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낙화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끊임없는 질문에 대답하다가 다들 짐을 챙기러 떠났다.
여행사와 계약을 했고, 환불할 수 없다는데 결국 수긍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번 돈의 티끌만치도 안 된다는 데에 부담이 줄었을 테고.
여행 날까지 손발을 맞춘단 의미로 경호원들이 따라다녔다.
이로써 백제그룹이 혹시나 미친 짓을 할 경우를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집이 조용해지자 어머니가 저녁밥을 차렸다.
손에 물 묻히는 어머니를 보며 어떻게 가정부를 들여야 하나 고민할 때 아버지가 담금주를 내오셨다.
“아들아. 한잔 받아라.”
“예.”
“음... 네가 아무리 큰돈을 벌었다고 해도 너무 막 쓰는 거 아니냐?”
“지금만큼씩 써도 평생 다 못 써요. 부담 없이 받아요.”
“어... 그런가. 그래도 네가 써야지. 네 옷은 예전 그대로 같은데.”
“저도 충분해요. 그리고 아버지랑 어머니, 그리고 형제분들까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돈을 그렇게 쓰고 싶어요.”
힘들어보니 친척만큼 좋은 사람이 없더라.
남들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그랬다.
소설속의 친척은 언제나 악역이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재벌가의 냉혹한 세계니 뭐니 해도 친척들에게 작은 회사 하나씩 차려주고, KS그룹은 빠따 한방에 100만원이란 어록을 남겨 그룹 이미지에 수천억 손해를 끼친 사촌동생을 끝까지 안고 가고, 나중엔 전공을 잘 살려 아이스하키협회 회장으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정치인들도 자기 친척들에게 한자리씩 챙겨준다.
삼국지 조조의 측근들도 전부 친척이다. 조씨들을 제외하더라도 하후돈, 연도 친척이드만.
난 내 친척들이 좋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위기를 경험해봤기에 확신한다.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은 좋네. 음.”
아버지가 솔잎 담금주를 쭉 들이킨다.
묵직한 병을 들어 잔을 채워드렸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여행일정 잡는 건 좀 아니구나. 최소한 갈지 말지, 어디 갈지는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니?”
맞는 말입니다.
제가 실수로 조승학을 선빵 쳐서 급하게 일정 잡았어요. 죄송해요.
백제그룹이 미친 짓 할까봐 잠시 피난가시는 거예요. 이게 다 조승학 잘못입니다.
라고 할 수 없네.
“죄송해요. 뭔가 해드리고 싶어서 생각이 짧았어요. 이게 비행기랑 배까지 전부 예약하는 거라서 취소가 안 된대요. 죄송해요.”
그냥 어려서 생각이 짧았던 걸로 포장했다.
크루즈 여행이라는 게 단순히 배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배는 대도시를 기준으로 항해와 정박을 반복하는데 배로 이동할 땐 배에서 놀고 항구 근처에 정박하면 도시에 올라가 며칠 관광하는 식이다.
다음주가 되면 비행기로 모로코까지 날아가고 이후 배를 타서 바르샤, 마르세유, 나폴리, 베네치아 등 유명 도시를 3~4일씩 관광하고 이동하길 반복하게 된다.
지루하지 않고 다양한 볼거리가 호화롭게 제공되는 여행이며 예약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치의도 과하고, 경호도 과하고... 돈 너무 막 쓰는 거 아니니, 하는 잔소리를 듣다보니 어머니가 온다.
“아유. 효도하겠다는 애를 왜 다그쳐. 나쁜 생각으로 그런 것도 아닌데.”
엄마 내편.
“제가 옮길게요.”
“그래. 김치도 꺼내고.”
간단한 제육볶음과 반찬으로 백반을 먹는다.
오랜만이다.
1년간 거의 삼각김밥만 먹었는데.
맛은 모르겠지만, 행복하다.
“더 잘할게요.”
“에휴. 어떻게 더 잘하니. 노인네들 신경 쓰지 말고 아들인생을 행복하게 살아.”
엄마 내편.
“더. 더더 잘할게요.”
“됐다니까 그러네. 후후. 유럽여행이라.”
“평생 여행만 다니게 해 줄 수 있어요. 평생 손에 물 묻히지 않고 사세요.”
“아들이 남편보다 낫네. 여보 나도 한잔 줘요.”
“크흠.”
엄마 짱.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여행 전에 다시 온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예약마크가 떠 있는 택시가 기다리고 있다.
도팀장은 교대했고, 다음조 팀장이 운전을 한다.
청바지에 니트를 입은 가냘파 보이는 여성인데 무려 검도 6단이시다.
일부로 튀지 않는 인물로 구성했으니 얼핏 봐선 경호원이 있다는 걸 모를 것이다.
백제그룹에서 습격해주면 좋겠는데.
“호텔로 가시겠습니까?”
말 편히 해달라고 해도 끝내 존칭을 쓰겠다 한다.
구사장이 굉장히 빡센 정신교육을 주입한 것 같다.
“음.”
몇 일을 못했더라.
1600억 버느라.
“선릉역으로 갈게요.”
시간당 100만 원짜리 마사지를 받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청담동 호텔로 갔다.
호텔엔 예하가 있었다.
스위트룸엔 방이 세 개 있는데, 그 중 작은 방에 예하가 자고 있었다.
방 따로 잡아줬는데 왜 여기서 자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지난 며칠간 예하가 저 방에서 잤던 게 생각난다.
코인거래에 매진하느라 두 시간씩 자고 교대하길 반복했으니.
생각해보니 자연스레 동거하고 있었네.
자는 모습이 참 예쁘다.
천사다.
저렇게 예쁜애가 딱하기도 하지.
“쟨......”
고양이를 주워온 기분이다.
집사로 간택된 건가.
애매한 관계...
모르겠다.
큰 방으로 가서 잤다.
1월 16일.
역사적 하락이 시작되었다.
비트코인이 2000만원에서 추락해 1100만원을 터치했다.
하루에 45% 하락.
1월 6일 2900만원을 찍은 비트코인이 고작 열흘 만에 70% 하락했다.
여기서 본전을 회복하려면 세배 올라야 한다.
아이티 버블 붕괴 때도, 리만 부도 때도 이 정도 하락은 없었다.
문제는 이게 가장 순한 맛이라는 것.
대부분의 개미들은 알트코인에 돈을 넣었다.
비트 코인이 두 배 오를 때 알트코인들은 열 배씩 올랐으니 훨씬 손맛이 좋았고 다들 알트코인에 투자해 대 알트시대를 열었다.
떨어질 때도 똑같다.
비트코인이 고점에서 70퍼 하락할 때 알트코인들은 그 이상 떨어졌다.
논란이 많았던 아인슈타이늄의 경우 4000원에서 450원으로 수직낙하했다.
고점에서 1억을 물린 사람은 지금 1200만원 남았다.
보기만 해도 끔찍하겠지.
그래도 지금이라도 내리는 게 낫지 나중엔 30원대까지 떨어지니 그때가 되면 1억이 90만원으로 바뀌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100분의 1 추락.
아직 시작점일 뿐이다.
낙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잎이 지면에 닿으려면 멀었다.
타다다닥.
예하가 기계적으로 숫자를 입력한다.
얇은 매수벽을 쳐 추락의 공포에 마구 던지는 물량을 받아먹는다.
데드캣바운스고 뭐고, 더는 못 버티고 절망한 이들이 탈출하는 물량이다.
받아먹으면 슬쩍 오르고, 그 사이 공간에 다시 얇은 매수벽을 친다.
이걸 한개 사이트가 아닌 수십 개 사이트에 해야 한다.
퀭한 눈으로 기계적인 입력을 반복한다.
예하를 보다가 세팅을 마무리했다.
최고급 컴퓨터와 네 개의 모니터. 아예 모니터 틀을 만들어 네 개 이어 붙였다.
“오빠, 채변 오빠가 집 준비 됐다는데.”
“이사할 시간 없어. 며칠간 바빠.”
미친 듯이 추락하고, 반동으로 미친 듯이 오르고 다시 미친 듯이 떨어지길 반복한다.
이때 줍는 만큼 이득이다.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깝다.
타다다다.
타다다다.
컴퓨터 두 대를 나란히 붙이니 모니터가 여섯개다.
각자 절반씩 맡아서 하면 된다.
이래봤자 여유로워지는 건 아니다.
교대로 쉬는 시간이 없어졌으니 더 힘들다.
“아아. 오빠 돈도 많으면서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해?”
“너 힘들면 쉬어.”
“아니. 아니아니.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사람 뽑으면 되잖아. 경호팀 언니들 심심해 죽을 것 같다고 하던데 같이 하면 안 돼? 설명해주고 입력하라 하면 되잖아.”
“어 안 돼. 이건 아무한테나 맡길 수 있는 게 아니야.”
자기 지갑에 송금하고 튀면 되찾을 수 없다.
혼자 해야 한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예하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한테나 맡길 수 없대, 우후후.’
예하는 볼이 발그레져 가지고 실실 웃고 있다.
“또 정신 놨네. 졸리면 가서 자든가.”
“아니야. 에헤헤. 열심히 해야지.”
“제 정신 아닌 거 같은데. 가서 자.”
“아닝. 괜찮아. 이렇게 하면 또 천육백억 버는 거야?”
“음... 반동이 전보다 더 크고, 둘이 해서 거래량이 늘었으니까... 3000억 벌지 않을까?”
예하의 손이 멈췄다.
“허.얼... 열심히 하겠음다.”
“그래. 성과급 정확히 챙겨줄게.”
“이 악물고 하겠음다!”
눈에 생기가 돈다.
역시 동태눈깔에 생기를 넣어주는 건 돈이지.
비트코인 가격이 1100만원과 1200만원을 집요하게 두들겼고, 추락할 듯 추락할 둣 애처롭게 매달리던 가격이 방향을 정했다.
상승이다.
1100, 1200, 1300. 1400.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언제나 존재하는 데드캣바운스.
팔려면 지금 팔아야 하는데.
하지만 바닥을 찌를 땐 더 떨어질 듯한 공포에 바닥에서 던지는 게 개미의 본능.
28시간에 걸쳐 바닥을 찌르니 지금 내리고 더 떨어지면 산다는 생각도 했겠지.
나중에 돌아보면 내가 판 가격이 바닥이고 내가 산 가격이 역사적 고점이란걸 깨닫고 좌절하겠지.
안타깝다.
과거의 나도 그랬으니 그 슬픔 잘 안다.
“예하야. 지금부터 벽 쳐. 1500만원부터 1700만원까지 0.4비트씩.”
“예써.”
그래도 돈은 벌어야지.
쌀 때 주워 비쌀 때 판다.
모두가 이걸 원하고 들어왔잖아.
우린 모두 동등한 사냥꾼이다.
먹거나 먹히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낙차의 70%까지 오를 것이다.
미래를 알면 참 쉽고, 이번 반등은 기본차트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래도 아무나 따라올 수 없다.
꿈도 희망도 전혀 없는 게 진짜 절망이니까.
1100만원에서 1700만원까지 오르면 대략 55%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3조원을 전부 넣으면 1조 6천억을 번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3조를 전부 살 수도 없고, 전부 사더라고 정리가 불가능하다.
저점인 시간은 짧고, 고점인 시간도 짧기에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아야 한다.
기대이익은 대략 30%.
최대한 이익을 늘리기 위해선 쉴 시간이 없다.
얇디 얇은 매도벽을 세우고, 대량 매수세가 몰려올 때 최대한 티 안 나게 팔아야 한다.
-비캐561층 : 역사의 시작! 지금이다!
-람보예약중 : 10년 후 돌아보면 오늘 샀어야 했다고 후회할 겁니다
-리또속리또속신나는노래 : 리플~ 가즈아~
ㄴ리플에 또 속냐?
-코인30년차 : 고점대비 70퍼 빠지고 반등입니다. 이건 전고점을 넘어갈 진반등입니다.
얼마나 올랐다고 희망론자들이 불타오른다.
아니 희망론이 아닐 수도 있다.
비캐561층 아저씨는 과연 손절했을까?
아니면 저 꼭대기에서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비트코인캐쉬는 75% 빠졌구나.
저 사람의 심리는 가격이 올라 다른 이들이 이득보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가격이 올라 자신의 손해가 줄어들길 바라는 걸까.
저런 악의 없는 개인희망이 거품을 만들고 다른 희생자를 만든다는 걸 모를까?
알면서도 무시하겠지?
타다다닥.
-내수익률1500배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떡밥 강화.
너희에게 악의는 없다.
나 또한 저들과 똑같은 1인일뿐이다.
도롱. 도로롱.
옆을 돌아보니 예하가 작게 코를 골고 있다.
의자 뒤로 머리를 넘기고 입을 헤 벌리고 있는데 꿈에서 맛있는 걸 먹는 듯한 기분 좋은 표정이다.
입 벌리고 코골며 자는데도 예쁘네.
깨울까 하다가 조금이라도 재우는 게 낫다 싶다.
목 뒤로 팔을 감고, 오금에 팔을 넣었다.
공주님 안기 허이짜!
안 들린다.
무릎만 들려 상체에 붙어버렸다.
군대 제대 했을 때만 해도 온몸이 근육이었는데.
1년 동안 삼각김밥만 먹으며 코인거래만 했으니 온몸의 근육이 사라지고 아랫배만 뽈랑 나왔다.
3조원과 맞바꾼 내 몸매.
연금술 등가치환의 규칙에 따른다면 내 몸매의 가격은 3조원!
졸라 짱! 시발! 졸라 짱!
이러는데 예하가 눈을 떴다.
목을 감고 다리 밑에 손을 넣은 자세.
들다가 실패해서 예하의 무릎이 가슴에 닿아있다.
“어...기절했길래 침대에 옮겨주려고 했지.”
일단 진실을 전달한다.
“졸라 짱이라는 소리에 깼는데. 이상한 거 하려고 했어?”
“......”
쪽팔려.
“하려면 해도 돼. 내가 어떻게 거절해.”
무표정하게 그런 말 하지 말아라.
“됐으니까 쉬다 와.”
“아니. 난 한숨자서 개운하니까 오빠가 쉬다 와. 되게 힘들어 보여.”
“... 어.”
쪽팔려서 자리를 떠야겠다.
동욱이 큰방 침대로 갈 때 예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 작가의말
최근 모든 알트코인이 열배이상 올랐더군요
두달도 안되는 시간동안
분위기가 2017년 11월이 연상되요
아뇨! 떨어진단 말이 절대 아닙니다 영원히 오를지 영원히 떨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진짜 아무도 몰라요. 그냥 그렇다고요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