는다.
“하고 있으면서 묻기는.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어 땡큐. 에헤헤. 쏘리 걸 밧 츄 미스다웃~ 웰 펍 럭 댓 보이스마인 나우~”
말하는 사이에도 춤을 멈추지 않더니 노래가 마디점프해서 이어진다.
무슨 노래지.
난 온몸에 알이 배겼는데.
쟨 운동신경도 좋겠지?
연습생 생활이라는 게 굉장히 힘들고 운동 많이 하니까.
뭔가 자존심이 상한다.
운동해야겠다.
트레이너를 검색하다가 예하가 차린 차돌된장찌개 백반을 먹고 나니 벨이 울린다.
“예~”
예하가 자연스레 나가 문을 연다.
비서.
비서 겸 가정부 겸 청소부.
쟨 이걸로 만족하려나.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경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구형재가 꾸벅 인사한다.
새벽에도 만났는데 이러는 이유는 전화로 설명했다.
“아니요. 저 때문에 휘말려서 죄송합니다. 다들 위로금 받고 화 풀어 주세요.”
“위로금이라뇨. 받을 수 없어요. 저희가 잘 못 했는데요.”
얼굴에 반창고를 붙인 도윤정이 손사레를 친다.
크게 다친 몇 명은 붕대를 감았거나 병원에 있다.
급작스레 싸우고 경찰에 잡혀가 철창 신세진 도윤정이 미안하다고 하니 되려 미안하다.
“작전이 잘못된 거였어요. 그래서 경찰서까지 간 거고. 죄송해요.”
“사람 구하려고 그런 거잖아요. 저희도 원했어요.”
“그래도 계약 범위 밖의 무리한 일을 요구했어요.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요구를. 진작 알고 있었는데 사람 추가하지 않은 건 분명 제 실수에요. 죄송해요.”
루비가 이때쯤 작전할 거라 예측했다면, 진작 사람을 대기시켰어야 하는데.
물론 루비가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초저녁에 자기들끼리 시작한 게 가장 큰 문제지만.
서로 겸양하고 서로 핥아주며 위로금 천씩 주기로 합의하고 나자 뒤에 있던 루비와 여자들이 나왔다.
연예인과 연습생들.
TV로 보기에 더없이 예쁜 그네들은 다 같이 빼빼 말랐다.
얼굴도 작고 빼빼 말라 얼굴선이 또렷하지만, 뭔가 애처롭게 보인다.
“저희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저흰.. 저흰 정말 살 수 없었을 거예요. 정말 감사드리고 저희 때문에 휘말려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몰랐으면 모르되 그 상황에서 누가 눈을 감아요?”
다시 또 겸양과 사양과 우쭈쭈 치켜세우기가 한참 이어졌다.
갑자기 싸우게 된 경호원들에게 감사와 포상금을 전달해 위로하고 경호팀은 빠졌다.
45평 아파트엔 방이 네 개 있는데 두개는 예하방과 내방, 하나는 코인 거래를 하는 컴퓨터방이다.
다른 하나는 아직 아무것도 없는 빈 방이다.
루비와 연습생들을 따로 빈 방에 모았다.
열 명이 들어가자 방이 꽉 찼다.
빈 방에 모으고 노트북을 하나씩 줬다.
“대표실의 하드디스크예요. 그리고 이건 클라우드 아이디와 비밀번호. 여기에 협박자료가 있을 거예요.”
내 말에 다들 침묵을 지키며 서로를 봤다.
“알다시피 전 백제그룹과 싸우고 있어요. 조승학이 백제3세고요.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과 연결된 치부를 마음대로 갖다 쓸 생각은 없어요. 자료를 보시고 거기서 지우고 싶은 건 지우세요. 다른 백업이 있을 진 몰라도 저희가 가진 건 그게 다예요. 여러분이 이용해도 된다는 것만 이용할 겁니다.”
서로 눈을 보다가 루비가 대표로 말했다.
“에...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여기서 살펴보시고 저희가 이용해도 되는 것만 골라서 넘겨주세요. 혹시 컴퓨터에 대해 모르는 거 있으면 불러주시고요.”
“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방을 나서자 예하가 따라 나왔다.
예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들어가. 너도 봐야지.”
“어?”
“네 자료도 있을 거 아냐.”
“아.”
“가.”
“어... 어... 고마워. 언니들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응?”
“아냐.”
예하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 닫힌 작은 방.
도란도란 소리가 나더니 흐느끼는 소리로 바뀌었다.
나중에 통곡하다가 흐느끼기를 반복한다.
에휴.
컴퓨터 방에 가서 노래를 크게 틀고 코인게시판을 둘러봤다.
- 워렌 존 버핏 : 지금이 기회다. 바닥 줍줍 호로록
ㄴ 아저씨 그 건물 지하 9층까지 있어요
ㄴㄴ 나 지하 20층에 있는데 뭔소리요?
-비캐561층 : 차트 예쁘게 그리네요. 1200선에서 거래랑이 줄고 있죠? 더이상 내려가지 않을 거에요. 이제 로켓 발사만 하면 찐반등 차트네요.
ㄴ에휴 하드포크따위를 왜 사냐
ㄴㄴ 비캐나 비코나 기술적으로 똑같은데 그럼 가격도 똑같아야지
ㄴㄴㄴ 이 코알못들 진짜. 니들은 어디 가서 코인얘기 하지마라
-리또속리또속신나는노래 : 나스닥 상장 가즈아~
ㄴ ㅋㅋㅋㅋㅋㅋㅋ이젠 안쓰럽닼ㅋㅋㅋ
오늘도 평화로운 코인게시판.
이곳이 내 마음의 고향이다.
출금신청을 돌리고 해외 알트 소식을 돌아보고 인터넷으로 헬스트레이너를 검색했다.
낙낙.
“어.”
“오빠... 저녁... 먹을래?”
눈이 빨개진 예하가 물어봤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래 시켜.”
“어.”
그리고 한참 후 음식들이 도착했다.
배달 3대장 치킨피자닭발족발탕수육.
3대장이라며.
의자가 부족해서 누군 바닥에서 먹고 누군 의자에 앉기 뭐해서 다 같이 바닥에서 먹었다.
대학 엠티 온 거 같네.
대충 20여 년 전 기억인가.
그땐 참 좋았는데.
아무 걱정 없었는데.
음. 복학이나 할까.
정리 좀 되면.
다들 말없이 먹었다.
생각 없는지 대충 끼적끼적 하는 게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맥주 사올까요?”
“네.”
그냥 물어봤는데 루비가 곧장 대답했다.
경호팀에 연락했다.
같은 아파트 2층에 매물이 나왔기에 미래 리츠에서 사서 경호원 대기실로 쓰고 있다.
연락을 받은 경호팀이 후다닥 사왔고, 맥주캔이 돌자 하나 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저희가 말을 나눴는데요. 아무것도 안 지워도 되요.”
“네?”
“저희를 구해줬잖아요. 마음대로 쓰세요. 어차피 찍은 건 그놈들이고, 협박한 것도 그놈들이에요. 복수만 제대로 한다면 어찌되도 상관없어요.”
루비의 눈에 푸른 불빛이 보인다.
저게 한서린 여자의 눈인가.
“...... 전부 동의했어요.”
“예.”
한서린 눈빛 22개가 노려보니 무섭다.
예하마저도 저 눈빛이네.
“넌 술 따르는 것밖에 없었잖아.”
“샤워하는 거 있더라. 하. 엄청나. 그렇게 조심했는데. 샤워하는 내 알몸을 과연 몇 명이나 봤을까. 무서워. 진짜 무서워. 그놈들은... 가만 놔두면 안 돼.”
예하가 분노하는 건 처음 본다.
잠시 예하를 보다가 여자들을 봤다.
다들 충격적인 협박자료를 봐서 불타오르고 있다.
“지금 흥분상태 같네요. 집에 보내는 건 위험하고. 경호원 둘 씩 붙여서 호텔방 잡아줄게요. 호텔에서 혼자 하루 동안 생각하세요.”
구출되었고, 이제 BJ엔터는 무너진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협박받던 영상을 지우고 깨끗하게 사는 게 미래의 자신에게 가장 좋다.
“서로 연락하거나 의견 합치는 건 안 되요. 그렇게 머리 식히고 차분히 생각한 다음에. 내일 예하한테 따로 전화하세요. 그때 각자 공개해도 된다고 하는 걸 공개할게요. 이해했어요?”
군중심리도 있다.
옆에서 전부 공개하겠다고 선언하는데 자기만 난 내 얼굴 알리기 싫어, 라고 말하기 힘들다.
지금 흥분상태에서 배려가 부족하지만 머리 좀 식히고 나면 자기 마음이 어떤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상 속에 여기 있는 분 말고 다른 분들도 많죠?”
“네.”
“그분들 연락해서 오게 해 주세요. 그분들도 동의하면 그분들 자료도 써야죠.”
“아. 알겠어요.”
“그리고 쉬시면서 엔터 직원 분류해주세요. 협박에 가담하거나 주동한 놈들. 천벌 받을 놈들. 그런 놈들 리스트 만들어봐요.”
“아. 그래야죠. 제대로 할게요.”
“그럼 들어가서 쉬세요. 경호팀에 호텔 잡으라 말할게요.”
“네.”
남은 음식을 버리고 쓰레기를 주섬주섬 치운 후 다들 머뭇거리며 방을 나섰다.
나가기 전에 다들 돌아본다.
“고마워요.”
“인사는 아까 했으니 됐어요. 들어가요. 내일 밤에 연락하시고.”
“아까 인사는 구출 받은 고마움이죠. 이건 저흴 배려해준 감사입니다. 영상이 있고 호기심도 있을 텐데 일부러 보지 않은 게 감사하고요. 구해준 댓가로 영상 써먹는다 하셔도 우린 절대 거절할 수 없는데 저희에게 공개 여부를 결정하게 해준 배려가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루비가 대표로 인사하자 다들 고개 숙이며 크게 인사했다.
“아뇨.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죠.”
난 기본을 행했을 뿐이다.
“당연한 게 안 되는 세상이잖아요.”
그렇긴 하지.
“들어가세요.”
“네. 내일 연락할게요.”
다들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나가는데.
기분이 좋다.
“착한일 했네.”
“오빤 최고야. 너무 멋져. 너무너무 잘생겼고 보면 볼수록 반하겠어.”
“...... 그래 랩도 잘하네.”
“고마워 오빠. 구해줘서.”
“그래. 받았으니 그만하자.”
“넹.”
예하는 콧노래를 부르며 부엌으로 갔다.
리듬 타는 예하의 몸을 보다가 컴퓨터 방으로 갔다.
예하의 샤워영상?
화난다.
그걸 찍고 낄낄대며 보고 협박하려 했던 놈들을 전부 죽여 버리고 싶다.
너무너무 화가 난다.
너무 화가 나는데.
보고 싶다.
모든 인간은 이중적이다.
분노하면서도 보고 싶다.
난 쓰레기.
하지만 모든 인간이 다 이렇겠지.
아마도.
코인에 집중하려고 해도 머릿속엔 그놈의 샤워영상으로 가득하다.
‘에이. 빨리 해치우고 조승학 욕 하고 잊어버리자.’
아이디 입력, 비번 입력.
쫘라라~
없네.
전부 지웠네.
쳇.
- 작가의말
재미를 위한 의도적인 과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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