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미리미리 준비해야죠7
이글의 모든 것은 픽션입니다
일러티센은 찬스를 내주면서도 꾸준히 역습을 시도했고 그러다 한 번의 슈팅찬스를 잡게 되었다.
길게 찬 공이 운 좋게 공격수에게 연결되었고, 스티브가 압박해서 뺏은 공이 달려오던 윙어에게 흘렀다. 마르코가 마크해야 할 위치지만, 아직 마르코의 수비는 완성되지 않았다. 윙어가 뒷공간에 툭 차 놓고 달리자 역동작이 걸린 마르코는 몸을 돌리다가 넘어졌다.
골키퍼와 1:1 상황. 골키퍼 야니스는 입대 전날 밤 같은 표정으로 공을 보고만 있었다.
“나와! 달려 나와서 각도 좁혀!”
스티브가 소리쳤지만, 야니스에겐 닿지 않았다. 공을 향해 전력 질주한 윙어는 그대로 슛을 쐈다.
전력으로 달리면서 구르는 공을 정확히 차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꼭 넣어야 하는 1:1 상황에서 구석으로 차분히 찰 수 있는 건 전 세계에 100명도 안 될 것이다. 상대 윙어는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뻥!
슛은 야니스 옆으로 향했고, 야니스는 경직된 와중에 반사적으로 팔을 옆으로 뻗었다.
터억.
주먹에 맞은 공은 앞으로 도르륵 굴렀다. 공을 향해 상대 스트라이커와 스티브가 달려들었다. 사실 야니스가 곧장 달려들었으면 차지할 수 있는 공이었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못했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슬라이딩. 둘 다 발을 뻗었고 상대 공격수 마티아 마지오의 발에 먼저 닿았다. 골문 구석으로 데굴데굴 흐르는 공은 뒤늦게 몸을 날린 야니스를 피했다.
골. 2:1.
마인츠를 상대로 골을 넣은 마티아가 환호하며 뛰어갈 때 스티브는 거칠게 야니스에게 달려들었다.
“정신 차려! 시합이 장난이야?”
야니스는 거의 울먹이는 표정이었다. 스티브는 양 손바닥으로 야니스의 얼굴을 싸대기 때리듯 강하게 잡았다.
“예쁘고 싶어? 화장했어? 사랑받고 싶어? 생각하지 마! 카메라 신경쓰지 마! 관중 2만명도 신경쓰지 마! SNS 반응도 신경쓰지 마! 나중에 기자가 욕 날릴 것도 신경쓰지 마!”
“미 미안해요. 주장.”
“오늘 경기로 MOM 먹고 금빛 미래에 대한 거창한 계획 세웠지? 발롱드로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했지? 웃기지마 잊어! 공만 봐. 공만 막으라고! 바지가 벗겨져도 티셔츠가 찢어져도 새끼 고양이가 앞에서 공에 맞아 산산이 터져도 공만 막아! 공 막을 방법만 생각해!”
“네. 넵.”
야니스의 눈에 독기가 피어올랐다. 그녀가 얼마나 알아들었는지 몰라도 이제 정신 좀 차린 것 같다.
비슷하게 야니스에게 한마디 하려고 모여든 선수들이 고개를 흔들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도 새끼 고양이는 아니지 않나?”
“그러게. 새끼고양이가 죽다니. 그런 슬픈 사연이.”
“야니스한테 고맙다고 해라. 마르코. 너 때문에 먹힌 골인데 묻혔다.”
“아. 형. 비밀인데.”
“비밀은 지랄.”
마찬가지로 한소리 하려고 왔던 강창덕은 야니스의 표정을 보고 스티브한테 다가갔다.
“형. 감독님 말씀대로 라인 올리죠?”
“벌써? 한골 차는 위험한데.”
“괜찮아요. 정신 차린 거 같으니까 믿어 봐야죠. 공격적으로 나오면 오히려 긴장이 풀릴지도 모르고요.”
경기 전부터 야니스가 긴장한 것은 선수단 모두가 눈치 챘다. 그래서 지금까진 포백이 수비라인을 갖춘 채 공격에 가담하지 않고 있었다. 감독은 야니스가 제 몫을 하게 되면 수비라인을 올려서 공격적으로 나가라 지시했다.
물론 이건 지니의 조언이었다. 경기에 참여한 강창덕은 상황별로 감독이 지시해야 할 것들을 미리 선수단에 전파했다.
“좋아. 올리자. 마르코! 네가 좋아하는 스트라이커로 올라가.”
“아싸!”
“실수! 저것은 마르코의 거대한 실수였다.”
-뭐야? 갑자기 서사야
-마르코 쟤 머리 엄청 크네. 넘어지는 거 졸귀
-뭐해? 키퍼 안 나와?
-ㅅㅈ
-예쁘다.
-쟤 뭐함?
“키퍼가 각을 좁히지 않네. 여자축구는 원래 저래? 앗. 막았다. 제자리에서 막았으 리바운드!실패. 아 실점했어. 야니스 쟤 못하네. 뭐지?”
-여자축구도 각 좁히러 나올걸?
-저건 그냥 못한 거야. 리바운드도 원랜 키퍼가 잡는 거였어.
-뭐야 몸 로비로 들어왔어?
-미성년자야 조심해
-그냥 유니폼 팔인가 봄. 아무리 상대가 5부 리그라도 기본도 안 된 애가 나오면 안 돼지.
-화제거리로 영입했나? 실망인데 마인츠
-캬캬캬. 황족 프랑크푸르트에게 안 되니까 별 이상한 영입으로 관심 끄는 거렁뱅이들
-너 강퇴
-너 강퇴2222
-캬 스티브! 멋있다! 주장
“스티브가 싸대기를 날렸어. 그래. 저런 기강 관리도 필요하지.”
-역시 주장니뮤ㅠ
-저거 클롭한테 배운 거다. 클롭이 싸대기 참 찰지게 잘 때렸는데
-마인츠엔 역시 벨이 있어야 해
-ㅅㅅㅅㅅㅅ
-이번 싸대기는 10점 드리겠습니다
풀백이 올라오고 마르코가 타겟 스트라이커로 올라가자 공격력은 두배가 되었다. 후방엔 스티브 벨만 스위퍼처럼 남았고 나머지는 AS로마처럼 전원 공격을 펼쳤다. 그리고 결과는 금방 나왔다.
‘지니. 풀 옵션!’
-4.3
‘지니 절전 모드. 지니 풀 옵션.’
-9.3
강창덕도 덩달아 바빠졌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지니를 껐다 켰다 반복하고 있는데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거 시동비용이 더 크면 낭팬데.
“멋진 패스 플레이. 티키타카를 보는 것 같네. 펠리스와 강창덕을 중심으로 멋진 연계가 이어지고 있어. 앗 갑작스런 크로스. 캬. 저게 17살 시야라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고 돌진하는 개리 홀트만.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옹~”
-고오옹?
-와우 진심 시야 미쳤다. 벌써 공격 포인트 세 개야.
-강한테 맨유 오퍼 왔대!
-찌라시 즐
-진짜야.
-근데 갈 리가 없잖아. 구단준데
-팩트는 구단주 아들이니까 가도 돼지
-또 초코바 먹으러 달려간다 ㅋㅋㅋ 내 아들보다 초콜렛 귀신이네
-구단주 대리로 구단일 보고 있을 걸?
-ㅅㅂ 다가졌네. 어린데 축구 잘하고 잘생기고 부자고
-ㄱㅅㅂ
ㄴ그래도 고추는 작을 거야
ㄴ작아라 작아라 탈모와라 탈모와라
-ㅋㅋㅋㅋ이 악마들앜ㅋㅋㅋㅋ
-작겠지 동양곈데
ㄴ너님 인종차별임 신고 ㄱㄱ
-아놔 팩트잖아 차별이 아니라 차이
전반 30분에 3:1이 되었다. 그리고 재개된 경기도 마인츠의 압도적인 우세 속에 진행 되었다. 상대는 잠글 의도가 없지만, 실력차이 때문에 조금씩 뒤로 밀려나 골대 앞에 갇혀버렸다.
티키타카. 바르셀로나의 성명절기인 이 전술은 상대의 대응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파생된 전술이다.
티키타카란 이름이 알려지기 전부터 원래 바르셀로나는 강했다. 축구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들의 모임인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1기를 쳐 바르던 팀이었다. 이런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대부분의 팀들은 버스를 세워 방어하다가 역습을 통한 운 좋은 승리를 바래왔다.
단단한 수비벽을 뚫어야 한다. 이 수비벽을 뚫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를 하다가 바르샤만의 공격법이 태어났다.
볼 간수와 탈 압박이 좋은 사비, 이니에스타를 중심으로 팀원 전원이 패싱플레이를 전개한다. 90분 내내 공을 소유해 상대에게 역습의 빌미를 주지 않고 공격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해 롱패스는 자제하고 완벽한 숏패스로 잘게 잘라 들어가고 쉬지 않고 좌우로 방향전환을 한다.
잠시만 방심하면 골을 먹히기 때문에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열 명이 한 몸처럼 뛰어야 한다. 그러면 지친다.
뺏기지도 않고 좌로 우로 방향을 바꾸며 패스플레이를 전개하면 결국엔 금이 간다. 아주 약간의 틈이 생기면 메시라는 슈퍼크랙이 방어진을 깨부순다.
상대가 90분간 한 몸처럼 뛰면 무승부고 잠시라도 방심하거나 체력이 떨어지면 골을 넣는다. 이것이 바르셀로나 티키타카의 기초다.
이렇게 강한 바르셀로나의 실점은 대부분 세트피스나 역습에 의한 골키퍼와의 1:1 상황에서 나온다. 최종 수비수까지 중앙선을 넘어 공격에 참여하기 때문에 한 두 번의 역습이 치명적인 위기가 된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의 센터백은 항상 욕을 먹는다.
슈팅 30개로 2골을 넣었더니 슈팅 2개로 2골을 먹혀 비겼다. 이게 다 피케가 똥 싸서 그렇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건 바르샤 센터백이 억울할법한 부분이다. 보통 수비수는 골대 앞에 자리를 잡고 방어하지만 바르샤 센터백은 경기장 절반을 커버해야 한다.
보통 수비수에게 필요한 위치 선정과 상황판단 능력, 큰 키와 강력한 피지컬을 당연히 요구하면서 놀라운 스피드까지 내놓으라는 격이다.
상대해야 하는 선수는 상대팀에서 가장 스피드가 빠른 윙어나 스트라이커.
작정하고 역습을 노리는 팀들은 스피드와 개인기가 좋은 윙어로 뒷공간만을 노린다. 센터백이 이들 윙어와 스피드 경합을 펼쳐 막아야 한다. 50m라는 넓은 공간을 커버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강창덕은 티키타카의 약점인 뒷공간 역습에 관대해지기로 했다. 한두 번 뚫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아. 끊겼어. 린드로. 탈압박이 안 되네. 갑자기 달려드니까 당황했나봐. 얘도 1군 데뷔전이지? 역습. 역습이야. 상대는 두명 우리는 벨 혼자. 윙어 길게 차고 돌진. 아. 못 따라가. 벨보다 빨라. 이건 먹히겠. 앗. 야니스 클리어. 어느새 달려와서 걷어냈어.”
-뭐임?
-꽤 빠르네.
-쟤 원래 스위퍼 키퍼야? 박스 한참 밖까지 나왔어.
-모르지. 오늘 데뷘데.
-이야 상황판단 빠르네.
바르셀로나 골키퍼는 역습 당할 때 수비수처럼 센터백의 공간까지 커버해야 한다. 그래서 스위퍼키퍼라는 새로운 롤이 생겨났다. 티키타카나 게겐프레싱처럼 수비라인의 전진과 높은 공간 압박이 유행하게 되면서 스위퍼키퍼는 각 리그에 많이 퍼졌다.
긴장이 풀린 그녀는 원래 잘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훈련도 스위퍼키퍼 위주의 훈련이었다. 그녀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경기에나 쓸 생각이고 그녀의 잠재력도 스위퍼키퍼에 특화되어 있기에 이런 훈련을 한 것이다.
“잘했어. 야니스.”
“윙어! 윙어에게 붙어요!”
다가가 칭찬하려는 스티브에게 야니스가 수비지시를 내렸다. 그 말에 스티브는 빙긋 웃고 윙어에게 달려들었다.
삑 삑!
U14 선수인 볼보이가 눈치 보며 시간을 끄는 사이 수비진이 정비되었고, 길었던 전반전이 끝났다.
라커룸을 향하던 강창덕에게 핑! 이 왔다. 이거 그거다. 당 떨어졌다. 무리해서 뛰면 10분 정도는 뛸 수 있겠지만, 그러다 경기장에 탈진으로 쓰러지겠지.
강창덕은 벤치를 둘러봤다. 오른쪽 윙어로 뛸 수 있는 자원은 딱 한명 있다. 레빈 외쯔투날리. 몇 일전부터 이적건 때문에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선발에서 뺏는데 아무래도 넣어야겠다. 프로니까 경기엔 최선을 다 하겠지.
지니를 통해 전술지시를 내렸다. 거기엔 후반 시작과 함께 레빈과의 교체가 포함되어 있었다.
스니커스를 열심히 먹으며 경기를 지켜봤다. 지니를 통해 몇 가지 지시만 무전기로 전달하고 나니 더 이상 지시사항도 없었다.
강창덕이 나가자 티키타카는 붕괴되었다. 볼간수와 패스가 동시에 되는 선수는 팰리스와 강창덕 둘 뿐이었다. 강창덕이 빠지자 패스플레이는 번번히 끊겼다. 그래도 마인츠는 5부리그 팀 상대론 충분히 강하다.
긴장이 풀린 야니스는 몇 번 안 되는 역습찬스를 안정적으로 막았고, 교체해 들어간 레빈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레빈 입장에서도 그런 말을 했으니 첼시 이적이 불발되면 난감하겠지.
“오우. 팰리스 단독 돌파. 두 명 뚫고 레빈과 원투패스. 수비진까지 허물어뜨리고 차분히 슛! 골인!”
-4:1 ㅋㅋㅋㅋ
-야 살살좀 해라. 상대 감독 울고 있다.
-강은 왜 교체함
-걔 체력 고자임 거의 교체로만 뜀
-17살이잖아
-팰리스 쟤 왜 2팀에 있냐? 개잘하네
-1팀에 자리 없음
“야니스. 1:1 찬스에서 달려 나와 키핑. 생각보다 빠르네. 간발의 차이로 공을 끌어안았어.”
-ㅗㅜㅑ
-그래도 남자가 낫지 않나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지
-잘해야 보기 좋은 거지
-잘했는데 왜?
-예쁘다
-첫 골 실점 때 잤냐?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