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을 방어하라!(2)
“너, 본국에 돌아가면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인거 알지?”
대사관 의사인 폴 만다자는 고개를 숙였다.
영국에 유학하고 있던 자신의 아들과 딸 때문에 빠져든 유혹에 완전히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네 아들하고 딸 유학도 끝인거 알지?”
“네.”
녀석이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네가 처벌받는건 나도 어쩌지 못해. 하지만 네 아들 딸 공부는 끝마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
폴 만다자가 고개를 치켜세웠다. 죽음의 문턱에서 동앗줄을 잡은 딱 그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내 말의 뜻을 알아들은 듯 다시 고개를 쳐박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중 첩자를 하란 말씀입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리‘라는 놈. C 호텔 CCTV에서도 걸린 놈이 틀림없다.
그 신원을 알 수 없는 놈이 중요한 키를 쥐고 있을거란 직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딱 두건만 처리하자고. 그 다음에 본국으로 송환될거다.”
놈이 무언가 두려운 듯 갈등을 하고 있었다.
“위험하진 않을거야. 네가 알아낼 건 두가지야. 첫째, 대사관에 대한 공격날짜와 방법.
둘째, ‘미스터 리’란 놈의 진짜 정체. 세부적으로 어떻게 이야기 할지는 내가 말해 주지.
명심해! 너의 아들 딸의 영국 생활은 내가 개인적으로 책임진다.“
놈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어..어떻게 믿습니까?”
“지금 당장 너희 자식들 이름으로 신탁펀드를 만들지. 그리고 학비와 생활비를 졸업할때까지 지급하는 걸로 계약할거야. 일단 펀드가 개설되면 나도 손 못대.“
“후~~. 하겠습니다, 대사님.”
치포와 나, 그리고 폴 만다자는 ‘미스터 리’라는 놈과의 통화내용을 짜기 위해 이틀간 머리를 맡댔다.
폴 만다자로부터 그 놈의 성향과 느낀 점 등을 상세히 듣고 가능한 모든 상황에서 대응책을 생각하고 있어야 했다.
마침내 폴 만다자에게 전화를 넘기고 ‘미스터 리’에게 전화하도록 했다.
“여보세요? 미스터 리? 폴 만다자입니다.”
“만다자 선생님! 반갑군요. 알아내셨나요?“
“네. 당신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걸 알아냈고, 메일을 보낼 준비 됐습니다.”
“하하하, 이거 큰 신세 졌습니다. 아드님과 따님 학비 말고도 보너스를 드려야겠네요.”
폴 만다자의 목소리는 그대로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본격적인 용건을 꺼낼때가 가장 위험하다.
“네, 감사합니다. 그보다 언제 어떻게 공격하나요? 저희 대사관.“
상대방이 침묵모드로 빠져들었다.
난 만다자에게 한마디 더 하도록 수십장 써놓은 메모 중 하나를 보여줬다.
“이런 정보를 원한다는 건 대사관을 공격하겠다는 겁니다. 저도 알건 알아요. 저의 안전이 위협되는 건 싫습니다. 언제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저도 피합니다.”
‘미스터 리’라는 놈은 계속 듣기만 했다. 새끼 이 놈도 머리 엄청 굴리고 의심하고 있으리라.
“3일 후 박민서 대사의 스케줄은 어떻게 됩니까?”
난 내 스케줄표를 집어들고 보여주었다.
날 보며 눈을 마주치고는 폴 만다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알기로는 별거 없는 걸로 생각되는데, 비서실에 아는 사람을 통해 확인하고 메시지 보내겠습니다.”
“3일 뒤. 오후 2시에 들어가는 식재료 배달 차. 방법은 자살폭탄.”
일단 1차 목표 달성!
난 ‘화 내! 그리고 끊어!’라고 쓴 메모를 만다자에게 보여줬다.
“폭탄테러를 할 거면서 나에게 언제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군요. 나도 그 건물에 드나들기 때문에 폭사하면 당신한테 더 좋았겠군. 우리 거래 여기서 끝냅시다. 당신을 믿을 수 없네요.”
“잠깐.., 잠시..”
만다자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가 다시 울렸다. 난 만다자에게 내버려 두라고 했다. 놈이 더 안달할수록 추가 정보를 얻기가 쉬워질테니까.
“한시간만 더 있다가 전화하자고. 놈이 이성을 잃어야 하니까.”
한시간이 더디게 갔다. 시계의 초침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기다림에 지쳐 죽을만큼 돼서야 시간이 되었다.
다시 ‘미스터 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씨발 새끼야! 돈 받아처먹고 정보를 안 줘? 죽고싶어?”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를 쳐 댔다.
나와 치포는 웃음을 참으며 다른 메모지를 만다자에게 보여줬다.
“나도 보험이 하나 있어야겠어. 당신 오늘 하는 걸로 봐서 일이 틀어지면 나나 내 가족을 손 댈 것 같군.”
“무..무슨.. 보험?”
놈의 음성이 확연히 줄며 약간 떨리는 것마저 느껴졌다. 분노를 참아서인지 뭘 요구할지 두려워서인지 모르겠다.
“당신 신분! 난 당신 신분을 원해. 혹시 당신이 날 노리면 나도 바로 MI6나 한국 국정원에 가는 거야.“
놈이 또 침묵했다.
난 또 하나의 메모를 만다자에게 보여줬다.
“바로 결정하기 힘들겠지. 그럼 난 오늘 내일 바쁘니까 모레쯤 다시 통화하자고.”
라고 말하고 끊을려고 하는 찰나,
“잠깐만!! 알았어, 니가 이겼어!
난 태양회라는 조직의...“
난 또 하나의 메모를 보여줬다.
‘거짓말이야!’
“내가!! 알건 안다고 했지? 나도 본관건물을 들락거리면서 듣는게 많아. 네가 태양회라고? 좆까, 시팔놈아!”
만다자가 화를 냈다. 연기 잘 한다. 아니면 진짜 열 받은걸지도.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번에는 놈이 바로 전화하지 않는다. 놈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난 여유롭게 기다렸지만, 만다자와 치포는 초조해 했다.
15분이 지나서야 놈이 전화를 했다.
“폴 만다자 선생.... 내 신분을 다른 곳에 알리면 당신과 당신 가족을 지구 끝까지 찾아가 죽일 겁니다.“
만다자는 담담한 어조로 놈에게 최후통첩을 했다.
“당신 신분!”
“난..., 중국 국가보안부 주임 리 샤오보요.”
그래, 개새끼들! 이제 증거 잡았다. 중국 정부 맞네.
난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새로운 메모를 하나 적었다. 그리고 폴 만다자에게 보여줬다.
“리 샤오보 주임. 마지막으로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오늘은 질문이 많군.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거라면.”
“왜 박민서 대사를 그렇게 죽이려 합니까?”
놈이 한참을 말이 없었다.
“놈이 더 이상 필요없어졌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
중국놈들이 파세나이트 추출법을 6단계까지 다 파악했다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5단계부터는 한국인이 아니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한국인이라도 조중현이는 제외. 그 놈 머리론 택도 없다.
아니면..., 나의 자만심인가?
지금은 대사관에 대한 공격을 막을 때다. 그것만 생각하자.
“자, 아시겠죠? 3일 뒤, 화요일 오후 2시 식재료 배달 차입니다. 거기 대량의 폭탄이 실려 있을 겁니다. 모든 인원은 경호실이 있는 부속건물로 옮깁니다.”
김초롱 검사에게 대략적인 내용을 이야기 했다. 다만 중국과의 연관성 부분은 말하지 않았다. 이건 특급기밀이다.
“대사님, 저라면 3일 뒤에 하지 않아요. 대사님이 대사관에 있다는 거 주변에서 지켜보다가 하루나 이틀 뒤에 바로 실행할 겁니다. 어떻게 그 놈을 믿을 수 있죠?“
김초롱 검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나도 찜찜해 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나쁜 놈들이 괜히 나쁜놈이 아니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는 있습니다. 나름의 준비는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기계 만드는 능력을 쓸 때가 왔다. 탱자탱자 놀고 있는 정재석이 눈에 들어왔다.
“정재석! 나하고 일 좀 하자.“
재석이 좋다고 희희낙락 따라왔다.
우리는 의료실로 가 포터블 X-Ray 기계를 별관 지하에 마련된 내 개인 연구실로 옮겼다.
“음.., 일단 내가 시키는대로 기계를 뜯어. 여기 있지? 여기 볼트 전부 다 풀어.”
정재석이 아무 생각없이 일을 시작했다.
난 종이에 대충 도면을 그리고 반군 시절에 썼던 파동포 모양으로 개조를 시작했다.
“재석아, 너 차 가지고 정원 앞에 세워 봐!”
밤새도록 작업을 끝내고 별관 옥상으로 옮긴 X-Ray기계를 개조한 스캐너의 스위치를 켰다.
위이이잉~~~
재석의 차가 들어오는게 보였다. 차의 내부가 훤히 보였다.
재석도 궁금했는지 차를 세우고 쏜살같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우와~!! 이거 공항검색대 같은거에요?”
“응. 이거 쓰는 법 가르쳐 줄테니까 넌 여기서 들어오는 차마다 다 스캔해! 그리고 차 청소좀 해라 새꺄. 차에 쓰레기가 이게 뭐냐?”
“아 씨! 프라이버시가 없네, 이 동네는. 이걸로 출력조절 하는 거 맞죠? 스위치는 이거고?“
의외로 빨리 익혔다. 머리 좋은 건 확실하다.
“그리고 출력 낮추면 나체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녀석이 마침 정원을 지나던 치포의 몸에 장비를 조준하고 출력을 낮췄다.
치포의 맨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와 재석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우와~~!! 진짜 크다!!”
퍽~~!!
치포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자존심을 확대해서 비추는 재석의 머리를 한 대 쳤다.
“임마, 그딴 장난치면 너 성추행으로 고발해 버린다! 의심가는 놈 아니면 사람한테는 비추지 마! 암 걸려.”
머리를 맞든말든 녀석은 이 기계가 신기한가 보다. 건물에도 비춰보고 멀리 있는 호텔에도 비춰보고 재미난 장난감 하나 얻은 느낌이다.
“내 생각에 오늘 내일 공격해 올 것 같애. 그러니까 네가 잘 보고 있다가 무전으로 연락해 알겠지? 찬이 올려 보낼테니까 교대로 봐.”
재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 옥상마다 보이지 않도록 경찰특공대 저격수가 배치됐다.
장비는 옮길 시간이 없어, 사람들만 경호실이 있는 부속건물로 옮겨 대비하도록 했다.
치포는 차를 정문에 세우고는 한국경찰들과 정문 경비에게 뭐라뭐라 하는게 보였다. 식재료 차는 대충 검색하고 통과시키라고 지시하는 듯 했다.
어쨋거나 준비는 끝났다.
사람만 안 다치면 작전은 성공이다. 건물이야..., 아니다, 건물은 돈인데, 돈도 깨지면 안되지.
상황실의 인원들은 긴장된 표정이었다.
김초롱 검사가 내게 다가왔다.
“대사님, 아무일 없겠죠...?”
불안한 건 알겠는데, 아무일 없을 리가...
그래도 안심시켜야지 어쩌겠나.
“네, 일단 준비는 다 했습니다. 부속 건물은 방폭창까지 다 내렸으니까 폭탄이 터지더라도 충격만 좀 있을 겁니다.”
근데 차량 자살폭탄이면 건물 자체가 무너지는데...
삐빅~
“캡틴, 식자재 트럭 한 대 들어오는데, 뒤쪽에 드럼통 비슷한게 몇 개 있네요. 젓갈통인가...? 캡틴 젓갈 좋아해요? 뭘 저렇게 많이...”
병신! 평소에 똑똑하다가 결정적일 때 멍청하게 되는건가. 젓갈통 좋아하네!!
“전 대원! 폭탄트럭이다!! 수상한 움직임 보이면 바로 저격하세요!”
일층으로 뛰어내려가 트럭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치포가 벌써 트럭 운전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은 뭐 맛있는게 있습네까?”
“뭐.. 평..평..평소하고 같지요.”
말더듬이 운전기사 옆의 외국인 노동자.
거의 확실하다.
난 운전석에서 내려 냉장 화물칸으로 가는 운전기사를 돕는 척 하며 반대편 조수석으로 돌아갔다.
쑤욱~~!!
조수석에 있던 놈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알라 후 아크...”
타타타탕
타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타타타탕
서늘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총을 쏘고 치포도 보조를 맞춰 냅다 갈겼다. 이마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죽은 놈의 손이 축 늘어지며 기폭 스위치를 떨어뜨렸다.
난 놈이 떨어뜨린 기폭 스위치를 얼른 주워 들었다.
“재석아, 스캐너로 이 차 냉장칸에 문하고 연결된 케이블 그런거 있는지 자세히 확인해 봐.”
“어.., 없습니다. 전선이 상당히 많은데 문하고 연결된 건 안.., 안 보입니다.”
상황을 모두 본 재석이 녀석도 꽤나 놀랐나 보다.
탑차의 문을 열었다. 서늘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다행히 폭발은 없었다.
정말 젓갈 담는 200리터쯤 되는 플라스틱 드럼통 네 개가 전선을 교묘히 감추고 안쪽에 실려 있었다.
“상황종료! 상황종료!”
무전으로 알리자 부속건물에서 대기하고 있던 폭발물 제거반이 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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