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이적시장9
이글의 모든 것은 픽션입니다
야르보린 예프첵. 구글에 치니 동일인물이 등장했다. 닐카프마 본사에서 업무상 작성했던 서류에 과장으로 등재돼 있었다.
역시 이 남자는 닐카프마와 연관이 있다. 그때 머리가 핑 돌면서 현기증이 났다.
강창덕이 비틀거리자 뒤에서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마리엘이 나섰다. 스니커스 하나를 잽싸게 까서 강창덕의 입에 물려주었다.
중요한 자리에서 자기에게 항의하는 이를 앞에 두고 핸드폰을 만지다가 갑자기 초코바를 먹는 모습이 시위대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지금껏 당당한 태도에 점차 커보이던 강창덕이 나이보다 어리고 만만해 보였다. 대중의 목소리가 커지더니 또다시 일치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강창덕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 아버지는 전문 경영인을 고용해 맡겼습니다. 지금은 구속된 산드로 브레함이죠. 구단 지분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마인츠 지분을 30% 추가로 구매해 산드로 브레함에게 주었습니다. 그렇게나 믿고 맡겼는데 배신하고 비리를 저질렀네요.”
강창덕이 말하자 예프첵이 다시 선동했다.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다. 멍청한 것을 변명하지 말고 제대로 된 경영인을 앉혀라.”
“옳소. 물러나라!”
한번 분위기가 기울자 사람들은 강창덕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잠시만 제 해명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부탁합니다.”
말을 마친 강창덕이 예프첵을 지그시 쳐다보자 묘한 압박감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점차 서포터들도 조용해졌다.
“브레함에게 속은 아버지는 구단에 기부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금액이 1억 2천만 유로입니다. 투자가 아닌 기부금이 구단에 1억 2천만 유로가 흘러들어갔습니다. 이토록 거액이 마인츠에 댓가 없이 들어갔는데 마인츠는 강등 당했고, 구단 이사와 직원들이 비리를 저질러 금액을 나눠가졌습니다.
자. 그럼 서포터 분들께 한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산드로 브레함에게 준 30%의 지분은 어디로 갔을까요?”
마지막에 기습적으로 빠르게 질문했다. 야르보린 예프첵은 전혀 생각지 못했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브레함이 갖고 있겠지.”
뒤쪽에서 어느 생각 없는 서포터가 소리쳤다. 이 말이 예프첵에게 구원줄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강창덕은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잽싸게 정답을 말했다.
“어느 국제기업의 차남이자 홍보이사가 마인츠 지분의 47%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인츠가 혼란에 빠진 와중에 여기모인 마인츠의 서포터분들 모르게 지분을 모은 것이지요.”
기업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거대 기업에게 명예훼손을 당하면 패한다. 구단 홈페이지에 그간의 일을 정리할 때도 거대 기업의 배후설은 말하지 못했다. 당시 마무리를 도와주던 A&M 팀장 루시아노가 명예훼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 그건 상관없는 일이다. 우린 구단주의 무능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논점을 흐리지 마라.”
예프첵이 소리치자 몇몇 서포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창덕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 사실은 서포터 분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죠. 그런데 당신과는 상관이 있지 않습니까? 마인츠 지분 47%를 가진 국제기업의 홍보이사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과장이신 폴란드 국적의 야르보린 예프첵씨.
당신께 한 가지 물어보죠. 당신은 마인츠의 서포터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마인츠에 살고 있습니까? 서포터가 아닌 당신이 왜 여기서 마인츠를 혼란에 빠트리려고 합니까? 당신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 자리에 섰습니까? 당신은 지분의 47%를 가진 그자의 부하직원으로서 마인츠를 먹어 삼키려는 겁니까?”
풍림화산. 산처럼 고요하게 기다리다가 숲처럼 조용히 움직이고 때가 되면 바람처럼 빠르게 몰아쳐 불처럼 강렬히 태운다. 강창덕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데 충격을 받은 야르보린 예프첵이 정신을 차리고 변명하기 전에 몰아쳐야 한다.
“서포터 여러분. 우리 구단은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강등으로 끝이 아닙니다. RB 라이프치히처럼 국제기업의 장난감이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렇게 끄나풀을 심어 선동하기도 하고 기자들의 일부를 매수해 꾸준히 악담을 퍼붓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야 합니다. 마인츠를 지키고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 도와주십시오. 공개적으로 기업 이름을 말하면 명예훼손으로 모든 걸 잃게 되기 때문에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해산 후 믿을 수 있는 분들만 따로 모여 주십시오. 이런 더러운 스파이 없이 진솔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강창덕은 예프첵을 스파이로 몰면서 회장들의 도움을 요구했다. 어떻게든 변명해야 하는 예프첵은 의심스런 눈빛으로 다가오는 서포터들에게 둘러싸여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분위기 전환에 기자들은 놀라면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고, 폭력사태가 날까봐 경찰들이 접근했다. 맞아 죽을 것 같은 흉흉한 분위기에 예프첵은 경찰에게 도움을 받으며 도망쳤다.
도망치는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를 붙잡을 법적인 근거는 없었다. 서포터들이 알아서 잡길 바랬지만, 그들도 당황해 놓쳐버렸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회장들은 각 팀에게 대오를 지켜줄 것을 호소하며 서로 상의했다. 그 결과 시위대는 해산했고 열 명의 회장은 각자 믿을 수 있는 서포터 둘씩을 뽑아 구단 회의실로 들어왔다.
강창덕은 그 안에서 서포터들에게 그간 모은 자료를 보여줬다. A&M에서 조사했지만, 법적 효력이 없고 되려 역공당할 수도 있어서 공개하지 못한 자료들.
자료들에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닐카프마가 마인츠 경영권을 얻으려고 배후에서 지휘한 흔적이 있었다.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지만 확연히 이득을 보고 있는 흔적. 마인츠에 30% 이자로 빚을 지운 걸 시작으로 각종 이득과 마인츠의 지분이 닐카프마로 흘러들어갔다.
강창덕은 닐카프마가 아버지에게 했던 제안과 거부 후 구단에 일어난 일들. 타국에 생긴 NP스포츠 그룹들의 자료를 보여줬고, 그들이 마인츠에 요구하는 부채상환 조건 등을 솔직하게 말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희 아버지의 실수는 인정하지만, 이건 교묘한 함정입니다.”
그간 마인츠를 보도한 자료를 보면 사실을 전하는 기사가 반이고, 부정적으로 조롱하는 기사가 반이었다. 일관되게 부정적 기사를 쓴 기자들은 대부분 구단주 교체를 여론인 것처럼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마인츠를 삼키려고 이렇게 사람을 심어 선동하고, 기자들을 구매해 선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단을 망치면 처벌해 주십시오. 다만 언론의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잘 못 운영할 때만 처벌해 주십시오.”
강창덕은 진심으로 부탁했다. 서포터 대표들은 강창덕이 자리를 비운 사이 증거들을 자세히 살펴봤고, 한 시간이 넘는 회의를 했다. 그리고 다시 강창덕을 불러들였다.
대표로 볼프강 루이스버그가 말했다.
“구단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에 심히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네. 허나. 이런 일이 일어났고 이정도로 속았다는 것 또한 구단주의 무능을 증명하는 것이겠지. 인정하나?”
“네. 인정합니다.”
“우선 이적시장의 운영은 아주 만족스럽다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적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네. 다만 구단 성적이 승격권에서 멀어질 경우 우리는 곧장 다시 집회를 열겠네.”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에게 닐카프마나 자네나 이방인인건 마찬가지야. 누가 구단주가 되던 상관없다고.”
“그래도 그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맞아. 그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 자네 아버지에게도 강등의 책임이 있지만, 닐카프마의 책임이 더 커 보여. 자네가 넘겨준 닐카프마의 음모론 또한 공감하네. 다만 우리도 각자 조사해볼 시간이 필요하다네. 각자 사회 각층에 흩어져 있고, 모두의 직업이 다르기에 정보를 모으는 건 우리가 더 훌륭하지. 만약 사실로 확인될 경우 우리 또한 온힘을 다해 막아내겠네.”
“감사합니다.”
“자네 위치에선 명예훼손죄가 두렵겠지. 하지만, 일반인에게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만약 싸운다면 우리가 더 잘 싸울 수 있어.”
명예훼손죄란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다. 만약 누군가 똑같은 이에게 똑같은 명예훼손죄를 저질러도 배상하는 금액이 달라진다. 1000억 원 갖고 있는 이는 100억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10만원 갖고 있는 이는 만원의 벌금을 낸다. 공인의 한마디와 거지의 한마디의 파급력이 다르므로 같은 죄를 저질러도 훼손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갖지 못한 이가 막말하기 편해지는 것이다.
사실로 판명이 날 경우 닐카프마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흉흉한 소문이 돌 것이다. 강창덕은 할 수 없는 것을 서포터들이 대신 싸워줄 것이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직 같은 편은 아니야. 제대로 운영하는지 지켜보겠네. 나이, 이적은 신경 쓰지 않지만, 구단을 망친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거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강창덕은 정치인처럼 대답하고는 악수하고 헤어졌다.
갑작스런 집회. 강창덕은 아무런 준비 없이 서포터와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서포터의 불만을 잠재우고 이적에 대한 지지를 얻어냈으며, 결정적으로 서포터들을 선동하던 스파이의 정체를 알아낸 덕분에 닐카프마의 배후설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월드클래스 급 비서 마리엘을 얻은 것을 시작으로 아주 긴 하루였다.
다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시위 이후 이적 시장에서 어려움이 찾아왔다. 서포터와의 대담은 기자들에 의해 자세히 알려졌다. 어수선한 마인츠의 상황과 맞물려 기사가 쏟아졌고 마인츠가 이적료를 챙기면서도 자유계약으로 팀을 강화하고 있다는 게 알려졌다.
이는 마인츠 운영진이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마인츠와 거래하는 구단들은 호구가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130억 원을 지불하고 마테타를 사온 릴의 운영진은 마테타 대신 피에테 아르프를 공짜로 데려오지 못한 바보가 되었다.
덕분에 한창 이적협상이 진행되던 구단들은 몸을 사리며 이적료를 팍팍 깎았다. 이미 몇몇 포지션에서 영입에 성공한 강창덕은 그들을 위한 주전 자리를 마련해야 했기에 확 떨어진 이적료를 받아들여야 했다.
브로진스키와 도네티가 떠난 우측 풀백 자리에 웨스트 햄에서 자유계약으로 샘 바이람을 영입했고, 장 필립 바민이 떠난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다니 올모를 데려왔다.
그 외 후보 선수들을 대거 정리함으로써 구단의 평균 연령과 급료 지출을 크게 낮췄고 팀의 능력치는 분데스리가 때보다 오히려 크게 올라갔다.
여러모로 크게 이득을 본 6월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생각만큼 이적료를 벌어들이지 못했다. 게임 속에선 팍팍 벌어들이지만 실제 축구에선 그렇게 되지 않는다.
분데스리가에서 패배를 거듭하며 2부 리그로 강등당한 상황에서 실제 능력치가 훌륭하다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몸값이 크게 오르지는 않는다. 그들 입장에서도 거액을 들여 영입을 하려면 선수가 활약했다는 객관적인 결과가 필요했다. 강등당한 팀의 선수를 거액에 사들이면 그들의 일자리도 위험해지는 것이다.
6월 이적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은 3200만 유로. 아버지의 전 재산을 넣는다 해도 아직 빚 4000천만 유로가 남는다. 이 돈은 구단 운영으로는 벌어들이지 못한다. 이적료. 이적료만이 살 길이다.
1월이 되기 전 선수를 이적을 확정시키고 돈을 받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빅클럽들이 군침을 흘릴 만큼 팀이 성과를 내야 한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