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무패의 팀1
이글의 모든 것은 픽션입니다
휴가를 떠난 선수들이 복귀했다. 다시 마인츠는 훈련의 무한궤도에 올랐다. 훈련, 훈련, 훈련. 선수들마다 집중해야 할 훈련이 다르고 필요 없는 훈련도 존재한다. 그래서 마인츠의 훈련은 선수마다 제각각이다.
필연적으로 서로 섞이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선수 각자에게 최상의 훈련 스케줄을 맞춤 제공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덕분에 팀의 조직력은 천천히 올라오고 있지만, 1,2군의 벽은 쉽게 허물어졌다. 워낙 많은 선수들이 떠나고 새로 영입되었기에 다 같이 서먹했던 분위기는 함께 훈련하다보니 섞이는 것도 금방이었다.
이렇게 모이고 헤어지는 게 강창덕에겐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 구급키트와 스니커스를 들고 따라다니는 마리엘을 선수들이 아니꼽게 볼 수도 있을 테지만, 잠깐씩 볼 땐 위화감이 적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강창덕!”
돌아보니 유스에서 함께 포지션경쟁을 했던 스벤 델로프다.
“스벤? 잘 지냈어?”
“너 내일 2군 경기 선발 출전이라며?”
“어. 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너 너무한 거 아니냐! 너 축구 못하잖아. 아무리 구단 운영을 맡았다고 해도 니가 선발로 뛰는 건 아니지! 공과 사는 지켜야 하는 거잖아.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구단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는 건 너무하잖아.”
스벤 델로프는 얼굴이 시뻘개진 채 랩을 하듯이 말을 쏟아냈다. 약간 소심한 성격인 스벤은 하기 힘든 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막말을 한 거겠지.
스벤은 15세부터 마인츠 유스팀에 들어왔다. 지역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마인츠 공개 모집때 들어온 케이스다. 15세 땐 강창덕과 거의 대등하게 경쟁했고, 16세엔 압도적으로 이겼다. 현재 능력치는 93/133. 나이에 비해 꽤 훌륭한 능력치다. 독일 연령 대표팀에서도 주목하는 선수다.
그러니 그의 불만은 합당하다. 두 달 전의 강창덕은 스벤보다 한참 못했으니까. 스벤은 자신이 U19에 있고 자신보다 못했던 강창덕이 프로데뷔 하는 건 구단주의 지위를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음. 니 말이 맞아. 그땐 못했어. 그런데 지금은 잘해. 깨달음을 얻었거든.”
“그게 뭔 개소리야! 두 달 전만해도 넌 내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어. 경쟁을 인정하지 않는 이 따위 구단에 내가 있을 수 없어. 다른 팀으로 갈 거야.”
마르코는 깨달음으로 넘어갔는데 이놈은 안 믿네.
스벤은 연령별 대표팀에서 차출을 고려할 정도의 유망주다. 팀을 구하면 오라는 곳은 넘쳐난다.
소심한 성격이라서 오히려 막말한 거라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주전경쟁이란 원래 그렇다. 같은 포지션이고 서로 경쟁하는 사이는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어도 친해지기 힘들다. 정말 큰 나이차가 있거나 큰 실력차가 있어서 경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경쟁자는 경쟁자다.
스벤이 인간적으로 나쁜 놈은 아니었지만, 내심 스벤이 부상당하기를 수없이 바랬었다. 지금의 스벤도 비슷한 마음이겠지.
세상은 넓고 좋은 사람은 많다.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잡아둘 생각은 없다. 강창덕이 주전경쟁에서 밀렸을 땐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았는데. 차라리 그때 아빠카드를 소환할걸 그랬나.
하지만 떠나면 안 돼. 널 이렇게 보낼 순 없어.
보낼 때 보내더라도 이적료는 받고 보내야해.
프로 계약을 맺고, 활약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뻥튀기해서 보내줄게. 기적적으로 1000만 유로 받는다면 웃으며 떠나보내줄 수 있을 텐데.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우선 내일 경기를 봐라. 난 실력으로 그 자리를 차지했고 내일 보여줄게. 꼭 봐라. 그리고 다시 말하자.”
축구 선수는 축구로 말해야지.
7월 25일 토요일.
마인츠 2팀이 속해있는 독일 4부 리그, 레기오날리가 남서부지구의 개막전이 열렸다. 4부 리그는 18개 팀씩 가까운 지역별로 묶여 리그전을 펼치는데 1위 팀만 독일 전체리그인 3부 리그로 승격한다. 그래서 전국단위인 3부 리그부터 프로리그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강창덕의 목표는 마인츠 2팀을 3부 리그로 올리는 것이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우승이다.
강창덕은 아침부터 천천히 몸을 풀며 에너지를 섭취했다. 오전에 링겔까지 맞으며 스니커스를 폭식했다. 이를 위해 마인츠 병원의 내과 의사선생님도 모셨다.
“당연히 괜찮지 않지. 다만 자네 신체가 특이하니까 괜찮을 수도 있고. 과하게 들어간 당분이 전부 소모된다면 문제없겠지만, 만약 보통사람이라면 혈당 때문에 문제가 생길 걸세.”
의사 선생님은 허가는 했지만, 끝내 불안했던지 경기장까지 찾아왔다. 전반 종료 후, 그리고 경기 종료 후 강창덕의 상태를 체크해 문제가 생기지 않게 도와주기로 했다. 강창덕에게도 나쁜 말은 아니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오후 2시. 마인츠 VS SC 헤센 드라이아이히의 경기가 열렸다. 4부리그의 개막전이며 마인츠 2팀의 홈 개막전이다. 입장 관중 수는 1430명. 생각보다 많이 왔다.
상대는 순수한 4부리그 팀이다. 평균연령은 26세에 평균 연봉은 3만유로. 일반 직장인보다 못한 급료를 받는 프로의 끄트머리에 있는 선수들이다. 당연히 능력치도 프로의 끄트머리에 있다.
강창덕은 오른쪽 윙포워드로 출전했다. 오늘은 지니를 쓰지 않을 생각이다. 지니를 쓰지 않는다면 풀타임 출전이 가능하겠지.
122/165
발목부상으로 1주일 쉰 사이에 현재 능력치가 2 줄어버렸다. 하지만 괜찮다. 여기선 압도적이다.
다가오는 풀백 뒤로 공을 차고 달렸다. 일명 치고 달리기. 이 단순한 드리블을 상대가 못 쫒아온다. 28세의 풀백은 지나치는 강창덕의 유니폼을 잡으려 했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풀백을 멀찍이 제치자 여유가 생긴다.
패널티 박스를 보니 스트라이커 조나단 부카르트가 센터백보다 한발 앞서서 달려들고 있었고 그 뒤로 펠리스 디 아미코가 자유롭게 서 있었다.
펠리스의 발 앞에 편안한 땅볼패스를 해 줬다. 신체균형이 무너졌어도 아무런 견제가 없으면 이정도 패스는 쉽게 할 수 있다.
부카르트만 보고 있던 수비수는 그제야 몸을 돌렸지만 급제동과 방향전환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펠리스는 땅볼패스를 방향만 바꾸는 가벼운 슛으로 마무리했다. 펠리스는 그 와중에 슛을 오른쪽 구석으로 정확히 차 넣었다.
1:0.
상대의 평균 능력치가 80 언저리인 상황에서 마인츠는 괴물들이었다.
20살인 조나단 부카르트는 마인츠 유스에서 컸다. 능력치는 125/141 지난해 급격한 성장을 걸쳐 이제는 1군 급에 거의 근접했다. 조나단은 1군 승격을 요구했지만, 급료를 올려주는 조건으로 1년간 2군에서 팀을 승격시켜주길 부탁했다.
그도 피에테 아르프와 함께 훈련을 받아본 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2군의 주전이 되기로 했다. 조나단은 혹여나 피에테 아르프가 부상당했을 때 좋은 후보가 되어줄 것이다.
19살인 펠리스 디 아미코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안토니오 D 나탈레.
몽키 D 루피.
펠리스 D 아미코.
D의 이름을 계승한 자.
강창덕은 수십명의 자유계약 선수들에게 미끼를 날렸고, 가장 먼저 계약한 것이 펠리스 디 아미코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유소년 산실인 팔레르모에서 성장한 펠리스는 2부 리그로 강등된 팔레르모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16세가 넘으면서 키에보, 크로토네 등으로 임대를 다녔지만, 이탈리아 3부 리그에서도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후보로 남았다.
직접 만나본 그는 매우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Uhhhhhhh 당케......”
지금도 멋들어진 세레모니를 못하고 매우 소극적으로 고마워하고 만다.
현재 능력치는 130/148. 세리아A 평균 능력치. 이 능력치로 하부리그에서 후보로 뛴 것은 미스터리한일이다. 덕분에 자의식이 낮아 쉽게 데려올 수 있었다.
마인츠 1팀에서 활약해도 차고 넘칠 능력.
문제는 펠리스를 데려온 후 같은 포지션에 생각지도 못한 다니 올모가 온 것이다. 월드 클래스 급 선수가 들어오면서 펠리스의 입지가 붕 떠버렸다. 강창덕은 매우 미안해하며 2팀에서 뛰어도 될지 물었고, 펠리스는 소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거절 못하는 성격인 것 같다. 프로의식은 높은데 야망도 낮아서 자기주장을 잘 못하고. 이런 성격 때문에 옛 팀에서도 주전경쟁에서도 밀렸을 것 같고.
‘형은 꼭 키워줄게. 같이 높이 올라가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면 안 된다. 미운 놈 줄 떡 착한 사람 줘야 한다. 이런 사람을 챙겨 줘야 한다. 보고 있나 스벤 델로프.
저 멀리 스벤 델로프의 얼굴이 구겨진 게 보인다. 옆에 U19 팀원들 다 좋아하고 있는데. 자식. 표정관리 좀 하지.
선제골 후 헤센 선수들의 플레이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들 연봉 총합이 조나단 한명보다 적긴 해도 다들 프로고, 달리기나 몸싸움에서 큰 차이는 없다. 기껏해야 1~2초 차이로 갈리는 게 프로의 세계니까.
강창덕은 약간 뒤로 빠져서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었다. 펠리스 역시 패스에 재능이 있다. 플레이 메이커 둘이 패스를 주고받다가 미들진까지 연계하자 헤센 선수들은 공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겉돌게 되었다. 다만 강한 압박에 마인츠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안 쓰려고 했는데. 지니 패스경로 추천해줘.’
절전 모드였던 지니를 깨웠다.
-7.3
-9.3
-8.5
오른쪽 측면에 서 있다 보니까 좌측을 향한 패스가 많았다. 하부리그의 한계 때문에 풀백의 오버래핑은 기대하기 힘들고 결국 중앙 미드필더와의 패스가 주를 이뤘다.
-11.4
그러다 한방. 플레이메이커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번의 킬러패스다. 11시 방향으로 살짝 띄워서 차니 마침 오프사이드 트랩을 돌파한 조나단 부카르트의 발 앞에 똑 떨어졌다. 수비수는 저 뒤에서 달려오고 있고 조나단은 나이에 비해 침착했다. 125라는 능력치에서 나오는 여유겠지.
달려 나오는 골키퍼 위치를 확인한 조나단은 골키퍼 우측으로 강하게 차서 넣었다. 괜히 칩샷 같은 걸 시도하지 않아서 참 좋다. 칩샷이 들어가면 멋있긴 하지만, 성공률은 반도 안 되니까.
“우와아아아.”
천여 명 들어온 서포터들은 벌써 축제 분위기다. 조나단은 서포터쪽으로 달려가며 무릎 슬라이딩을 했다. 앞으로 계약서에 저거 금지시키는 조항 넣어야겠다.
강창덕은 약간의 허기를 느끼며 조나단을 향해 달려갔다.
“뚜기 고마워.”
“뭐 이까짓 걸 가지고. 내 어시 챙겨줘서 고마워 형.”
경기가 잘 풀리면 팀 분위기는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전반이 끝나갈 무렵 펠리스가 단독 돌파를 했다. 조나단과 한차례 패스를 주고받은 펠리스는 수비 셋을 드리블로 제치고 박스 앞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까지 넣었다.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축구 실력만큼은 진짜다.
3:0.
선수들이 세레머니를 할 때 강창덕은 마리엘 쪽으로 뛰어갔다. 응급의학 자격증이 있는 마리엘은 팀닥터 목걸이를 하고 벤치에 있었다. 그녀는 강창덕의 손짓을 보고 미리 스니커스 껍질을 까서 강창덕의 입에 쑤셔 넣었다.
“뚜기 괜찮아?”
“네. 아직은 멀쩡해요. 미리미리 먹어두려고요.”
경기 중 급하게 먹으려니 목이 메인다. 벌써 다섯 개째 먹었는데 음료는 딱 두 모금 마셨다. 경기 중 오줌 마려우면 큰일이다. 고참들은 경기 중에 그냥 걸으면서 싼다는데 강창덕은 아직 그 정도로 낯짝이 두껍지 않다.
전반전이 끝나자 마리엘과 의사선생님이 다가왔다. 체내 열량 체크하는 기계를 달려고 하는데 강창덕이 말렸다.
“저 화장실 좀.”
지니 덕에 실력이 늘었고 놀라운 정보도 얻고 있지만, 이건 참 불편하다.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갈색 섬 하나를 만든 후 라커로 돌아왔다. 강창덕의 특이한 몸 상태는 거의 알려졌기에 다들 눈 한번 마주치고 만다.
2팀 감독의 지시(이것도 전반 종료 5분전 지니에게 뽑으라고 시킨 것이다.)를 들으며 몸에 검사기계를 주렁주렁 달았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