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법무부데이
“아빠는 세 달 동안 수술하고 고생하다가 떠나셨고, 엄마는 아직 병원에 있어요. 그리고 사고는 아빠가 가해자래요. 뭐 이래저래 다른 피해자분들한테 보상 드리고 병원비 처리하고 하니까 빚이 3억이었어요. 그 돈은 회사가 내 줬어요. 그 와중에 정신없이 살다가 데뷔는 물 건너갔어요.”
“그 빚 때문에 소속사에 묶여 있는 거야?”
“네. 회사에서 3억을 내줬고, 매달 어머니 병원비까지 내주고 있어요. 덕분에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어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엄마는...”
“전에 달라고 했던 천만 원은?”
“엄마 지난 달 병원비요.”
“지금까지 내주다가 왜 갑자기 안 내준데?”
“...... 흑.”
울려버렸다.
내가 잘못했나?
“지금까진 미성년자라고. 건드리면 같이 죽는다고 버텼어요. 그런데... 그런데 이제 성인 됐으니 몸으로 갚으래요. 안 벗으면 엄마 병원비 없다고.”
“조승학이?”
“예. 흐흑. 어떻게든 병원비 내야 해서... 차라리 아무에게나... 빌려보려고... 사실 전부 포기하고 그냥 몸 버리려고... 했을 때 만난 게 천사오빠였는데...”
쓰레기는 역시 쓰레기다.
조승학은 쓰레기다.
미성년자라 못 건드리고 참다가 성년이 됐으니 억지로 끌고 가던 거였나.
울고 있는 이예하를 봤다.
예쁘다.
영화에서 튀어나온 가련한 여주인공이다.
지난 생 44년 동안 얘보다 예쁜애는 보지 못했다.
이런 애가 미래에 뜨지 못했다는 것은.
“시발.”
“살려주세요.”
“그래.”
어차피 조승학과는 적이다.
죽일 거다.
죽이는 김에 구해주지 뭐.
띠리리리.
채인수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예. 채형. 죄송해요. 잠시 미쳤어요. 핸드폰 입수했는데 확인을... 예. 맞아요.”
갑자기 변한 상황을 한참 통화하며 대책을 세웠다.
이어 구형재의 전화를 받아 몇 가지 부탁을 했다.
곁에서 통화내용을 들은 예하는 내심 안심했다.
전부 알아듣진 못해도 조승학에게 원한이 있다는 건 전해졌을 거다.
“BJ엔터...”
검색해 들어가 소속 연예인들을 차분히 살펴봤다.
한명 한명 검색해 따로 알아보고 분류한다.
듣보잡 연예인이 백제 아파트 광고를 찍고, 듣보잡 걸그룹이 백제 식품 치킨 광고를 찍었다.
대가로 뭘 줬을까?
뻔하지.
이건 재벌 3세의 놀이터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얼굴을 보다보니 미래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만나볼 가치가 있겠네.”
“네?”
“아니야.”
검색을 하는 사이에 구형재에게 전화가 왔다.
문을 여니 야밤에 출동한 경호원 십여 명이 왔다.
“가시죠.”
“네. 컴퓨터 좀 챙길게요.”
집에서 챙겨갈 것은 컴퓨터밖에 없다.
나머진 다 버려도 된다.
경호원의 차를 타고 청담동의 4성급 호텔로 갔다.
하루 숙박료가 방학동 원룸 월세 세달치인 스위트룸.
예약이 된 방으로 들어가 짐을 옮겨준 경호원들과 컴퓨터부터 세팅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경호원들은 내 신분을 모른다.
극히 조심해서 보호하고, 정보를 감추라는 구형재의 지시대로 행동한다.
경호원들이 나가자 화려한 호텔 룸엔 나와 컴퓨터, 예하만 남았다.
“어?”
“네?”
“여길 따라왔어?”
“네? 아. 네. 그...... 살려주신다고 해서. 아무 말씀도 없으셔서.”
길 잃은 강아지마냥 쫄레쫄레 따라왔구나.
너 아무나 따라다니면 위험하다.
특히나 예쁜 애가...
참 예쁘다.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호텔이라는 공간에 단 둘이 있다는 게 음심을 흔든다.
스읍, 하.
스읍, 하.
스읍, 하.
“...... 일단 보호해줄게.”
방 하나를 더 잡아 예하를 내보냈다.
컴퓨터를 세팅하고 인터넷을 연결하고 켰다.
각종 사이트를 열고 전부 로그인 한 다음에 사이트별 알람지정과 몇 개 없는 오토프로그램을 가동시키니 동이 터 오른다.
자자.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으음... 누구야.”
백제 컨설팅 사장이자 백제그룹 2세 조준선이 전화를 받았다.
-새벽에 죄송합니다. 사장님. 기획실 허영수입니다.
허영수라면 아들 조승학의 뒷바라지를 하는 비서다.
조준선은 아들놈이 또 사고 쳤구나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왜.”
-죄송합니다. 아드님이 구타당해 크게 다쳤습니다. 현재 백제종합병원에 있습니다.
“어떤 새끼야! 당장 잡아와!”
감히 내 아들을 패?
죽여야지. 그럼.
환하 그룹 회장님은 자기 아들이 맞고 오자 조폭 수십을 동원해 상대방을 두들겨 팼다.
공개 재판에서 웃으면서 ‘내가 패다 패다 힘들어서 애들보고 패라 시켰어, 검사님은 뭐 룸 한번 안가봤나봐. 크크.’ 이러는 여유까지 보이셨다.
실제로 감옥에서 딱 며칠 살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셨고.
백제 그룹이 환하그룹보단 작지만 아들 복수 정도는 해줘야지.
일단 잡아와서 팬다.
-예. 그런데 경호원 말로는 상대에게 전문 경호원이 다섯 이상 붙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경호가 다섯?”
-예. 그래서 조사부터 해봐도 될런지요.
“샹. 이 새낀 대체 언놈을 건드린 거야? 일단 경호원부터 조지고 그놈 정체도 알아내.”
-예. 알겠습니다. 쉬십시오.
전화를 끊은 후 조준선은 한참 씩씩거리다가 아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갔다.
갈비뼈 세대가 부러지고 이빨 9개가 날아가 퉁퉁 부은 아들.
유일한 그룹 후계자가 이 꼴이라니.
“죽여. 다 죽여버려! 보안팀장! 이 새끼야!”
조준선은 골프채를 들었다.
허영수는 조승학의 경호원을 만나 가해자를 추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조승학이 여자를 끌고 갔고, 비명소리를 들은 지나가는 행인이 구타했다.
막으려 하니 자신들은 상대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했다.
가해자가 옆집에 산다는 건 알 수 없었다.
깨어난 조승학이 옆집 사는 놈에게 맞았다고 말하고, 부동산 정보를 통해 윤동욱의 이름을 알아내기까지 며칠이 더 걸렸다.
띵동.
벨소리에 눈을 떴다.
지이잉.
핸드폰 벨도 울리고.
낯선 천장이군.
한 번 더 환생했나.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따락.
스위트룸 문을 여니 이예하가 꾸벅 인사를 한다.
어미 잃은 새끼고양이처럼 겁먹은 목소리로.
채인수가 방문한다는 전화를 하는 사이 무심결에 예하를 안으로 들였다.
생각해보니 얘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지 않았다.
아침도 못 먹었겠지.
돈이 없을 테니.
어쩌다보니 고양이를 주웠네.
“너는... 음...”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조승학은 곧 정리될 거야. 백제그룹은...... 너에게 해꼬지 할 정신이 없을 테고. 어디 잠깐 숨어 있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아니. 아뇨아뇨. 그게......”
“엄마 때문인가. 병원비가 얼만데?”
“네? 한 달에 천이요.”
“그래. 그거 내줄게. 그러니 원하는 대로 살아.”
구해줬으니 보따리 정도는 주마.
큰돈이면 망설이겠지만, 억 단위는 푼돈이다.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고마워서요. 정말 막다른 길에 몰렸었는데. 그랬는데. 고맙다고 인사하려고요.”
“어제도 했잖아. 됐어. 가봐.”
“그래도 저한텐 정말 큰.”
이라고 말하는데 예하의 배가 합창했다.
꼬르르륵.
“......”
얼굴이 빨개져서 두 손으로 가리는데 참 귀엽다.
“밥 못 먹었지? 밥 먹자.”
“아뇨아뇨. 사람이 염치가.”
“고맙다며? 두 번 말하게 하지 말자. 귀찮게 괴롭히려고 온 거야?”
“아니. 그......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해서 룸서비스 제일 비싼 거 2인분 올려달라고 해.”
“아닙니다. 전 제일 싼...”
“두 번 말하게 하지 말자.”
“네.”
예하는 내선전화기를 한참 보다가 전화해 제일 비싼 걸 주문했다.
제일 비싼 메뉴는 스테이크다.
이건 대체 뭔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네.
먹고 있는데 채인수가 도착했다.
“왔어요? 식사는요?”
“됐어. 난 나가서 먹을게.”
“그러세요.”
얼굴 보는 건 두 번째지만 통화는 스무 번 넘게 했다.
채인수를 통해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니 통화가 잦을 수밖에 없고 말도 편해졌다.
“이쪽은?”
“안녕하세요. 이예하라고 합니다.”
눈치 보던 예하가 벌떡 일어나서 인사했지만, 채인수는 나만 바라봤다.
“어제 휘말린 애. 조승학과 원한관계가 있어요. 그냥 말해도 될 것 같아요.”
“그래. 일단 핸드폰에서 많은 자료를 얻었다. 협박용 자료도 많더군. 엔터를 통해 로비하는 거 같더라고.”
30분마다 자동 꺼짐 막는 게 불편하지만 하며 궁얼거리는 건 무시하자.
“자료를 내 쪽으로 전송했고, 너한테 메일로 보내놨어. 코톡 메세지도 모두 캡쳐 떠서 옮기고 있고.”
“믿을만한 사람이에요?”
“내 여동생이 하고 있어. 나만큼이나 원한이 깊지.”
“잘 됐네요.”
“백제에선 당장 손은 못 쓸 거다. 최소한 법적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기자가 알아내면 그쪽에서 막을 거야. 대신 KS에서 한 것처럼 잡아다가 빠따 먹일 순 있겠지. 절대 혼자 다니지 마라.”
“네. 경호도 강화했어요. 밤엔 웬만하면 집에 있을 거고요.”
“그래. 좀 만 버텨라.”
“네. 회사는 안 나가도 되요?”
“어차피 때려치울 건데 뭐. 외근 나간다고 코톡 하나 날리고 말았다. 내일 팀장하고 술 마시기로 했으니까 어떻게든 패스워드 캐내서 내부자료 좀 뽑아보고 그게 안 되면 그만두려고.”
“네. 너무 오래있지 마요.”
“어.”
채인수는 그 외의 일에 진행상황을 말한 후 떠났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만히 있던 예하는 90도 인사를 꾸벅 한다.
얘도 보내자.
“...... 돈 좀 챙겨 줄 테니까 가봐.”
“네? 저... 너무 무서운데......”
이게 당연한 건가.
얘를 어찌할까.
예쁘고 안쓰러워서 곁에 두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띠디디디.
알람이 울린다.
코인거래소 수십 개 사이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며 반짝인다.
“엌. 지금인가.”
코인게시판부터 가봤다.
역시나 난리가 나 있다.
[박승조 법무부장관 “모든 코인 거래소 폐쇄하겠다.”]
2018년 1월 11일 정오.
기사가 뜨기 전 금감원 직원들이 모든 코인을 팔았다.
기사를 먼저 본 코인러는 모든 코인을 팔고나서 주위사람들에게 알렸다.
주위 사람들도 일단 자기의 모든 코인을 현재가로 던지고 주위사람들에게 알렸다.
코인 가격이 수직 낙하한다.
한국의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자 중국일본 아재들과 단잠을 자던 버거형님들이 뭐지? 뭐지? 하며 구글링을 했고, 자동 번역된 김치국 법무부 뉴스에 충격을 받았다.
세계 5대 거래소 중 2개가 한국에 있는데 전부 폐쇄하다니.
뉴스를 접한 사람 순서대로 현재가로 전부 던진다.
순식간에 5퍼센트 빠지고, 어? 왜 떨어지지? 바겐세일인가? 하고 뉴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슬쩍 들어왔다가 폭포수에 으아아아아 하며 휩쓸려 내려가고, 어 10퍼 빠졌네? 숏반등 5퍼만 먹자, 하고 발가락 끝을 살짝 담근 단타쟁이들이 으어어어 하며 휩쓸렸다.
재난.
이건 명백히 재난이다.
국가의 정식발표도 아닌 한국 법무부 내에서 말한 의견일 뿐인데 전 세계 비트코인이 동시에 20퍼 빠졌다.
1950 1740 1590 1680 1490
숫자가 거침없이 변동하고 있다.
무섭게 흔들리는 숫자를 본 순간 모든 상황을 잊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1억, 2억도 아닌 수천억을 벌 기회, 혹은 잃을 위기다.
최대한 집중할 수밖에 없다.
마약보다 100배 강력한 엔돌핀이 뇌에서 생성되며 집중력을 최고조로 올렸다.
동욱은 곁에 있는 예하도, 어제 있었던 구타사건도 모두 잊고 숫자에 빠져들었다.
- 작가의말
고양이에게 집사로 간택되고 싶습니다
정치적 의도 없으며 개인성향은 좌당우당타당몽땅 싫어하는 선거기권파입니다
제 정치적 성향을 알고싶다면 다른글 보기를 추천추천! 에헤헤
이래도 정치충 분들 와서 막 악플 날리고 그러면... 악플이 무플보다 좋아효~ 하앍하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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