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 프로의 의무1
이글의 모든 것은 픽션입니다
9월 19일 토요일. U19팀과 2팀의 경기가 있다. 1팀의 경기는 내일이고. U19팀의 주전 무하멧 카르가 부상을 당해서 스벤 델로프를 땜빵으로 내려 보냈다. 대신 2팀의 오른쪽 윙 포워드로 강창덕이 뛰기로 했다.
경기 네 시간 전에 2팀의 홈 경기장 부루흐베크슈타디온에 도착하자 평소와 다른 이상현상이 발견되었다. 차가 쭉 늘어서서 주차장에 진입할 수가 없었다.
“뭐지? 무슨 축제라도 있나?”
운전하던 마리엘이 말을 받았다.
“무슨. 저 사람들 다 경기 보러 온 거야.”
“네? 설마요. 이 많은 사람들이 4부 리그를? 게다가 경기 4시간 전인데 벌써?”
“맞아. 다들 마인츠 머플러 들고 있잖아. 그보다 빨리 아만다에게 전화해서 사람 좀 추가하지?”
“아. 그래야겠네요.”
예전에 마인츠가 홈 경기장으로 쓰던 부루흐베크슈타디온은 2만 명을 수용하는 적당한 크기의 경기장이다. 다만 몇 년간 평균 2000~3000명의 관중이 들어왔기에 관리 인원을 대폭 줄였다. 매표 창구도 두 개만 열었고, 진입 게이트도 두 개만 열었다.
주차장으로 거북이처럼 이동하던 차는 결국 멈춰버렸다. 몇 년간 최대 3000명의 관중밖에 안 왔기에 주차장을 이런저런 용도로 줄였고, 결국은 만차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만다. 2팀 경기장으로 사람 좀 보내요. 매표소랑 검표원, 주차안내원까지. 만원관중 같아요. 주변 주차 공간도 수배해서 차량 돌릴 자리도 찾고. 그리고 나눠줄 수 있는 상품 좀 잔뜩 가져와서 나눠줘요. 왠지 못 들어오고 돌아가는 사람 잔뜩 생길 것 같아요.”
4부 리그 경기에 이렇게 많이 찾아온다고? 이건 처음 보는 일이다.
매표소의 줄도 길지만, 게이트 앞의 줄은 엄청났다. 단순히 표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테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꼼꼼히 검사해야 하기 때문에 한명 들어가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단 두 개의 게이트로 20000명은 도저히 소화할 수 없다.
물론 이렇게 검사해도 어떻게든 숨겨 홍염탄을 쏘며 난리가 나지만, 그러면 구단이 징계와 벌금을 먹는다.
아직 더운 9월인데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짜증을 내지 않고 있다. 모여서 응원가를 부르고, 연습하고, 준비한 깃발을 흔들며 떠들고 있다. 경기 네 시간 전부터 말이다.
겨우겨우 차량 숲을 헤치고 선수 진입 게이트에 도착했다. 게이트와 가까운 선수단 전용 주차장. 그런데 여기도 사람이 가득하다. 경기장 주변 전체에 사람이 가득한 것 같았다.
“뚜기 기다려. 가드를 불러올게.”
생각 없이 내리려던 강창덕은 마리엘의 말에 멈춰 섰다. 곧 가드 네 명이 온 후에야 차에서 내렸다.
“어? 뚜기다?”
“쟤야? 쟤 맞네.”
“헤이! 힘내라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모여들었다. 이거 꽤 압박감이 강하다. 갑자기 미쳐서 날뛰면...... 유명 연예인들은 항상 이런 압박감을 안고 살아가는 건가.
“뚜기 이거 받아!”
“죄송해요. 경기 전 사인은 안 돼요. 안 지키면 벌금 물어요. 경기 끝나고 이 자리에서 해드릴게요.”
경기 전에 팬에게 사인하는 것을 구단에서 금지시키는 규칙이 있다.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하는데 인기스타가 무한정 사인을 하다보면 컨디션이 무너질 수가 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거절하면 선수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 그래서 구단 핑계를 대라고 만든 규칙이다.
“알아! 선물이야. 이거 받아!”
건네주는 건 스니커스 12개가 들어있는 작은 박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준다면 받아야지. 어우야. 뭐 이런 걸 다.
“헤이 뚜기. 이것도!”
“이것도 받아!”
선물을 준비한 건 그 아저씨뿐이 아닌가보다. 이사람 저사람 초코바를 건네준다. 중간 중간 한국산 초코파이빵도 눈에 띈다. 이건 어디서 사온거지?
결국 경호고 뭐고 가드들도 선물을 들어야 했다. 이 사람들이 공격할 것 같지는 않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꼭 이길게요.”
“져도 되니까 다치지 말고 해.”
뭐지? 부모님이 말하는 듯한 이 훈훈함은? 열혈팬이라면 니들 다리 다 부러져도 달리고 달려서 승리를 쟁취하라! 이건데.
새로 유입된 서포터인가?
마리엘과 가드들까지 합쳐도 다 못 들게 되자 마침 출근하던 패트릭이 도와주었다.
“나눠들어줄게.”
“아아. 고마워요.”
패트릭이 선물을 들자 팬들이 그에게 선물을 쌓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거 뚜기 주세요.”
“아저씨 이것도요.”
아직 독일어가 서툰 패트릭도 알아들을만한 간단한 단어였다. 강창덕은 놀라 돌아봤지만, 패트릭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라커룸 한쪽에 받은 선물을 쌓아놓고 선수들이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훈련을 마치고 쉬며 오다가다 하나씩 주워 먹었다.
“그런데 왜 다들 스니커스를 줬을까? 내 취향도 알려졌나?”
“어? 모르냐? 이 동영상 유명한데?”
오랜만에 함께 선발 출장하는 마르코가 낄낄대며 동영상 하나를 찾아 틀었다.
동영상의 제목은 시금치 먹는, 아니 스니커스 먹는 유망주.
편집자는 루키루카였다.
경기 중 틈만 나면 마리엘에게 달려가 스니커스 먹는 강창덕의 모습이 편집돼 연속 재생되고 있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스니커스에 미친 사람 같긴 하다. 그 밑에 댓글은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아드님 댁에 스니커스 좀 나둬야 겠어요
-ㅅㅂ 아기새 같다
-징크스 아니야? 저거 먹어야 잘한다는?
-쟤 먹고 이 안 닦았지? 3분 지나도록 이 안 닦았지? 조흔치과의원 012-3331-2511
-아기새 카와이~
-뚜기 사랑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어 미안
-귀엽네
“캬캬캬. 너의 스니커스 패티쉬가 전국에 알려졌다. 벌써 180만 뷰야. 그 아래 스페샬은 250만 뷰고.”
“스페샬?”
“어. 니가 잘한 거만 모아논거.”
이것도 편집자는 루키루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강창덕과 마인츠가 화재가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는 듯하다.
스페샬 영상의 제목은 평범한 유망주의 평범한 시야.
고개를 들지 않고 드리블 하다가 찔러주는 킬러패스. 이것도 모아놓으니 멋있다. 환상적이다. 축알못도 왜 대단한지 알게 하기 위해 루키루카가 더빙까지 해 놨다.
“봐봐. 뚜기의 시선을 봐. 공만 보지? 공만 보며 드리블. 드리블, 드리블. 이러다가 갑자기 톡.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는데 톡 찬 공이 정확히 쇄도하던 개리에게 갔어. 그리고 다음 장면. 여기도 고개를 안 들고 패스. 리턴 패스. 갑자기 돌면서 스루패스. 조나단 골. 수비수 셋 사이에 아주 좁은 패스 길을 고개도 안 들고 알아냈어. 굉장하지? 얜 정수리에 눈깔이 있어. 그 다음 장면도......”
-캬. 이정도면 사비급 아니냐?
-사비보단 다실바 타입 같은데.
-토밀러도 전성기 땐 저런 패스 많이 했는데
-맞네. 토밀러가 정말 예측 불가능한 플레이 많지
-월드컵 통산 최다 득점자. 우리 토밀러니뮤
-평범한 유망주의 미친 시야
-미친 유망주의 평범한 시야
-보통 외계인의 보통 패스
-이거 진짜 외계인 아니냐?
-3안류 반칙이잖아. 너네별로 꺼져버려
-축구 게임인줄. 에펨14버전에서 애들 고개 안 들고 패스했는데
-에휴 에펨충 ㅉㅉ
-현실을 사세요 아재요
이건 좀 너무 미화됐네.
고개를 안 든건 볼 컨트롤에 바빠서다. 패스마스터 사비 같은 경우엔 사방을 둘러보면서도 발밑의 공을 완벽히 통제하겠지만, 강창덕은 아직 그게 안 된다.
볼 소유를 최우선으로 하기에 공을 보며 간수하다가 지니가 시키는 대로 찬다.
그런데 이게 남이 볼 때는 미친 시야로 보이는구나.
주위를 전혀 살피지 않다가 갑작스런 스루패스. 당연히 코앞의 수비수는 전혀 예상치 못해서 발도 못 뻗는다. 그 패스는 경기를 바꾸는 패스가 되어 득점으로 연결된다.
멋있다. 졸라 멋있다. 내가 했지만 졸라 멋있다.
“하. 자기 입으로... 안 부끄럽냐?”
마르코가 옆에서 딴지를 걸었다.
“내가 혹시 소리 냈냐?”
“멋있다. 졸라 멋있다. 내가 했지만 졸라 멋있다. 이러시던데요? 괜찮으세요?”
“좀 창피하네. 그래도 멋진 건 사실이잖아. 근데 니건 없냐?”
“나? 난 없......”
핸드폰을 감추는 마르코.
있구나. 강창덕은 잘 안 쓰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전화번호를 마리엘과 아버지만 아는 개인폰. 루키루카의 페이지에 들어갔다.
“이건가본데.”
제목은 대가리가 커 슬픈 짐승아.
마르코의 얼굴길이가 37cm지.
“야야. 보지 마라. 보면 절교다. 보지 마!”
무섭지 않다. 동영상을 틀었다.
역시나 헤딩 마스터 마르코의 슬픈 영상 모음이다. 최대치로 높이 떠서 헤딩은 잘 따내는데 착지할 때 균형 감각이 엉망이다. 게다가 머리가 매우 커서 가분수로 보이기 때문에 넘어질 때 참 우스꽝스럽다.
헤딩 후 넘어지기. 머리 무게에 휘둘려 넘어지기. 다이빙 슛 하고 머리부터 처박기. 상대와 경합하다가 머리부터 낙하하기.
머리가 커서 어떻게 넘어져도 웃기다. 이 영상 좋다. 강창덕이 낄낄 대며 추천 따봉을 누르자 옆에서 마르코가 변명했다.
“젠장. 다 원정 경기만 모아놨어. 원정 땐 설사하느라 다리에 힘이 없다고. 제길.”
지니가 보여주는 마르코의 적응력은 1. 원정만 나가면 잠을 못자고 아무것도 안 먹어도 설사한다. 당연히 컨디션은 바닥. 워낙 홈 원정 실력차가 커서 물똥이란 변명이 열혈서포터 사이에 퍼져있다.
“그래도...... 왜 웃기게 넘어지냐? 일부러 웃기려고?”
“제길. 그런 체형으로 태어났다고! 싸울래? 일기토다. 내 일기토 신청을 받아라. 거부 시 사기가 10 떨어질 것이야.”
마르코와 노닥거리는 사이 시간이 되었는지 감독이 들어왔다. 2팀 감독인 파레트 토쿠잔은 다소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만원관중이다. 20000명 가득 찼어. 게다가 경기장 밖에선 못 들어온 6000명이 해산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열심히 해야죠.”
“이겨야죠.”
“최선을...”
“그래. 상대보다 우리의 전력이 한 수 위야. 관중의 응원에 상대는 제대로 뛰지도 못할 거야! 압살해버려.”
2팀 전술도 강창덕이 관리한다. 이미 지니를 통해 전달한 상태다. 감독과 코치가 세부전술을 마지막으로 설명하고 경기장으로 나섰다.
선수 입장 때 불러주는 YNWA. 2만 명이 불러주는 이 노래는 가슴을 저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삑!
호각 소리와 함께 상대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상대는 SV 발트호프 만하임. 1907년에 창단했지만 4부리그에서도 하위권 팀. 질 수가 없다.
에이스 펠리스와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하자 상대가 달려든다. 무리다. 경기경험이 늘어나니 이젠 이런 게 보인다.
상대가 달려드는 뒤로 툭 차놓고 달렸다. 이 속도는 아무도 못 따라온다. 음바페나 예린이 정도 되야 따라붙을 수 있다.
그대로 치고 달리자 순식간에 코너플랫 근처까지 왔다. 이럴 땐.
‘지니야.’
-8.5
지니를 안 쓸 순 없다. 다만 최대한 잠깐씩 써야 한다. 결정적일때만.
8시 방향으로 강한 땅볼패스를 하니 펠리스가 홀로 있다. 팰리스의 강한 슛.
높이 떴다.
“안녕. 루키루카야. 오늘은 마인츠2팀의 경기를 중계할거야. 만하임과 마인츠2팀과의 경기야. 여기 관중 수 보이지? 매진이야 매진! 2팀 경기에 매진이라고 엄청나지 않아? 클롭이 선수로 뛴 이 경기장이. 클롭이 주장으로 뛴 이 경기장이. 클롭이 감독으로 팀을 최초로 승격시킨 이 경기장이. 투헬이 팀을 유로파로 이끈 이 경기장이. 유로파 기준이 안 되어서 새 경기장을 짓고 2팀이 쓰게 된 이 경기장이 9년만에 매진을 기록했어.”
-에휴. 언제적 클롭이냐
-100년 후에도 클롭 빨걸 마인츠놈들
-클롭이 왜? 뭐?
-추억팔이 오지고요
-그래서 지금 어디?
“매진이라니! 이거 4부리그 기록 아니냐? 어? 아니라고? 설마. 9만 명? 뭐? 잠깐 찾아볼게. 1973년. 1860뭰헨 VS 아욱국. 9만명 맞네. 야 이게 말이 돼? 미니뮌헨에 9만 경기장이 있어? 자 어쨌든 올해 4부 리그 최다인 2만명의 관중이 모였어. 올해 기록이야. 자 선수 입장한다. 관중 2만 명이 YOU'LL NEVER WALK ALONE을 불러주는 가운데 선수 입장. 마인츠 선수단 스트라이커에 조나단...”
-ㅋㅋㅋ 바로 꼬리 내리네
-근데 9만 실화냐?
-어 실화
-마인츠 관중 왜 이래? 무료표 뿌렸나?
-마인츠 사건 몰라? 시끄러웠잖아
-어휴 냄비들. 며칠 이러다 말겠지
- 작가의말
토요일은 쉽니다. 앗 토요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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