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회 침투
의외로 빨리 김태석이 미끼를 물었다. 사실 태양회 전체가 나서서 미끼를 물었다.
서일신 TSS 메탈 사장이 급히 연락이 와서 거제에서 만난 자리에서 희소식을 전했다.
“그러니까 진정식 산업통상부 장관하고 고형택 국가정보원 차장이 직접 행차까지 해가면서 그래비티와 협력하라고 했다는 거죠?”
나와 서사장, 그리고 이제 유미나 박사가 된 유실장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재석에게 보고를 받은 바로는 조중현이 한국으로 급하게 들어와서 김태석에게 싹싹 빌면서 중력제어장치 개발할 동안 TSS 메탈과 손을 잡으라고 제안했다고 했다.
내가 애초에 그래비티에 4단계 파세나이트 추출법만 준 취지에 너무나 맞게 상대가 움직였다. 바늘만 쥐어줬으니 당연히 실을 찾는 간단한 이치.
무려 태양회 핵심 멤버인 산업통상부 장관과 국정원 차장이 똥꼬에 불이 붙은 듯 TSS 메탈로 날아왔단다.
태양회 인간들은 정부에서 내사 중이니까 다음 단계도 박살낼 준비를 서서히 진행해야 한다.
“서사장님, 아니 형님! 이제 형님께서 절 도와주실 차롑니다.“
서일신 사장이 약간 긴장한 듯 했다. 세계 최고의 회사를 만들려면 ‘이쯤이야!’ 하고 덤비셔야지 쫄기는.
“김태석하고 적당하게 협력계약을 하시구요. 무조건 태양회에 들어가셔야 됩니다.”
“야! 그 마귀 소굴에 들어가라고? 니가 전에 줬던 자료 보니까 대한민국 비리인간들은 다 모인 것 같더만.”
“그러니까 그걸 박살내야죠. 왜? 쫄리십니까?”
“쫄리기는 짜식아! 엮이기 싫은 인간들하고 엮여야 하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지.”
이 분이 발을 설설 빼고 싶은건가? 겁먹은거 맞는데. 그러나 나도 만만찮은 카리스마의 화신. 나의 과감한 추진력으로 밀어부쳐야지.
“남아일언 중천금!”
“남아일언이 깃털처럼 가벼운 시대 아니냐.”
“깃털처럼 회사에서 빠져 보실래요?”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감히.”
역시 나의 카리스마는 안 통하는 곳이 없다. 짐바브웨에서도, 한국에서도.
서사장의 인상이 찌그러지거나 말거나 밀어붙였다.
“그리고 유박사님도 위험한 임무가 될 겁니다. 하지만 최대한 보호조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캡틴의 대의를 위해서라면 저도 한 몸 불사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정재석이는 유미나 박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인간을 이토록 단순유식한 NPC로 만들 수 있었을까.
난 문득 궁금해졌다.
“그..., 저의 ‘대의’가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유박사는 무슨 선언을 하듯 자세를 바로하고 목청까지 가다듬었다.
“흠흠. 인류공영을 위해 교통체계를 바꾸고 나아가 우주개발의 선도국가를 만들며, 세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럴 리가. 아무리 정재석이 악마의 혀를 가지고 있다해도 저따위 대의에 사람들이 홀라당 넘어온다고?
“아울러 그 과정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따를 거라는 첨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그렇지. 자본주의는 역시 보상이지. 유박사도 말하지 않았는가 ‘인재는 인센티브’라고.
“그리고....?”
“뭐 캡틴의 재력이면 웬만한 소원 한가지 정도는 이뤄줄 거라고...”
정재석 이 인간이 날린 공수표에 물주인 난 또 호구가 되어야 하는건가... 그냥 보상도 아니고 엄청난 보상이란다.
게다가 내가 램프의 요정도 아니고 ‘당신의 소원’도 이뤄줘야 되는거야?
머릿속에서 튕겨지는 주판알은 일단 저쪽으로 던져버리고, 난 현재에 집중해야 했다.
“서사장님 역할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유박사님이 저를 대신해서 모든 기술을 가진 두뇌로 인식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이 큽니다.”
“위험이 크다면 보상도 크겠지요, 대사님?”
“나도 상당히 위험한 일을 하는 것 같네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히려 기대하는 유박사에다 불쑥 끼어드는 서사장님.
아니 두 사람 다 왜 이래? 제사에 관심을 좀 가지시라구요. 제삿상 엎어지면 땅에 떨어진 젯밥을 주워먹을 건가요?
“형님, 유박사님, 일단 그래비티와의 계약부터 마무리 짓자구요. 그 다음은 태양회에서 자동으로 접촉 들어올 겁니다. 좀 튕기다가 관심있는 척 끌려들어가면 됩니다.”
중국하고 어떻게 엮여 있는지, 중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게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태양회는 그래비티가 독점적으로 시장을 끌어가기를 원하고 그 앞길에 방해되는건 회유하든지 걷어차 버리든지 둘 중 하나였다.
조중현이 계속해서 단계를 높여가며 에너지와 장치를 만들어갈거라 굳게 믿고 있겠지. 그게 안될거란 확신이 생기면 타겟은 당연히 나와 유박사로 가장한 유실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유박사 소원 하나쯤은 들어줘야겠다는 양심의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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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석입니다.”
“서일신입니다.”
인사는 간단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상반된 목적이 일렁이고 있었다.
선박용 중력제어장치를 원하는 김태석과 태양회로의 잠입을 원하는 서일신. 서일신을 이용할려는 태양회와 태양회를 이용할려는 서일신.
수많은 기자떼가 모인 자리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조인식에 백조가 된 김태석과 서일신. 그들의 발처럼 물밑에서 무수한 발길질을 하며 숱한 야근의 밤을 불태운 실무진들이 어울려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식장을 연출했다.
그래비티의 4단계 파세나이트 에너지 추출 기술과 선박용 중력제어장치의 결합.
나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그래비티의 주가는 단숨에 두배가 되어버렸고, 상장조차 하지 않은 TSS 메탈에는 온갖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 그래비티에서 TSS 메탈을 눈이 돌아갈 가격에 인수할려고 했지만, 내가 있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거절. 그래서 맺어진 게 이번 협약이었다.
“서일신 사장님, 앞으로 잘 해 봅시다.”
궁여지책으로 서명한 계약이지만, 그래비티의 자존심이 있지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적어도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김태석은 몸부림쳤다.
“우리가 협력하면 선박엔진시장은 독점입니다, 하하하.”
‘일단 좋은 인상을 남기되 당당해야 합니다‘. 박민서가 주문한 서일신 사장의 태도였다.
“서사장님, 언제 제가 멤버로 있는 모임에 한번 초대해도 될까요?”
이렇게 빠르게 본론을 꺼낸다고? 뭔가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어.. 어떤 모임 말씀하시는건지요?”
“대한민국에 내노라 하는 분들은 다 들어가 있는 모임입니다. 저도 사업 초기에 꽤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후회 하진 않으실 겁니다.”
후회? 그런 곳에 발 들였다가 엄청 후회할 것 같은데.
서일신 사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정치하는 분들하고는 별로 친하지가 못해서요.”
일단 컷. 튕기는 맛이 없으면 딜이 아니다.
김태석이 안달나게 만들어야 했다. 그 위의 어르신들이란 존재들에게도 몇번쯤 찍을 기회를 줘야하지 않겠는가. 무릇 저잣거리 처자도 한두번 찍어서 넘어오지 않거늘, 한번에 ‘네 좋아요’라고 따라가면 스스로의 가치만 떨어진다.
서일신 사장은 최대한 가치를 높여 태양회에 진입해야 했다.
“하하하,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요. 근데 막상 만나고 보니까 훌륭한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초대하겠습니다.”
훌륭한 분들이 대한민국에서 다 사라졌나 보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나라의 위기임에 틀림없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회장님. 그보다 조인식 기념 파티를 즐깁시다.”
C 호텔에서 진행된 조인식장은 어느새 파티장으로 바뀌어 각계의 인사들이 섞여 우아하게 샴페인 잔을 들고 서로를 함정으로 유인하는 격조높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 우리 서사장님 여기 게셨네요.”
“아이고, 서사장님, 축하드립니다.”
“김태석 회장하고 이야기 나누고 계셨네요?”
특허청장 현미정, 김효선 야당 법사위 위원, 진정식 산업통상부 장관까지 서일신 사장을 둘러쌓다.
‘태양회 모임이야 뭐야‘
서일신은 태양회의 인해전술에 살짝 두려움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누군가. 선박업계에서 철과 땀으로 굴러왔던 몸이 아닌가. 배짱 하나로 버텨왔는데, 이까짓 인간들에게 기죽어서는 안된다.
조금 떨어져 있던 태양회로 의심되는 멤버들도 서일신 사장을 겹겹이 에워싸고 노골적인 유혹의 덩굴을 뻗쳤다.
가만 생각해 보니, 여기 있는 기자들과 서사장의 손님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부가 태양회인 것 같았다.
“그래비티에서 처음 자량용 중력제어장치를 개발했을 때 말입니다...”
김태석이 서사장과 명함을 교환한 사람들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처음 개발한 장치를 중국 자동차 회사와 연결시키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됐습니다. 중국에서 대규모 발주가 시작되면서 급속하게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서일신 사장은 보이지 않는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여유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 분들 모두 저희 모임인 태양회 멤버들이십니다. 이분들이 도와주시면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매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서사장님.”
서일신 사장은 민서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비티 기술이 아무리 좋다하더라도 보통 매출 500조가 넘어가는 대기업이 하나 탄생할려면 10년도 모자라잖아요? 근데 그래비티는 4년만에 했어요. 이해가 안 가요.]
서사장은 대략적으로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중국쪽에서 이 기술을 확실하게 밀어줬다면?
대륙은 일찍이 만리장성도 쌓은 곳이 아닌가. ‘여기서 저기까지 성 함 쌓아봐’ 그랬을 거다.
그 후손들이 ‘당에서 이거 좋던데 해 볼래?‘ 그러면 기업은 거기에 올인할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중국과 밀접한 관게를 가지고 있는 태양회의 입김이면 첫 대규모 매출이 중국에서 나온 것도 이해가 됐다.
‘근데 왜 중국이 밀어주지?‘ 이건 박민서나 서사장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중국 시장을 공략하면 꽌시를 이용해서 쉽사리 시장개척이 가능하단 말씀이시죠?”
서사장이 질문을 하자 주변에서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바톤이 진정식 산업통상부장관에게 넘어간 듯 했다.
“그렇지요. 초기에 그래비티도 비교적 쉽게 시장을 뚫었지요. 저희들 모두도 애 많이 썼어요, 허허허. 그래비티 모델을 따르면 좋을 것 같소, 서사장.”
모두가 초기에 중국을 연결하는 걸 빌미로 전부 주식 받아서 엄청난 부를 만들었단 사실은 빼 먹고 감히 판매전략을 지적질 하고 있었다.
“글쎄요..., 전 당분간 한국과 일본 시장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방산계통으로 미국쪽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독일 M사에서도 연락이 왔구요. 중국에 갈 여유가 없어요. 고부가가치 선박을 위주로 해야 수익성이 좋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래비티가 처음 중력제어장치란걸 출시했을 때는 세상에 없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선박회사들은 이제 그게 뭔지 안다.
화석연료가 들지 않는 선박, 효율이 최고인 선박, 더 빠른 선박. 구질구질하게 기술이 어떻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반중력 선박’이란 말 한마디면 설명이 되니까.
말을 꺼냈던 진정식 장관이 얹짢은 듯 표정이 굳어져 갔다.
“이 기술이 국가전략기술이란 건 아시지요? 즉, 국가에도 어느 정도 관여할 지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서사장.”
하다하다 어린애들도 부리지 않을 땡깡을 부린다. 어지간히도 쫄리는게 있긴 있나 보다. 확 받아쳐 버리고 싶지만, 이 경사스러운 날을 망칠 순 없었다.
그리고 태양회 침투라는 미션을 위해서라도 성질을 죽여야 했다.
“그건 저희 내부적으로 상의를 해 보도록 하지요, 장관님. 그보다 태양회란게 단순한 친목 모임입니까?“
법사위 위원인 김효선이 나선다.
“그냥 친목 모임이라기 보단, 서로서로 힘이 되어주는 모임이죠. 사업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으실텐데 많이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한자리 주시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1등은 못해도 꼴지로 들어가는 건 싫어서요.”
‘이왕 들어갈거 높은 자리로 들어갈 수 있으면 더 좋겠지‘라는 생각과 진정식 장관의 억지에 열받은 서일신 사장도 얼토당토 않은 억지를 부렸다.
주위 인물들의 당혹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서일신 사장은 빙글빙글 웃으며 왜들 그러세요라는 의아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그 말씀은 시니어...멤버로 받아달라는 겁니까?”
김태석 회장과 진정식 장관이 곤란하다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
‘시니어 멤버?’
멤버쉽에도 여러 종류가 있나보다란 단순한 생각을 하는 서사장. 말도 안된다는 손짓을 한다.
“에이~, 안 되죠!”
서사장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뱉지만,
“시니어 멤버 정도 가지고 되겠어요? 그 위. 그 위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는 말에 다들 입을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주니어, 시니어,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이런식으로 있을텐데, 골드 멤버 정도는 되야 중간은 하지’라는 단순한 서사장의 생각이었다.
김태석이 더듬대며 설명을 한다.
“시니어 멤버 위라면 운영위밖에 없는데, 거긴 원로들만 들어가는 곳이라...”
심지어 김태석도 5년 이상 충성을 보이고 올라가게 된 자리였다. 그래비티의 창립자인 자신도 그런데 갓 들어올 서사장이 운영위? 말도 안되는 자리다.
그러나 서일신 사장. 그 특유의 단순무식함으로 밀어부쳤다.
“그런건 잘 모르겠고, 하여간 시니어 위가 아니면 안 갈랍니다. 대한민국에서 서일신 가치가 상당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유니콘에 초기 투자 하시죠, 하하하.”
그냥 질러본다. 사실 태양회 따위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박민서와 한 약속이 아니었다면 시도도 안 했을 것이다.
높은 자리 안 주면 안 들어가겠다 그러고, 태양회에서 거절하면 박민서에게도 '야! 쟤네들이 나 안 받아준대'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니 서사장은 막 질러도 손해볼게 없었다.
김효선 법사위 위원이 샴페인을 원샷 해버리고는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운영위에 받아들이겠습니다!”
‘오! 이 여자가 여기서 대장인가 보다’
그러나 서사장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의원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씨발, 좆됐다. 더 윗자리를 달라했어야 되는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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