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미리미리 준비해야죠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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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그거 팩스로 보내놔.’
-네. 알겠습니다.
팩스 번호는 미리 알아뒀다. 이제 팩스 앞에 대기하고 있던 운영팀 직원이 들고 와서 감독에게 전달할 것이다. 강창덕은 슬슬 몸을 풀다가 전반 종료와 함께 라커룸으로 합류했다.
“안녕. 루키루카야. 내가 좀 늦었지? 퇴근시간에 겹치면서 길이 좀 막히더라고. 마인츠에선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히고.
얘기 들었지? 8:2. 어우야. U19경기 말고 그 경기를 중계할걸 그랬어. 그랬으면 후원금이 엄청....어! 뭐! 왜! 나 자본주의의 노예다. 에헤헤. 앗 큰손님 감사합니다. 앗 아이마이미마인츠님 감사감사.
어쨌든 그 8:2 스코어 때문에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행진하고 노래 부르고 난리야 난리. 그래서 길이 막혀서 늦게 도착했지. 굉장하지 마인츠! 지금까지 전승이야. 무패도 아니고 전승!
U19팀도 전승, 2팀도 전승. 오늘 1팀까지 이기면 완전 올 퍼펙트야! 게다가 지금도 이기고 있네! 캬하하하. 굉장해 마인츠. 앗 후반 시작한다.”
수많은 지시사항을 코치들이 각자 선수들에게 붙어 전달했다. 전반전에 미흡했던 점이나 고칠 부분을 설명한 것이다. 다만 말로 얼마나 전해졌을지는 미지수다.
후반이 되자 다름슈타트가 라인을 쭉 올리고 공격적으로 나섰다. 이러면 발 빠르고 재능 있는 마인츠에게 유리해진다. 만약 무리뉴식 수비축구를 했다면 더없이 유리했겠지만, 그건 거절했고 미들진에서 치열한 공방이 오고갔다.
조나단은 코칭이 통했는지 욕심을 내려놨다. 상대가 라인을 올려 공간이 넓어졌으면서도 무리해서 골 욕심을 부리지 않고 패스에 집중했다. 덕분에 좋은 찬스가 여러 번 나왔다.
“무손다! 슛! 아. 높이 뜨네. 아직 적응이 안 된 거 같아. 3일전에 첼시에서 공짜로 데려왔지? 발은 빠른데 다른 건 아직 모르겠다.”
-공짜!
-찰리가 쏘아올린 작은 공
-첼시 탈출하면 다 잘하지
“조나단. 개리와 원투패스. 수비진까지 벗겨내고 골키퍼와 1:1! 오 제쳤어! 키퍼까지 제치고 달려~~ 아 볼이 좀 길었네. 제칠 때 좀 멀리 차서 그대로 나갔어. 그래도 좋아. 잘했어! 잘했다.”
-조나단 쟤20살임. 슈퍼유망주
-어 안물
-TMI
-잘하네. 재 얼마냐?
전반보다 위협적인 장면이 계속 나왔다. 골과 비슷한 장면도 여러차례 나왔다. 그러나 골은 다름슈타트에게서 나왔다.
“위험해. 뒷공간을 그대로 내줬어. 오프사이드 트랩이.... 코보가 뒤에 있었네. 옵사 아니야. 골키퍼와 1:1상황. 아 들어가네 이게. 괜찮아. 금방 역전할 거야.”
-그리고 마인츠는 멸망했다.
-설레발은 뭐다?
-코보 쟤 뭐야? 왜 쓰는 거야?
ㄴ 나름 유명한 유망줄걸
ㄴ유베 가는 거 하이재킹
“치열한 공방전. 승자는 마인츠. 계속 공격이야. 미들에서 끊고 공격으로. 다시 슛. 재차슛. 아 마지막 킥이 약하네. 골키퍼 긴 골킥. 역습이야 막아. 막아! 첫골을 넣은 마빈 멜럼에게. 센터백 둘 다 멜럼에게 붙었어. 멜럼 패스. 스트라이커 토비아스 켐페에게. 켐페 노마크. 켐페. 아. 켐페. 넣었어.”
-ㅋㅋㅋㅋㅋ
-으어어으어으
-ㅋㅋㅋㅋ 마인츠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설필패
-뭐야? 오줌 싸고 왔는데 스코어 왜 이래? 이거 몰카냐?
-현실이에요. 눈을 뜨세요 용사여
첫 실점은 수비진의 호흡과 언어문제였다. 영어만 하는 포수멘사와 이탈리아어만 하는 코보가 포백에 서게 되자 수비진은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넷이 경기에 나선적도 처음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라인컨트롤은 주장인 스티브 벨이 해왔다. 벨 대신 나선 알렉산더 핵은 좋은 수비수지만, 리딩에는 소질이 없다. 계속 소리 질러도 라인이 유지가 안 된다.
강창덕이 보는 수치로는 알렉산더나 스티브나 큰 차이가 없지만, 라인 유지 같은 리더십은 숫자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언어가 안 통하는 수비진은 헤매고 허둥대다가 원래 잘하던 것마저 실수하고 있다.
첫 실점 후 지니에게 조언을 받아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와중에 두 번째 실점이 나왔다. 첫 골을 넣은 멜럼에게 공이 가자 수비진이 모여들었고, 상대 스트라이커가 자유가 되었다. 첫 골의 강한 인상에 순간 정신을 놓은 센터백들의 실수. 수비진의......
아니다. 저보다 좋은 찬스는 우리에게 더 많았다. 우리가 넣었으면 되는 거였다. 넣어야 할 때 못 넣은 우리가 못 한 거고, 어려운 상황에서 넣은 상대가 잘 한 거다.
‘지니 교체 추천.’
-무손다와 강창덕을 교체합니다. 개리와 막심을 교체합니다. 막심을 중앙 공미에 넣고 메짤라 룰을 맡깁니다. 다니를 좌측 윙포워드로 넣고 프리롤을 맡깁니다.
응? 또 새로운 전술이네.
강창덕은 왜 이런지 생각하며 벤치를 둘러봤다. U19 주전으로 1군 벤치경험이라도 해보라고 올린 골키퍼가 바들바들 떨고 있고, 2팀 후보인 센터백은 돌처럼 굳어 있다.
오늘은 세경기가 동시에 펼쳐지기에 최대한 주전을 강화시켜 배분했다. 덕분에 마인츠 벤치는 더없이 약한 상태. 교체하려 해도 교체할 자원이 없다.
방심한 거다. 전승을 거두는 마인츠 행보에 방심했다. 레빈의 이적료를 많이 받아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시즌 중에 파티라니. 미쳤다.
삑!
“교체야. 후반 31분 강창덕이 들어가고 무손다가 나가. 강창덕 알지? 10분당 공격포인트 하나씩 추가하는 무서운 신예. 그리고 개리가 나가고 알렉산더. 팀내 유일한 30대 노장. 뭔가 바뀌면 좋겠는데.”
-어 안 바껴 돌아가
-화이팅!
-강은 믿을만하지. 무손다보며 눈 썪는 줄
-레빈을 팔아서 지는 거지. 레빈은 왜 판 거야?
강창덕과 교체하는 무손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스스로도 오늘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강창덕은 경기장에 뛰어 들어가면서 소리쳤다.
“다니! 좌측! 왼쪽 윙포! 프리롤!”
팀이 역전 당하자 언어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왔다. 강창덕은 소리소리 지르면서 다니에게 할 일을 설명했다. 다니는 두어번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츠가 교체로 부산한 가운데 상대 벤치도 움직였다. 역전골을 넣은 다름슈타트는 영혼의 10백을 시전했다. 포백에 윙어 둘이 추가돼 6명이 한 줄로 서고 그 앞에 네 명이 촘촘하게 서서 두 줄 수비를 만들었다.
지니는 이걸 미리 알고 다니를 프리롤로 바꿨나보다.
“패스. 여기!”
강창덕은 미드필더와 패스를 주고 받으며 공을 돌렸다.
-9.3
-7.5
-9.6
주로 옆으로 보내는 패스가 많았다. 정면으로는 갈 수가 없다. 패널티 박스 라인에 열명의 선수가 운집해 우주대방어를 펼치니 지니도 그쪽으로는 아예 패스를 보내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 코앞에서 패스하며 살살 꼬셔도 아예 나오지를 않는다. 그러다 슈팅위험공간까지 전진하면 두명 세명이 달려들어 압박한다.
‘크랙. 크랙이 필요해.’
한골을 넣어야 하는데 상대의 방어를 뚫지 못한다. 바르셀로나가 느꼈을 답답함을 처음으로 느껴봤다.
‘지니 공을 뺏겨도 좋으니 좀 더 공격적인 조언을 해줘.’
-9.6
9시 방향에 있는 다니 올모에게 패스. 이게 가장 공격적인 패스인 것인가. 다니 또한 경기 분위기를 읽고 드리블 돌파를 몇 번 해봤지만 뚫지 못했다. 한명을 뚫으면 세 명이 달려든다. 다니가 아닌 메시가 와도 뚫지 못할 방어다.
지니는 최적의 추천을 하지 불가능한 추천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강창덕의 패스는 큰 의미없는 횡패스만 하고 있다.
‘젠장. 변수를 만들어야해.’
강창덕은 지니의 조언을 무시하고 수비진 사이로 뛰어들었다. 수비와 수비사이를 달리고 1선과 2선 사이를 넘나들자 패스에 변화가 왔다.
-6.3
백패스를 시킨다. 미치겠다.
‘야. 드리블 돌파코스 보여줘. 백패스 제외.’
센터백 사이에 있다가 미들라인으로 이동하자 막심이 그걸 보고 패스를 넣어주었다. 그러자 강창덕의 눈 앞에 보이는 하얀 선.
길고 가늘고 구불구불한 선. 이건 마치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전쟁터를 돌진하며 한발도 맞지 않는 람보의 길 같다. 강창덕은 선을 보며 드리블 했다.
“윽. 크윽.”
상대 수비수가 달려들어 어깨를 부딪쳐온다. 한 명. 두 명. 거기서 뺏겼다. 그냥 달리기도 어려운데 상대와 어깨싸움하며 드리블 하는 건 불가능하다.
‘안 되는구나. 드리블 스킬이 부족해. 볼 트래핑도 길어.’
두 번 뺏긴 후 포기했다. 메시 정도 되지 않는 한 이런 드리블은 불가능하다.
“아아. 강창덕. 무리야. 왜 저렇게 무리해? 그냥 원래 위치에서 만들어나가지.”
-ㅋㅋㅋㅋ 아까는 쓸데없이 공 돌린다고 하지 않았나
-냄비였네 루카
-17살한테 바라는 것도 많다
“다니. 다니가 나선다. 벼락같은 중거리 슛. 아. 골키퍼가 잡았어.”
-벼락같은... 좀 식상하지 않냐?
-그러게. 30년 전에도 벼락같은 슛 소리 들었는데
-마인츠는 이게 바닥인가보네.
-ㅋㅋㅋ 피에테를 교체로 남겼으면 역전했을 듯
크랙이 없다. 피에테를 벤치에 남겨놨으면 변수가 생겼을 텐데. 너무 방심했다.
시간이 줄어들수록 점점 초조해진다. 발이 빠른 가브리엘레 코보만 스위퍼로 남기고 전원 공격에 붙었지만, 공격력은 오히려 약해지는 느낌이다.
차분히 만들어가는 패스는 줄어들고 일단 문전으로 붙이는 크로스만 하고 있다. 이럴 때 마르코라도 있으면 세컨볼 상황이 많이 날 텐데 벤치멤버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어린 선수들뿐이다.
마음이 급해지니 원래 잘하던 선수들도 미묘하게 밸런스가 무너졌다. 패스는 어긋나고 드리블은 길다.
강창덕도 마찬가지의 기분을 느꼈다.
-11.3
패스를 돌리는데 지니가 오랜만에 전진패스를 요구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버렸다. 찰나의 순간 수비진 사이로 조나단이 쇄도하는 게 보였다.
고개를 내리고 즉시 공을 찾다. 그 짧은 사이에 패스 길은 이미 닫혔다. 한 타임 늦은 패스는 수비수 발밑으로 배달되었다.
‘젠장. 침착해. 평소와 똑같이. 조급해하지마.’
큰 경기 경험이란 게 중요하겠구나 느꼈다. 챔스 결승에서도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슈팅을 찰 수 있으면 이런 식으로 한 점 질 때 조바심을 느끼지 않겠지.
그 후 강창덕에게 킬패스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지니의 조언을 따라 패스를 돌리면, 팀원들은 무리한 크로스를 올리고, 무리한 중거리 슛만 남발했다.
간간히 좋은 찬스가 났지만, 마무리 슈팅이 하늘 높이 뜨거나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에 막혔다. 그래. 이 경기는 마가 낀 경기다.
15분동안 두들겼지만 끝내 다름슈타트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삑! 삑! 삑!
경기가 끝났다. 다름슈타트 홈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와중에 마인츠는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다.
언젠간 질 거라고 생각했다.
맨유의 전설인 알렉스 퍼거슨 경의 맨유 통산 승률은 60.1%. 5번 게임하면 두 번은 이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역사상 최고의 감독으로 추앙받는다. 원래 축구가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 마인츠의 전승이 이상했던 거지 한 번의 패배쯤은 별거 아니다.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다.
경기 다음날은 보통 가벼운 스트레칭과 구보, 마사지등 회복훈련을 받은 후 전날 경기를 보며 반성회를 하고 해산한다.
선수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일찍 퇴근해 밀린 개인스케줄을 한다. 인터뷰를 하거나 에이전트가 잡은 광고촬영을 하거나 클럽에 가거나 친구들과 집에 모여 술을 마신다.
휴식일이 없는 선수들에겐 경기 다음날이 휴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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