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다 줄게요
예전 삶에서 나는 평범하게 코인을 했다.
즉, 잃었다는 말이다.
2017년 1월 전역하고 처음으로 코인을 접했다.
헬스장 근육형님에게 강력 추천을 받아 시험 삼아 10만원을 비트코인에 넣은 게 시초였다.
그리고 잊고 살았다.
평범하게 대학 복학해서 술 마시고, 노는 일에 열중했다.
그러다 9월쯤 뉴스에서 가상화폐의 위험성에 대해 들었다.
그때 기억나서 살펴보니 4배 올라 있었다.
대충격.
10만원이 40만원이 된 기적.
인터넷에선 이것이 미래 유일한 화폐가 된다 떠들고, 코인으로 위성을 발사하고, 코인하나로 이빨 하나를 치료할 수 있고, 코인 하나로 게임 하나를 소유한다 떠들며 사라고 부추긴다.
늦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모두가 돈을 버는데 나만 뒤쳐지는 기분.
그때부터 코인에 빠져들었다.
나름 유복한 집안이었고 부모님은 서울에서 유학하는 아들을 믿었기에 독립심을 길러준다며 아파트를 사 주셨고, 용돈도 많이 받았다.
용돈을 집어넣어 300만원을 채웠다.
더 오를 것 같아 사면 떨어진다.
더 떨어질 것 같아 팔면 오른다.
팔면 오르길래 안 팔고 버티면 계속 떨어진다.
떨어지면 사려고 지켜보며 기다렸더니 계속 오른다.
저게 더 잘 오르기에 이걸 내리고 저걸 샀더니 반대로 간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9월부터 겨울까지 미친 듯한 불기둥장이었다.
2018년 1월이 되자 천만원을 만들었다.
내가 번 돈이 700만원!
대박.
그리고 12월에 추락이 시작되었다.
그 전에도 몇 번 추락을 경험했기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버틴다.
버티면 오른다.
존버만이 답이다.
이 악물고 존나게 버티자.
어느 정도 떨어져도 조정이 오리라 생각했고, 역시나 1월에 한 번의 조정이 왔다.
그때 내렸어야 하는데 더 오를 것 같았다.
내가 안 산 게 오르는 거보다 내가 팔고 나서 오르는 게 더 배 아프거든.
그리고 1월부터 끝없는 폭락.
버티면 돼. 버텨. 조정은 온다. 내려도 조정할 때 내리면 돼.
그렇게 어설픈 지식으로 버티고 버텨 100만원이 되었다.
최고 가격의 7할이 내리고 드디어 급락이 멈췄다.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저점을 뚫진 못했다.
몇 달간 지켜보니 시장엔 장밋빛 전망이 넘쳐났다.
-비캐561층 : 1차 급등 끝났고, 70퍼 하락 조정 왔죠? 바닥 세 번 다졌으니 피보나치수열에 따라 이제 1차의 세배 슈팅이 올 거예요. 3천만 원이 9천만 원 되는 거죠.
-내 수익률 -3배 : 아직 안산 흑우 없제 ? 아직 안산 흑우 없제 ? 아직 안산 흑우 없제 ? 아직 안산 흑우 없제 ? 아직 안산 흑우 없제 ? 아직 안산 흑우 없제 ? 아직 안산 흑우 없제 ? 아직 안산 흑우 없제 ? 아직 안산 흑우 없제 ?
- 사놓고앱지우기운동 : 이 악물로 버티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람보사는꿈꿈 : 지금이 막차입니다. 로켓 발사하면 못 타요.
-존버가미래다 : 버티면 됩니다. 버팁시다. 영
ㄴ 차
ㄴㄴ 영
ㄴㄴㄴ 차
ㄴㄴㄴㄴ 영 차고지랄이고 우리 좃된거 같은데
저들은 왜 자기의 희망사항을 진실처럼 말한 걸까?
나는 거기에 혹해 인생을 걸었다.
나는 집에 와 일부러 술을 잔뜩 권해 두 분이 깊게 잠들게 한 후 농 깊숙한 곳에 있던 땅문서와 집문서를 훔쳤다.
은행에 가서 담보대출을 받으려 할 때 놀라운 점을 알게 됐다.
명의자가 직접 방문해야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땅문서의 명의자가 나라는 사실.
땅문서로 저당 잡아 비트코인을 샀고, 그 코인을 증거로 추가로 돈을 빌렸다.
인생 마지막 찬스.
18억원을 만들어 비트맥스에서 나름 안전하게 래버리지 10배 롱을 쳤다.
2배만 올라도 180억을 벌고, 원래 가격 2900만원에 가면 800억을 번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그리고 몰락.
모든 투입금액은 청산 당했고, 대출증서만 남았다.
부모님의 땅과 집을 잃었고, 코인을 추천한 모든 친구를 잃었다.
그때부터 지옥에서 20년을 살았다.
흐아아.
돌이켜보면 눈물이 난다.
2017년 1월 비트코인 가격보다 2019년 1월 가격이 네배 오른 상태였으니까 시작했을 때 사놓고 아무것도 안 했어도 4배를 벌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난 수억원의 빚을 졌다.
이때 난 집안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몰랐다.
그저 코인으로 거액을 벌 생각뿐이었다.
유복한 집이었는데 집문서와 땅문서를 은행에 뺏기고 추가로 빚을 져서 돌아왔다.
거기에 빚내서 공사했는데 백제건설에게서 못 받은 돈까지.
조승학과 아들놈에 의해 집안이 박살났다.
사실 아들 쪽 대미지가 살짝 더 큰 것 같긴 하지만.
조승학, 죽인다.
1년 전, 회귀한 후 부모님에게 가서 당당히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큰일을 도전하고 싶습니다. 돈을 최대한 빌려주세요. 집문서, 땅문서도 빌려주세요.”
군대 전역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내 당당한 말에 아버지가 물었다.
“어쩌려고?”
“이유는 묻지 말고 맡겨 주실 수 없나요?”
잠시 침묵이 감돌고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어차피 니 줄 거 니 명의로 해놨으니까.”
쿨하게 땅문서를 넘겨주시던 부모님. 예전 삶에도 훔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거다.
“...... 그런데 왜 제 명의로 했어요?”
땅문서를 받으며 묻자 곁에서 어머니가 대답했다.
“니 아버지가 술 마시면 좀 지르는 성향이 있지 않니. 요즘 땅 팔라는 사람이 많아서 아버지가 술 마시고 몇 번인가 팔 뻔 했거든. 갑자기 팔아 버릴까봐 불안해서 아예 니 명의로 바꿔 놨다. 땅값 더 오르면 상속세 오른다니까 아예 미리 바꾸면 좋지.”
“아들아. 집문서랑 땅문서 챙겼다고 아빠엄마 버리면 안 된다. 늙어도 똥수발 들어야 한다.”
아버지는 웃으며 농을 건넸고.
이렇게 받은 돈과 땅문서를 담보로 최대한 대출을 받아 시드머니를 마련했다.
내가 3조원을 버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부모님의 믿음이었다.
과거 난 이런 엄빠의 돈에 손을 대 모두 날린 거였다.
비트맥스 선물이 몽땅 청산당한 후 집과 땅을 은행에 빼앗겼다.
공사비용으로 휘청거릴 때 나의 망나니짓이 나머지 모든 걸 무너뜨렸다.
그 때 무진장 맞았다.
일주일동안 잘못했다고 천 번 정도 말하고, 어머니는 계속 울고, 아버지는 계속 때렸다.
그리고 멈췄다.
“자. 끝. 반성했지? 됐어. 이제 새로 시작하면 돼. 아들아. 이 아비도 몇 번 인생을 걸고 도전했다. 대출 끼고 집 살 때도 결국은 땅값이 올라서 살았지, 만약 땅값이 조금이라도 떨어졌으면 당장 거지되었을 거야. 다들 그렇게 모험하면서 살아. 넌 그저 운 없게 실패했을 뿐이다. 끝. 더 이상 이번 일에 잡혀 있으면 안 된다. 여보, 당신도 이번 일로 애한테 화내면 안 돼.”
아버지는 멋있었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단 한 번도 그 일을 말하거나 화내지 않았다.
어머니 또한.
이런 분들은 더없이 행복해야 할 자격이 있다.
“다 말씀드릴게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제 재능을 발견했어요. 주식 종목 중에 제가 느낌이 오면 두 배가 오르고, 제가 느낌이 오지 않는 것은 떨어지더라고요. 수십 번을 시험했는데 수십 번 다 그랬어요.”
거짓말이다.
“그래서 제대하자마자 부모님께 받은 땅문서로 돈을 빌렸어요.”
“위험한 도전이었구나.”
“그 돈으로 투자를 했고, 두 배씩 열 한번을 벌었어요.”
“어...... 그래. 적당히 잘했네.”
수학은 어렵지.
아버지가 이해하기 쉽도록 부연설명을 했다.
“2의 11승은 2048배입니다. 번 돈은 4000억 정도 되요.”
떠억.
아버지도 어머니도 입을 떡 벌렸다.
그나마 덜 놀라시라고 해외계좌는 말하지 않았는데.
“그 돈 전부 드릴게요.”
“어...... 어?”
“부모님 돈으로 벌었으니 돌려드려야죠. 전 또 벌면 되요.”
“어... 아니다. 니가 벌었잖아.”
“맞아. 아들. 아들 돈이야. 우린 아들이 행복하면 돼.”
이런 분들이다.
애초에 이러실 줄 알았다.
스읍.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우선은... 해외여행 좀 다녀오세요. 엄마랑 손잡고 좋은 곳 가서 쉬다 오세요.”
“에이. 요즘이 제일 바쁜 거 모르니?”
밭이나 논을 정비하는 건 추수 이후 모내기 전에 해야 한다.
아버지의 불도저는 지금이 가장 바쁘다.
“아는 데 힘들잖아요. 아버지. 평생 일하지 않고 매일 불도저 한 대씩 사도 돈이 남아요. 그러니 이제 엄마 좀 행복하게 해주세요. 멋진데 같이 가고, 맛있는 거 같이 드시고. 엄마를 위해서. 아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어... 어.”
아버지가 얼떨결에 대답했고, 어머니는 미소 지었다.
“우리 아들 다 컸네. 잘생겼어, 우리 아들.”
어머니 마흔여덟 살.
20대에 봤을 땐 참 나이 많아 보였지만, 44살까지 살아본 바, 굉장히 젊은 나이다.
엄마는 젊게 살 필요가 있다.
“대신 돈 잘 번 아들 소원하나 들어주세요.”
갑자기 받기만 하면 미안해 할 테니 퀘스트를 생성해 정당한 대가를 드리자.
“소원? 그래. 모든 들어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나 여동생 하나만 만들어 주세요. 나만 여동생 없어. 나만 고양이 없어.”
엄빠, 인구문제가 큰일이래요. 애국하세요.
“얘는, 무슨 농담도.”
하면서 아빠의 손을 잡는 엄마, 예쁘다.
“나가요. 친척 분들에게도 할 말이 있어요.”
“그래.”
아버지도 어머니도 금액이 실감나지 않는지 멍하니 따랐다.
“어어? 얘기 끝났으면 와서 한잔 해.”
날 볼 때마다 술을 권하는 작은 아버지가 크게 외쳤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 다들 거실에 모여 주실래요?”
“거실에? 이판만 끝내고 걷자고.”
3광을 낸 이모부가 고를 외치며 말했다.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이웃이기에 서로 친척이자 불알친구이자 평생지기인 분들이다.
동욱은 친척어른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남보다 못한 친척.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는 아귀다툼.
거짓말로 살살 꼬득이며 투자하라는 식으로 돈을 뜯어내려거나 괜히 아픈 척 하며 돈을 내놓으라 한다면 칼 같이 자르면 된다.
하지만 두 번째 사는 나는 이들의 본성을 안다.
“저 돈 많이 벌었어요. 뭐 사줄까요?”
뭐든 다 사줄게요.
이들은 좋은 사람이다.
땅과 집을 빼앗기고 빚만 산더미처럼 남았을 때.
아버지한테 얻어맞을 때 친척 어른에게도 얻어맞았다.
그 후 아버지가 그만하라 하자 누구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다들 돈을 모아 10억이 넘는 빚을 갚아주었다.
월세 방이나마 빚 없이 살 수 있게 된 거다.
아버지 어머니는 백제그룹과 싸우면서도 열심히 일해 친척들의 빚을 갚아나갔고, 그 와중에도 친척분들은 반찬이나 고기를 챙겨다가 집에 가져다주곤 했다.
그 날을 생각하면 항상 눈물이 난다.
“사주긴 뭘 사줘.”
“어휴 이제 말해도 되는 거야? 입 근질거려 죽을 뻔했네.”
“어. 매형도 돈 빌려줬어요?”
“형님도?”
어른들이 서로 말하다가 내 얼굴을 봤다.
회귀한 후 친척분들께 따로 돈을 빌렸다.
절대 비밀로 해달라며 돈을 보내 달라 했고, 어른들은 별말 없이 돈을 송금해줬다.
그렇게 모은 시드가 2억이다.
23살 어린애에게 여윳돈 전부를 빌려준 것이다.
그러고도 1년 동안 묻거나 재촉하거나 갚으라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비밀을 지켜줬다.
양평의 땅값이 올라 인심이 좋은 것 일수도 있다.
그래도 기본적인 인덕이 없으면 돈이 많아도 불가능한 일이다.
행복할 자격이 넘치는 분들.
예전엔 내가 만든 수렁에 함께 빠져 고생한 분들.
2억이 1500배 올랐다.
그럼 다 갚아야지.
부모님께 했던 것처럼 4천억을 벌었다고 말하고 앞으로 원하는 거 다 해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어안이 벙벙한 어른들을 보며 머리 식힐 시간을 드렸다.
“우선 해외여행 좀 다녀오세요. 머리 식히고 뭐 하실지 생각 좀 해 보세요.”
“어? 우리 모두?”
“네. 모두요.”
각자의 삶이 있고, 이런 식으로 추진하면 안 되는 거 안다.
그래도 이번만은 따라줬으면 좋겠다.
백제 그룹과 싸움에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유럽 크루즈 100일 여행을 끊어놨어요. 유럽 한 바퀴 돌고 와 주세요. 부탁이에요.”
안전한 곳에 모신다.
100일이면 정리가 끝날 것이다.
전화를 하고 문을 열었다.
준비하고 있던 사람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어른신들.”
채인수가 선두에서 인사하고 도와줄 사람들을 소개해줬다.
“이쪽은 여행사 직원들입니다. 필요한 것들 알려드리고 짐 챙기는 거 도와드릴 겁니다.”
계약한 여행사에서 열 명 넘는 사람이 왔다.
이 중 유럽여행을 함께 할 가이드도 두 명이 있다.
“이쪽은 주치의입니다. 함께 여행하며 건강을 돌봐주실 겁니다.”
은퇴한 응급과 원장님을 모셨다.
갑작스런 사고나 건강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한발 빠르게 처리해주실 거다.
여행 이후에도 주치의는 항상 함께 한다.
“이쪽은 경호원들. 혹여나 시비가 일어도 안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구형재의 동생들 중 특히나 떡대가 우람한 형들 스물이 뽑혔다.
유럽 스킨헤드들과 전쟁을 벌여도 밀리지 않을 외형이다.
듣기로는 너도나도 가고 싶어 지원했다던데.
공짜로 유럽여행 하는 거니까.
“출발은 다음 주입니다. 짐부터 챙기시죠.”
“어? 뭐? 다음주?”
여행사 직원들이 어른 한 명 한 명에게 붙어 여행에 필요한 것을 챙겨주기 시작한다.
지난해 친척들 다 같이 해외여행을 다녀왔으니 비자가 문제될 건 없겠지.
- 작가의말
중복이므로한편더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